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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活(부활)의 正餐(정찬)come and dine(와서 저녁을 들라.) - 요한복음 21장 12절
이일배  |  6_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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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2월 13일 (월) 00:00:00 [조회수 : 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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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당뉴스에 가장 많은 기사를 기고하는 분 중의 한 분인 이일배선생은, 오래전부터 킹제임스성경을 직접 번역(私譯)하고 있다. 거의 다되었단다. (편집자 註)
<세번째 나타내심>

요한복음 기록에 따르면 주님은 죽은 자로부터 부활하신 후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그 현장이 디베랴 바다입니다. 그 사실이 요한복음 21장 마지막 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친히 두 번째 나타나서는 의심하던 토머스에게 손과 발까지 만져 보게 하심으로, 처음엔 반신반의하다가 그 부활을 받아들인 제자들이었지만,  기쁨도 잠시 뿐이었습니다.  주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주님을 버려두고 도망쳤고, 게다가 피터는 자신만은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음에도 불구하고, 수탉이 세 번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부인한 쓰라린 좌절을 맛 보았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주님을 버리고 떠난 자들이므로, 과거사의 청산이 끝나지 않은 상태인지라 매우 어정쩡하고 불안한 상태입니다.

11명의 제자들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리더였던 피터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고기잡이하러 갑니다.” 이 말로 위신을 상실한 피터의 의기소침한 마음가짐을 드러냅니다. 고기잡이는 주님을 따르기 전의 생업이므로 삶을 원위치로 돌이키려는 것입니다. 피터는 다른 사람을 이끌만한 지도력을 잃은 처지라, “우리 고기 잡으러 갑시다.”라고 제안하지 못하고, “나는 고기 잡으러 간다.”고 그의 개인적인 바람만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자기를 따라오든 안 따라오든 상관이 없었습니다. 딱히 대안이 없던 다른 제자들도, 그의 고기잡이 아이디어에 솔깃해서 선뜻 따라 나섭니다. 목표의 상실, 리더쉽의 부재를 보여 줍니다.

주님의 부활을 두 번이나 목격했어도, 그들에게는 그 놀라운 사실을 전할 힘도, 의욕도, 동기부여도 받지 못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하시기 전에는 그들은 나약한 존재였습니다. 복음적인 사실을 알고 개인적으로 믿는 것만으로는 주님에게 쓰일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한 때 주님을 잘 믿고 따른 경력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현재 주님 안에 거하지 않고  주님과 떨어진 상태이므로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 가지처럼 되고 말았습니다(요한복음 15장 5절).

그 날 피터를 따라나선 여섯 명의 제자들은 전직 어부였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당시에 유태인들을 두려워하여 한동안 숨어 지냈습니다. 오랫동안 갑갑하기도 하고, 무료함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호구지책으로 고기잡이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고기잡이 하러 간 그 시각은 기록에는 없으나, 한낮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을 것이므로, 정황상 저녁 무렵이거나 밤중일 듯 합니다.  

<고기잡이, 실패의 교훈>

여러분에게 친숙한 개역한글로 먼저 이 부분을 읽어 보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그들은 과거의 기술을 살려 밤새 물고기를 잡으려고 애썼지만, 날이 샐 때까지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여기서 개역한글은 다른 데서는 meat를 ‘식물’로 번역했으면서, 이 구절에서는 생뚱맞게 ‘고기’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리하여 먹을 것이 아닌, 물고기를 잡지 못한 데로 시선을 돌리게 합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 처음 피터를 부르셨을 때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그 때도 피터는 밤새 헛 그물질을 하고는, 생전 고기잡이를 해 본 적 없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물을 내린 결과 그때도 많은 물고기를 잡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가 무릎을 꿇고 주님에게 자신이 죄 많은 사람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때 주님은 친히 만물을 아시고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이십니다. 피터는 일찍이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보다 주님의 말씀의 위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실제로 모든 것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주님을 전벅으로 따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말씀에 대한 그의 확신은 남달라서 주님에게 실망한 많은 수의 제자들이 주님을 버려두고 떠날 때도, 그는 영생의 말씀이 주님에게 있으므로 떠날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나만은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는 자신감, 자신은 다른 어느 제자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한다는 자만심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것 같습니다.(요한복음 6장 68절, 참고 성구 참조).

새벽에 주님이 디베랴 해안에 다시 나타셨을 때,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른 새벽, 날이 샌 아침입니다. 한 때의 베테랑 어부들이 밤새 한 마리도 못 잡고 허탈해졌을 때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일이 안 풀릴 때가 있는 법이지만, 그 상황은 주님이 연출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미리 준비하신 음식>

‘Then Jesus saith unto them, Children, have ye any meat? They answered him, No.’
(AV; 아이들아, 너희에게 어떤 음식이 있느냐? 그들이 그분에게 대답했다, 아니요.)

