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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녘교회 기도문집 '내 기도하는 이시간' 출간우리의 기도를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도전이고 제언
방현섭  |  racer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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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11월 28일 (월) 13:48:12
최종편집 : 2011년 11월 29일 (화) 01:33:23 [조회수 :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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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참 어려우면서도 쉬운 것이 기도이다. ‘기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라는 모범답안을 즉답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정작 기도가 하나님과의 대화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런 경험을 매주일 하고 있지 않은가!

기도를 잘하는 사람은... 아마도 교회 장로님들을 꼽지 않을까? 주일낮예배에서 장로님들이 하는 기도를 보면 정말 대단하다.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요한계시록의 천년왕국까지 두루 섭렵한 후에는 교회 성도들의 사정을 다 하나님께 아뢴다. 보통 5분은 쉽게 넘긴다. 이렇게 장황하고 엄중한 서사시적인 기도를 하는 분들이 대단하게 보인다. 게다가 ‘하옵시고, 마옵시고, 주옵소서’ 등 듣기만 해도 웅장한 느낌이 드는 거룩한 언어들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분들으 기도 앞에서 우리의 기도는 한없이 작아지고 도통 남 앞에 나서서 기도하는 것이 내키지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기도를 들으면서 드는 생각은 ‘이게 하나님과의 대화가 맞아?’이다. 솔직히 한국교회에서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가 아니라 사람들 들으라고 하는 기도 같다. 그것도 말빨이 딸려서 멋드러진 기도를 하는 것이 힘겨운 이들 기죽이는 연설 같은 기도... 그래서 공적 예배에서 하는 기도는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미안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 혹은 어머니로 고백하고 기도할 때에도 (대개는) 하나님 아버지라고 호칭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세상에 어느 누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와 대화를 하면서 ‘이렇게 해주옵시고 저렇게 하지 마옵시고 감사하옵나이다’라고 말하는가? 아무리 옵소서 등의 문어체가 교회 안에서 일상적이고 공식적으로 사용된다고는 하지만 더 이상 구어체에서 사용하지 않는 문어체의 기도가 지금의 일상에서는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혹시 이런 사회적으로 사문화된 기도의 언어체가 교회를 더욱 고립되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현실에서 아주 좋은 글을 발견하게 되어 기쁘다. 동녘교회(담임목사 변경수) 선교부에서 ‘내 기도하는 이시간’이라는 주일기도문집을 발간하였다. 기도문집을 펴보면 교회의 공식적 언어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매우 어색하다. 이게 기도인지 아니면 한 편의 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일상의 언어들과 일상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정말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이야기하고 대화를 나누듯이 펼쳐진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한 편의 시가 된다면 그처럼 아름다운 관계는 또 없을 것 같다.

   

아무도 보지 못할 때
오는 것이다
겨울날 땅 속에서 새움이 꿈틀거리듯

아무도 듣지 못할 때
오는 것이다
소리를 내기 직전 피리의 울림처럼

아무도 만지지 못할 때
오는 것이다
감나무 꼭대기에서 마지막 감이 익어가듯
(중략)

하느님
부활의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부활은 그런 것이다 / 김경윤)

...
사랑의 원천이시며, 생명의 샘물이신 하느님,
마르지 않는 생수가 가득차고 흘러 넘쳐서,
뼈만 남았던 에스겔 골짜기를 적셨던
당신의 기적에 우리가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던 전교인여름수련회와,
아이들의 신앙이 한 뼘 자랐던 ‘여름성경학교’와 공부방의 독서캠프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힘들었던 시간들도 결국은 우리들을 단련하는 삶의 한 과정임을 고백하오며,
하느님 당신으 뜻 깊은 임재와 한없는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여름을 보내며 / 정경화)

그뿐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갖가지 불의와 부조리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과 역사를 간구하는 예리한 기도도 있다. 교회 자체의 울타리에 갇혀서 교회성장과 교인증가만을 부르짖는 기도들이 일상적인 이 때에 이런 기도들은 기독교인이 어떤 사회의식을 갖고 하나님께 간구하여야 할까에 대한 중요한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도 지구촌 한 쪽에서는 야만적인 폭력이 무자비하게 소중한 생명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아무런 저항 능력이 없는 민간인들에게 폭격을 가하는 오만한 이스라엘과 이를 지원하는 미국에게 주님의 정의를 보여주시옵소서. 당신을 믿고 따르려는 자라면 결코 그리해서는 안 됨을 그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매일 죽어나가는 가족과 이웃을 보며 울부짖는 레바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모두가 주님의 소중한 자녀들입니다...
(사랑과 정의의 기도 / 한상수)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합수 지점, 서로 다른 먼 발원지에서 수많은 지천과 내를 거느린 채 굽잇길을 에돌아 양수리에서 마침내 만나 한 몸 되어 흐르는 두물머리는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두물머리는 다른 사람의 개성과 인격을 존중하라는 상징, 다른 사람과 나를 구별 직지 말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그 모습 그대로 바라보라는 자연의 권고였습니다. 그러나 두물머리에서는 지금 평화가 깨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두물머리에서 30년째 유기농법으로 농사짓는 농부들을 쫓아내고, 그곳에 자전거길과 체육공원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주님,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삽질에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하였습니다. 지난 월요일 영산강 답사를 통해 저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현 정부가 우리나라 국토를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하는지를. 비옥한 나주평야의 젖줄인 영산강에 보를 설치하고 강바닥을 긁어내는 준설 작업을 통해 강을 형편없이 파헤치는 것을 보는 일은 고통이었습니다.

