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8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여 2010년 4월 3일에 발표한 <2010년 생명평화선언>을 바탕으로 한국교회와 사회가 당면한 과제를 신학적으로 바르게 진단하고, 교회 안팎에서 실천해나갈 수 있는 실천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된 생명평화마당의 6월 월례포럼이 14일,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지하 이제홀에서 열렸다.

이날 포럼은 ‘정의(正義)신학과 한국사회의 정의문제’라는 주제로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하종강 노동과꿈 대표의 발제와 진광수 목사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약 50명이 자리를 함께 하였다.

 

장윤재 교수는 ‘정의의 눈으로 보는 생명과 평화 - 제10차 WCC 부산총회의 주제에 대한 신학적 이해’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하였다. 장 교수는 현대의 공의회라고 할 수 있는 WCC 총회가 시대적 상황에 잘 부응하여 주제를 정했고 이번에 정한 정의, 평화, 생명의 문제 역시 시기적절한 주제라고 발제를 시작하였다. 발제를 정리해보았다.

오늘날 아시아와 세계에서 사람들이 가장 갈망하는 것이 정의이다. 정의는 평화와 생명의 선결조건이자 기초이다. 정의를 이야기하지 않는 생명은 곤 생명의 평화가 아니라 일부 생명의 특권만을 이야기할 뿐이며 정의를 말하지 않는 평화는 불의를 감춘 거짓 평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정의를 구약성서의 전유물처럼 치부한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덜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120만권이나 팔려나갔다. 샌덜은 그 책에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도덕적 분쟁을 인정하라는 정도의 지극히 상식적인 선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인기가 높았던 것은 한국사회가 그만큼 정의 없는 현실에 처해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한국은 획득과정의 불공정, 기회의 불공평, 소득의 불균형, 공공영역의 사유화라는 부정의에 직면해 있다.

정의의 문제는 반드시 세상을 둘로 나누어버린 전 지구적 자본주의라는 계급적 구조라는 틀에서 봐야 한다. 서구철학에서 정의의 문제는 계급의 문제였고 주권의 문제였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의 문제가 계급투쟁에서 기원하고 있으며 분배의 기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싸움이기 때문에 상이한 기준들의 통약(通約) 가능성을 찾지 못하면 공동체 전체가 붕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의의 문제를 플라톤은 누가(계급)?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떻게(주권)?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예수는 이런 그리스사상에 대한 대안적 정의론을 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의 경제론이 그은 경계의 바깥에 관심한다. 시민권을 갖지 못해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멸시 받는 무자격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라고 추켜세우고, 로마 황제가 아니라 그 위에 계신 하나님이 왕권을 갖고 계시다고 강조함으로 본유적으로 주어진 생명의 천부적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 그런 생각이 밥상공동체로 표현되었다.