다시 말하자면, 한글개역에서는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meat'가 사전에서는 살코기의 의미도 있지만, ‘먹을 것’을 뜻하는 飮食(음식)을 말해 줍니다. 주님이 그들에게 너희가 무슨 ‘물고기’라도 잡아,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 보신 것이 이니고,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이, 배 안에 먹을 것이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를 여쭤 보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9, 30절(참고성구 참조)에 따르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飮食(음식)으로 주신 것은, 씨 맺는 채소와 씨 맺는 과일, 각종 날짐승과 동물입니다. 따라서, 음식은 채식과 육식 모두를 망라하지만, 성경 용어에서 meat의 용례는 포괄적인 음식을 말합니다. 예로써, 고린도 교회에서 우상에게 받쳐진 음식을 먹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고전 8장 13절에서 meat와 flesh(肉, 살코기)를 구분하신 것으로 명백해집니다. (참고 성구 참조)

주님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면 물고기를 얻으리라고 하셨고, 그대로 그들이 던졌더니,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그 때, 눈치 빠른 죤이 그분이 주님이심을 알아보고, 사이먼 피터는 옷을 걸쳐 입고 물속으로 뛰어듭니다. 육지에 올라와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생선이 놓이고, 빵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은 그들이 엊저녁 일하러 갈 때부터 저녁도 먹지 못한 채 밤새 고기잡이를 한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허기를 채워 주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피터나 제자들의 과거 문제를 청산하시는 일보다, 그들에게 새로운 임무를 맡기시는 일보다 앞서, 그들에게 육체의 굶주림을 먼저 채워 주시려고 하십니다. 혈육을 지닌 사람에게는 인간에게 필요한 의식주 중에서도 먹을 것이 가장장 시급함을 창조주이신 예수님은 잘 아십니다. 먹을 것을 미리 마련해 놓으시고, 그들을 찾아오시고, 그들을 그분의 정찬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음을 아시면서도, 말씀부터 먹이지 않으시고, 허기진 배 먼저 채워 주시려는 인정 많으신 분입니다. 사람을 혼낼 때도 밥을 먼저 먹이는 것이 사람의 정입니다. 주님은  의식주 문제보다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추구하라고 우선순위를 가르치셨지만(마태복음 6장 33절), 길잃은 양처럼 목자를 잃고 목표와 방황 감각마저 상실한 그 제자들에게는, 아무 말씀 없이 먹을 것을 제공해 주시고, 어제 먹지 못한 그 저녁을 들라고 권하십니다.

<와서 저녁을 들라>

예수님이 지금 잡은 생선을 가져오라 하셨습니다. 피터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려 놓고 세어 보니 그물에 가득 찬 큰 물고기가 일백 쉰 세 마리였습니다. 그 수가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로 피터의 이름을 나타내는 수라고도 말합니다. 나는 그것이 피터에게 자신의 과오를 확연히 깨닫게 할만한 메시지라고 봅니다. 굳이 피터더러 그것을 가져오게 하시고, 그 수를 정확히 153마리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피터에게 뭔가를 암시하신 게 명백히 드러납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이 하신 말씀이 개역한글에는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그 때가 날이 새기 시작할 때요, 아침이 분명합니다. 누가 읽어도 그 식사가 조반(朝飯)조반이요, 아침식사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 이성의 눈으로 볼 때는 정말 그러 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세상에서 단 한 권의 성경 외에는 거의 모든 번역본들이 한글개역과 일치합니다(참고 성구 참조). 그런데 주님은 왜, 분명히 때가 아침인데도, ‘와서 저녁을 들라’고 하셨을까요? 혹시 예수님이 때도 분간하지 못하시는 분이라서, 잘못 말씀하셨나요? 아니면 죤이 오기(誤記)했을까요? 그러나 그는 요한복음 20장에서 여러 번 자기 기록이 참이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대학자들이던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이 무식해서 그 단어를 오역했을까요?
  
AV - 12 Jesus saith unto them, Come and dine.

