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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 이야기 (내려놓음)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허종  |  paulhu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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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8월 17일 (수) 13:11:18
최종편집 : 2011년 08월 17일 (수) 16:34:29 [조회수 : 2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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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성우는 척추에 마비가 와서 걷지를 못한다.

목발을 짚고 다니다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이제는 걷지도 일어서지도 못한다.

성우의 몸을 보면 '어떻게 저런 몸으로 생활할 수 있을까?' 반문하게 된다.

신부전증으로 매주 투석을 하는 일이 더 힘들어졌다.

 

성우에게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었다.

그러자 성우는 '아무 생각없이 지내고 있어요.'라고 대답을 했다.

성우는 화가다.

30년 넘게 재활원에서 살면서 그는 그림을 그리기를 쉬지 않았다.

장애인미술대전에 출품을 하고 입선 특선 우수상등 여러번 수상을 하였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개인전도 열었었다.

그런데 성우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려하지 않았다.

재활원 숙소를 재건축하면서 성우의 화실이 없어지게 되었고

척추 마비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투석을 하는 날이면 목욕을 해야 하는데 혼자 목욕을 못하니

투석을 함께 하는 동료인 봉규가 몸을 씻겨 준다고 했다.

옷을 입는데 20분이 걸린다고 했다.

효자손으로 옷을 걸고 힘겼게 옷을 입고 있었다.

화장실에 갔다가 쓰러졌는데 일어설 수 없어서

사람이 올 때까지 30분을 화장실에서 누워있었다고 했다.

 

성우에게 절망적일 때가 수없이 있었다고 했다.

투석을 하기 위해 수술을 하고 병원에 한달 동안 입원하고 퇴원하는 날

어머니에게 집에 가서 며칠 쉬고 싶다고 전화를 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성우 어머니가 마구 화를 내셨다고 했다.

 

성우 남동생도 성우와 똑같은 병을 앓고 있다.

성우 어머니는 성우를 재활원에 보내고 동생을 돌보고 있었다.

나는 성우가 처음 재활원에 왔을 때 고아인즐 알았다.

가족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아무도 성우를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나서야 성우에게 어머니와 남동생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재활원에 와서 성우는 언챙이 수술을 받았다.)

성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찾아오시지도 않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을까?

그런데 전화를 했다가 어머니에게 심한 말로 거절을 당했던 것이다.

그 때가 가장 고통스러웠었다고 성우는 웃으면서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라 보였다.

성우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죽을 수도 살 수도 없어 그냥 살고 있었다.

하루종일 누워있다가 저녁을 먹고 동암역에 나가서

한 두 시간 정도 역을 배회하다가 오는 것이 생활의 전부라고 했다.

작년에 세례를 받고 교회를 다녔는데 이제는 교회도 가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성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잘 지내라'는 말을 하고 순천으로 내려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성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다.

인천에 가서 성우를 보러 재활원에 갔다.

보통 숙소에 누워있었는데 성우가 숙소에 없었다.

수소문해 보니 성우가 8월이면 없어질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동안 자신에게 도음을 주신 분들에게 선물하려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손을 움직이기 힘들어 아주 조금씩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성우가 평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다 내려놓으니 마음이 평안해 졌어요."

투석하는 동료들이 10년이 넘도록 투석을 하면서

성우처럼 평안한 얼굴을 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단다.

'척추에 마비가 오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는데 마음에 있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평안해 지더라구요' 성우가 환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성우의 '다 내려놓았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화실이 없어지면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기 때문에

힘은 들지만 그림을 그리러 화실에 왔다고 했다.

성우와 승원이 백내장 수술을 하는 문제를 의논하고

성우와 함께 간호사를 만나 승원이 눈 상태를 물어 보았다.

(승원이 백내장 수술을 위해 후원하겠다는 분이 계셔서 성우와 의논을 한 것이다.)

 

목욕을 하지 않으면 몸에서 냄새가 나서 교회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성우는 투석하는 날만 목욕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간곡한 말로 그래도 교회에 가라고 했다.

사랑은 먼저 하는 것이니 누가 찾아오지 않아도 먼저 교회를 가야한다고 했다.

그러자 성우가 주일 아침에 목욕을 할 수 있으면 교회에 가겠다고 했다.

 

나는 성우를 보면서 <내려놓는다>는 말의 뜻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성우와 함께 기도하고 헤어졌다.

 

나는 요즈음 내가 얼마나 무능력한가를 실감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성우를 보면서 그 이유는 <내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나는 다 내려놓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기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리고 누군가를 먼저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리고 성우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이제 성우는 척추에 마비가 와서 걷지를 못한다.

