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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설교] 2012년 2월 12일 주현절 여섯째 주일
변영권  |  firewitch@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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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년 02월 08일 (수) 21:49:50
최종편집 : 2012년 02월 08일 (수) 22:20:23 [조회수 : 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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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12일 주현절 여섯째 주일

 

 

   

Jesus, with his disciples, encounters a leper who says, "You can make me clean."
▲ Image: Byzantine style mosaic in the Cathedral of Monreale, Sicily. Public Domain.

 

 

 


본문

열왕기하 5:1-4절
시편 30편
고린도전서 9:24-27절
마가복음 1:40-45절

 

설교 도우미 Preaching Helps
주석(Chris Haslam) - 번역 이 기호 목사(평안교회담임)


열왕기하5:1-14
“아람왕”(시리아왕) 과 “이스라엘 왕” 둘 다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아마 벤 하닷(Ben-hadad)과 여호람(Jehoram)일 것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이 사건은 약BC850년경에 발생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람을 이스라엘보다 훨씬 강하게 만드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주님이 아람에게 승리를 주셨다(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1절)는 말씀을 주목하라.
“나병”은 히브리어로 여러 가지의 피부병들로 번역한다. 어떤 종류의 피부병들은 고칠 수 있지만 다른 종류의 피부병들은 고칠 수 없다. 환자들은 격리되었다. 그러나 오직 병의 상태가 심각하게 진행되었을 때만 격리되었다. 사로잡혀온 이스라엘의 소녀(2절, 어떤 학자는 권세있는 나아만과 비교하여 “어린 하녀”라고 부른다)는 나아만의 아내를 섬긴다. “사마리아”(3절)는 엘리사가 살고 있는 도시다(시골이 아니다). 예언자(5절)에게 갈 때에 선물을 가지고 가는 것은 전형적인 것이다. “금”은 약 70kg(150 lbs)의 무게가 나간다. 이것은 매우 큰 가격이다. 이스라엘 왕은 적이 도움을 구하고 있는 이 상황을 다루어갈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충격과 당황함으로 자신의 옷을 찢는다(7절).
그러나 엘리사는 다음과 같이 자신감이 충만하다. 엘리사는 나아만이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될 기회가 있다고 이스라엘 왕에게 충고한다(8절). 나아만이 엘리사의 집(9절)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못한다. 그래서 엘리사는 나아만을 만나기 위해 나오지 않는다. 엘리사는 심부름꾼을 보냈다(10절).

나아만은 요단강에서 온전히 7번을 씻을 것을 명령받았다. 11절은 하나님의 예언자가 처방을 내린 방식에 대해서 나아만이 오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이방인 예언자와 같이 행동할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엘리사의 처방은 나아만에게는 너무나 단순한 것이다. 그래서 나아만은 엘리사의 처방을 거절한다(12절).(아바나와 바르발강은 다메섹근처에서 흐르고 있는 강이다). 나아만은 그가 이스라엘 소녀의 충고를 들었을 때처럼 “아래로부터”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15절에서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돌아와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나아만은 하나님을 모든 신들 중의 신으로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 시대의 전형적인 관례에 반대하여, 치료에 대한 보상에 있어서 아무것도 받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치료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16절).
이 이야기에 대한 예수님의 언급이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거의 벼랑 끝으로 몰아갔었다(누가4:16-30).


시편30편
시편기자는 심각한 병으로부터 회복된 것 때문에 분명하게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러나 이 시편은 또한 우화적일 수 있다. 이 시편의 제목은 이 시편이 성전을 봉헌할 때에 찬양되었던 사실을 말하고 있다. 성전은 BC161년에 더렵혀졌다. 그래서 BC164년에 다시 봉헌되었다.
“스올”과 “무덤”(3절)은 죽은 자가 단지 망령으로 존재하는 땅 밑의 장소로서 생각된다. 4-5절에서 시편기자는 현재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감사하는 것에 참여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6-10절에서 시편기자는 자신에게 발생했던 일들을 자세히 말하고 있다. 시편기자는 완전하게 안전(형통)과 건강함을 느꼈었지만(6절),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졌다(하나님이 그를 피하여 숨으셨다, 7절). 이것은 그가 병이 들었다는 뜻이다. 죽음을 가깝게 느끼게 되자, 그는 만약에 스올에 내려간다면 어떤 사람도, 심지어는 하나님도 그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리고 그를 다음과 같이 건강하고 기쁜 마음을 갖게 회복시키셨다(11-12절). 그의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였고 심지어 경배하는 춤으로 바뀌었다. 그는 그의 남은 인생동안에 하나님을 찬양하려고 한다.


