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聖靈/Pneuma)은 기독교에 한정된 것인가? (6)

4. 사도 바울의 성령 이해:
사도 바울의 성령 이해의 결정적 계기는 그가 원시/초기 기독교 공동체 사람들을 심하게 핍박하던 박해자에서 복음의 전도자로 변화되는 회심의 사건에서 시작된다. 여기에는 바울 자신이 실명의 상태에 이르렀다가 다시 보게 되는 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 사실이 사도행전 9장에 잘 기록되어 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이러한 극적인 <회심)체험을 통해서 성령의 임재와 그의 역할을 몸서 체험했다고 보이며, 또한 자신의 선교여행을 통해서 이것을 확인하였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충만)의 임재를 경험을 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이러한 내용들이 사도행전 13장 이하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런 계기들을 통하여 바울은 성령의 역할에 대해서 깊은 인식을 갖게 된 것으로 사료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깨달은 성령의 주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 자신이 전도하여 세운 교회들에 편지할 때에 여러 모양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그는 고린도 전서 2장 9절 이하에서 성령의 주 역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
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
라 오직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
은 것 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외에는 알지 못 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9-12)

여기서 바울이 강조하는 성령의 본질적 기능은 바로 신비 지극한 하나님의 경륜을 깨달아 알게 한다는 것이다. 즉 성령은 우리 인간이 도무지 알 수 없고 또한 상상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마음 속 깊이 감추어 있는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경륜과 기획들을 깨달아 알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신다고 말했는데, 통달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마음 속 깊이 간직된 하나님의 속마음까지를 꿰뚫어 알아낸다는 의미이다. 즉 성령은 우리 인간의 생각 곧 인간의 이성이나 직관이나 감정 같은 것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신비 지극한 하나님의 속마음까지를 알아내고 간파해 낸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나 경륜 등은 그가 창조하신 창조세계를 통해서 그리고 인류역사를 통해서 어느 정도 식별하고 분별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적/초월적 실재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속마음을 알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순수 영적 실재로서 이 물질 세계와 또한 물질세계와 결합된 우리 인간에 대해서는 질적으로 곧 전적으로(totally/qualitatively) 다른 절대 타자적 존재(the wholly other)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속마음과 뜻을 알아내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또한 유한자(the finite)인 우리 인간의 이성이나 감점을 가지고도 무한자(the infinite)인신 하나님의 계획이나 의지(뜻)를 알아내기도 불가능한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20세기에 활동한 대표적 신학자인 칼 발트(K. Barth)가 잘 말해준 바 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지는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속마음과 뜻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성령은 영적인 실재이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통해야만 영적 실재이신 하나님의 속마음을 알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사람의 영(마음)이외는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속마음도 하나님의 영 이외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유한한 우리 인간이 영원자/무한자 그리고 순수 영적 실재이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지는 "루아흐"(rauch/호흡) 즉 하나님의 초월적 지혜 곧 신적/영적 지혜(divine wisdom)인 성령을 통해서만 알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 인간에겐 사물에 대한 여러 가지 인식 기능이 있으며 그 중에서도 최고의 인식기능인 이성(理性/reason)이란 지적 능력이 있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우리 인간을 이성적 존재(rational being)라고 말해져 왔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이성이란 것도 칸트(Immanuel Kant)가 잘 지적해 준바와 같이, 우리 인간의 감각적 경험의 세계(the world of experience)범위 안에서만 효용이 있는 것이며, 그 밖의/그 이상의 것은 상상력에 의한 추상적 지식 밖에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우주만물의 현상들에서 유추해 낸 신의 존재에 대한 여러 가지 증명들(proofs for God's existence)을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일축해 버린 바 있다. 왜냐하면 발트(Barth)가 강조한 바와 같이 창조주 곧 영적 실재로서의 하나님은 그가 창조한 만물/물질의 세계와 전적/질적으로 다른 실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 인간의 인식/지식의 한계성과 유한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비의 극치인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판단과 섭리와 계획 등에 대해서는 유한한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는 전혀 미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그리고 특히 만물과 하나님과의 관계 즉 창조자와 피조물과의 관계, 그리고 우리 인간뿐 아니라 모든 존재의 의미와 그들의 궁극적 귀결점에 대해서, 즉 그들이 왜 존재하며, 어떻게 존재했으며, 또한 그들의 종착점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유한한 우리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으로는 도저히 미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점은 그의 다음의 글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롬11:33-36)

여기서 바울은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너무나 신비하고 오묘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생각/경륜과 판단은 유한한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헤아릴 수도 찾을 수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바울의 이 말은 그가 우리 인간과 하나님과의 차이, 유한자와 무한자의 차이 즉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차이에 대해서 깊이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말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의 이 말을 통해서 한 중요한 진리를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사료된다. 즉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경륜과 그의 계획이나 섭리에 대해서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얼마나 부조리하고 격에 맞지 않으며 또한 불경스런 일인가 하는 점이다

또한 바울은 (감탄과 고백의 형식으로) 만물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즉 "만물이 주(하나님)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세세토록 그분에게 있을 것입니다". 바울의 이 신앙 고백적 진술은 바울의 가장 깊은 영적 직관으로 깨달은 바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것은 그의 신비주의적 통찰의 한 심오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여 진다. 그리고 이것은 그 형식에 있어서 불교에서 말하는 "만물이 무(無)에서 나와서 다시 무(無)로 돌아간다"는 말과 유사한 형식으로 보인다.

