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이 5.24조치를 발효한지 2년이 되는 날이다. 5.24조치는 천안함 침몰 사태와 관련하여 이명박 정권이 조선의 소행이라고 지목하고 이에 대응하여 내린 조치이다. 물론 조선은 천안함의 침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이례적으로 발표하고 나섰지만 정치적으로 어려웠던 이 정권은 조선의 발표를 무시하고 5.25조치 발효를 강행했다. 한국의 민간차원에서도 천안함 사건이 조선의 소행이라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게 들려오고 있으나 군당국과 정부는 무시하고 북의 소행으로 낙인직는 일에 급급했다. 국제적인 관례에 따른다 할지라도 모두가 동의할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한 사건의 주범을 낙인찍는 것은 매우 큰 실수이다. 이런 절차를 충분히 검증하고 증거를 규명하고 내려도 늦지 않은 조치였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조치'라는 말을 들어본 진가 꽤 오랜만인 것 같다. 사실 무슨무슨 부동산 대책 등이 조치라는 이름으로 발표되기도 했었던 것 같다. 그런 것 외에 조치라는 단어는 박정희 정권 시대에 긴급조치라는 이름으로 몇차례 발표되었던 것 정도인가보다. 박정희 시대에 발표한 긴급조치들은 대부분 장기집권과 철권통치를 위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21세기 대명천지에 다시 조치라는 것이 발표되고 그것이 2년을 끌어왔다. 내용은 조선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다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대조선 압박의 효과를 전혀 거두지 못하였고 오히려 한국 자신만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닌었던가 평가할 수 있겠다.

5.24조치가 낳은 결과는 매우 참담하다. 조선을 압박하기 위한 조치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한국에서 조선에 가할 수 있는 압박은 한계가 있다. 이미 한국전쟁 이후로 60여년을 전면적인 서방세계의 고립에 직면한 것이 조선이다. 물론 90년대 이후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엄청난 경제위기에 직면하였으나 나름대로 탄탄한 기반을 유지하면서 여전히 체제를 지탱하고 있으니 조선은 제재, 압박이라는 것에 이골이 났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압박에 대하여 오해하는 것이 있다. 많은 것을 가졌던 이가 모든 것을 잃게 되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과 가진 것이 얼마 없는 사람이 그나마라도 가진 것을 잃게 되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 중에 어떤 쪽이 더 클까? 많은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이 그나마 가진 것이라도 잃게 되었을 때가 거 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의 경우 오히려 체념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5.24조치가 조선에 대해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까? 전혀 아니다. 빈곤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한다. 한국에도 빈곤층은 있다. 한국같이 경제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의 경우에는 경제적 제제가 효과를 발휘할 지 몰라도 조선은 경우가 다를 수밖에 없다. 조선이라고 넉넉하게 사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모든 인민이 다 배를 곯는 것도 아닌 형편에서 한국의 5.24조치는 어려운 이들, 어차피 사회의 주류가 되지도 못하는 이들에 대한 압박 이상도 이하도 아닐 공산이 크다. 게다가 불난 집에 부채질 한다고 동포가 어려운 처지에 처했는데 돕지는 못할 망정 무슨 조치라는 이름으로 제재한다는 것이 그저 인심만 잃는 것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5.24조치는 오히려 개성공단에 나가 있는 한국의 기업들과 가내수공업 형태로 임가공에 주력했던 기업들을 엄청난 위기로 몰아넣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개성공단이 조성되고 한국의 기업들이 진출한지도 벌써 10여년이 되었다. 10여년 전에 설치했던 공장설비들이 노후화될 시점이다. 당연히 설비를 개비해야 하는데 5.24조치에 묶여서 기계설비들의 반출이 금지당하고 있으니 생산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업 확장의 기회조차 제한되고 있다. 사업이라는 것이 잘 되면 당연히 설비를 늘리고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기회들이 차단당하고 있으며 제품 생산을 위한 원자재 반출과 관련된 절차에도 제한이 가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임가공업의 경우에는 거의 망했다고 봐야 한다. 임가공 업체들의 자재를 실은 배가 인천항을 출발해 남포항으로 운항했었다. 그러나 5.24조치 이후에는 제약을 받고 물량이 현격하게 줄더니만 지금은 아예 원자재나 완제품의 반입 반출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인천-남포를 운항하던 배편도 지금은 전혀 일정이 잡히지 않고 있다. 어쩌다 민간교류단체의 인도지원 물자를 보낼 기회가 있어도 배편이 마련되지 않아 취소되기가 일쑤이다. 대북민간단체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인천-제3국-남포의 경로를 더 많은 비용을 들여 지원하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 금강산 관광이 전면 중단됨으로 인해 강원도 북부 지역 주민이 겪고 있는 생활고까지 더한다면 5.24조치는 철저하게 한국인들 자신만이 피해를 보게 된 이상한 조치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명박 정권은 생각하면 할 수록 이상하다. 정말 조선을 압박하고 붕괴시키기를 원한다면 왜 5.24조치 같이 실효성도 없는 조치를 발표하고 그것을 2년이나 끌어올까? 조선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이나 조선의 인민들을 자주 접했던 사람이라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5.24 같은 조치가 조선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교류와 만남, 경제적인 접촉이 조선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한국산 제품들이 활발하게 조선에 유입되고 조선 사람들이 한국사람들을 만나면서 한국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 더 큰 요인이 된다는 것이 이미 수도 없이 보고되고 발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권은 실효성 있는 조치들은 외면하고 오히려 제살을 깎아 먹는 이상한 조치에 집착하고 있다.

5.24조치가 2년을 끌어왔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한국 정부가 주장하듯이 천안함 사태가 조선의 소행이라도 해도 이미 그 주범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을만한 존재, 즉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세상을 떠났다. 실효적인 책임소재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부모가 빚을 졌다 해도 세상을 떠나면 그 자녀에게 채무를 강요할 수 없게 법으로 규정하였다. 천안함 사태의 진위여부를 떠나서 어쨌건 이제 천안함 사태는(희생자 유가족에게는 매우 미안한 이야기임을 밝힌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압박을 하든 대화를 하든 어쨌건 지금의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꿋꿋하게 2년 동안이나 5.24 조치를 유지했던 이명박 정권이 이제 임기를 반년 앞두고 철회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더욱 촘촘하게 종북주의 논쟁을 부추기면서 조선을 압박하고 조선과의 교류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압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24 조치는 정리되어야 한다. 전혀 한반도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한국민들이 어려움을 겪게 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뭔가 결단과 변화가 있기를 간절하게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