고린도전서9:24-27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사명(17절)을 받았다고 말했다. 바울은 자신을 모든 사람의 종으로 만들면서, 고린도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짐을 지게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그에게 기대하신 것 그 이상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그는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데려왔다.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노력(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였다(23절).

바울은 지금 운동의 비유를 제시한다. 그 운동은 처음독자들에게 친숙한 운동이고, 고린도에서 이전에 개최되었던 고린도지협의 경기들이다(올림픽은 고린도지협의 경기들의 현대적인 모방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운동장에서 경주하는 것으로 비유한다. - 그러나 모든 비유들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어떤 고린도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신자가 되어서, 교회의 예배와 성례전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그들 자신이 영생을 얻었다고 확신하였다. -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길은 그 이상을 요구한다. 우리 모두가 세례를 받고 신앙의 길을 출발하는 동안에 우리 모두가 다 그 신앙의 길을 계속 가는 것은 아니다. 운동경기에서 한 사람이 승리하듯이, 신앙생활에서도 “너희가 상을 받도록 이와같이 달음질하라”(24절)고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모든 사람이 계속해서 세례의 정신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당신의 길이 무엇이든 “자기-절제”(자기-훈련,25절)을 실천함으로써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이다(바울은 또한 달음질이 아닌 다른 운동을 생각한다, 26절을 보라). 경기에서의 승리자는 마른 셀러리로 만들어진 관, 즉 부패하기 쉬운 화관(25절)을 얻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같이 되려는 목적을 향하여 노력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바울은 허공을 치는 권투선수가 패하는 것처럼(26절) 그렇게 목적도 없이, 효과적이지도 않게 노력한 것이 아니라 오직 목적에 충실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크게 노력했다. 바울은 영생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의 몸”(27절)을 훈련하고 하나님의 목적들에 자신의 몸을 사용하였다. 바울은 이렇게 그의 독자들을 훈계한다.


마가복음1:40-45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은 새로운 종류의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심으로써 그리고 정신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단지 명령에 의해 고치심으로써 회당에서 공부하고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셨다. 예수님은 그다음에는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셨다. 이후에는 무리 속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을 고치신 것을 증언하였다. 한적한 곳(35절)에서 하나님과의 교제 이후에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다른 마을들로 떠나신다.

지금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다가와서 간청한다(무릎을 꿇는다, 40절). 이 사람은 하나님의 본성의 어떤 것을 알고 있다. 즉 하나님이 고치시고 구원하시는 사람을 선택하시는 그분의 본성을 알고 있다. 예수님은 감성적으로 행동하셨다(41절). 즉 예수님은 그 사람을 만지신다. - 그래서 예수님자신이 정결법적으로는 부정하게 된 것이고 나병의 전염위험을 무릅쓰신 것이다. 예수님의 엄격한 “경고”(43절)는 “아무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44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예수님의 경고를 무시한다(45절). 예수님은 육체적 치유가 오직 왕국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오해되는 것을 바라시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단순히 기적만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병환자가 유대 사회에 다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치유된 것이 모세 율법의 요구에 의해(제사장에 의해, 44절) 확증될 필요가 있다. 레위기14장은 나병환자가 확실한 희생제자를 드릴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나병환자는 의식적으로 정화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오해받지 않기 위해서 그의 사역을 동네 바깥에서, 무리들로부터 떨어져서, 비밀히 계속하신다.



설교실마리 Sermon Cues
( 김성국 목사- 미 연합감리교회의 사이트 www.gbod.org/site 일부 참조)


설교 함께 구성하기

구약성경과 복음서 상에서의 병고침(치유)사역은 모든 사람, 곧 우리가 불결하다고 말하는 자들이나 원수들(적대자들)조차도 하나님의 은혜가 유효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설교자는 이번 주일의 설교를 준비하면서 아래의 사항들을 유념하기 바란다.