한국사회는 신빈곤 시대를 맞고 있다. 신빈곤은 빈곤의 위험범위가 넓어졌다, 가난을 느끼는 영역이 확대되었다, 가난의 결과가 물질적 결핍을 넘어 사회적 고립으로 나타난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갈수록 엷어지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가난위험사회로 진입하였으며 일하는 빈곤층, 근로빈곤층(워킹푸어), 노인과 중증장애인, 여성들이 빈곤에 노출돼 있다. 여기에 결혼 이주여성, 탈북자 등이 새로운 유형의 빈곤층에 포함된다. 노숙인 등 주거빈곤층도 존재하며 빈곤층으로의 진입을 반복하는 반복빈곤층도 있다. 한 마디로 한국사회는 총체적인 빈곤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독교가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다. 빈곤의 이유와 양상이 급격히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사회에서는 빈곤이 가난한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질책하는 소리가 큰 반면 그들을 복돋고 격려하는 목소리가 너무 작다. 또 빈곤 극복과 복지국가체게에 관한 우리의 사회적 합의 수준이 매우 낮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희망은 작아지고 절망은 커진 새로운 형태의 빈곤의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기독교와 에큐메니컬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우리는 하나님이 가난한 자들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기독교 신앙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해진 부정의와 마주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할퀴고 지나간 이 땅에서 지금 생명의 하나님이 부정의로 인해 생명의 권리를 박탈당한 백성들과 마주하고 계신다. 바로 이 상황이 지금 한국교회와 에큐메니컬 운동이 놓인 신학적 자리고 선교적 상황이다.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정의는 단순히 선과 악을 판별하여 선엔 상을 주고 악엔 벌을 주는 정의가 아니다. 공의를 바로 세우고 둡은 것을 곧게 하는 정의고 치유하고 구원하는 정의다. 과부와 고아들의 권리를 변호하시는 회복시키는 정의,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주시는 정의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비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에 새로 존재하는 가난 및 절망과 싸워야 한다. 이것은 신앙의 문제이다. 사회적 약자의 편이 되어, 그들에게 힘을 주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고난 받고 그들과 함께 싸워야 한다. 그것은 경제정의 운동으로 표현될 수 있다. 경제의 문제가 곧 신앙의 문제이며 경제적 불의에 대한 관심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서 나오는 정당한 교회의 관심사임을 WCC 9차 총회가 명시했다. 교회가 빈곤선의 문제만이 아니라 탐욕선(greed line)의 문제 또한 중요한 신학의 의제로 다루어야 할 것도 강조한다. 삭개오의 이야기는 자선이 아니라 정의를 강조하고 있다.


장윤재 교수의 강의에 이어 전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이자 현 노동과꿈 대표인 하종강 대표가 발제를 이어갔다. 하 대표는 파워포인트로 프리젠테이션을 하면서 노동문제가 개념, 관념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노동의 문제가 노동자에게는 생존의 문제이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목회자들에게는 교양의 문제일 뿐’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는 수많은 노동자들과 만나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국사회에서 노동이라는 주제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를 참담한 심정으로 풀어갔다. 하 대표는 이야기 중간중간 울먹거렸으며 노동열사들의 유서 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차마 목이 메어 읽어주지 못하겠으니 직접 읽으라고 하기도 하였다. 이야기를 두서 없이 요약해본다.

지금 노동자들이 얻은 권리는 가장 사소해보이는 것을 얻기 위한 투쟁부터 시작되었다. 홍대 청소용역노동자들의 집회에 참석하고 그들이 화장실 한 구석에 무릎을 세우고 쭈그리고 앉아 밥을 먹는 현실이다.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옆 칸에 학생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숨죽여가면서 김치를 씹었다고 한다. 그들은 대부분 계단 아래쪽에 종이박스를 깔고 휴게공간을 마련한다. 그들이 투쟁을 통해 건물 외부에 비를 피할 수 있게 만든 작은 휴게공간을 얻었을 때 천국에 온 것 같다면서 좋아했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접도 받지 못하면서 노동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 신규채용 중 비정규직 비율이 70%를 넘어섰다. 대졸자, 전문직 종사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대졸자 80%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된다. 그 비율은 점점 더 늘어나고 정규직과의 임금차도 더욱 벌어지고 있다. 우리 자녀들 10명 중에 단 두 명만이 정규직 노동자가 되고 나머지 여덟은 비정규직이 된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한국경제의 저해 요소가 됐으며 향후 발전도 제약할 것이라고 지적한 것은 오히려 국제통화기금(IMF)이다. 유럽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나가고 있다.

