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을 보고서는 사람의 말로 인사하지 말 것.
山은 산(生)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함.

세상을 멀리하기 위해서 사람과 헤어지기 위해서
山을 찾는 것이니까 山에 와서 세상 얘기를 해서는 안 됨.
가장 높은 정상에 오른 것은 사람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임.
그럴수록 하느님 곁에 가까워지는 것.
그럴수록 삶을 가볍게 버릴 수 있음.

山行은 흙이 되는 연습임. 山을 보면 언제나
죽는 시늉을 해야 됨.
(박철. 山行法)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를 꿈꾸다 

▲ 안나푸르나 베이스 켐프(A.B.C). 새벽 안개가 걷히자 안나푸르나가 그 위용을 드러낸다.

지난 10년 동안 마음에 품고 살았던 산이다. 10년 전 생면부지의 박인호 씨가 보내 준 히말라야 사진을 컴퓨터로 열어 본 순간, 한동안 넋이 나갈 정도로 온몸이 정지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임을 만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 감동을 잊을 수 없어 마음이 헛헛하거나 울적할 때마다 사진을 열어 보곤 했었다. 지금도 내 마음을 빼앗아 갔던 사진 속에 담겨 있는 이미지를, 까무잡잡한 소년의 검은 눈동자, 온갖 잡동사니 짐을 머리로 지고 산을 오르면서도 활짝 웃는 포터의 천진난만한 표정, 히말라야 어느 롯지의 작은 창문에 놓인 붉은 꽃, 안개로 자욱한 아침 관목 사이로 쏟아져 들어온 햇살, 히말라야 산 모롱이에 선 사나이들의 역광으로 비친 실루엣 등을 반추하곤 했다.

보급형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수백 장의 사진을 전쟁터에 나선 병사가 고향에 두고 온 애인을 연모하는 심정으로 나는 사진을 열어 보곤 했었다. 그로부터 10년 지난 후, 내게 메일로 사진을 보내 준 박인호 씨라는 분이 지난해 페이스 북을 통해서 서울에서 치과 병원을 운영하는 치과 의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지금도 페이스 북으로 서로의 생각을 소통하고 있다.

그때 40대 중반이었던 나는 이제 50대 중반이 되었다. 그리고 10년 전 히말라야에 매료되었던 내가 드디어 직접 그곳으로 되었다. 틈틈이 일정표를 보며 내가 지고 갈 짐을 꾸리고 있다. 내가 어떤 심정으로 이번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는 아내는 자기 일처럼 나서서 적극적으로 산행에 필요한 물품을 사는 일에 동행해 주고 격려해 준다.

사실 이번 트레킹에 아내도 동반하는 것으로 계획했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상 아내는 남기로 했다. 아내한테 미안한 마음은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아내에게 또 빚을 지고 말았다.

오늘 밤 11시 30분 노포동에서 인천공항까지 리무진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장시간 버스를 타고 갈 것을 생각하면 미리 잠을 자 두어야 하는데 잠이 오질 않아 펜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다.

이번 히말라야 트레킹은 안식년 휴가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내게 여행 기회를 주신 교우들과 여행 경비 일체를 마련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하는 일에 비해 과분한 사랑을 받고 살아간다. 공짜 밥을 먹고 사는 주제에 10년 동안 꿈꾸어 왔던 히말라야 트레킹까지 보내 주시니 나는 복 받은 사람임이 틀림없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향하여 나는 오늘 밤 떠난다. 15년 전 나의 첫 시집에 나오는 '어느 자유인의 고백'을 읊조리며 나는 길을 나선다. 10년 동안 짝사랑을 청산하고 나는 드디어 히말라야에 말을 걸 것이다. 과연 히말라야는 내게 무어라고 대답해 줄는지 기대가 된다. 틈틈이 연애편지를 적듯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나마스테!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여! 지난 10년 동안 나의 연모를 어여삐 여겨 주시길, 그리고 받아 주시길 간청하오.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