▶ 선지자들과 병고침(엘리사와 예수)
▶ 신앙적 행위(강으로 가서 목욕하라;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라)
▶ 정결함과 부정함(나아만과 신약성경의 문둥병자)
▶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병고침


묵상에 대한 질문

1. 하나님이 나의 원수들에게도 축복하셨다? 열왕기하 5장 1절은 여호와께서 나아만에게도 승리함을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적은 소수의 무리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자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2. 어떤 사람은 만져주심을 통하여 병고침을 받은 반면에 어떤 이는 더러운 강물에 뛰어들어 병고침을 받았다. 이 두 개의 상이한 본문의 내용으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치유와 고쳐주심은 고정되고 일률적인 방식만이 아니라 다종다양하면서도 의외성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본문의 내용은 오늘날 교회들이 일정한 형식의 고정된 틀, 말하자면 예배, 기도, 치유사역만을 추구하는 현실에 대해서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가?

3. 예수께서는 문둥병자도 만져주셨다? 전통적인 형식이나 일상적인 관습 또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행위를 하시는 주님을 진정한 동반자로 여기고 따르는 사람들에 대해 설교자 당신이 얻게 되는 반응이란 어떤 것이며 무슨 생각을 갖게 하는가?

4. 대다수의 사람들은 충분히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상황에 뛰어들어 “문둥병자를 만지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면서도 의로운 행위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어리석은 짓이 될 수 있노라고 상당한 경계심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일을 과감하게 수행하고자 할 때와 어떤 위험한 일에 직면했을 때를 어떻게 구분 짓고 구별하는가?


설교구상

▶ 병고침의 장애물(열왕기하)

나아만은 그의 나라에서는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엘리사가 나와 보지도 않았을 때, 그가 느꼈을 모욕의 심정들을 상상해보라. 더욱이 그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갖게 한 것은, 요단강물에 뛰어들어 씻으라는 선지자의 처방이었다! 선지자의 지시는 나아만의 들뜬 기분을 잡쳐버렸다. 더구나 나아만은 자존심이 대단한 사람이라서 그러한 지시를 깊이 생각하고 자시고 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는 오히려 그의 병고침을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었던 사람이다! 우리들 중에 치유를 위해 필요한 태도로서 자기를 낮추는 일이나 자존감을 꺾는 행위에 대해 반사적으로 저항하는 이들이 있는가? 그러나 나아만의 자고한 마음을 꺾어주시고 변화시켜 주신 하나님은 동일하게 오늘 현대인들의 마음도 바꾸어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불결한 사람’을 만져주시는 주님(마가복음)

예수와 문둥병자를 언급하는 이번 주의 설교는 아마도 오늘날 사회적으로 불결하다고 꼬리표가 붙은 사람들을 기독교가 끌어안기 위해 禮典的 경계를 넘어서는 초대라고 유의미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적용의 가능성들은 끝없이 찾아질 수 있다. 에이즈환자와 그의 가족들, 일거리가 없는 사람들, 길거리의 아이들, 그리고 불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가족이 없는 이들, 심지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까지. 이러한 구절을 설교하고자 할 때, 우리는 종종 문둥병자에게 다가서는 것을 방해하는 사회적 장애물에 포커스를 맞추려고 애쓴다. 그러나 과연 사회내부의 장애물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건가? 실제로는 내가 그 일을 하고자 하는 데 있어 중병이 든 것은 아닌가? 새롭게 용기를 내어 시도하려는 내가 두려운 건 아닌가, 진정으로 사람들을 피하고 싶은 건 아닌가? 정말이지, 불결한 자가 누구인가?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불결한 자가 결점 있는 자인가, 아니면 그것을 두려워하는 나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도전을 끌어안을 수는 없다. 우리는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과감하게 사회적으로 불결하다 낙인찍힌 사람들을 끌어안고 만져줄 역할 모델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위대한 사람들이다. 예를 들면, 마더 테레사(Mother Teresa)나 폴 브랜드(Paul Brand) 같은 사람들이다. 아마도 어쩌면 그들은 당신의 공동체 안에서 그러한 어려운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그러나 우리의 관점으로 보건대 결코 축복받았다 말할 수 없는 역할자로서 살아가는 성도들일지 모른다.




