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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단심, 히말라야에서 내려오다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여행기(8)
박철  |  pakchol@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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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12월 20일 (화) 18:37:30
최종편집 : 2011년 12월 21일 (수) 01:50:15 [조회수 : 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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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의 막바지이다. 하산길에 밤을 맞게 되었다. 모두가 안나푸르나를 동경해 왔던 터라 모두가 해냈다는 성취감과 그동안 같이 길을 걷고 한 지붕 아래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그렇게 일주일을 함께 했다는 일체감으로 고무되어 있었다. 모두가 아쉽기는 매 한가지 이제 그리움을 품고 떠나야 하는 것이다.

   
▲ '도반' 롯지 앞에서.

 

도반 롯지에서 바라본 마차푸차례 봉우리는 슬픔을 이고 있는 산처럼 보였다. 비는 그쳤지만 산을 품고 있는 하늘은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히말라야의 산과 나무와 그 밖의 모든 풍경의 여백(餘白)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충 짐을 정리하고 일행들과 롯지 마당 벤치에 앉아 담소하며 차를 마셨다. 집을 떠난 지 꼬박 일주일이 되었다. 아이들도, 아내도 보고 싶다.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저녁 만찬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발전기 고장으로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실내 식당보단 롯지 마당이 밝을 것 같다고 롯지 마당에 식탁을 차리게 되었다. 가운데로 테이블 몇 개를 이어놓고 의자를 놓았다. 주방팀에선 음식을 나르느라 분주하다. 저녁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러자 우리 일행 중 몇 사람이 헤드렌턴을 가지고 나와서 불을 밝혔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내가 집에서 작은 양초를 열대여섯 개 가지고 온 것이 생각났다.

   
▲ 현지 가이드 리마씨. 한국사람보다 한국말을 더 잘 한다. 내려오는 길, 도단에서부터 1박2일 함께 길을 걸었다.

 

그래서 일행들에게 제안을 했다. 내가 가지고 온 양초를 켜면 어떻겠냐고. 그러자 모두 좋다고 한다. 작은 양초이지만 3시간은 족히 간다. 촛불을 켜자 금방 분위기가 센티해졌다.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소감을 나누었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했다.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사람들이 산에서 만나 일주일 만에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식탁에 음식이 푸짐하게 놓여졌다. 주방팀에서 네팔 염소를 잡아서 수육과 내장을 볶아 정성껏 접시에 담아 내놓은 것이다. 사실 이번 트레킹을 총 인솔한 유피여행사 박종철 사장의 오늘 저녁 만찬에 대한 귀띔이 있었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수육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양념을 넣지 않은 염소고기 수육에서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고 육질은 부드러웠다. 어린 염소새끼일 것이다. 그리고 수육과 함께 내놓은 내장볶음도 맛이 훌륭했다. 어떤 향신료를 넣었는지 약간의 허브향 냄새가 나는 것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 생면부지 전혀 인연도 없는 트레커들을 위해서 현지에서 고용한 주방팀이 온갖 정성을 다해 나그네들을 대접한 것이다. 참으로 고마웠다.

그렇게 14명의 일행들이 담소를 나누며 그간의 트레킹의 에피소드를 나누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쉘파와 포터들의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젊은이들이 맥주잔을 들고 건배를 한다. 내가 자청해서 가이드 리마씨에게 통역을 요청하고 저들 앞에 섰다. 내가 먼저 내 소개를 하자 뜨겁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저는 일주일 내내 히말라야 산길을 걸으면서 감동했습니다. 산길을 걸으면서 너무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여러분들이 40키로 육박한 카고백을 지고 한마디 불평도 없이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보고 다시 힘을 내서 걸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산과 함께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부럽습니다. 이제 이틀 후면 여러분들과 작별을 하겠지만 여러분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제가 하는 말을 따라해 주십시오.”

“나는 히말라야를 사랑합니다. 나는 안나푸르나를 사랑합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 '나야폴'거리. 트레커들과 네팔리들로 왁자하다.

 

내 연설(?)이 끝나자 저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동무를 했다. 모든 시선이 이들에게 집중되었다. 네팔 민요를 연속해서 부르는데, 한 사람씩 돌아가며 선창을 하면 나머지 사람이 추임새를 하며 신나게 노래를 따라한다.

‘레썸 삐리리(Resam Phiriri)’라는 노래는 우리나라의 아리랑과도 같은 네팔의 전통 민요로서 네팔인들이 히말라야를 오르내릴 때 흥얼거리는 트레킹의 노래이다. 멜로디가 단순해서 조금 집중하면 따라 부를 수 있다.

레썸삐리리 레썸삐리리
우레나정끼 달라마반장 레썸삐리리~
이그나리 번둑 두이나리 번둑 미갈라이 따께꼬
밀갈라이 마이네이 따께꼬 웨이나이 마이라이 따께꼬~

잡아올까 그대로 둘까
외줄 총으로 사슴을 노릴까
두줄 총으로 사슴을 노릴까
나의 사랑하는 마음(총)은 사슴이 아닌 님을 향해 쏠테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유난히 정겹던 이 노래가 나에게는 마법을 외는 특별한 주문처럼 느껴졌다. 선량하게 생긴 젊은이들이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저들의 가식 없는 노랫가락, 춤, 몸짓, 환호성이 이어지자 우리 일행들과 모든 스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함께 어우러져 걸쭉한 노래와 춤판이 벌어졌다. 우리 일행들은 그동안 저들의 호의에 보답하고자 성금을 모아 저들에게 전달하는 순서도 가졌다.

