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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의 사계절1993. 3.10 푸른언덕 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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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2월 07일 (화) 00:00:00 [조회수 :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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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앞바다는 머지 않아 참 좋습니다.
새벽기도 마치고 횡하니 오토바이로 다녀올 거리입니다.
기암 절벽이 우뚝하니 북쪽을 막아서서 없을 곳에 생겨난 항구입니다.
날기운으로 환할 때면 배들이 바다를 가르며 귀선을 합니다. 부-ㅇ

가진교회 장로님 얼굴이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일찍 웬 일이세요?"
"미역 따러 나왔습니다."

작년엔 포구를 조금만 지나도 바위에서 한끼정도야 쉽게 건졌는데
바위를 한참 넘어 갯벌을 지나도 도시 보이지 않습니다.
미끈한 바위가 퍼렇게 싱싱합니다.
파도로 튄 물이 짭짤합니다.

미역은 잘 보이지 않은데 불가사리는 지천입니다.
한 웅큼 뜯어온 미역을 살짝 데쳐 초장에 찍어 먹어보면, 아 ~ 봄입니다.
빈약한 식탁에 아침 반찬으로 건질 것이 있는 바다가 참 좋습니다.

여름

새벽 내내 이어지는 차량 행렬에, 해변에서 밀려 밀려 마을 안까지 피서객들로 가득합니다.
이 거대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이 곳 사람들은 차암 조용합니다.
우리 교이들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새벽기도 때나 예배 때나 얼굴을 봅니다. 자주 전화 나누던 주위 목회자들도 잠잠합니다.
진부령 계곡마다, 해수욕장마다 색색의 텐트로 가득합니다. 이런 것을 인산인해(人山人海)다 한다지요!
지나면서 걱정되는 것은 “계곡에 있는 사람들 용변을 어떻게 해결하려나?”
늘씬한 아가씨들, 멋쟁이 신사들을 보면서 걱정입니다. 거대한 설악산이 몇 오물정도야 분해시키겠지만 부방비한 저들의 수치심을 숨길곳이 없습니다. 한편, 손님은 오라고 하고선 작은 정성조차 준비하지 못한 것같아 미안하기도 합니다.

미시령을 넘어 보았습니까? 아찔한 절경에 탄성이 나옵니다. 하지만 여기저기에 파헤쳐 놓은 호텔, 콘도 공사를 보면서 너무 한다 싶습니다. 눈앞의 이익 때문에 몰염치한 기업들과 고인 돌을 빼 쓰는 당국의 얄팍한 정책이 섭섭합니다. 수십형 콘도보다 텐트 가득한 계곡 간이화장실이 더 급하지 않습니까? “휴지 버리지 말라”는 관료적 계몽보다는 부지런히 일하다 오랜만에 가족끼리 휴가 나온 서민들에 대한 작은 배려가 아쉽습니다.

가을
설악의 단풍은 화사한 원색이 아닙니다. 요골짝, 저 능선 이름 모를 가을님들이 제 색을 피워 온통 갈색입니다. 차를 타고 백담사에서 4km 정도 넘어서면 미시령과 갈라지는 진부령부터 장관입니다. 좁은 계곡을 따라가면 그 놀라운 변모에 넔을 잃습니다.
앞서 기어가던 승용차가 끝내 우리 버스에게 꾸중을 듣습니다. 빵빵! 아마 승용차 기사 양반이 단풍에 취하여 제동을 잃은가 봅니다.
대청봉에서 하루에 50km씩 내려온다는 단풍.
홍천을 잇는 10번 국도는 짙은 소나무 향내로 싱싱해 있는데... 그동안 어디에 숨겨 두었던 갈색이었을까?

