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라면 요즘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 매우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태라 함은 통합진보당의 경선에 관련된 내용임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나 역시도 매우 불편하고 화가 난다. 진보를 자처하는 무리들 가운데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게다가 보수를 넘어 수구꼴통들에게까지 온갖 비아냥을 당할 정도의 빌미를 만드느냐 하는 것 때문이다. 솔직히 나도 이 일이 터진 후에는 글을 쓸 마음이 사라졌다. 아니 맥이 빠졌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사태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보수 언론을 통해서 연일 확대재생산 되는 것도 모자라 종북주의 논쟁이 더해져 국회의원 제명에 사상검증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기가 차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대한민국 헌정사 60년을 거치는 동안 어느 누가 사상의 문제로 국회의원 제명을 당했고 사상검증을 강요당했으며 세상에 어느 나라가 이런 말도 안되는 검증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가! 대한민국 헌법에는 사상의 자유가 명시돼 있다. 한 마디로 코미디고 반헌법적이다.

나는 기도 차고 맥도 빠지고 정확한 사태를 모르고 또 그정도로 깊이 정치 문제에 관심도 없기 때문에(누가 국회의원이 되고 누가 당대표가 되고 하는 문제 등) 이 문제에 대해서 거론할 입장이 못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나의 홈페이지에 '나그네'라는 필명을 쓰는 수구논객이 충동질을 해왔다. '그따위 진보라면 개나 줘버리라'고! 이 글을 보니 더이상은 침묵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지금 상황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정확한 정황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상식의 한도 내에서 글을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우선 이석기, 김재연 등의 통합진보당 출당 및 국회의원 사퇴문제는 신구파 쌍방 간에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세간에 퍼진 이야기들에 따르면 통진당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 불법적인 정황이 있으니 선거가 무효이며 따라서 당선된 이들은 전원 사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당선된 사람들은 모두 부정선거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는지 알고 싶다. 모두가 그렇지 않다면 선별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문제이다. 게다가 당사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나 김 모두 혐의를 부정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난 이 두 사람의 이름을 이번 사태가 터지면서 비로소 알았다. 그런데 나름대로 당에 적지 않은 기여 혹은 역할을 한 사람들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니 후보로까지 올라간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들의 소명에도 일정부분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들이 부정하는 혐의에 대해서는 속히 재조사를 통해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찾아 제시하면 될 것이다. 내가 볼 때 가장 확실한 사태의 처리는 재조사를 명명백백하게 진행하여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재조사 결과가 나왔고 그 결과에 당원이나 국민 대다수가 인정할만한데도 거부하고 부정한다면 그때는 당연히 출당조치를 해야 할 것이다.

통진당의 문제를 보면서, 정확한 판단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수년전 민주노동당이 분열돼 진보신당이 새로 창당되던 때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결국은 헤게모니이다. 정치라는 것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경쟁은 한 국가는 물론 한 정당 안에서도 당연히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소수파가 다수파를 불법과 부정으로 몰아가면서 헤게모니를 회복하려는 것같다. 물론 불법적인 정황이 있었던 것도 알겠다. 그러나 본질은 통진당 내부의 헤게모니 쟁탈전에 다르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치고 있는 원인은 불법적 선거활동보다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이전투구(진흙탕 개싸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추잡함일 것이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적인 원칙이 구현될 수 없는 꽉막힌 정당이 집권을 한다면 그야말로 지옥이 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나 다름 없는 정권이 될 것이다. 이 정권의 가장 큰 문제가 불통이 아니던가!

아무튼 통진당 사태는 무엇보다도 우선 진상조사단의 철저하고 섬세한 재조사가 진행되어야 하며 그 결과에 복종할 수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다행히 김동한 조사위원장은 개인적인 친분이 있긴 하지만 믿을만한 사람이다.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시점에서 일방적인 출당조치는 당연히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진상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경거망동 하지 않기를 바란다.


문제는 보수권의 도를 넘는 흑색선전이다. 보수언론이 검증되지 않은 흑색선전을 생산해내고 보수주의자들은 신이 났다. 별의별 소리들이 다 들린다. 소위 종북주의 논쟁이 상식밖의 주장까지도 상식으로 만들어 버린다. 아마도 연말의 대선을 겨냥해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현안이 돼서 저지르는 비상식이 아닐까 생각된다. 보수권은 통진당의 사태가 마치 자신들의 모든 죄를 다 혐의 없음으로 해주는 면죄부, 자신들의 치부를 가려주는 성의같이 생각하나보다. 나의 홈페이지에 방문하여 자극한 '나그네'라는 사람은 '통합진보당 사태를 바라보면서 만약 이러한 일이 새누리당에서 일어났다면 벌떼처럼 촛불들고 시위했을 법한 사람들이 침묵으로 일관함이 안타깝다. 자기식구 챙기기인가? 아니면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인가? 정부와 보수를 향해서는 그렇게 쏘아대던 그 사람들. 통합진보당 사태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아마도 우리나라에 초를 더 이상 팔지 않다보다. 이런 것이 진보라면.. 개나 줘라. 제 눈속의 들보부터 바라보길' 이라며 자극하였다.

설령 통진당이 한국사에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패륜적 범죄를 저질렀다 치자. 그건 그들의 문제이고 그들의 죄악일 뿐이지 그로 인해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저지른 죄까지 감형되거나 용서받는 것은 아니다. 오늘도 신문에 보니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매입 관련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리한 것, 또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불교 종교인을 불법 사찰한 것도 나왔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육사에서 경례를 하고 생도들은 기립박수를 쳤다는 기사도 보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연임은 입장 차가 있으니 그렇다 치고 넘어가겠다. 통진당이 엄청난 불법을 저질렀다 해도 여전히 내곡동 사저 건은 비난 받아야 하며 충분히 파헤쳐져야 한다. 민간인에 대한 사찰은 독재국가에서나 자행되는 반인륜적인 정치범죄이다. 게다가 사과상자니 차떼기니 하는 단어가 여전히 생생하게 국민들 뇌리에 남아 있다. 뭐가 뭐 나무란다는 말은 맞지 않다. 진보건 보수건 잘못한 것은 철저하게 처벌 받아야 한다. 오히려 집권하고 있는 쪽이 더욱 철저하게 반성하고 정리해야 맞을 것이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집권자 측에는 그만큼 더 큰 도덕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특정인의 무죄를 주장하고자 함이 아니다. 최종적인 판결이 날 때까지는 단지 의심을 받는 존재라는 뜻으로 피의자일 뿐이다. 피의자가 곧 죄인은 아니다. 이런 차원에서 조금 더 기다렸으면 좋겠다. 진상조사가 머지 않아 발표될 것이다. 나는 왜 논쟁의 핵심이 되는 사안들에 대해 더 일찍 재조사를 시작하지 않았는가,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종북주의 논쟁까지 유발되도록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지가 오히려 불만이다. 나름대로 한국 민주화에 기여한 바가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서로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경고하기는 보수도 제대로 된 보수가 되려면 자신의 허물 역시 되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