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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안나푸르나 베이스 켐프에 오르다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여행기(7)
박철  |  pakchol@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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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12월 13일 (화) 15:41:32
최종편집 : 2011년 12월 13일 (화) 16:45:12 [조회수 : 2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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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어둠속에 안개 사이로 서서히 안나푸르나 주봉이 면모를 드러낸다.

10월 21일 오늘 아침에 안나푸르나 베이스 켐프에 오르기로 되어 있는데 잠을 설쳤다. 어젯밤 오늘 산행을 위해서 저녁 9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너무 고단해서 그랬을까. 정신은 더욱 명료해지고 잠이 오질 않아 롯지 침대에서 일어나 한참동안 묵상기도를 했다.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하다 새벽 2시에 아예 잠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화장실에 갈 겸 밖으로 나왔는데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별안간 천둥 번개가 치더니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마차푸차례 베이스 켐프가 3,720 미터의 고산 지역인데 비가 오다니, 그리곤 잠시 후 눈이 퍼붓기 시작한다. 트레커들이 천둥 번개에 놀라 롯지 방마다 하나 둘 전깃불이 켜진다. 가이드 리마씨도 걱정이 되었는지 롯지 복도를 왔다 갔다 한다.

리마씨에게 이런 날씨에 안나푸르나 베이스 켐프에 가면 안나푸르나 봉우리를 제대로 볼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아마 안개가 심해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눈 오는 것과 관계없이 안나푸르나가 우리를 기쁘게 맞이해 줄 것이다라고, 틀림없다고.

정각 새벽 4시 집결을 했는데 일행 모두가 날씨 때문에 심란해 한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아침 식사대신 밀크티를 한 잔 마시고 길을 나섰다. 모두 이마에 헤드렌턴을 착용하였다. 눈바람이 세차게 분다. 박종철 대장이 선두에서서 길을 안내하는데 좁은 산길이 눈으로 덮여 길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1시간 20분 정도 걸으면 이번 트레킹의 최종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 켐프에 도착하게 된다.

   
▲ 함께 안나푸르나 베이스 켐프에 오른 길벗들.

사랑하며 함께 꽃잎 같은 발자국을 눈 위에 찍으며
넘어야 할 고개 앞에 다시 네 손을 잡는다
쓰러지지 않으며 가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눈보라 진눈깨비 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어둠속에 불빛이 길게 이어졌다. 눈발은 더욱 거세게 퍼붓기 시작한다. 경사가 그리 심한 편이 아닌데 숨이 차다. 고산지대여서 그럴 것이다. 그렇게 한 40분쯤 걸었을까, 저 멀리 안나푸르나 베이스 켐프 롯지에서 켜놓은 불빛이 가물가물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새벽미명에 안나푸르나 봉우리의 끝자락이 살짝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새벽어둠이 많이 가셨다. 그리고 ABC 롯지가 눈에 들어올 무렵 고개를 들었더니 새벽안개 사이로 안나푸르나 봉우리들이 일제히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시작했다. 길을 함께 나선 이들이 모두 환호성을 질러댄다. 그 아름다운 광경을 말로나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바로 지척에 7-8천 미터 급의 설산들이 하늘로 솟아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시라.

나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로 저 장면을 보기 위해 지난 10년 동안 애달파 해왔단 말인가. 미끄러운 눈길을 스틱으로 중심을 잡으며 더 빠른 걸음으로 ABC를 향했다. 아직 일출 직전이어서 따뜻한 홍차로 언 잠시 몸을 녹이고 안나푸르나를 감상하기 좋은 전망대로 올랐다.

바로 그때 강렬한 아침햇살이 안나푸르나 1봉, 2봉, 3봉 허리춤을 가로질러 비친다. 그리고 거대한 안나푸르나 봉우리들이 솟구쳐 올랐다. 황홀 그 자체였다. 무어라 말을 걸어야 하겠는데 말문이 막혔다. 전망대 끄트머리에서 연신 눈물을 훔쳤다. 사람들은 사진찍기에 바쁜데 나는 혼자 궁상을 떨고 있다.

   
▲ 안나푸르나 롯지 지붕 위로 안나푸르나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시편 23편을 소리 내어 낭독했다. 눈발은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20분쯤 지났을까 안개가 스멀스멀 밀려오더니 서서히 안나푸르나 봉우리들을 감싸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트레커들이 눈을 뒤집어쓰고 그 힘든 산을 올라오고 있는 중인데…. 그리고 잠시 후, 안나푸르나 전체가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마차푸차례 봉우리가 더 또렷하고 선명하게 보였다. 안나푸르나는 딱 20분 정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다.