랍비주석
(영월군 흥월교회 이익상 전도사)

 

시편 30편

모든 시에는 운율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된 시, 시편도 마찬가지로 운율이 있습니다. 이 운율의 리듬의 변화에 따라서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점점 끌어 올리기도 하고, 점점 저 아래로 끌어 내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운율을 깨면서 흥분하는 마음으로 읽어야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을 히브리어로 보게 되면, 그 의미가 더 잘 살게 됩니다. 이번주 본문인 시편 30편에서 운율 상의 꼭지점은 우리말 성경의 5절과 12절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은 이렇게 이해하시면 좋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노여움은 잠깐이지만, 하나님의 은총은 평생토록입니다. 우리 인생에 여호와 하나님의 노여움은 아주 작지만, 그의 은총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어마어마하게 크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라 나는 내가 받은 은총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합니다."

성경은 시간적으로 '잠깐'과 '평생'을 대비하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라쉬는 시간적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잠깐'이라는 말은 '작다'는 의미로 그리고 대구가 되는 '평생'은 '크다'는 의미로 이해하라고 가르칩니다. 이번주는 '라닥' (랍비 다비드 킴히)가 오늘의 하이라이트 구절은 5절을 어떻게 설명하는가를 소개합니다.

*설명 1

라닥은 이 구절을 출애굽기 34:6-7절과 연관해서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대까지 보응하리라."

*설명 2

라닥은 시간적인 의미로 '잠깐'이라는 말을 이해하기는 했지만, 라닥이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행함'이었습니다. '인자로운 행동'과 '악한 행동'을 대비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라닥은 탈무드의 산헤드린을 인용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받는 상과 악한 일을 행하고 받는 벌 가운데에서 어느 것이 더 큰가?" (산헤드린 100a)

*설명3

산헤드린에서 랍비 유다는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구제를 하나님이 보신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그 구제하는 손길을 보시고는 가만히 계실 수가 있을까요? 당연히 아니지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하는 구제하는 사람의 구제를 보시고 다가올 세상(미래)에서 그 사람에게 그 이상으로 갚아주신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상의 크기는 자로 잴 수 없이 크고, 저울에 달 수 없으리 만치 무겁다고 설명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받는 상과 악한 일을 행하고 받는 벌 가운데에서 어느 것이 더 큰가?"라는 산헤드린의 질문은 정말 둘 중의 어느 것이 더 무겁냐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비교할 수 없이 큰 상이 구제하는 사람,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설명4

하나님은 이렇게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에는 다가올 미래, 다가올 세상에서 비교할 수 없으리 만치 큰 상을 주십니다. 그러니 '지금'에 목매달 필요가 없겠지요. 지금은 지금대로 내가 자비를 베풀며 의롭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구와 비교할 필요도 없고, 지금의 신세를 한탄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는 분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시편 30편을 노래한 사람은 슬픔과 고난을 노래하는 시 가운데에서도 감사와 찬양으로 그 노래를 마칠 수 있는 겁니다.



설교 예화

1) 천국 갈 준비와 이웃사랑

영국의 소아과 방사선 기사 ‘제인 톰린슨’은 1990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으나 수술로 건강을 되찾았다. 10년이 지난 2000년 유방암이 재발해 폐와 뼈로 전이됐다. 그녀는 6개월만 살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녀가 현재도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암 기금 모금운동을 펼쳤다. 모금을 위해 철인 3종 경기에 출전, 완주했다. 2006년에는 자전거로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 뉴욕까지 6780㎞를 달렸다. 그리하여 27억 원을 모았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지난 6월16일 그녀에게 대영국 상급 훈사 훈장을 주었다. 인생은 어차피 시한부다. 인생은 유한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살아 있는 동안 천국 갈 준비와 함께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2) 상급과 심판의 가르침

