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수) 오후 2시 국가인권위원회 8층 배움터에서는 의미 있는 강연회가 열렸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여성위원회가 주관한 이 강연회에는 남쪽 사람들이 접하기 어려운 북쪽의 일반인들을 많이 접하여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KBS 공용철 PD가 강사로 초청되었다. 약 40여명의 청중이 참여한 조촐한 자리였지만 쉽게 얻기 어려운 정보들과 북녘 동포들의 생활상을 잘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공용철 PD는 생방송 전국은 지금,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추적60분, 역사스페셜 등을 연출하였고 작년에는 통일대기획 ‘북한 주민 통일을 말하다’를 연출하여 공히 남북의 통일의식에 대하여 주의를 환기하였다. 또 2006년 통일언론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현재 북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공 PD는 자신의 경험과 북한(필자는 조선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나 강연자의 강연 내용에 충실하기 위하여 이 글에서는 북한이라고 기술하겠다) 주민을 접촉하고 그들의 의식을 파악하기 위하여 진행하였던 인터뷰한 내용을 강연을 통해 풀어놓았다. 공 PD는 남북을 움직이는 키워드를 ‘돈과 평등’이라고 규정하고 강의를 진행하였다.

남한의 일반인이 북한 사회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매우 피상적이다. 수십 년간 이어온 반공교육도 여전히 유효하며 북한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강의는 매우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으며 북한 주민이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다. 그래서 강의 내용 전체를 아래에 요약한다.

남북 모두 최대의 관심사는 돈이다. 북한의 경우에는 여기에 평등이라는 문제가 추가된다. 지난번 방송을 위한 인터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북한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선호도는 매우 높다. 그러나 최근에는 돈에 관한 관심이 더 높아졌다. 2009년의 화폐개혁은 북한 사회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빈부격차, 개인소유를 평등화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었다. 시장(장마당의 공간개념을 포함한 경제적 의미로의 시장)에서 소외된 농부, 광부 등을 배려한 조치였다. 빈부격차가 생기게 된 상황에서 발생한 민심이반, 불만을 다독이려는 시도인 것이다.

김정은 제1비서 중심의 유일지배체계가 완성돼 가고 있다. 김정은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김정은이 지시한 몇 가지 조치에서 기인한다. 우선 민심확보를 위해 시장을 활성화하였다. 북한은 시장에 나와 장사를 할 수 있는 연령을 제한하고 있는데 김정은은 이를 완화하여 40세 이하도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여기에 더해 그동안 강제되었던 공출, 잡부금 등이 완화, 축소되었다. 북한은 세금을 걷지는 않지만 주민이 부담해야 할 각종 금전적 부담이 적지 않았다. 이를 완화한데다 김정은의 밝고 쾌활한 분위기가 주민들 사이에서 호감을 갖게 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식량사정이 좋지는 않다.

북한 주민 중에 큰 보따리를 이고지고 들쳐 메고 다니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보게 된다. 이 짐들은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한 짐꾸러미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는 것만으로도 지금 북한에서 시장이 얼마나 활발하게 열리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배급체계가 붕괴되자 시장이 확대되었으나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되었다. 시장이 형성될만한 수요가 적거나 공간이 형성되지 않은 농촌, 외부와의 단절로 인해 독특한 내부문화를 형성한 광산촌, 살림살이를 해야 하는 여성(어머니)이 환자인 경우 등은 시장의 발전과 더불어 신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반면 자본주의의 자본가 개념인 돈주가 출현, 성장하였다. 이들은 적게는 20만 달러, 많게는 100만 달러를 소유한 이들로 주로 경리직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어 자금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는 여성들이 많다.

돈주는 전, 국수, 막걸리 등 식료품 장사로 시작하여 공업품(경공업) 장사로 성장한다. 공업품은 시장 내 고정적인 좌판, 매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중기(가전제품)을 판매한다. 부피가 큰 가전제품은 매장에 전시하지 않고 따로 창고를 가지고 있으며 상품목록만으로 장사를 한다. 중기에서 성공하면 차판(도매) 단계로 넘어간다. 차판부터 돈주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데 신의주-해주, 나진선봉-평양 등 장거리를 이동하면서 도매를 한다. 차판의 단계를 넘어서면 본격적인 외화벌이로 나서게 된다. 국가가 직접 장사를 할 수 없으니 당국은 장사능력을 검증 받은 돈주들을 발탁해 외화벌이 사업을 진행한다. 이 단계에 오른 이들은 북한 내에서도 외제차를 타고 다닐 정도로 당국과 유착돼 있으며 혜택을 누린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당정군의 정경유착, 부정부패, 뇌물공여 등의 비리가 적발돼 체포되기도 한다. 고위직 탈북자의 다수는 자신의 비리가 적발된 것을 알고 체포 직전에 탈출한 외화벌이꾼들이다.