겨울

올해 눈이 많이 왔습니다.
며칠을 쉴 사이 없이 내리더니 낭패스런 일도 여럿 보았습니다.
잠시 고성에 왔다가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 채고 급히 상경했는데 결국 대관령 눈 속에 갇혀 2천원짜리(?!)컵라면으로 26시간 만에 집에 들어간 서울 박전도사님.
놀러 내려 왔다가 일주일 꼬박 집에 갇혀 지낸 미정이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올라갔습니다.
교회 올라가는 길을 내기 위해 온 교우가 달려들어 겨우 빠끈한 길을 냈습니다. 적설량 1,40m.
옆교회가 무너지고 우리교회도 석가래 1개, 스레트 5장 깨진 것으로 끝났지만, 아무튼 무진장 내리는 눈은 감동적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내릴까?

이렇게 눈 가운데 서 보면 자꾸 왜소해져서 점으로 남은 느낌입니다.
순식간에 바뀌어 버린 세계 속에서 얼룩 같은 변모가 이 땅에 일어납니다, 죄 많고 추한 세상이 하나님 나라로 순식간에 변모하리란 확신은 어리석을까?

최경철 (대대교회)

* 이기사는 1993. 3.10 푸른언덕 51호에 실렸던 故 최경철목사의 글입니다. 박흥규목사가 제공해 주셨습니다.

* 故 채희동목사가 故 최경철목사를 그리며 쓴 글 중에서 발췌

   

 

 

 

겨울나무 같이 자유한 사람-참으로 아름답고 따스한 기억들


(전략...) 저는 겨울나무처럼 알몸으로 살았던 한 젊은 목회자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는 농부 목사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밖에서 찬바람 맞고 집에 들어오면 언 몸 녹여주는 화롯불 같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벌써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 간지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38년이라는 길지 않는 삶을 살았지만, 그는 우리에게 참으로 아름답고 따스한 기억들만 남기고 떠나갔습니다.

그는 88년 강원도 거진읍 대대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지난 96년 2월 신장암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故 최경철 목사입니다. 그는 그저 평범한 목사 같지만 우리와 같은 보통목사는 아니었습니다. 겨울나무처럼 투명한 알몸으로 온전히 하늘의 삶을 살다가 하나님 품으로 돌아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를 추모하는 추모예배에 참석했었습니다. 그 날 추모예배에는 설교가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대신해 그 사람을 기억하고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그와 1년 동안 동고동락을 했던 산돌교회 조규백 목사가 나와 그를 증언했습니다.
  
"목사님은 목사요, 목수였습니다. 산돌교회에서 요양 중이실 때, 그분은 몸을 한시도 가만있지 않았어요. 이곳저곳에서 나무 조각들을 주어 모아 조그만 책상을 만드셨지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을 방문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입니다. 그 책상 위에 성경책과 좋은 글을 올려놓고 마음의 양식을 쌓으라고 목사님은 정성스레 책상을 만들어 주셨지요. 책상 만드는 모습이 얼마나 진지하고 정성스러운지 마치 도(道)를 닦는 수도승 같았어요. 그 분은 그걸 참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웃 침례교회 사모님은 조금 침울한 분위기를 씻어내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제 마음 속에 이젠 슬픔 같은 건 없어요. 목사님을 생각하면 아쉽다, 슬프다 이런 감정보다는 따스한 아랫목이 생각나고, 그저 내 마음 속에 따스한 아랫목으로 남아 계시거든요. 그리고 그 분은 아주 추운 겨울날 김치독에서 막 퍼 마시는 동치미 국물과 같은 분이예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아랫목처럼 따스하고 너그러우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냉정하고 차가운 분이셨어요. 그래서 그 분은 살아 계실 동안 의롭게 사실 수가 있었던 것 같아요."

산돌교회 주수원 목사님은,

"최경철 목사는 자연주의자요, 한국적 목회자라고 보아요. 고성핵발전소 건립반대운동을 했다고 그래서 그러는 건 아니예요. 그는 정말 자연을 사랑했어요. 이 고성의 아름다운 자연을 말이예요. 그리고 교회를 건축할 때 그는 교회 제단을 조선시대 엽전 모양을 연상케 만들었거든요. 그리고 젊은 사람이 한복 입기를 좋아했지요."