장엄한 히말라야 산봉우리 산그림자가 머문 도단 롯지 마당에서 눈을 감고 묵상을 한다. 설산(雪山)으로 에워싸인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의 장관이 눈앞에 펼쳐지며 고산지대 원주민들의 선한 얼굴, 그 미소가 번진다. 그리고 산 계곡이 들려주던 장엄한 자연의 오페라가 들려온다. 모든 것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 '나야폴'에서. 우리는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데 네팔리들은 춥다고 모닥불을 쬐고 있다.

 

히말라야 산속은 점점 어둠이 깊어져가고 촛불은 수명을 다했는지 심지가 사그라져가고 있다. 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내일 일정을 위해 저녁만찬을 마치기로 했다. 오늘도 밤하늘의 별빛은 온 하늘을 수놓고 있었고, 은하수는 푸른 물감을 뿌려놓고 있었다. 참으로 잊을 수없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10월 22일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아침 6시 길을 나섰다. 오늘은 시누와 촘롱, 뉴브릿지(1,680미터), 차메까지 약 9시간을 걸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촘롱 롯지에 오르기까지이다. 수천 개가 넘는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일명 ‘아리랑 고개’라고 할까, 트레커들은 이곳을 심장을 터져버리게 하는 구간이라고 한다. 나는 집중해서 처음 출발했던 때 붙잡은 ‘경청(敬聽)’이라는 화두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코스이지만 풍경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숨이 차오른다. 6일 만에 종아리는 돌덩어리처럼 단단해졌다. 내 자신이 강해져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계단을 오를 때도 있지만 또 내려갈 때도 있다. 내려갈 때는 단전에 힘을 모으고 뒤꿈치를 들고 사뿐사뿐 충격을 최소한 줄이면서 걸었다. 돌계단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그 수많은 돌계단을 놓았을까 네팔리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보내고 싶다.

오전 11시경 촘롱마을에 도착했다. 오를 때 보지 못했던 다른 풍경을 만끽했다. 대자연 앞에 선 내 자신이 왜소하기 짝이 없다. 지금도 히말라야의 풍경들이 순간순간 스쳐지나가고 있다. 촘롱과 뉴브릿지를 거쳐 차메롯지에 도착하여 히말라야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그동안 긴장감과 피로누적으로 체력의 한계가 왔는지 저녁밥도 간신히 먹고 잠에 곯아떨어졌다.

10월 23일 아침 6시, 차메롯지에서 나야폴을 향하여 서둘러 길을 나섰다. 4시간이면 나야폴에 도착할 수 있고 한다. 이제 히말라야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셈이다. 많이 아쉽다.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트레킹이어서, 시간도 짧고 내 마음대로 내 발길 닿는 대로 구석구석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 산에서 내려온 포터들이 신나는 모양이다

 

나야폴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포카라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또 버스를 타고 카트만두로 향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트리술리강(Trisuli River) 강변을 따라 깎아지른 절벽의 벼랑길을 달렸다. 차창으로 바라보는 네팔리들의 삶, 하늘 밑 고산지대에 마치 키 재기라도 하듯, 끝 가는 데 없이, 높은 하늘 꼭대기 산위에 다랑논을 일구며 살아가는 네팔리들의 삶을 보며 자연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했다.

포카라에서 카트만두까지의 거리는 200킬로미터로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지만, 도로사정이 열악하고 차량 정체로 단콕 고개(Thankotdanda)를 지나 카트만두를 넘어가는데 꼬박 8시간이 걸렸다. 하도 차가 흔들려서 엉덩이에서 불이 나는 줄 알았다.

늦은 시간에 카트만두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하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카트만두 관광에 나섰다. 나는 쇼핑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돈도 부족하고 사고 싶은 물건도 없다. 공예품인 나무피리를 하나와 명상할 때 사용하는 티베트 주발 하나를 샀다. 나무피리는 길거리 장사꾼이 하도 따라 다니면서 성가시게 해서 하는 수 없이 샀다. 야크 목에 다는 일명 ‘건띠(워낭)’을 하나 살까 했는데, 갖고 돈이 모자라 포기했다. 대신 히말라야 녹차를 하나 샀다.

스프링 작은 노트에 트레킹 내내 일기 형식으로 메모한 것을 풀어서 적다보니 의외로 이야기가 길어졌다. 그래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한 일이었다. 이번 8박9일의 안나푸르나 트레킹 내내 모든 순간마다 하나님의 현존을 온몸으로 느꼈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받아주셨고 응답해주셨음을 너무나 생생하게 경험했다. 참으로 내 생애에 가장 절실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 '카트만두' 시가지 풍경.대단히 복잡하고 요란하고 정신없다.

 

그리고 히말라야 트레킹에 도움을 준 좋은나무교회 청장년 회원들, 교우들, 파크사이드병원 박인선 원장께 감사드린다. 선물도 없이 빈손으로 온 것이 미안하다. 그리고 트레킹을 마칠 때까지 맘 조리며 매일 새벽 3시 예배당에 내려가 나를 위해 기도해준 아내 김주숙 집사에게 아직 고맙다고 인사도 못했다. 늘 빚만 지고 살다가 갈 모양이다.

어느 산악인이 말했다고 한다. “그대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면 히말라야에 가라. 위대한 자연 앞에 자신을 내려놓아라. 자신의 삶이 어렵다고 생각되면 히말라야에 가라. 네팔리의 삶을 느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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