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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설교] 2012년 2월 5일 주현절 다섯째 주일흥월교회 이익상 전도사의 '랍비주석'이 추가되었습니다.
변영권  |  firewitch@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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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년 01월 31일 (화) 18:22:11
최종편집 : 2012년 02월 01일 (수) 00:54:09 [조회수 : 2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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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5일 주현절 다섯째 주일

   
       ▲ Ruins at Capernaum, Image © clipart.com

 
본문
이사야 40:1-31절
시편 147편 1-11절
고린도전서 9:16-23절
마가복음 1:29-39절



설교 도우미 Preaching Helps
주석(Chris Haslam) - 번역 이 기호 목사(평안교회담임)


이사야40:21-31
1-11절(강림절동안에 읽었음)은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오는 영광스러운 행진을 말한다. 그러나 12-31절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시험받았던 백성에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여기서 (그의 예언자를 통하여) 직접적으로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신다. 어느 누가 인간의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의 소유지의 넓이를 측량할 수 있겠는가?(12절) 그러므로 당신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말할 수 있다고 감히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무엇이 정의인지 확실히 결정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지식”(14절)과 “이해”의 근원이다. 모든 민족들은 하나님과 비교한다면 물통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과 같다(15절). 다른 민족들에 의해서 경배되어지는 우상들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상들은 하나님과 비교될 수가 없는 것이다(18-20절).

너희들은 이 땅을 지배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21절) -너희들과 너희들의 조상들이 창조 그 자체로 돌아가서 생각할 때-
하나님은 하늘의 왕좌에 앉아계신다(궁창위에,22절). 인간은 하나님이 볼 때에 메뚜기같이 보인다(“하늘”과 “천막”- 창공-은 고대세계관의 유품이다: 하나님은 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서 사셨다, 모든 하늘들 위에는 별들이 있었다). 왕조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한다(24절).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다(25절). 하나님은 별들을 쉽게 창조하셨다. 별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쉽게 하신다. 오, 나의 백성아(야곱, 혹은 이스라엘, 27절), 너희들은 하나님이 너희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지를 못하며, 너희들의 권리들을 무시한다고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너는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너와 같지 않아 피곤하지 않으시다(28절). 사실, 하나님은 의심하는 사람들을 도우시고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신다(29절).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31절)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돌보실 것이고 보상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회복하실 것이다.

시편147:1-11, 20후반부
이 찬양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힘과 시기적절한 보살핌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신 것과 백성들을 모으신 것 때문에 찬양되고 있다. 특별히 “버림받은 자들”(2절, 포로된 자들)과 괴로워하는 자들(상심한 자들,3절)과 유린된 사람들(6절)을 도우신 것 때문에 찬양되고 있다.
하나님의 지혜는 한계가 없다(5절후반부).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한 창조자시다(4절). 하나님은 겨울비(8절)를 공급하신다. 그 겨울비를 통해서 까마귀 새끼를 포함하여 짐승들을 위한 음식(9절)이 제공된다. 우리가 “힘”(10절)과 속도에 기뻐하는 반면에, 하나님은 그를 경외하고 이스라엘과 계약한 그의 사랑(불변의 사랑,11절)을 알고 있고 보다 더 좋은 시간을 기대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보호하신다(13절). 심지어 성안에 있는 아이들을 축복하시고 번영과 평화를 주신다. 하나님은 자연현상 속에서도 다음과 같이 적극적으로 활동하신다. 하나님은 눈(16절)과 서리와 우박을 내리신다. 눈과 서리와 우박은 처벌의 수단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눈과 서리와 우박을 녹이심으로써 용서하신다(18절). 하나님은 오직 이스라엘과 함께만 율법에 근거한 관계를 가지신다(20절).

고린도전서9:16-23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라 생각하든지, 바울은 자신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았기 때문에 자신을 사도라고 말했다. 그리고 특히 고린도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데려왔기 때문에 자신을 사도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른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믿음의 아내(5절)를 동반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교회로부터 재정적으로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례비를 받을 이 권리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오는 믿음의 길에 장애물이 되지않도록 하기 위해서, 바울은 이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려고 한다. 복음을 자랑하는(15절,말하는)것에 있어서 바울은 아무것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복음을 선포하는 것(자랑하는 것)은 그에게 부과된 책무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업적에 대해서 자랑할 어떤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는다. 바울은 자신의 의지에 따른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는 하나님에 의해 임명된 사람처럼 그렇게 복음을 선포한다. 그러나 그가 보수의 자유로움에 따라, 즉 보수를 받지 않고 복음을 선포한 것은 그 자신의 의지의 선택이다. 그래서 그는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17절). 이 보상은 다음과 같다.
*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부과한 속박들로부터의 자유함(많은 사람들을 얻기 위해 모든 사 람을 공경하는 자유함)
* 더욱 더 효과적인 그리스도의 사절이 되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데려오는 것