처음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시작했을 때 과연 날씨가 좋아서 안나푸르나를 볼 수 있을까, 오른쪽 다리에 경직이 와서 이번 트레킹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얼마나 큰 행운인가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렇게 안나푸르나의 속살을 볼 수 있었으니, 하나님이 내 소원을 들어주신 것이다. 이만하면 여행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이제 내려가는 길이 남았다. 오늘 오던 길을 되돌아 다시 도반까지 가서 하루를 묵게 되어 있다. 총 11시간을 걸어야 한다. 안내서에는 일정 중에 가장 힘든 날이라고 적혀 있다. 이제 고산증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있기에 내려갈 땐 속도를 낸다는 것이다.

나는 혼자서 길을 걸었다. 혼자서 길을 걷는 맛이 꽤 괜찮았다. 간혹 바람소리에 야크 목에 단 종소리가 실려 온다. 그 소리는 어느 산사 처마 끝의 풍경소리처럼 아늑하다. 잠시 길 위에 주저앉아 쉬노라면 내가 풍경 속의 작은 정물이라도 된 느낌이다.

   
▲ 안나푸르나 베이스 켐프 전망대에서

마차푸차례 베이스 켐프를 지나 도반으로 내려가는 길, 눈은 멈추고 비로 바뀌었다. 파커 속 내피를 벗겨버리고 외피를 비옷 대용으로 입었다. 훌륭했다. 그런데 가도 가도 길이 끝이 없었다.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찬송가며 노래를 불렀다. 비가 오니 트레커들의 수가 부쩍 줄어들었다. 그 거대한 산속을 나 혼자 노래를 부르며 걷는다. 이런 자유가 또 어디 있을까?

이번 히말라야가 트레킹을 통해 배운 것은 ‘비우고 내려놓은 자’만 산을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처음부터 ‘정상에 오르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걷는 수행길이다. 트레킹은 애초에 히말라야 정상을 정복하기 위한 길이 아니라 히말라야에 오르는 과정을 만끽하기 위하여 걷는 길이다.

내가 40대에 막 진입하면서 출간한 첫 시집 ‘어느 자유인의 고백’에 실렸던 시가 생각났다. 내가 이번 트레킹을 출발하면서 붙잡은 화두가 ‘경청’(敬聽)이었는데, 그 조용한 하나님의 소리에 경청했더니 하나님이 내게 주신 답은 ‘자유’(自由)였다.

갑자기 몸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파카를 벗었다. 그리고 온몸을 비를 맞기로 했다. 아마 영상 5~10도쯤 되었을 텐데 하나도 춥지 않았다. 그러자 길이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40대 초반 뜨거운 가슴앓이를 했던 그 시절을 반추했다. 그리움이 막 밀려온다.

일순간,
지나가는 한쪽의 영감을 잡기 위하여
차라리 내 연약한 육신은
산산조각이 나도 좋으리
내 가슴이 깨어지는 것도
막아내지 않고
존재라는 영명한 억겁으로부터
나는 자유하리
한 치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이 나약한 한계로부터
조금도 유보함이 없이
껍데기를 벗고서
자유인이라는 이름 석 자를 빌어
비로소 서야지
내 발로 서야지.
-박철 <어느 자유인의 고백>-

   
▲ 도반으로 가는 길. 이따금 작은 민가가 지나가는 길손들을 맞이한다

내려가는 길에 마주한 마을들은 소박하고 예쁘다. 마을 사람들이 낯선 이방인에게도 쉽게 웃음을 보이는 것은 거친 자연 앞에 삶의 터전을 만든 그들에게 히말라야가 내려준 선물인 것 같기도 하다. 내려갈 때는 올라올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산을 내려오는 길 자유라는 화두에 넋이 나가 길을 걷다보니 온몸이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다. 윗도리부터 바지, 등산화가 빗물에 흠뻑 젖었다. 그렇게 데우라리를 거쳐 도반까지 오늘 하루 꼬박 10시간을 넘게 걸었다. 나는 대열에서 이탈하여 다른 일행들보다 한참 뒤처져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려오다 빗길에 미끄러져 두 번 넘어졌다. 그때 넘어져 생긴 멍자국이 보름동안 계속되었다.

도반 롯지에 도착했는데 비를 맞아서 그런지 온몸이 으슬으슬 춥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침이 나왔다. 감기가 찾아온 것 같다. 별로 좋은 친구는 아니지만 함께 지내자는데 어떡하겠는가. 따끈한 밀크 차에 설탕을 진하게 타서 두 잔을 연거푸 마셨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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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196.235.211)
2011-12-13 20:12:46
산도 시도 황홀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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