4세기의 동방 교회 교부인 요한 ‘크리소스톰’은, 그리스도인이 받을 심판을 언급하며, 미래의 심판에 대한 가르침을 현재 생활의 동기로 삼으라고, 우리에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심판 보좌가 지금 나타나 우리 각 사람이 양심을 따라 판단을 받는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재판하시는 분 앞에 모든 것이 드러나며 밝혀진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그 앞에 서야 할 뿐만 아니라 발가벗겨져야 한다. 부끄럽지 않은가? 당황스럽지 않은가?”
이것이 핵심이다. 이 글을 읽고 이렇게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이기적인 삶을 살고 짓밟힌 이들을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천국에 못 들어간단 말인가? 물질주의가 정말 그렇게 나쁘다고?’
그러나 하늘의 상급과 심판이 제 기능을 발휘할 때, 우리의 시각은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급진적인 변혁을 겪는다. 그리고 이전 같으면, 그런 급진적 변혁에 불편함을 느꼈겠지만, 이제는 기꺼이 인내할 것이다. 상급과 심판의 가르침은, 또한 하나님과 성숙하고 깊은 관계를 맺게 한다. 물론, 그 관계에는 경건한 외경심과 두려움이 수반된다.

3) 김연아

캐나다 밴쿠버의 '퍼시픽 콜리세움'에서 열린 '4대륙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일본의 세계챔피언 아사다 마오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난 뒤 세계 주요언론들로부터 극찬세례를 받고 있다.
스포트라이트는 온통 ‘김연아’다. 이번 대회를 통해 1인자 아사다가 2인자로 밀려나는 형국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심지어, 엇비슷한 기량의 ‘아사다’조차 이제 김연아를 이기려면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충고까지 흘러나왔다.
6일(이하 한국시간) LA타임스는 4대륙 쇼트프로그램은, 김연아가 아사다의 그늘을 벗어난 결과며, 아사다가 김연아를 극복하려 했다면 ‘완벽해야 했었다(would have had to be perfect)’고 지적했다.
<로이터 통신>은 미리 보는 올림픽 무대로 들어간 두 아시아 라이벌의 관계를 집중조명하면서, 20일차를 두고 태어난 둘은, 어쩌면 처음 스케이트를 타던 그 순간부터 라이벌이 될 운명이었고, 현재의 시니어 무대까지 치열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4대륙 쇼트프로그램에서는, 대회 ‘디펜딩 챔피언’ 아사다가 비틀거리는 사이 ‘김연아’는 세련된 연기력으로 1위 자리에 올라섰다고 설명했다.
이웃나라 중국에서도 김연아의 세계신기록 경신 소식이 전해졌다. 중국의 <신화통신>은 4대륙 쇼트프로그램 72,24점으로 역대 최고점을 수립한 김연아가 라이벌 ‘아사다’를 멀리 떨어뜨렸다고 보도했다.
김연아는 '교과서적인 완벽한 점프와 예술의 연기(textbook-perfect jumps and artistic performance)'로 상대선수들을 압도했다고 밝혔다.

4) 차범근 감독을 변화시킨 성경구절

차범근 감독을 변화시킨 성경구절이 있다. 그는 이 말씀을 묵상하던 중 크게 변화를 받았다. 그 성구는 출애굽기 35장 30,31절. 주위로부터 숱한 모함을 당할 때, 경기장에서 불안과 초조의 시간을 보낼 때, 그는 이 성구를 묵상하면서 힘을 얻는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케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셨다.”
차 감독은 이 성구를 통해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면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그래서 고난이 닥칠 때마다 지혜와 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향해 기도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는 사람의 인생은 향기가 있다. 과일과 채소의 가장 달콤한 부분은 하늘의 태양을 향한 쪽이다. 사람도 마찬가지. 기도하는 손, 회개하는 마음에서는 향기가 피어오른다. 그러나 불신앙의 인생은 무색무취의 삶처럼 건조할 뿐이다.