돈주의 출현으로 다양한 서비스 직업이 출현하였다. 운전기사가 인기가 높아졌다. 특히 국경무역을 위한 운전기사들은 외국산 물품, 정보와 주민들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인기가 높다. 돈이 돌다보니 운전기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직업군이 출현한다. 주차요금을 받고 타이어를 점검해주며 유리창을 닦아주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직업군이 형성된다. 남자는 직장에 출근해야 하지만 여자는 결혼을 하면 가족 부양의 의무를 지게 되어 따로 직장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보니 생계를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 그래서 가대기꾼(?), 택배, 가정교사(컴퓨터, 영어, 중국어, 악기 등), 입주가정부 등의 직업이 생겨났다. 교사의 수입이 많지 않아 교사를 퇴직하고 가정교사로 전업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은 1958년에 사회주의 완성을 선언하면서 농업집단화를 시작하고 시장을 폐쇄하였다. 대신 농민시장을 조성하였는데 쌀 등 주식을 제외한 채소, 텃밭농산물을 월 3회 거래할 수 있도록 허가하였다. 이런 체제가 30년 동안 이어졌다. 생필품은 배급을 받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화폐는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 배급이 중단되면서 농민시장이 암시장화 되었다. 고난의 행군 시절에 공식적으로 30만 명이 아사하였다고 보고되었는데 이 때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것은 교사, 연구원 등 현실 적응력이 떨어지는 중간지식노동자층이다. 이때부터 북한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시장을 형성하고 화폐의 가치와 의미를 재생산하게 되었다. 이후 2003년에 시장을 합법화하게 되었고 종합시장이 등장하였다. 현재 세금을 정상적으로 납부하는 합법시장은 300여개가 된다. 물론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거래하기 때문에 단속을 받는 불법암시장도 많다.

북한의 시장이 확대되면서 전국의 가격이 평준화되는 시장단일화가 이루어졌다. 도소매 시장으로 분화되었고 생산물, 노동, 금융시장 등 4대 시장이 형성되었다. 시장에서는 달러가 거래되는데 김정은이 현지시찰을 갈 때 기관에 지급되는 혁명자금(격려금)도 달러이다. 중산층이 탄생하였지만 시장에 기생하는 간부들, 부정부패가 만연한 부정적 측면도 발생하였다. 북한에서 최대의 관심사는 돈을 버는 것이 되었다. 체제에 대한 관심보다는 돈이 우선이 된 모습이 많이 보인다. 고위층으로 갈수록 달러에 대한 집착이 큰데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 것으로 판단된다. 장사꾼이 여권,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스물세 번의 날인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 약 600달러가 드는데 실제 여권 자체에 드는 비용은 단지 20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580달러는 급행료나 뇌물인 셈이다.

북한의 여성은 시장형성과 가계를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려운 살림살이에서도 가족을 책임지고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한 여성의 노력은 매우 감동적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지만 조리를 위한 화력이 부족하므로 두 시간 가까이 아침식사 준비를 한다. 가족을 출근시킨 후에는 물건을 챙겨 장마당으로 향하여 저녁 7시까지 장사를 한다. 한겨울에는 매서운 추위를 견뎌야만 한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북한 여성은 이렇게 억척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이런 여성의 활동을 보면서 생명력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고 감동을 많이 받는다. 90년대 이후부터 시장에서의 여성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 요즘은 신세대 남성이라는 말이 등장했는데 남편이 출근 전에 아내를 도와 장마당에 물건을 날라다 주는 남자를 지칭한다. 시장과 시장을 통한 여성의 헌신은 북한의 여권을 신장시키는 변화를 가져왔다.

시장 확대가 가져다 준 변화에는 한류의 유입도 들 수 있다. 현재는 북중경협에 남북경협이 포함되는 양상이다. 북한이 중국을 통해 수입하는 기계류에는 한국제품이 매우 많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유입도 주목할 만하다. 북한은 한류를 황색바람이라며 사회주의의 적으로 간주하여 통제하지만 실효적이지는 않다. 북한의 황색바람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 한국상품, 한국 대중문화, 신앙이다. 북한 고위층은 삼성 김치냉장고를 사용하기도 한단다. 대중문화의 경우에는 소형(휴대용) 텔레비전의 보급이 한 몫을 한다. 어떤 주민은 KBS의 뉴스를 실시간으로 정기적으로 시청하기도 한다. 물론 전적으로 다 믿지는 않는다고 한다. 한국에서 방송된 드라마는 1주일이면 북한 전역에서 볼 수 있다. 한국 대중문화는 중국 등을 통해 유입되고 다시 시디 등 미디어로 제작되어 유통되며 돈벌이를 위한 유통조직도 존재한다. 단지 전기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것이 걸림돌이다. 신앙의 유입이 매우 주목할 만하다. 주로 국경무역에 종사하는 이들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데 중국 국경지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이 손바닥 성경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포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 전도활동이 가족 간에도 쉽지 않은 상황이기는 하지만 성경보급은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아마도 불확실한 미래와 어려운 살림살이 때문에 종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대중문화(드라마)를 접한 북한 주민의 반응은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 한국 드라마의 불륜, 출생의 비밀, 연애 이야기 중심성 등은 북한 주민에게 한국사회의 부도덕성으로 비친다. 또 한국이 다문화 사회가 돼가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거부감을 갖고 있다. ‘남이 사는 내나라’라는 표현을 하는데 남한에 대한 이질감을 표현한 말일 것이다.