목발을 짚고 다니다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이제는 걷지도 일어서지도 못한다.

성우의 몸을 보면 '어떻게 저런 몸으로 생활할 수 있을까?' 반문하게 된다.

신부전증으로 매주 투석을 하는 일이 더 힘들어졌다.

 

성우에게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었다.

그러자 성우는 '아무 생각없이 지내고 있어요.'라고 대답을 했다.

성우는 화가다.

30년 넘게 재활원에서 살면서 그는 그림을 그리기를 쉬지 않았다.

장애인미술대전에 출품을 하고 입선 특선 우수상등 여러번 수상을 하였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개인전도 열었었다.

그런데 성우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려하지 않았다.

재활원 숙소를 재건축하면서 성우의 화실이 없어지게 되었고

척추 마비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투석을 하는 날이면 목욕을 해야 하는데 혼자 목욕을 못하니

투석을 함께 하는 동료인 봉규가 몸을 씻겨 준다고 했다.

옷을 입는데 20분이 걸린다고 했다.

효자손으로 옷을 걸고 힘겼게 옷을 입고 있었다.

화장실에 갔다가 쓰러졌는데 일어설 수 없어서

사람이 올 때까지 30분을 화장실에서 누워있었다고 했다.

 

성우에게 절망적일 때가 수없이 있었다고 했다.

투석을 하기 위해 수술을 하고 병원에 한달 동안 입원하고 퇴원하는 날

어머니에게 집에 가서 며칠 쉬고 싶다고 전화를 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성우 어머니가 마구 화를 내셨다고 했다.

 

성우 남동생도 성우와 똑같은 병을 앓고 있다.

성우 어머니는 성우를 재활원에 보내고 동생을 돌보고 있었다.

나는 성우가 처음 재활원에 왔을 때 고아인즐 알았다.

가족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아무도 성우를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에서야 성우에게 어머니와 남동생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재활원에 와서 성우는 언챙이 수술을 받았다.)

성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찾아오시지도 않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을까?

그런데 전화를 했다가 어머니에게 심한 말로 거절을 당했던 것이다.

그 때가 가장 고통스러웠었다고 성우는 웃으면서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라 보였다.

성우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죽을 수도 살 수도 없어 그냥 살고 있었다.

하루종일 누워있다가 저녁을 먹고 동암역에 나가서

한 두 시간 정도 역을 배회하다가 오는 것이 생활의 전부라고 했다.

작년에 세례를 받고 교회를 다녔는데 이제는 교회도 가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성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잘 지내라'는 말을 하고 순천으로 내려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성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다.

인천에 가서 성우를 보러 재활원에 갔다.

보통 숙소에 누워있었는데 성우가 숙소에 없었다.

수소문해 보니 성우가 8월이면 없어질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동안 자신에게 도음을 주신 분들에게 선물하려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손을 움직이기 힘들어 아주 조금씩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성우가 평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다 내려놓으니 마음이 평안해 졌어요."

투석하는 동료들이 10년이 넘도록 투석을 하면서

성우처럼 평안한 얼굴을 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단다.

'척추에 마비가 오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는데 마음에 있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평안해 지더라구요' 성우가 환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성우의 '다 내려놓았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화실이 없어지면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기 때문에

힘은 들지만 그림을 그리러 화실에 왔다고 했다.

성우와 승원이 백내장 수술을 하는 문제를 의논하고

성우와 함께 간호사를 만나 승원이 눈 상태를 물어 보았다.

(승원이 백내장 수술을 위해 후원하겠다는 분이 계셔서 성우와 의논을 한 것이다.)

 

목욕을 하지 않으면 몸에서 냄새가 나서 교회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성우는 투석하는 날만 목욕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간곡한 말로 그래도 교회에 가라고 했다.

사랑은 먼저 하는 것이니 누가 찾아오지 않아도 먼저 교회를 가야한다고 했다.

그러자 성우가 주일 아침에 목욕을 할 수 있으면 교회에 가겠다고 했다.

 

나는 성우를 보면서 <내려놓는다>는 말의 뜻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성우와 함께 기도하고 헤어졌다.

 

나는 요즈음 내가 얼마나 무능력한가를 실감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성우를 보면서 그 이유는 <내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나는 다 내려놓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기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리고 누군가를 먼저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리고 성우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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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205.29.125)
2011-08-17 19:59:13
감사합니다. 이 말밖에 할말이 없군요.
리플달기
5 2
리을 (92.151.226.168)
2011-08-18 06:19:20
내려놓음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리플달기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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