5) 개털모자 장로가 될 뻔 했던 계 장로님

서울 영등포구 어느 교회에 계 씨 성을 가진 장로가 있었다. 1954년경, 산기슭에서 계 장로는 개를 키우면서 생계를 꾸려갔다. 개는 그 수가 늘어나면서 2백 마리가 넘게 되었다.
그 무렵, 교회에서는 교회당 건축을 위하여 헌금을 하게 되었다. 교회의 장로는 모든 면에 교회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위치이다. 그러나 계 장로는 교회당 건축헌금에 앞서지 못했다. 개 한 마리 값을 건축헌금으로 작정한 것이다. 목사님은 계 장로의 건축헌금에 실망하였다. 장로가 앞서 주어야 교인들이 따라올 것인데, 장로가 200마리 개를 키우면서 한 마리 값을 내놓겠다고 했으니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 밤, 계 장로는 잠을 자다가 너무도 생생한 꿈을 꾸게 되었다. 꿈에서 깨어난 계 장로는 그 자리에서 통회자복하고 목사님을 찾아가 만났다. “목사님, 다음 주일 밤 예배 시간에 나에게 간증할 시간을 주십시오. 제가 꼭 전체 교인 앞에서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주일 밤에 다 이야기 하겠습니다.”
주일 밤이 되었다. 계 장로는 교인들 앞에 나서서, 그날 밤의 생생한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개 한 마리 건축헌금으로 내어 놓고 잠을 자던 그 밤에, 계 장로는 천국에 간 것이었다. 천사의 안내를 받아 한 방에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각종 면류관이 진열되어 있었다. 면류관들은 금, 은, 동, 철, 납, 각종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보석들이 다 다르게 번쩍거리고 있었다. 계 장로는 천사에게 물었다. “제 것도 있습니까?” “있지요.” “어느 것이 저의 것입니까?” “당신의 머리에 꼭 맞는 것이 당신 것이오.”
계 장로는 금 면류관을 써보았다. 그러나 머리에 들어가지 않았다. 다른 모든 면류관도 도무지 머리에 맞지 않아 쓸 수가 없었다. “제 머리에 맞는 것이 없습니다.” “저기도 있잖아요.” 천사가 가르치는 데를 보니, 개털모자가 하나 있었다. “저것을 어떻게 쓰겠습니까?” “한번 써보세요.” 계 장로가 개털모자를 쓰니, 그것이 머리에 딱 맞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당황하며 모자를 벗으려 하는데, 천사가 말했다. “벗지 마시오. 그것이 당신 것입니다.” “아니, 이것이 내 것이라니?” “한 일도 없으면서 주제넘게 금 면류관을 넘보았나요?”
계 장로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아니, 이럴 수가?”하고 소리치다가 깨어보니, 꿈이었다.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여러분, 나 계 장로는 개털모자 장로였습니다. 이 부끄러움을 벗기 위해서 개 백 마리를 연보하겠습니다.” “계 장로님이 개털모자 장로 될 뻔했네!” 누군가가 소리쳤다. 청중석에서 웃음소리와 박수가 함께 터져 나왔다.

 

설교


성경 : 왕하5:1-14, 고전9:24-27, 막1:40-45
제목 : 결코 사라지지 않는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스포츠 선수라고 하면 김연아 선수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2009년 4대륙 피겨선수권 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고, 이어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땀으로서 세계 정상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 선수로서 최고의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그에게 여러 차례 고비가 있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하루 일곱 시간 이상 계속해야 하는 고된 훈련은, 그야말로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그녀일지라도, 참으로 힘들고 고달픈 일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무릎과 발목 부상으로 인해서, 김연아는 운동을 아예 포기하려는 생각까지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IMF 때에는, 그의 아버지 사업이 어려움을 겪는 바람에, 그녀는 심적으로 아주 큰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시련과 고통을 잘 이겨내고,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 결과, 오늘에 와서 그처럼 놀라운 성적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에서 말하기를 ‘운동선수는 금메달이나 우승컵을 얻고자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맹훈련을 한다(25)’고 하면서 ‘우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하늘의 상(면류관)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지금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결승점을 향하여 한 눈 팔지 않고 전력을 다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코 장난삼아 달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운동선수처럼, 나는 내 몸을 엄격하게 단련한다(27)’고 했습니다. 내 멋대로 살지 아니하고, 진정 주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반드시 해낼 수 있도록 훈련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야만, 면류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기자도 ‘시험을 견디어내는 자는 복이 있다. 시험을 이기고 인정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1:12)’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믿음의 훈련장에서 그 시험을 잘 이겨낸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바울 선생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이제 내게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일만 남았다. 그 면류관은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의롭게 살았다는 표시로 주시는 상이다. 주님이 바로 정의의 재판관이시기 때문에, 마지막 그 날에 주님은 내게 면류관을 주실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이다(딤후4:8).
이처럼, 사도 바울이 그토록 간절히 사모하면서 기다렸던 그 영광의 면류관을,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저와 여러분 모두 다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믿음의 길을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달려가야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우리가 가야 할 믿음의 길에는 많은 시험과 고통이 틀림없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 시험과 고통을 잘 이겨내야만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 쓸 수 있습니다.