9월 17일 밤 10시, 이종욱 집사가 승합차로 동부터미널까지 태워 주러 왔다. 짐을 줄인다고 했는데 카코백이 20킬로이고 배낭까지 멨으니, 이 짐을 들고 히말라야까지 갔다 올 수 있을까. 무게가 만만치 않다. 늦은 시간이라 길이 한산해서 그런지 30분 만에 동부터미널까지 도착했다. 인천공항을 가는 차 시간은 11시 30분이다. 아내와 이종욱 집사는 내가 심심할까 봐 가라고 해도 안 가고 30분 넘게 기다려 주다 밤 11시가 넘어서 헤어졌다. 고마운 두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11시 30분 정각, 버스가 움직이다. 눈을 붙여 볼 요량으로 마인드컨트롤을 해도 정신은 점점 또렷해져서 잠자는 것을 포기하고 묵상기도를 하기로 했다. 버스는 어둠을 뚫고 질주한다. 이번 히말라야 트레킹에 붙잡은 화두는 '경청(敬聽)'이다. 경청을 나는 '조용한 사랑'이라 부르고 싶다. 오종택 형제로부터 문자가 와 있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목사님, 이번 산행으로 말미암아 목사님이 뜻하시는 바를 품고 오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절대 고독의 경지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 뜻을 품고 오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어느 곳에 계시든지 주님의 보살핌이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리무진 버스가 넓고 쾌적해서인지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새벽 4시 30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아침 6시 30분 가이드와 만나기로 되어 있어 시간도 보낼 겸 공항 지하 사우나에 들어갔다. 그런데 요금이 2만 원이다. 왜 그리 비싸냐고 했더니 짐 보관비를 포함한 가격이라고 한다. 그래도 잠깐 쉬고 가는 것치고 너무 비싸지 않은가.

잠시 샤워를 하고 수면실에 들어갔는데 웬 사람이 그리 많은지 간신히 자리를 잡고 누웠는데 코 고는 소리로 진동한다. 억지로 눈을 감았다. 피곤이 몰려온다. 한 시간 가까이 숙면을 하고 일어났더니 몸이 개운하다.

아침 6시 30분, 가이드와 이번 트레킹에 함께 길을 걷게 될 일행 12분들과 처음으로 만났다. 조금 서먹서먹했다.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짐을 부치고 스낵 코너에서 아메리카 커피를 설탕을 넣지 않고 마셨다. 지독하게 썼다. 아침 햇살이 강렬하게 비친다. 지금 17번 탑승구 앞에서 이 글을 적는다. 비행기 시간은 아침 8시 10분이다. 오랜만에 아무런 구속 없이 한적한 시간을 보낸다. 깊어 가는 가을 이런 호사(好事)를 나 혼자 누려도 되는지 모르겠다.
    
대기실 실내는 아침 햇살로 눈부시지만 모든 게 부드럽다. 사람들 표정도 화사하다. 일정표와 지도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곧 비행기가 히말라야 카트만두를 향하여 드디어 이륙했다. 잠시 후 기내식으로 아침이 나왔다. 나는 소고기 볶음을 먹었는데 고기 질도 연하고 먹을 만했다. 순두부에 고추장을 비벼 먹었는데 맛이 환상적이었다.

잠깐 눈을 붙이고 경향신문 시론 김호기 교수의 '신자유주의의 황혼'이라는 칼럼을 읽었다. 나는 황혼이라는 말을 절망이란 말로 대치하고 싶다. MB가 미국에 건너가서 미 의회에서 연설한 것이 생각났다. 스무 번 넘게 박수를 받았다지. 그런 굴종과 굴욕이 있었을까? MB는 도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이란 말인가? MB의 연설은 미국에 대한 항복 선언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MB는 방미에 대한 후속 조치로, 한미 FTA를 10월 안에 비준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 FTA는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주목하여 긍휼히 여기시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큰 고통을 주기 때문에, 나는 목사로서 기독교인으로서 반대한다. MB 정부와 미국 오바마 정부는 모두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한미 FTA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한미 FTA는 모든 국민의 경제 살리기가 아니라, 소수 기득권층을 위해, 다수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 죽이기임을 직시해야 한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의 정신은 사회적 약자들을 중시한다. 그런데 한미 FTA는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반(反)복음적인 협정이다.

황혼에 신새벽으로 가는 길이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폭주하는 신자유주의이다. 금융 자본이라는 기관차를 당장 저지하지 않고서는 인간다운 삶도 지속 가능한 사회도 모두 불가능한 사실이다.