‘dine’은 dinner의 동사형입니다. 식사하다로 번역하는 것은 맹탕과 같습니다. 서양에서는 디너가 오후 2~3시에 먹는 午餐(오찬) 또는 正餐(정찬)입니다. 물고기와 빵뿐인 조촐한 식사였지만, 그것은 주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손수 베푸신 정찬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정찬으로 초대하신 것입니다. 정찬 또는 오찬을 먹는 시간은 최대한 저녁 6시입니다. 따라서 성서에서 만찬(supper)도 있고, ‘저녁을 먹다’는 단어 sup(계 3:20)이 있으므로, 이 'dine'을 ‘저녁을 들라’고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다음의 구절도 그들이 주님이 마련하신 저녁 식사, 곧 아침에 먹은 그 저녁을 먹고 나서의 기록입니다. 시간은 그 날 아침이고 장소도 여전히 그 디베랴 바닷가입니다. 어제 먹지 못한 그 저녁을 주님이 손수 챙겨 주시고 나서, 비로소 피터에게 민감한 주제를 꺼내셨습니다. 주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그가 세 번 주님을 부인한 것에 대해 직면입니다.

“죠너스의 아들 싸이먼아, 네가 이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So when they had dined, Jesus saith to Simon Peter, Simon, son of Jonas, lovest thou me more than these? He saith unto him, Yea, Lord; thou knowest that I love thee. He saith unto him, Feed my lambs.

그 아침의 사건에서 일관하는 주제와 소재는 음식입니다. 피터가 돌이키고 자신의 삶을 정리한 후에 그가 할 일을 주님이 명령하셨습니다. 세 번 모두 일관되게 먹거나 먹이는 일입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온 하나님의 어린양들과 양들을 먹이는 그 일이 피터에게 부과하신 새로운 사명이었습니다. 그에게 목자의 새로운 직무를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 5장에 보면 장로와 목자로서의 그의 역할이 잘 드러납니다. 복음서에서 주님의 全知(전지)하심을 처음 경험했을 때는, 그가 주님을 따르면 사람을 붙잡는 어부가 될 것이라고 하셨지만, 두 번째 그를 깨우치셨을 때는 양들에게 꼴을 주고 먹일 것을 거듭 명령하셨습니다.

심지어는 킹제임스 성경에서 번역한 서너 종의 한글 번역본들조차, 한결같이 12절의 ‘dine'을  애매하게 ’식사하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땅에 바른 성경 보기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말씀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보여 줍니다. 그들이 음식(meat)은 제대로 먹을 것이라고 옮겼지만, dine(저녁을 들라)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자, 대충 옮긴 것 같습니다.

   <무오류한 말씀>

주님은 자신의 수난 후 오류 없는 증거로 친히 그 몸이 다시 부활하신 사실을 간증하셨습니다. 다들 이 대목에 대해서만큼은 수많은 성경교사들과 설교자들의 단골 메뉴이므로, 통달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또 자신이 이해한 것이 옳을 거라고 믿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나 지식보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복종해야 합니다.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으로 하나님에게 한 수 훈수를 주려거나, 하나님의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을 생각을 하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이미 하나님보다 똑똑한 분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성서는 완전합니다. 나는 무식하지만, 내 상식이나 지식으로 감히 주님을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또 그 말씀을 내 이성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주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고 싶습니다. 미심쩍어도 말씀대로 그물을 내린 그 갤릴리의 전직 어부들처럼 말입니다. 언제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넘어지고 일어나도 또다시 실패를 반복하는 피터보다 나는 더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러니 나도  “주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오니, 내 어리석음, 연악함, 나의 불순종과 죄 많음도 아십니다. 그러면서도 외람되이 저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라고 주님께 그와 비슷한 고백을 하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참고 성구>

1.요한복음 12장 21절

NASV
Jesus *said to them, "Come [and] have breakfast."

NIV
Jesus said to them, "Come and have breakfast."

공동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들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표준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개역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일어 신개역
イエス は 彼らに 言われた. 「さあ 來て, 朝の 食事をしなさい. 」

번체 중문성경  
耶稣说,你们来吃早饭。


2. 요한복음 6장 68절

AV - Then Simon Peter answered him, Lord, to whom shall we go? thou hast the words of eternal life.

개역한글 -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3. 창세기 1장 29, 30절

AV - And God said, Behold, I have given you every herb bearing seed, which is upon the face of all the earth, and every tree, in the which is the fruit of a tree yielding seed; to you it shall be for meat.
And to every beast of the earth, and to every fowl of the air, and to every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wherein there is life, I have given every green herb for meat: and it was so.

개역한글 -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4. 고린도전서 8 장 13절

AV - Wherefore, if meat make my brother to offend, I will eat no flesh while the world standeth, lest I make my brother to offend.

개역한글 -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2006-02-13
화율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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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배 (210.103.56.65)
2006-02-15 10:10:10
편집자님께...
감사합니다만, '거의 다 되었단다.'는 해설은 지워 주시길 바랍니다. 일찌기 초역은 마쳤지만, 용어통일 작업을 마치려면 혼자하기엔 나무 방대하고, 벅찬 일이라 몇 십년이 더 걸릴지,가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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