바울은 종교적으로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 됨으로써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데려왔다. 바울은 그들의 관습들을 존중하면서 사람들과의 소통을 구축하기 위해서, 개심을 위한 계획에 따라 공격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의 종으로 만들면서(19절),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고 있는 자유를 자발적으로 제한하였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22절)과 함께, 즉 분명한 믿음의 장애물로 보일 때 쉽게 믿음을 잃어버리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서(예, 이방인의 의식으로부터 남겨진 고기를 먹는 일) 바울은 그들을 혼란케 하는 행동을 피하였다(예, 그런 고기를 먹는 일을 그만두었다).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자기 절제와 자기 부인 등, 그 이상을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23절). 바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선물(복)에 동참하기 위한 것이다.

마가1:29-39
마가는 우리에게 하루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 하루는 안식일이다. 그 안식일에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사역하셨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지식을 뛰어넘는 권위(22절)를 가지신 분으로서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악한 귀신에게 사로잡힌 사람을 단순히 악한 힘이 그에게서 떠날 것을 명령하심으로써 고쳐주셨다.

지금은 예수님이 이전에 부르셨던 네 명의 제자들과 함께 베드로의 아내의 어머니를 고쳐주신다. 베드로의 장모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시중을 드는 것은 그녀가 완전하게 그리고 즉시 고침(31절)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어떤 종교적으로 존경을 받는 지도자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특히 안식일에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예수님이 그녀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안식일이 끝날 때까지 몇 시간 정도도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그녀의 병이 심각했던 것인가? 결국 이 병 고침이 안식일에 행해져야 했는가하는 논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안식일이 지난 다음에 고쳐도 될 병은 아니었는가? 마가는 이것에 대해서 어떤 것도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다.

안식일 이후에, 즉 유대인의 다음 날이 시작될 때(“그 저녁에”, 32절) 회당에서 악한 귀신이 들려있던 사람(정신적인 병)과 베드로의 장모의 병(육체적인 병)과 같은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보기 위해서 그 집(베드로장모의 집)의 출입구(“문”,33절)주의에 모였다. 악한 귀신들은 자신들을 지배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후에 자신을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보이시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귀신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34절).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홀로 남기 위해서 외딴 곳으로 가신다(35절). 아마도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치료할 기회를 놓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임무는 가버나움을 넘어서 더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신다(38절). 예수님은 예배와 공부를 위해 만나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또한 악한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쳐주시면서 그 지역 전체를 여행하신다(39절).

 

 


설교실마리 Sermon Cues
( 김성국 목사- 미 연합감리교회의 사이트 www.gbod.org/site 일부 참조)


설교 함께 구성하기

**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능력과 위대하심(이사야)
** 복음의 끝없는 확장과 역사(고린도서에서의 바울)
** 초월적 권능자인 예수; 무한하신 능력


묵상에 대한 질문

▶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이사야 40:21,28)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이사야 40:25) 이스라엘은 어째서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었는가? 우리 역시도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다시금 재확신할 필요가 있지는 않는가?

▶ 마가복음 1:29-39절에 나타난 예수의 군중 치유 봉사는 우리에게 교회에 대한 세상의 기대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는가? 설교자 당신의 공동체 구성원들은 당신의 교회에 영육 간의 온전한 치유와 건강함을 기대해 마지않는가? 그 같은 것으로는 무엇이 있는가?

▶ 바울이 복음의 유익을 위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되어주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말하자면, 바울이 복음 전달의 순전함을 위하여 어떤 사람에게든지 자신을 맞추려하고, 또한 복음의 순수성을 위하여 금전을 바라지 않고 손수 천막을 만들어 수입을 얻으며 살고, 그리고 복음을 위하여 자신을 타인에게 맞추고자 절충점을 찾아가는 이러한 바울의 다양한 상황화(맥락화, contextualization)에 대한 시도를 우리는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


설교구상

하나님께는 한계가 없으심을 재발견함(이사야)

이사야의 구절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에 기초하여 청중을 일깨우는 원초적인 설교를 위해 무제한적인 연료를 공급한다.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묘사를 보라.

