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중공업으로 많은 이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은 아마도 중고등학교에서 다 배웠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조선업, 철강업 등이 짭잘한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 마디로 한국이라는 국가의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산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은 이 기업을 유지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협조해야 할 것이다... 과연 그런가?

한진중공업이 바로 그런 기업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한진중공업은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노동자 200여명을 해고하면서 발생한 파업으로 근 반년 가까이 조업을 못한 것 같다. 기업으로써 이해는 간다. 장기근속자들에게 많은 임금을 지불해야 하지만 청년실업이다 뭐다 해서 젊고 비교적 값싼 노동력이 지천에 널려 있는데 굳이 계속 고용을 해야하는지 살짝 유혹을 받을만 하다. 그래도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국을 조선강국으로 우뚝 서게 한 업적은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간과하는 것이 있다. 조선강국이 되기까지 기업만이 피땀을 흘렸던가, 기업주만 열심히 뛰었던가? 결코 아니다. 노동자 없는 기업 없다. 아무리 뛰어난 군사전략가라 하더라도 숙련된 군인이 없다면 결코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는 것이 기본이다. 마찬가지로 숙련도니 노동자들의 노동이 없었다면 결코 한국이 오늘과 같은 명에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숙련된 노동력과 맞물린 또다른 조건은 값싼 노동력이다. 한국이 개발도상에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값싼 임금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임금을 낮추던가, 아니면 기업이 새로운 전략으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업종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으 기업들은 억지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추는 방안을 선택했고 정부까지 이에 합세했다. 여기에 시기적절한(?) IMF라는 상황까지 겹쳐주었다. 한국의 노동자는 이제 봉이 되었다.

한진중공업이 왜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다. 단지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고 있으며 그로 인해 국가의 기반을 떠받치고 있는 한진중공업의 조업이 무척 오랫동안 중단되었다는 사실만 부각된다. 공권력을 투입하여 파업을 해산할 계획이고 법원도 손해배상 청구와 관련하여 강제로 집행하는 집달리를 파견하였다. 여기까지 보면 모든 것이 과격한 노동자들의 투쟁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다.

오늘 뉴스는 한진중공업의 노조가 파업을 철회하기로 결의하였으나 강성 노조원들의 동의하지 않고 여전히 점거농성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이나 내일 공권력이 투입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트위터 등으로 들려오는 소식을 종합해보면 어용노조가 파업철회를 동의한 것일 뿐이라고 한다. 어느 이야기가 맞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정부와 기업이 아주 큰 실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는 기계 부속품처럼 임의적으로 바꿔 끼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돈이 목적이 될 때 인간은 부속품으로 전락한다. 싼 노동력이 인간을 대체한다. 하나의 제품이 나오기까지 그 안에 담겨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무시된다. 오로지 돈, 돈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된다. 그 결과는 인간 자신의 소외일 뿐이다. 노동자로써의 인간뿐만이 아니라 기업가로써의 인간, 어용노조로써의 인간 모두가 소외된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인간을 포기하고 내팽개칠 때 그 사회는 부패하고 중심을 잃는다. 그러나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스스로를 기계나 돈 따위의 물질로 규정한 존재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야기는 없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고 돈을 따르는 인간은 돈으로 망하는 것이 인생사임을 성서는 이미 간파했다.

이익에 혈안이 되어 사람인 노동자를 내치는 이 사회, 이 기업의 미래는 과연 무엇일까? 그런 틀 안에서 기게 부품 처럼 노동하는 인간들에게 과연 미래가 있을까? 지금 당장은 자본가들의 칭찬을 받고 있는 어용 노조가 역시 그들에 의해서 내쳐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인간으로 대접 받으면서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이 과연 만들어 질 수 있을까? 결코 아니다. 그저 기계들이 고용하고 부속품들이 일하는 집단일 뿐이다.

김진숙이라는 흔한 이름의 한 여성 노동자가 세간의 입에 오르내린다. 알 수도 있으나 알지 못하였던 김진숙이 이제는 누구나 아는 김진숙이 되었다. 김진숙이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할 때는 아마 생명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각오로 올랐을 것이다. 그는 기계부품이 되지 않기 위해 그 곳에 올랐다. 만약 그를 기계로 만들고자 하는 세력이 공권력으로 탄압하게 될 경우 우리는 상상만해도 끔찍한 사고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김진숙은 인간으로 살고자 올라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산화해간 전태일의 연장선에 있다.

국가가 인간을 인간이 아니라 돈으로 대접해서는 안 된다. 한진중공업에 공권력을 투입하여 파업을 강제로 해산하는 것은 국민을 돈, 물질로 대우하는 것이다. 돈의 손을 들어주고 인간을 돈의 힘으로 척압하는 것이나 다름 아니다. 수많은 국민들, 인간인 국민들이 한진중공업 공권력 투입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음을 깨닫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