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트만두공항 레스토랑. 사람들로 북적거려 정신이 하나도 없다.

17일 오후 4시(한국 시간, 네팔 시간 12시 45분)비행기가 카트만두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버스를 타고 공항 대기실로 이동했다. 한참 동안 복도를 걸었는데 붉은 벽돌로 지어진 공항 건물이 우중충한 것이 매우 낡아 보였다. 공항 대기실로 빠져나오자 사람들이 떠드는 왁자한 소리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 일행은 우선 짐부터 찾았다. 짐을 찾고 잠시 기다리던 중, 우리 짐을 들어 줄 포터들이 하나 둘 얼굴을 내밀었다. 모든 선량하게 생겼다. 활짝 웃는데 가식이 없었다. 그리고 현지 가이드가 우리 일행을 환영한다며 붉은 꽃다발을 목에 걸어 주었다. 좋은 향기가 풍긴다. 그 꽃은 셋째 날 촘롱 롯지 화단에서 볼 수 있었다.

카트만두 국제공항에서 20분 동안 걸어서 국내선 탑승구로 이동하였다. 곧 여기서 포카라로 가는 경비행기를 타야 한단다. 국내선 공항 2층 레스토랑에서 잠시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며 처음으로 일행들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일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인도할 유피여행사 박종철 사장(등반대장)과 남자 8명, 여자 5명 모두 14명이었다. 내가 일행 중 3번째로 나이가 많았다.

현지 가이드 이름은 리마씨였다. 나이가 4대 초반인데 마른 편이었고, 콧날이 오뚝한 게 미남이었다. 리마씨는 한국에서 10년 넘게 노동자 생활을 했다고 한다. 한국말을 밑천으로 가이드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했다. 리마씨는 아들도 데리고 왔는데 아빠보다 더 미남이었다. 리마씨 아들은 지금 대학생인데 이번 트레킹에 함께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버는지 보여 주기 위해 데려왔다고 한다.

레스토랑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트레커들로 소란스러웠다. 네팔에 와서 처음으로 공중화장실을 갔는데 60~70년대 초등학교 화장실과 거의 비슷했다.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그런데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네팔에서의 작은 불편은 그들의 일상이었다.

▲ 카트만두공항에서 포카라로 가기 위해 경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11월 중순이면 네팔도 우리나라와 같이 가을이라고 하는데 날씨가 한여름을 방불케 했다. 찜통더위였다. 나는 땀을 많이 흘려서 연신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야만 했는데 손수건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을 정도였다.

17일 오후 2시(이후 네팔 시각으로), 카트만두에서 포카라(Pokhara)로 이동하기 위하여 네팔 경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안이 꼭 시골버스 같았다. 의자 등받이도 뒤로 젖힐 수 없었고 너무 간격이 좁아 무릎을 곧추세우고 앉아야 했다. 포카라까지 40~50분 걸린다고 한다. 곧 비행기가 이륙하였다. 엄청난 굉음에 고막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였다.

그때 네팔 전통 의상을 한 여자 승무원이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한다. 얼굴이 새까맣다. 얼굴 생김새로 보아 인도계 여성인지 이목구비가 분명하고 늘씬하고 아름다웠다. 여자 승무원이 승객들에게 봉지를 하나씩 나누어 준다. 비닐봉지를 열어 보았더니 땅콩과 사탕 몇 알, 그리고 솜이 들어 있었다. 솜은 귀마개용으로 주는 것이란다. 나는 이미 휴지로 귀를 막고 있었던 참이었다.

작은 창으로 네팔의 풍경이 펼쳐졌다. 고도가 높지 않아서인지 비교적 자세하게 보인다. 그런데 네팔의 풍경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우리네 시골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추수가 끝난 논도 있었고, 곧 추수를 기다리는 논도 있었다. 논두렁의 경계가 구불구불한 것이 우리네 시골 풍경과 같았다.

