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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이민교회를 제대로 아십니까?미주연회 탐방기② - 한인교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전심으로 살아내는 새생명교회-
심자득  |  webmaster@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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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5월 29일 (일) 15:47:55
최종편집 : 2011년 05월 29일 (일) 20:32:12 [조회수 : 1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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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아침! 4월의 마지막 주일의 콜로라도 스프링스는 약 1인치의 눈이 내렸다. 스프링스에 내리자마자 도시 어디에서나 볼수 있는 Pikes Peak 봉우리에는 만년설같은 눈이 쌓여 있었고 매우 조용하고 쾌적한 느낌을 주었다. 미국 내 살기 좋은 곳에 늘 빠지지 않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 스프링스 어디에서나 보이는 Pikes Peak의 모습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다른 이민자에 비해 월등한 교육열과 근면함으로 제 2의 유대인으로 불릴만큼 성공적인 이민자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이면에 초기 한인 이민자들의 눈물과 땀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콜로라도는 이런 초기 한인 이민역사, 또한 현대 이민사와 뿌리부터 깊게 연결되어 있다.

공식적인 한인의 미국 이민은 1903년 하와이의 사탕수수 노동자로 알려져 있지만 1850년대부터 중국인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광산노동자 및 대륙횡단철도 노동자로 미국에 온 한인들이 있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콜로라도를 중심으로 1900년 이전에 이러한 한인 노동자의 이민역사는 최근에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 우성 박용만선생 1881-1928
한인 이민은 멕시코 농민노동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 대륙철도와 광산 노동자로 잡초처럼 구미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되었다. 제대로 인간대접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지만 이민의 선배들은 그래도 나라와 민족을 결코 잊지 않았다. 조선이라는 이름없는 나라의 백성이었기에 중국인처럼 살아야 했던 한인들은 1908년 박용만선생에 의해 콜로라도 덴버에서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에 맞추어 ‘애국동지대표회’를 소집한다. 이를 계기로 미주 한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확인하고 그 힘을 모아 1909년 한인군사학교를 개교하여 독립운동에 앞장서는데 이곳을 거쳐간 한인들이 미군에서, 독립운동 일선에서 민족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이렇듯 콜로라도는 초기 미주한인 이민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이름없이 역사에 묻혀있는 선조들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분들이다.

또한 케네디 대통령이 1965년 서명한 신 이민법이 발효된 1973년부터 많은 한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는데 그전 1950년부터 미군과의 결혼으로 미국에 온 한인 이중문화가정(국제결혼이라는 단어가 갖는 부정적 이미지를 대치하는 단어)의 가족초청을 통해 이루어졌다.

콜로라도 스프링스는 공군사관학교 및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군사도시이다. 이곳에 일찍부터 미군과의 결혼을 통해 한인 이중문화가정이 터를 잡고 살아온 곳이다. 해방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였던 대한민국에서 결혼을 통해 미국에 온 한인부인들의 삶은 결코 녹녹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이겨내며 미국에 든든히 뿌리내리고 살면서 가족을 초청하여 일가를 이룬 자랑스런 Korean-American으로 살았왔다.

   
▲ 공군사관학교 예배당으로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랜드마크같은 건물이다

스프링스에 한인교회는 이러한 배경 속에 형성되었다. 1973년부터 시작된 한인교회는 감리교회를 중심으로 세워졌고 현재도 감리교회가 중심적인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멕시칸고추로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만들었고 배추가 없어 양배추로 김치를 만들어 먹었다. 한국인이 조금씩 생기자 한인교회를 만들어 한국의 음식, 언어, 문화를 지켜왔다. 이중문화가정이 많기에 색다른 고민과 기도제목도 있다. 또한 아픔과 갈등도 있었기에 부정적으로 한인공동체를 바라보는 시각도 있지만 이 척박한 땅에 한인문화와 교회를 세우고 지켜온 초기 한인교회들을 섬긴 신앙선배들의 노고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뿌리이다.