최근에 희망버스가 인기검색어 1위에 올랐다. 한진중공업 사업장 고공크레인에서 농성중인 김진숙씨를 만나기 위해 전국에서 수십 대의 버스가 한진중공업을 향해 달려 왔다.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갖는 국민들의 마음이 희망이다. 2003년에도 현대중공업에서 이주익씨가 고공농성을 120여일 동안 벌이다가 자살한 일이 있었다. 이 당시 정은님 아나운서가 자신이 맡고 있는 영화음악 프로그램(새벽 3시에 진행)에서 이주익씨의 유서 일부분을 인용해 멘트를 하기도 했다. 페지 직전의 프로그램이 되살아났고 이후 6년 동안이나 지속됐다.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노동자들의 상황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기에 인기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노동자들이 과격하게 투쟁한다고 말이 많지만 외국의 경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외국은 국가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인정해주고 그들의 투쟁을 당연하게 인식하며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한다. 이런 장면은 영화 속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오히려 경찰이 노동자들의 인권이 침해될 소지가 없도록 보호한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시위하는 한국교포들을 막아선 검은 양복 남자들을 제지한 것도 독일 경찰이다. 한국에서는 최고은 작가가 굶어 죽었지만 미국에서는 작가들이 파업하자 유명 영화배우가 지지선언을 하고 골든글러브상 시상식을 보이콧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은 강성노조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노조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노조와 대결하는 비용이 몇 백배가 더 들어도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보다는 탄압하는 길을 택한다. 노조를 말살하는 것이 국가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다.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위해 행동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지극히 당연한 상식일 뿐이지만 한국은 노동자를 범죄자 대하듯 한다. 예를 들어 지명수배자 명단에 꼭 등장하는 인상착의 중 ‘노동자풍’이라는 단어가 그렇다. 현대자동차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나란히 서서 일을 한다. 한쪽 줄은 정규직이지만 다른 한쪽은 비정규직이다. 하청업체에서 고용된 이들은 정규직과 똑같은 장비로 똑같은 부품을 조립하면서 똑같은 일을 하지만 급여는 절반도 되지 않는다.

외국은 초중고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권리를 지키는 방법들을 가르친다. 초등학생들이 노동자와 사업자로 나누어 임금교섭 등의 단체교섭을 실제로 해본다. 그것도 여섯 시간이나 한다. 노사협의는 단번에 끝나지 않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다. 외국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한국의 웬만한 노동자들보다도 더 노동문제와 문제해결 방법을 잘 이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슨 대단한 것이 아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이다. 그것이 한국사회에서는 비상식으로 몰리고 있으며 그 요구를 묵살하는 것이 오히려 상식적인 것인양 선전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상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고 대응해야 한다.

하 대표의 강연으로 막연하고 관념적으로 여겨지던 노동의 문제, 노동자의 권리문제가 피부로 느껴질 수 있었다. 또 신학적 관점에서 장 교수의 발제 역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안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 교회의 위치는 어디인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발제였다. 그리스도인은 현실적 신빈곤의 내부에 존재하는가, 외부에 존재하는가, 가해자 그룹인가, 피해자 그룹인가, 그것도 아니면 제3의 어떤 위치에 존재하는가? 노동자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는 있지만 과연 이처럼 노동자들의 삶을 나의 일처럼 나의 피부로 느껴본 적이 있는가하는 자괴감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아울러 좀더 정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고 또 정의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 노동자들의 현실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대응하며 또 그 아픔을 나의 것으로 받아 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생명평화마당의 월례포럼은 매월 둘째 화요일 오후 7시에 열린다. 또 생명평화마당은 ‘생명과 평화를 여는 정의의 신학’이라는 주제로 논문공모를 하고 있다. 2013년 10월에 열리는 제10차 WCC 총회를 준비하며 국내 11개 연구소 및 단체와 협력하여 총 4회(매년 2회)의 심포지엄을 개최하며 이를 위한 신학자(도)들의 참여와 관심을 요청하고 있다.

한국민중신학회, 한국문화신학회,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한국기독교연구소, 동서신학연구소, 한국교회환경연구소, 한신대학교 신학연구소, 성공회대학교 신학연구원,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감신대), 기독교문화연구소(연세대), 여성신학연구소(이화여대)

자세한 내용은 생명평화마당 사무국 김희헌 총무(010-2250-2157), 김지목 간사(010-2213-9412)에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