다만 만물의 시작과 끝/귀결이 하나님이냐 무(無)냐의 차이점이 들어나는데, 바로 이점이 기독교와 불교의 가장 큰(핵심적인) 차이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최근의 한 탁월한 대승불교학자인 물티(T.R.V. Murti)가 그의 명저 <불교의 중심철학, Central Philosophy of Buddhism>이란 책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무(無/Sunyata)는 영(靈/Spirit) 또는 영계(靈界/Spiritual World) 곧 신성(Godhead)을 의미한다고 말함으로써, (기독교의) 영적 실재로서의 하나님 혹은 성령과의 대화 가능성을 말해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한편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성령을 주시는 목적/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
심의 소망이 무엇이며.....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떻
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7-19)

여기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지혜(wisdom)와 계시(revelation)의 영이라고 말하고 있다. 계시란 진리를 들어내 보여 알게 하는 일을 의미한다. 즉 성령은 신비의 극치인 하나님이 어떤 분(실재)인가를 알게 하는 계시(啓示)의 영이란 것이다. 또한 지혜와 계시의 영인 성령은 욥의 경우에서처럼 우리 인간의 닫힌 심안(心眼) 곧 마음의 눈을 밝혀서 평소에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신비한 진리들을 보게 하고 알게 하는 영적 실재란 것이다. 즉 성령은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참 진리 곧 하나님의 신비를 깊이/올바로 깨달아 진각(眞覺/true enlightenment)에 이르게 한다는 말이다. 다석 류영모는 이런 영의 눈이 떠지는 일 또는 큰 깨달음을 얻는 일 즉 진각에 도달하는 일을 "가온찍기[.]"란 말로 표현해 준바 있다.

한편 사도 바울은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매우 귀중한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성령의 열매란 성령이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임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들을 말한다. 즉 우리 인간에게 진리의 영인 성령이 임했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며, 또한 그 변화에 따른 결과들이 어떻게 나타나는 가에 대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선행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현상들)을 금지할 법이 없다"(갈5:22-23). 금지할 법이 없다는 말은 성령의 임재(역사)를 통한 결과(열매)들이 자발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통제하거나 거부할 수가 없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바울은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열매로서 "사랑"(지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로마서 5장 5절에서는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물 붇듯이) 부은바 됨이니"라고 말하여, 성령의 임재의 결과가 바로 다름 아닌 사랑(자비)이란 점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바울이 성령의 본질을 바로 하나님의 성품의 핵심인 "사랑"(Agape)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한 바울은 고린도 전서 12장에서 성령의 은사들에 관해서 여러 가지로 말한 후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말한 후에, 13장에서 성령의 여러 은사 중 최고의 은사인 사랑(의 특징과 심오함/depth of love)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니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4-13)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점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성령을 주시는 또 다른 큰 목적/이유는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본질의 핵심인 사랑의 비밀을 깨달아 알게 하는데 있음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사도 바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인) 성령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 인간의 유한한 지식이나 이성만으로는 알 수 없는 신비 지극한 하나님과 그의 섭리와 계획들에 대해서 깨달아 알게 할뿐만 아니라 특히 하나님의 본성인 사랑의 신비를 깨닫게 하고 소유케 하며 또한 사랑의 삶을 살게 함으로써 자신과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모든 피조물들까지도 아름다운 조화(하나됨)를 이루어 하나님의 창조의 은혜를 함께 향유할 수 있게 함임이란 점이다. 특히 바울은 성령의 하나 되게 함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
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3-6)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점은 바울이 성령을 만인(온 인류)과 만유(우주 만물)를 하나로 조화 통합시키는 궁극적 조화와 통합(통일)의 원리/힘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만인과 만유를 하나 되게 하는 일이 성령의 궁극적인 역할이며 또한 목적이란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바울의 성령이해의 가장 심오하고 또한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말씀들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성령관을 종합해 보면, 성령은 바로 궁극적 실재/진리인 하나님 인식에 초점이 맞추어 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성령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내려주시는 은혜의 가장 귀중한 수단으로서, 신비 지극한 하나님과 그의 창조 및 구원 계획과 같은 깊은 진리들을 깨달아 알게 하는 진리 인식의 최고의 수단이란 점이다. 그와 동시에 성령은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품인 진리와 지혜와 함께 사랑을 소유케 하여 이 세상의 모든 분열과 대립들을 극복하고 하나가 되게 함으로써 만인(온 인류)과 만유의 궁극적인 조화와 통합과 평화를 이룩하게 하는 신비한 지혜와 힘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