- 하늘을 차일 같이 펴시고 거주할 천막 같이 치시는 이가 누군가.. (이사야 40:22)
-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는 이가 누구냐.. (이사야 40:23)
- 땅에 거주하는 모든 생명체들을 관장하시는 이가 누구냐.. (이사야 40:24)
- 지칠 줄을 모르고 포기할 줄을 모르시는 이가 대체 누구냐.. (이사야 40:28)
- 다 죽어가는 이에게 새 힘과 새 능력을 부여하시는 이가 도대체 누구신가.. (이사야 40:29-31)

▶ 복음과 상황(고린도서)

만일 바울이 이 구절에서 어떤 것을 자랑하고자 하였다면, 그것은 바로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다양한 많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대응 처신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이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는 유대교를 배경으로 가진 사람들의 필요와 문제를 이해하였고, 그리고 유대인의 율법에 결코 묶인바 되지 아니한 사람들의 어떤 필요에 대해서도 다는 아니지만, 적정한 선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제시된 메시지의 방식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복음적인 맥락화로 자처한 사람들의 세계관에 대해 작게나마 인지할 수 있다는데 용기를 얻었다. 오늘날 기독교세계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논의들 중에는 적절한 예배음악과 예배스타일에 대한 고민이 들어있다. 예배공동체에 대해서 바울이 만일 조언자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 우리에게 수용 가능한 것이 되겠는가? 아마도 우리는 바울의 구절에서 현대 목회사역의 많은 상황들에 적용 가능한 중요한 개념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경계가 없는 하나님의 나라(마가복음)

지난주의 기적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이번 주의 기적은 베드로와 안드레의 집에서 시작되었는바, 그것이 온 가버나움 동리를 들쑤셔 놓았다. 본문읽기의 끝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갈릴리지역 전체에 기적과 말씀으로 복음의 능력을 수행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초대교회의 멤버들은 그리스도로 권능을 받아 똑같은 복음을 전파하였고, 기적을 실행하였으며, 그들이 알고 있는 세계의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여전히 우리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복음의 능력이 너무나 파워풀해서 우리자신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복음의 메시지를 신뢰한다. 그리고 또한 우리 자신이 한정도 없고 한계도 없으며 경계도 없는 무한하신 하나님 나라의 한 부분임을 굳게 신앙한다. 아멘 할렐루야!!


 


랍비주석
(영월군 흥월교회 이익상 전도사)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리라 이사야 40:26

랍비 라쉬밤의 제자인 랍비 엘리에셀이 26절에 대해서 설명한 것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랍비 엘리에셀은 프랑스에서 살았던 12세기의 랍비입니다. 이 주간에 해당하는 부분이 꽤 길지요. 여러가지 설명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하나, 제가 은혜받은(^^) 부분을 소개합니다.


* 번역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태양, 달, 별들과 별자리들. 이 모든 것은 창조의 날에 만들어 진 것이다. 너희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너희들이 알게될 것은 내가 바로 "그"(창조주)라는 것이다.

* 설명1.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사람의 의지와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보며 인간이 저절로 알게될 것이라는 겁니다. 세상을 창조하면서 사람이 한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인간이 그 안에 살듯이, 하나님은 사람을 넘어서 계시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것이지요. 때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지도 않아하지만, 하나님은 창조하신 세상에서 스스로 당신을 드러내시고, 아무리 하나님에 대해서 무관심하려고 애쓰고, 하나님을 떠나가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결국 우리가 그를 알게 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자면요, "니들이 아무리 용을 쓰고 나를 떠나고, 나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으려고 해도, 내가 세상의 모든 것, 심지어는 너까지 창조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내가 꼭 알리고 말거야. 그리고 결국 너희들도 알 수밖에 없을껄?" 하나님의 스토커 기질이 대단하시지요!

* 설명2.

3세기의 초대교부인 오리겐은 이 구절을 읽으면서 다른 부분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눈을 들어 보라"는 말은 신구약 성서에서 자주 나오는데요, 그 의미는 "너의 시선을 이 땅이 아닌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보고, 네 생각을 바꾸라."는 의미라는 것을 알게된 것입니다. 땅에서 사는 사람들이 땅만 보고 있노라면 아무런 해답을 찾을 수 없지만, 잠시 땅에서 하늘로 내 시선을 바꾼다면, 더 넓고 크고 알지 못했던 세상을 보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내 땅에 얽매여 있는 내 생각도 바뀐다는 것이지요.

* 설명3

설명 1과 2를 종합해 보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네가 비록 땅에 살고 있으나, 하늘을 바라보고 네 생각을 바꾸어라. 그러면 네 눈 앞에 펼쳐진 저 아름다운 세상을 통해서 하나님이 직접 네게 그분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실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이야말로 피곤하지도 않고, 늘 새 힘이 넘쳐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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