거의 마지막 순서에 이르러 최 목사의 아버지께서 나오셨다. 처음에는 말문을 열지 못하시더니 떠듬떠듬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88년, 그러니까 이곳 강원도 고성으로 아들이 첫 목회를 하러 왔었어요. 부임한지 얼마쯤 뒤에 아들이 목회하는 교회가 어떠한지 애비로서 한 번 보고 싶었어요. 원주에서 이곳 고성까지 오는 길은 참으로 험했지요. 여러 개의 고개를 넘어 한 참만에 대대교회에 와보니 정말 마음이 무겁더군요. 교회는 조그만 시골집 세를 얻어 있었어요. 아들은 그곳에서 숙식을 하고 예배도 드리고, 제가 그 교회에 처음 들어갈 때 고개를 숙이고 허리 굽혀 들어갔어요. 제가 교회에 들어가서 기도하려니 기도가 나오지 않더군요. 아들이 고생하는 것이 꼭 애비가 지은 죄가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더군요. 그래서 아들에게 말했어요.
  
'너 같이 똑똑하고 많이 배우고, 능력도 있는 사람이 이 산골에 있을 이유가 어디 있니, 지금 당장 이 애비랑 원주로 가자. 그곳에 여러 목사님께 부탁을 해서 좀 살만한 교회를 알아보도록 하자. 어서 이 애비랑 같이 가자.'
  
  '아버지, 저 여기 떠날 수 없어요?'

  '왜 떠날 수 없다는 거니?'

  '저희 교회 교인 때문에요.'

  '교인 때문에? 그래 교인이 몇 명인데.'

  '교인이요? 한 명이요.'
  
나는 그 때, 이 애는 내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지...요."

최경철 목사가 대대교회 뒷동산에 묻힌 뒤 한 해 뒤에 대대교회를 다시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가 떠나고 주인 없는 빈 서재에서, 하얗게 쌓인 먼지를 털어 내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안타까움을 털어 낼 수 없는 마음으로 그가 7년 동안 이 곳에서 목회하면서 남겨둔 흔적들을 찾아냈습니다. 꼼꼼하게 적힌 일기장, 사랑하는 아내와 친구들과 나누었던 편지, 그리고 설교문과 목회이야기들을 찾아내 커다란 배낭에 담아 눈보라 몰아 치는 한계령을 굽이굽이 돌아 대대교회를 떠났습니다.
  
지금 우리의 절기는 겨울 한가운데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 무덤 가엔 찬바람 이겨내며 자신을 위해 아무 것도 걸치지 않는 겨울나무가 우뚝 서 있습니다.
  
그는 떠났지만, 그는 내 마음속에 하얀 겨울나무로 살아 있습니다. 여전히 훌훌 털어 버리고 알몸으로 서 있는 겨울나무처럼, 그래서 그는 자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관념이나 제도, 교권이나 욕망의 한 자락도 남아 있지 않는, 오직 주님 앞에서 알몸으로 살았던 겨울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1988년 12월 11일자 일기를 다시 읽어봅니다.

  "하나님, 겸손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이런 것 말입니다.
   도움을 입고도 감사하다는 말없이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누가 한 움큼 속을 후비어가도 아프지 않는 것 말입니다.
   또 대가에 대한 기대감 없이 가슴을 쪼개어도
   사라지지 않는 겸손을 열어 보이지 않아도
   자랑스러운 여유를 주어도 주어도 끝이 없다는
   동화의 소금 맷돌이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는,
   주고 나서 아까워하니, 이젠 줄 것이 없다는 빈 마음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곧 송구영신 예배를 드릴 시간입니다.
   주위에 고마운 얼굴을 생각해 봅니다.
   먼저 부모님과 세 동생, 이젠 순위 안에 들어야 할 사람 은순.
   흑석동 교회 우리 고등부 학생 하나 하나, 친구들,
   민주화 운동에 희생된 젊은 영령들, 토마스 머튼과
   김광규 시인, 도와주신 목사님들,
   티없이 깨끗한 성경의 야고보 선생님.
   이 모두들 하나님 감사합니다."


                                                                             채희동 (2001-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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