▲ 비행기 창으로 히말라야 산 봉우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인천공항에서 네팔 카트만두까지 비행기 시간이 꼬박 6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방금 승무원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렇게 답한다. 나는 한 4시간쯤 거리는 줄 알았다. 그리고 시차는 3시간 15분이란다. 장장 6시 30분 동안 꼼짝 못 하고 있자니 좀이 쑤신다.

오후 3시 30분 비행기 창으로 구름 사이 히말라야 봉우리들이 나타났다. 에베레스트, K2, 칸첸중가, 로체, 마칼루, 초오유, 다울라기리봉, 마나슬루, 낭가파르바트, 안나푸르나 등이 차례로 보이기 시작했다. 늘 영상으로만 보던 산봉우리를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된 것이다. 매우 신기했다.

오후 4시, 비행기가 곧 착륙할 것이라고 기내 방송이 나온다. 안전벨트를 맸다. 드디어 네팔 땅을 밟게 될 것이다. 흥분된다. 비행기는 가을 햇살처럼 카트만두 공항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히말라야 트레킹이 시작된 것이다.
    
'경청'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 아니 온몸을 기울여 그분에게 다가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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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네팔어: अन्नपूर्णा, 영어: Annapurna)는 히말라야 중부에 줄지어 선 고봉이다. 길이가 무려 55km에 달하고, 최고봉인 안나푸르나 제1봉은 높이가 8,091m로 8,000m 이상의 고산을 의미하는 14좌의 하나이다. 서쪽에서부터 최고봉인 안나푸르나 제1봉, 안나푸르나 제3봉(7,555m), 안나푸르나 제4봉(7,525m), 안나푸르나 제2봉(7,937m), 강가푸르나(7,455m)가 연이어 서 있고, 안나푸르나 제3봉의 남쪽에서 갈라져 나온 끝에 마차푸차레가 있다. 안나푸르나는 산스크리트어로 '수확의 여신'이라는 뜻이 있다.

안나 쿤힐 트레킹, 네팔 히말라야의 여러 트레킹 코스 중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코스로 꼽히는 것이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일 것이다. 트레커들이 가장 많이 찾기 때문에 숙박 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고 다른 편의 시설(전화나 은행 등)도 곳곳에 있어 트레킹하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반면에 외국 트레커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상술이 발달하여 현지인들의 순수성이 의심되기도 하는 면이 있다. 트레킹의 가장 좋은 시기는 10월에서 11월이 좋고, 12월에서 3~4월까지도 트레킹이 가능하지만 눈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

트레킹 퍼미션(Trekking Permission)은 출발 전에 카트만두의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꼭 받아야 하며, 돈은 루피를 작은 단위로 환전해서 들고 가야 사용하기 편리하다. 간단한 간식류는 준비하는 것이 좋으나 버너나 코펠, 야영 장비 등은 짐만 될 뿐이다. 곳곳에 있는 티하우스(tea house)나 로지(Lodge)에서 사 먹고 숙박하면서 보내는 것이 경제적이다. 의류는 여름에서 겨울 산행에 필요한 의류까지 준비해야 하며 따뜻한 침낭은 필수적이다. 선글라스, 선 블록용 크림 등도 준비해야 한다.

▲ 도반 롯지(2600m)

라운드 트레킹을 할 때는 해발 5,000m대의 고개를 넘어야 하므로 고산증에 대비한 의약품을 준비해야 한다. 아스피린이나 타이레놀(Aspirin or Tylenol, 그러나 평소 위궤양이나 출혈이 잘되는 사람은 금기), 다이아목스(Diamox), (Dexametazone(덱사메타존) 같은 약이 잘 듣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거리 트레킹인 만큼 관절통을 대비한 준비도 필요하다. 압박붕대, 파스, 멘소레담로숀 등.

롯지: 산속에 머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설물이다. 간단한 취사나 잠자리를 제공해 준다. 2인 1실, 3인 1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난방 시설은 없다. 화장실은 공중 화장실인데 휴지가 없고 물통이 있다. 볼일을 보고 물통에 담긴 물로 손을 씻고 그 물로 대소변 흔적을 처리한다.

나마스테: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어서 오세요, 건강하세요, 행복해지세요, 다시 만나요' 등 넓은 의미로 쓰이고 있는 네팔 말이다. 만나고 헤어질 때 두루 쓰이는 말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아름다운 다리를 놓는 소통의 시작이 그 말에서 비롯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