현재 미국 중소도시의 한인이민교회는 한인교회의 현주소와 미래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지역이 새롭게 전도할 한인이 거의 없다. 한인들의 숫자에 비해 교회도 많고 교회마다 다양한 생각과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수십명의 교인 중에 1세 1.5세 2세 3세가 있다. 한인가정과 이중문화가정이 있다.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들과 미국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더 나아가 한인교회이지만 미국인 가족들도 함께 있다. 사역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많다. 그런데도 한인숫자는 제한되어 숫자적으로 부흥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지역적으로보면 한 교회의 부흥은 곧바로 다른 교회가 줄어드는 풍선효과를 즉시 느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도시의 한인 이민자 교회는 이미 성장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이민자들과 함께 살아가며 존재하고 있다. 이 일의 중심에 목회자가 있다. 이민교회의 목회자는 늘 바쁘다. 가정대소사에서부터 대외적으로 생긴 문제들까지 전부 함께 해야 한다. 그러면서 삼일절, 6.25, 광복절을 이야기하고 한글과 한국 음식같은 한국문화와 정신을 지켜가는 중심이 이민 교회이다.

이젠 교인들이 교회를 선택한다. 쇼핑을 하듯이 둘러보고 자신이 원하는 환경과 취향의 교회를 선택한다.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조국도 떠났는데, 어디든 못가랴'하는 심정인 셈이다. 얼핏보면 뿌리가 없는 듯하나 아직도 이민자로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셈이다. 그 뿌리내림의 중심에 중소도시의 한인이민교회가 있다.

이제 한인이민의 역사가 100년이 지나면서 대도시의 한인사회를 떠나 중소도시로 이주하는 2. 3세가 많아지고 있다. 일자리와 주택, 교육환경같은 좋은 삶의 환경을 찾아 나선다. 7,80년대 이민 온 1세대도 은퇴를 시작하면서 제2의 삶인 노후를 준비하느라 삶의 여건이 좋은 중소도시를 찾는다. 조용한 한인사회의 변화의 흐름에 중소 도시의 한인이민교회가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맞고 있고 그런 변화를 만들어 가는 교회가 새생명교회라고 심재성목사는 설명한다.

콜로라도 스프링스 새생명교회는 1996년 설립되어 부흥하던 중에 2002년 초에 목회자가 다수의 교인들을 상대로 경제적인 피해를 입히는 부도덕적인 일로 사임하는 사태를 겪었다. 이민교회는 하루 아침에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는데 그런 큰 일을 겪으면서 교회공동체는 심하게 요동했다. 이때 장로님을 중심으로 하여 교인이 자리를 지켰고 심재성목사를 새로운 담임자를 모시고 교회 안팎의 상처를 치유해 나갔다.

새생명교회는 지역을 섬기는 교회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이민백주년을 맞아 감사예배를 새생명교회에서 드렸고 삼일절과 광복절같은 민족절기도 지키고 있다. 매월 1회 지역 노인들을 위한 사랑방을 열어 영어교실, 건강교실, 노래교실, 의료진료, 이.미용봉사, 영어편지번역 및 답신작성 도움, 그리고 점심을 대접하여 섬기고 있으며 매년 1-2회 지역민을 위한 무료 건강검진과 독감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니 교인들은 자연스럽게 섬김과 봉사의 자리에 서게 된다.

   
▲ 새생명교회에서 열렸던 이민 백주년 및 광복절 감사예배모습1
   
▲ 새생명교회에서 열렸던 이민 백주년 및 광복절 감사예배 때 아이들이 노래하는 모습
   
▲ 이민 백주년 및 광복절 감사예배 때 한복을 입은 한인들

또한 연합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지역에 있는 교회가 교파를 초월하여 동일한 하나님의 몸임을 인정하고 하나되는데 힘쓰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앞장서고 있다. 연합여름성경학교, 연합학생수련회같은 교육적 프로그램을 함께 할 뿐 아니라, 지역연합부흥회를 매년하고 있다. 심재성목사가 직접 리더가 되어 연합찬양팀을 꾸리고 지역교회를 순회하며 1년에 5-6번의 연합 찬양예배를 드리고 있다. 또한 재의 수요일을 교회연합성찬예배로 시작하여 부활절 연합새벽예배로 사순절을 지켜오고 있다. 지역적으로 이민교회가 잘 연합하는 특별지역이라고 자랑하고 싶다.