지금 이명박 정권의 승인을 받은 건설업자들은 낙동강을 갈가리 찢어 거친 삽질로 마구 파헤치며 거대한 보를 세우고 있습니다. 자연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강을 위한 기도 / 박선옥)

이 기도문들이 한국교회에 제시하는 기도의 모범답안은 물론 아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기도에 모범답안이라는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범답안을 찾는다면 답은 ‘기도가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명제 안에 이미 있을 것이다. 이 기도들은 책을 내기 위해 쓴 글들이 아니다. 벌써 몇 년째 예배에서 교우들이 실제로 했던 기도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이렇게 편안하고 아름다우며 진지한 기도를 공적 예배시간에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 기도집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동녘교회의 변경수 목사는 책머리 초대의 글에 이렇게 적는다.

사람은 인식의 존재입니다. 또한 영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초월자를 요청합니다.
기도는 인식 밖에 있는 세계를 향한 거룩한 몸짓이며
초월자를 향해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겸허함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 밭은 부드러워지며,
우리의 마음결은 온화해집니다.
질그릇 같은 투박한 생명을
도자기 같은 아름다운 생명을 재탄생 시킵니다...

동녘교회에서 이런 귀한 노작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동녘교회가 가진 교우들의 구성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본다. 동녘교회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임에도 종종 문집, 회지를 발간한다. 내용도 알차고 편집도 눈에 편안하고 예쁘다. 아마도 젊은 세대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교회 중고등부가 활성화되어 많은 청소년들이 함께 했었다. 이때 문학의 밤도 하고 학생회 회지도 만들었던 추억이 있다. 이 당시 교회 학생회 생활을 재미있게 했던 이들이 지금 30-50대일 것이다. 그들이 옛날 즐겁게 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회지도 내고 기도문집도 내고 있는 것 같다. 30-50대가 교회에 실망하고 가장 많이 등을 돌린 세대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런 세대가 동녘교회에서 모여 가장 즐거웠던 때를 다시 만들어가는 모습은 이 시대 이미 성장이 멈춘 한국교회가 중장년층에 어떤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인가 하는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중장년층이 한데 모여 즐겁게 이런 일들을 함께 해나가는 모습이 생각만 해도 정겨운 것은 나만의 느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관점에서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신앙하느냐의 문제이다. 기도문에는 아버지라는 호칭과 주님이라는 호칭이 공존한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도 또한 주인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지 아니면 주인으로 고백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자기의사결정이 있다면 기도가 더욱 풍요로와지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하나는 문법적인 호칭의 문제이다. 기도에 ‘당신’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타난다. 기도는(일상적인 기도에서 나타나는 오류이기도 하다) 일인칭인 나와 이인칭인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이인칭에게 당신이라는 호칭은 결코 존칭이 아니다. 당신이라는 호칭이 극존칭이 될 수 있는 경우는 3인칭에게 사용할 경우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기도는 1-2인칭의 대화이다. 물론 기도가 반드시 문법적으로 맞아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문법적 이해는 갖고 기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기도문집과는 다른 이야기이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 심지어는 목사들까지도 기도할 때 ‘되어진, 드려진, 바쳐진, 쓰여진’ 등의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문법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신앙고백적으로도 문제가 많은 표현이다. ‘된, 드린, 바친, 쓴’으로 표현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알 수 없는 수동태 표현이 적지 않게 기도를 통해 사용된다. 이런 표현은 우리의 신앙을 수동적인 것으로 규정하게 된다. 우리가 우리의 고백과 결단으로 바치고 하고 드린 것일 텐데 마치 우연이나 외부의 강압 등에 의한 것으로 규정하는 내재적인 작용을 무의식 중에 하게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있다. 나는 특히 목사들이 이런 표현을 자제해서 써주면 좋겠다. 목사들이 하면 교인들도 따라할 가능성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잡설이 길었다. 아무튼 동녘교회의 이 기도문집은 우리의 기도를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도전이고 제언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책의 끝부분에는 ‘동녘인의 기도’라는 기도평론도 실려 있다. 기도를 보다 기도답게 하기 위한 제안과 설명이 잘 실려 있다. 또 실제로 주일예배 시간에 낭독할 수도 있고 읽는 것만으로도 기도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얻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이 기도문집을 시중에서 판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이 기도문집을 구하기 원하는 분이 있다면 동녘교회에 연락해보시라. 전화번호는 031-903-2768이다. 연락이 된다면 아마도 흔쾌히 기도문집을 보내주지 않을까... 확신한다.

이런 좋은 기회를 준 동녘교회 교우들과 변경수 목사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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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수 (119.XXX.XXX.106)
2011-12-01 21:23:00
방현섭 목사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희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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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화 (59.XXX.XXX.93)
2011-11-29 16:51:59
방현섭목사님, 참 감사한 글 올려주셨네요. 덕분에 다시 '기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조언이 자극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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