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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聖靈/Pneuma)은 기독교에 한정된 것인가? (5)
류기종  |  rkch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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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년 03월 11일 (일) 16:32:04
최종편집 : 2012년 03월 11일 (일) 16:59:57 [조회수 : 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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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聖靈/Pneuma)은 기독교에 한정된 것인가? (5)

3. 요한복음의 성령 이해:

오늘날 우리가 성령의 본질(어떤 영인가)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길과 또한 성령 충만의 참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령에 대해서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깊이 말해주고 있어 "성령복음" (the Gospel of the Holy Spirit)이라고 칭해지는 요한복음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사료된다. 왜냐하면 신구약성서를 통하여 성령에 대한 언급이 많이 있지만, 특히 성령의 본질에 대한 정의(definition) 즉 성령이 어떠한 영인가에 대한 언급은 요한복음 14장, 15장, 16장에서 예수가 언급한 것 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성령을 정확히 정의내릴 수 있는 분은 바로 성령의 완전 충만자인 예수 자신 외에는 없기 때문일 것으로 사료된다.

그런 점에서 요한복음에서 언급되고 있는 성령이 어떤 영인가를 정확이 이해하는 일이 성령을 바로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필수적이라고 사료된다. 예수는 복음서들 중 특히 요한복음에서 성령이 어떤 영이며, 누구(어디)로부터 오며 또한 성령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해주고 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 하
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16,17,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
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15:26)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
라(요16:13)

위의 말씀들에서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성령은 근본적으로 영적 실재이신 하나님 곧 진선미 또는 진리와 사랑과 지혜 및 모든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발현되어 나오는(proceeding) "영" 곧 "영적 실재"(spiritual entity)라는 점이다. 따라서 성령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인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영적 실재성"과 동시에 참되고 옳음 곧 "진리"(aletheia)이며, 따라서 성령은 곧 "진리의 영"(the Spirit of Truth)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진리의 영"으로서의 성령은 성도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고 또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영적 실재이라는 점이다.

즉 위의 요한복음의 말씀들에서 볼 수 있는, 예수의 성령관에 따르면, 성령은 우리 인간의 "진리 인식"(knowing the Truth)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은 바로 우리 인간들/성도들로 하여금, 신비의 극치인 하나님과 또한 예수의 복음의 진수를 정확히 그리고 깊이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가장 귀중한 은혜의 수단이라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성령은 곧 "초월적 지혜의 영"(Spirit of Transcending Wisdom)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 성령은 우리 인간 특히 성도들로 하여금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꼭 알아야 할 진리들, 특히 우리의 구원(온갖 질고와 고통으로부터의 온전한 해방/자유와 평화의 실현 및 영원한/영적 생명의 획득과 실현)에 필요한 (영적) 진리들을 올바로 깨닫게 하며 알게 하시는 진정한 영적 교사(인도자/안내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 있는 점은 우리가 성령을 진리를 깨닫게 하여 참 자유를 얻게 하는 초월적(영적) 지혜라고 이해할 때, 불교에서 말하는 반야지(般若知/Prajna/Great Wisdom)와 매우 가까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불교의 반야지(큰 지혜)도 인간의 일상적인 지혜를 가지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존재의 신비를 깨닫게 하여(즉 진각에 이르게 하여) 모든 집착과 얽매임과 고통에서 해방시켜 완전한(참) 자유 곧 열반(Nirvana)에 이르게 하는 원리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성령이 궁극적 실재인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반면에, 불교에서는 이 반야지가 어디서 오는 지를 말해주지 않는(못한) 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이 어떤 영인지를 아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인가를 아는 일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영이며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보내지는) 영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요한복음 4장 24절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실재)인가를 정의함에 있어,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정의 내렸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본질적이고 또한 가장 완전한 정의/설명(the most important/perfect definition of God)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니"란 말속에 하나님의 존재, 본질, 특성/성격 등이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영이시니"란 말 속에 하나님의 초월성(transcendence)과 내재성(immanence), 영원성, 창조성(creativity), 그리고 영적 특성인 신성 즉 진선미애(眞善美愛)의 본성 등이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과 성령은 분리할 수 없는 같은 실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성령은 하나님의 모든 특성을 다 소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령도 하나님 곧 신성의 모든 특성 즉 초월성과 내재성, 영원성, 창조성 그리고 진선미애의 모든 성품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성령을 가리켜서 아버지(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시는 영 곶 "진리의 성령"이라고 정의 내렸으며, 진리의 성령이 임하게 되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할 것이라고 말씀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성령을 바로 알아야 하며 또한 성령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성령이 어떤 영인지 곧 성령의 본질을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지속적인 성령의 내주 곧 성령 충만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고 또한 성령 충만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특히 예수는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고 말씀했는데, 여기 진리란 궁극적 실재인 하나님과 또한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성령을 지칭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진리의 영인 성령은 우리 인간을 모든 속박/집착과 미궁/허망과 고통들로부터 해방시키고 지유하게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그런 점에서 성령은 우리 인간을 모든 근심과 걱정과 속박에서 해방시키고 자유하게 하는 힘과 지혜 곧 영적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깊은 내용들이 바로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16:13)>란 말씀 속에 함축되어 있다. 요컨대 예수의 성령관에 따르면, 성령은 바로 우리 인간/그리스도인의 진리 인식 곧 진리를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최상의 은혜의 선물이며 수단으로서, 진리 인식의 최상의 도우미(guide or helper)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진리란 바로 모든 존재의 신비의 극치인 하나님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 일차적 목적은 만유 곧 모든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올바로/깊이 알게 하기 위함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유한한 우리 인간이 자력으로 절대적 존재인 하나님을 바로 알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리/지혜의 영인 성령을 주시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진리의 영인 성령을 주시는 가장 큰 목적은 진리 곧 궁극적 진리인 하나님의 실재를 올바로 깨닫게(알게) 함과 동시에 온전한 자유를 향유하게 하고 또한 진리의 삶을 살게 하는데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성령관 즉 예수의 성령 이해는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은사적 성령 관과는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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