▲ 미모의 승무원이 귀마게용으로 솜을 나누어 준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포카라'라는 도시로부터 시작된다. 포카라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베이스 도시인 셈이다. 포카라는 안나푸르나 산군의 장엄한 모습이 아름다운 폐와 (Phewa) 호수와 어울려 이 도시의 북쪽을 감싸고 있다. 그중에서도 네팔 사람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물고기 꼬리 모양의 산 마차푸차례는 이등변 삼각형처럼 우뚝 솟아 있어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 산은 6,997m로 히말라야 산맥에서는 낮은 편에 속하지만,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아직도 전인미답의 산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드디어 비행기가 포카라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버스로 갈아타고 레이크 팰리스 호텔까지 이동했다. 포카라는 전 세계 트레커들이 모이는 곳이어서 그런지 복잡하고 요란했다. 생동감이 넘치는 관광 도시였다.

호텔에 도착해서 방 배정을 받고 박종철 대장으로부터 전체 일정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자 박종철 대장은 각자 준비해 온 밑반찬이나 음식 재료를 카코백에서 꺼내 다 한 곳으로 모으라고 한다. 그것을 기본 재료로 하여 네팔 주방 팀에서 음식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한다. 나는 아내가 정성껏 만들어 준 볶음 고추장, 멸치조림, 콩 자반을 내놓았다. 일행들 모두가 한국에서 준비해 온 밑반찬과 음식 재료를 꺼내 놓으니 산더미를 이루었다. 모두가 흐뭇하게 생각했다.

호텔방으로 와서 짐을 풀고 한국인 식당으로 이동해서 저녁 식사를 했다. 나는 현지 음식을 먹고 싶었는데 유피여행사 박종철 대장은 한국 사람들 입맛이 까다로워 맞출 수가 없어서 될 수 있는 대로 한국 음식으로 통일을 시켰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까다로운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포카라 길을 걸었다. 특이한 풍경은 소들이 길거리를 느릿느릿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네팔은 힌두교 국가여서 소를 신성시하기에 쇠고기를 먹지도 않고, 소가 길거리에 어슬렁거려도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길을 걸을 때 자칫 한눈팔다간 소똥을 밟기 일쑤이다. 어렸을 적 "소똥 밟으면 재수 없다"고 했는데, 그 말이 생각나서 피식 웃고 말았다.

포카라 밤거리는 가로등이 많지 않아 어두운 편인데도 활기가 넘쳐 났다. 포카라엔 등산점이 엄청 많았다. 대부분 짝퉁이어서 물건을 살 땐 그 점을 참고해야 하고, 또 바가지를 많이 씌우기 때문에 물건을 살 땐 무조건 절반 이상을 깎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느 등산점에 들어가서 번호 다이얼이 달린 작은 자물쇠 하나를 샀다.

▲ 포카라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호텔로 돌아와서 발코니에서 일행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대부분 한국에서 산악회 활동을 하시는 베테랑들이었다. 산이 좋아 히말라야를 꿈꾸고 안나푸르나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산 사람들이라고 그런지 산 이야기가 나오자, 그동안의 산행 경험 이야기로 끝이 나질 않았다.  

나는 내일 산행을 위해서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5시에 아침 식사, 그리고 6시에 트레킹 출발점인 '나야폴'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1시간 반 동안 또 이동해야 한다.

이내 호텔방으로 돌아와 샤워하고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장거리 이동으로 몸이 찌뿌듯하다. 더운물로 샤워를 했더니 한결 몸이 좋아졌다. 잠시 시편 131편 순례자의 노래를 읽고 간절히 묵상기도를 올렸다.

"주님, 이제 내가 교만한 마음을 버렸습니다. 오만한 길에서 돌아섰습니다.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나서지 않으며,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내 영혼도 젖 뗀 아이와 같습니다.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히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여라."

▲ 포카라에 있는 한국식당. 식당에서 폐와호수와 남안나푸르나 봉우리를 볼 수 있다.

네팔에 와서 처음으로 맞은 잠자리이다. 이 먼 데 곳까지 와서 내 몸이 고장 없이 잘 따라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트레킹의 목적대로 즐기면서 걷고 싶다. 하나님의 현존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말이다. 첫날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내일 히말라야는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아 줄 것인지 기대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 박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