영국의 한 소아과병원에서 방사선 기사로 있는 ‘제인 톰린슨’이라고 하는 여자는 1990년 유방암 진단이 나와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다행히도 수술이 잘 되어서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2000년에 다시금 유방암이 재발함과 동시에 폐와 뼈까지 전이되는 불행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6개월만 살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녀가 현재까지도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녀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암 기금 모금운동을 펼쳤습니다. 모금을 위해서, 그녀는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하게 되었고 끝까지 완주했습니다. 2006년에는, 자전거로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서 뉴욕까지 6,780㎞를 달렸다고 합니다. 그 결과, 27억 원이라고 하는 거금을 모금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6개월 시한부 인생으로 판명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코 그 남은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인생의 목표를 새롭게 정하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6개월이 아닌, 10년 가까이 더 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앞으로도 얼마나 더 살게 될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인생의 목표를 확실히 정해놓고, 그 인생의 목표를 향하여 열심히 달려갈 경우, 정해진 운명의 시간도 비켜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녀의 생명을 계속 연장시켜주시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읽은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문둥병에 걸렸던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의 지시에 따라 행함으로써 병 고침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아람(시리아) 나라의 군대 총사령관이었습니다. 그는 여러 번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아람 왕의 총애를 받는 아주 훌륭한 장군이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는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문둥병이라는 것이 한 번 걸리면 도저히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었습니다. 그러니, 나아만 장군에게 있어서 아람 나라의 군대 총사령관이라는 직책은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아만 장군의 집에는 이스라엘에서 붙잡혀 와서 하녀로 종살이 하고 있는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 아이가 ‘사마리아 예언자를 찾아가면 문둥병을 고칠 수 있으리라.’는 아주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은 여러 가지 많은 예물을 준비해가지고 사마리아로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의 기대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생각하기를, 그가 찾아가면 엘리사가 버선말로 달려 나와서 그를 반갑게 맞이해 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마중 나올 생각은 하지 않고 심부름꾼인 게하시를 보내어 말하기를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하라.’고 지시했던 것입니다. 한 나라의 군대총사령관이 찾아왔건만, 나와 보기는커녕,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씩이나 목욕을 하라고 지시만 하고 있으니, 나아만 장군은 기분이 나쁘고 속이 상했습니다. 그야말로, 자존심이 엄청 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은 그냥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자신이 무슨 목적으로 왔었던 가를 잠시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그가 엘리사를 찾아왔던 이유가 무엇인지, 그 본질을 망각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나아만 장군이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돌아가려고 할 때, 그의 부하들이 만류하면서 “만일 그 예언자가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하라고 명령했다면, 장군은 그것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몸을 씻고 깨끗이 되라고 말씀하셨는데, 어째서 장군은 그것도 못한다는 것입니까?”하고 말했습니다.
그제서야, 나아만 장군은 제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가 왜 엘리사를 찾아왔는지, 그 이유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은 요단강으로 가서 목욕을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현대어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돈 많고 권세가 높은 나아만 장군은 마음을 바꾸어 겸손히 요단강으로 내려가 엘리사가 명령한 대로 그 물에 일곱 번 몸을 씻었다. 그러자, 그가 완전히 치료되어, 그의 피부가 소년의 살결처럼 깨끗해졌다(14)’