북한에서 시장이 갖는 의미는 주민에게 있어서는 약화된 배급체계를 대체하는 생존의 공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공존공간, 자본주의 학습공간이자 정보의 유통공간이다. 폐쇄적인 북한 사회의 틀이 무너지고 이동, 수송의 폐쇄적 특성이 무너지는 시공간이다. 월급이라는 것이 따로 없는 북한사회에서 시장에서 발생하는 뇌물은 개인적인 이익을 축적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북한 당국에게 있어서는 약화된 계획경제의 보완공간이라는 이점이 있지만 자본주의 요소의 성장, 외부 문화와 정보의 소통, 체제위협세력의 성장이라는 불편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에 북한은 허용과 통제라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반복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남북한 주민들의 통일의식을 비교해보면 그 접점은 돈이다. 2011년 KBS의 남북한 주민 통일의식 조사에 다르면 북한 주민들이 원하는 통일의 이유는 경제호전이 가장 많은 45명이었고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43명으로 두 번째였다. 수십 년간 통일을 국시로 삼고 통일을 교육했던 북한 사회에서 경제적 이유가 1위를 차지한 것은 혁명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민족,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경제적 관점으로 이행되는 중임을 알 수 있다. 남한의 경우에도 통일의식은 돈과 연게돼 있다. 통일세 신설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비율이 4.9%, 통일이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6%, 통일 이후 빈부격차 해소에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이 3.4%로 매우 낮다. 이 말은 남한 역시 경제적인 이유로 통일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반영한다. 이후 통일문제는 경제적 관점에서 남북한 주민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필요할 전망이다.

끝으로 남북한의 접점 확대를 위한 과제로는 무엇보다도 우선 평화유지로 상호 적대감을 해소해야 하는 것이다. 천안함, 연평도 사태는 남북한 주민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황해남도 옹진군에 거주하는 북한 주민은 ‘통일을 원한다면 남조선이 전쟁 공포감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민간교류가 회복되어야 할 것이며 대북 인도적 지원 역시 재개되어야 한다. 인도적 지원에 따른 분배 모니터링을 통일부가 주장하고 있으나 개인적으로 볼 때 모니터링을 하기 때문에 지원물자가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간다고 보지는 않는다. 물자가 주민들에게 가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모니터링의 실효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는 남한의 인도지원단체 뿐만이 아니라 유엔기구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사회는 주민에 대한 통제가 잘 이뤄지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흘러나오는 물자들이 있는데 이중에 식량은 전혀 없었다. 지원물자가 전용된다거나 고위층이 착복한다는 우려가 있겠지만 넉넉하게 공급된다면 분명 어려움에 처한 주민들에게도 혜택이 적지 않게 돌아가는 것은 분명하다.

북한사회 전체가 다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전체 중에 하위 30%만이 빈곤상황에 처해있는 것이지 중산층도 있고 돈주 같은 계층도 있다. 상위 40%는 하루 세 끼를 먹고 중간 30%는 두 끼를 먹는 것으로 보인다. 하위 30%는 하루 한 끼를 먹거나 때론 굶기도 하는 형편이다. 물론 반을 중심으로 한 부조체계가 있으나 중간층 이상도 도움을 주기에는 여력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북한에서 매우 시급한 문제는 주택이다. 전쟁 후 베이비부머 세대가 있지만 경제사정이 악화되어 주택공급이 안 되었다. 대가족이 단칸방에 거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자녀가 결혼하지만 집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 어려움은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인터뷰한 사람들 중에는 결혼한 자녀 부부가 떨어져 살다가 주말에만 만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경우 가족들이 알아서 자리를 피해 밖으로 나가준다고도 들었다. 지금 평양에 주택 10만호 건설이 한창인데 남한의 관점에서 보면 그게 뭐가 대단할까 생각하겠지만 주택난의 관점에서 볼 때 주택 10만호 건설은 서민생활 개선을 위해 국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다. 또 단백질 보충을 위한 식용유와 위장약, 소화제 등 상비약 지원이 시급하다. 식수로 인한 질병이 매우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개선과 보완도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