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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간에 다 주어라
김영동  |  deom-past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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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8월 02일 (화) 01:33:49
최종편집 : 2011년 08월 02일 (화) 01:37:21 [조회수 : 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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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주시는 생명



그러므로 이제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결코 단죄 받는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 :1∼2 공동번역 성경에서)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선 공식을 이해하고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공식을 외워야만 합니다. 구구단도 그런 편리한 곱셈 공식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네 삶의 문제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공식처럼 이해하고 알아야 하며, 모든 문을 지키는 초병의 날카로운 외침에 즉답을 해야 할 그날의 암호처럼 외워야 합니다. 모른 체 얼버무리며 통과해 갈 수는 없습니다.

통과해 갈 수 없으니 인생의 문밖에서 맴돌 듯 고뇌하고 번민하면서 모르는 척, 아닌 척하며 먹고 사는 일만이 다인 것처럼 서로 <부자되세요!> 덕담을 나누며 육체의 일에만 전념합니다. 그러다 돌연한 죽음, 죄와 죽음의 법이 덮치면 우리는 대책없는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삶의 자리에서 정신의 법과 육체의 법 사이에서 고뇌하는 사도바울은 우리를 대신하여 머리를 움켜잡고 울부짖습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줄 것입니까?


로마서 7 :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도바울, 주님을 만난 체험인 그 첫사랑으로 살게 된 사도바울, 율법으로 단련된 잘못된 육체의 습관으로 고뇌하던 바울은 마침내 정신과 육체가 하나 된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솟구쳐 나오는 고백을 토해 놓습니다.

고맙게도 하느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해 주십니다. 나는 과연 이성(정신)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따르지만 육체(감성으)로는 죄의 법을 따르는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결코 단죄 받는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7 : 25 ∼ 8 : 2)



벗님,

우리가 오늘 외워둬야 할 공식의 한 말씀은 예수와 함께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입니다. 그 공식을 적용하는 실제 생활은 앞으로 차차 익혀갈 것이지만 이 한 귀절 공식을 외우지 않으면 암호를 모르고 깊은 밤에 부대로 복귀하는 어리석은 병사와 같을 것입니다. 마냥 게긴다고 뭉겐다고 될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예수와 함께 생명을 누리는 성령의 법으로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제발 믿어지고 이 한 말씀을 외워두시길 축원합니다.

어느 선배 목사님이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교사로 첫 출근을 준비하는 젊은 성도에게 당부하였습니다.

“첫 시간에 다 주세요. 그리고 다 준 그걸 매일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풀어가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그리고 또한 오늘 내가 벗님들에게 다 주는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외운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생명을 누리는 성령의 법입니다 우리들만의 암호입니다. 이해가 되셨습니까? 그러면 이제 시인의 시 한편을 선물로 드립니다.

첫 시간에 다 준다는 말이 진실로 무슨 힘을 가진 말인지 뼈저리게 공감하며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 시인이 왜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을 내며 독재권력에 항거하는 저항시인이 되었는지 공감하게 되실 것입니다. '길을 잃거든 네 목을 치라'는 그 처절할 정도로 치열한 가르침이 아닌, 길을 잃었으면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생명을 누리는 성령의 법을 외우고 익히라는 오늘 우리의 가르침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매일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나아가시길 축원합니다.

덤 목사

 

 

 

길을 잃거든 네 목을 쳐라

 

박   노   해

 

내 인생에 유일했던 사교육 경험은

일곱 살 때 보리 한말 주고 다닌 서당 석 달

 

흰 수염에 검은 갓을 쓴 서당 선생은

첫날 무릎을 꿇어앉은 나에게 이름을 물으셨다

 

박기평입니다

 

터 基자에 평화 平자라

평화의 기틀이라

 

사람의 이름이 뭔 줄 아느냐?

 

………

 

이름은 너를 일으켜냄이고

이름은 네가 이르러야 할 길이니라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예, 터 基 평화 平, 평화의 터를 이루는 길입니다

 

서당 선생은 동그란 안경 너머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계셨다

 

그럼 길이 뭔 줄 아느냐?

길은 道, 보아라

 

선생은 먹을 갈고 붓을 들어

비료 푸대를 잘라 실로 꿴 공책 위에

글씨를 쓰셨다

 

길 道는 머리 首를 베어

창으로 꿰들고 열어가는 것이다

辶(천천히 뛰어넘어)

그러니 길은 무섭고도 잔인한 것이란다

일본 놈들이 여기까지 신작로를 열 때

얼마나 많은 사람과 나무와 생명의 목을 베었겠느냐

 

어린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길 道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너는 네 이름대로 평화의 터를 이루는 길을

어떻게 열어 가야 하느냐?

 

평화를 해치는 나쁜 사람들 목을 쳐야 하나요?

 

기평아

 

 

내가 먼저 평화를 이루지 못한 사람은

평화의 세상을 이루어 갈 수 없단다

길을 잃거든 네 빳빳한 목을 쳐라

그러면 평화다

 

어린 나는 온몸을 떨었다

 

내 나이 일곱 살 때 석 달 동안 배운 천자문

그보다 천배는 소중한 첫날의 가르침은

내가 길을 잃을 때마다 길이 되었으니

 

감옥에서 한 시대의 종언을 들으며

나는 침묵 삭발 절필로 내 굳은 목을 쳤고

자유의 몸이 되어 길을 잃고 길을 찾아 분투하면서

긴 침묵 정진으로 유명해진 내 이름 석 자의 목을 치고

국경 너머 전쟁터와 기아분쟁 현장으로 떠날 때마다

조용히 유서를 쓰면서 내 목을 쳐왔으니

 

수많은 세월이 지났어도 서당 입문 첫날

길을 잃거든 빳빳해진 네 목을 쳐라!

생생한 그 전율은 아직까지 내 안에 살아 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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