만일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의 지시를 거부하고 그냥 자기 나라로 돌아갔더라면, 그래서 문둥병을 고치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누구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그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그가 자존심을 버리고 엘리사의 말에 순종함으로써 천형(天刑)이라고 하는 문둥병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요컨대,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들어갈 때에 그가 입었던 모든 옷을 벗어야 했던 것처럼, 그가 세상적인 모든 허울을 다 벗어던짐으로써 그 무서운 문둥병을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존심과 세상의 명예를 벗어던짐으로써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오늘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함으로써 몸과 마음이 깨끗하게 되는 치유함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멀리 장거리 여행을 하게 될 경우, 반드시 카센터를 찾아가서 차량 점검을 받습니다. 그래야 안심하고 운전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차에 문제가 있는데도 그냥 장거리 여행을 나설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여행을 하는 중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해에 있었던 일입니다. 장거리 여행을 갈 일이 있어서 카센터에 들렸습니다. 그런데, 기사가 차량을 점검하던 중에 타이어에 못이 박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점검을 받지 않고 그냥 여행을 떠났으면, 고속도로에서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기사가 타이어에서 뺀 못을 제게 보여줄 때에, 그 순간 저는 마음속으로 후유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카센터에 들를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를 믿는 오늘 우리는 천국을 향해서 달려가는 경주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결승점을 항하여 달려가되, 한 눈 팔지 않고 전력을 다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장난삼아 달려도 안 되거니와, 쉬엄쉬엄 놀면서 가도 안 됩니다. 그야말로, 마음과 정성을 모아 최선을 다해서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준비가 제대로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달려갈 경우, 중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김연아 선수도 무릎과 발목 부상으로 한동안 고생을 했다고 했습니다.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계속 연습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김연아 선수는 침술로 고침을 받은 후에야 다시 연습할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실 때에 생명의 말씀만 전하신 것이 아니고,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 40절 이하에 있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고쳐주신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고 계실 때, 나병환자 한 사람이 주님 앞에 와서 무릎 꿇고 간청하기를 “선생님께서는 하시고자 하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겨 그에게 손을 내밀며 “그렇게 해주겠다. 깨끗해져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그는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순간적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수많은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병 고침 받기를 원하면서 간절히 간구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있습니다. 물론, 요즘에도 육신적인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그 무엇보다 인격적인 장애를 앓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실 육체적인 질병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깊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그 질병을 고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인격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과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입니다. 나아만 장군이 자존심을 버리지 않았더라면, 그는 문둥병을 고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교만과 자존심 때문에, 그 죽을병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옥으로 빠져가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가 진정으로 천국 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교만과 자존심, 그리고 세상에 대한 미련과 애착을 물리쳐야 합니다. 하지만, 대개 많은 사람들이 그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나아만 장군이, 자신의 문제가 문둥병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자존심을 지키려고 자기 나라로 그냥 돌아가려고 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아무 쓸모없는 것에다가 목을 매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정말 중요한 것은 아주 소홀히 여기면서, 아무 것도 아닌 것에다가 모든 정신을 쏟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정말 우리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바로 진단한 후,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과 능력으로 고침 받아야 합니다.

2.그런 다음, 영광스런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고 열심히 달려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하늘의 상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이다(고전9:25)’라고 말했듯이, 오늘 우리는 죽는 날까지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열심히 달려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는 길에는 장애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무엇보다, 우리 속에 있는‘또 다른 나’라고 하는 존재가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운동선수는 금메달이나 우승컵을 얻고자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맹훈련을 한다(고전9:25)’고 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어떻게든지 모든 장애물을 잘 극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있어서 그 모든 장애물을 온전히 이겨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차범근 씨를 꼽고 있습니다. 2위인 박지성과 비교해도, 많은 표 차이가 날 정도로 차범근 씨는 유명합니다. 하지만, 차범근 씨에게도 수없이 많은 고비가 있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숱한 모함을 당할 때, 그리고 경기장에서 불안과 초조의 시간을 보내게 될 때, 그는 출애굽기 35장 30-31절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힘과 용기를 얻는다고 합니다. ‘보라, 여호와께서 브사엘을 특별히 뽑으셨다. 그리고 그에게 신통한 재능을 부어주셔서 갖가지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슬기와 총명과 재주를 지니게 하셨다.’
차범근 감독은 이 말씀을 통해서, 성령이 함께 하시면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닥칠 때마다 지혜와 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하나님께서 특별히 뽑으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시련과 역경, 그리고 모든 장애물을 이겨내고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지체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겪고 있는 믿음의 시련을 잘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악한 세력을 물리치고, 주님께서 일러주신 말씀에 겸손히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직접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고 열심히 달려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코 뒤로 물러서거나 옆길로 새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오직 앞으로만 전진하고 또 전진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계신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영광의 면류관을 다 차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언제나 항상 결코 사라지지 않는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고, 한 눈 팔거나 넘어지는 일 없이 전심전력을 다해서 달려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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