   
▲ 새생명교회가 주최한 영어권 연합찬양예배
   
▲ 지역연합으로 모인 1회 연합 여름성경학교
   
▲ 지역 연합으로 모인 학생부 연합수련회
   
▲ 지역 노인들을 섬기는 사랑방 참석자들과 함께

   
▲ 사랑방의 흥겨운 시간

   
▲ 사순절을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예배를 연합성찬예배로 드린다. 감리교, 장로교, 루터교, 순복음 교회, 침례교회가 연합한다
   
▲ 교회협의회가 한인회와 연합으로 스프링스 시와 참전용사들과 함께 한국전 60주년 기념식을 했다
   
▲ 콜로라도에 있는 KMC교회와 UMC교회가 웨슬리 회심주간에 찬양제를 했다.
   
▲ 새생명교회 찬양팀을 중심으로 지역 연합찬양팀을 만들어 지역을 섬기는 찬양팀의 모습이다. 심재성목사가 직접 인도를 하였다


새생명교회는 경찰 체육관을 구입하여 예배당으로 리모델링을 했다. 약 2에이커의 땅에 16,000 Sq.으로 미주에서는 5백석 규모의 예배실을 포함한 자체 건물을 가지고 있다. 현재도 부엌을 수리하고 있다. 건물도 교회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인의 긍지를 심고 1세들에게는 신앙적 자료들을, 2세들에게는 교육적 지원효과를 위해 2006년 자체도서관 샘터를 개관하여 현재 5년만에 5,000여권의 장서와 CD. DVD. Video. Tape자료를 보유하고 있고 매년 수천명이 이 자료를 공유하고 있다. 자체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어르신들을 위한 효도관광을 실시한다.

   
▲ 도서관샘터
   
▲ 아스펜 단풍을 찾아간 효도관광
   
▲ 어머니가 한국인인 2세 장년들을 위한 한글학교 모습이다
   
▲ 창립10주년을 맞아 새롭게 세워진 임원들

새생명교회는 지역을 섬기는 일들에 앞장서는 교회일 뿐 아니라 교회자체가 깊은 사랑이 넘치는 교회이다. 7080세대들이 찬양팀으로 섬기는 장년세대의 교회이고 매주 음식을 직접 만들어 함께 먹으며 사랑을 키우는 공동체이다. 교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독일인 부부는 한국인 며느리가 예뻐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한인성도들 보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한단다. 매주 ‘목사님 설교가 참 좋습니다’라고 꼬박 인사하며 매주 수백명이 먹을 수 있는 쿠키를 구워오는 멋진 성도가 되었다.

한국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고 공식 선언하고 예배에 참석하는 미국인도 있다.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쿠웨이트 등 중동에 계속해서 파병되는 미군에 복무중인 젊은 한인 2세와 부부들도 상당수가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미국 아이비리그를 능가하는 재원이 모이는 공군사관학교에 재학중인 한인 학생들이 미국교회들의 많은 관심과 배려에도 불구하고 새생명교회에 출석한다. 이들은 앞으로 한인 이민자의 주역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 누구보다 새생명교회를 사랑하고 한 가족으로 사는 독일출신의 Lester가족
   
▲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한인생도와 함께
   
▲ 만두바자에서 장로님과 남선교회회원들이 튀기는 수고를 하고 있다
   
▲ 속별 찬양제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중심이 된 속회에서 복장을 갖추어 찬양하고 있다


새생명교회는 인터넷을 통하여 다수의 한인과 접촉하고 있다. 오프라인이상으로 온라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한다. 1년에 백여명의 새로운 한인이 인터넷을 통하여 이 지역에 오고 교회를 방문한다. 한국의 50배가 넘는 넓은 미국에서 새로운 세상을 찾아나서는 한인들에게 인터넷은 무척 유용한 선교도구이다. (의외의 조회수도 놀랍다)

모두 다 교회가 좋단다. 교회를 사랑하고, 서로 사랑한단다. 변할수도 있겠지만, 식어질 수도 있겠지만 또, 다시 하면 된다. 될 때까지 예수의 마음으로 해보자는 교회이다. 지역한인의 3-4%정도가 새생명교회에 출석하는데 그 정도면 바닷물을 짜개하는 소금의 비율은 되니 까 그 정도 역할은 해야되지 않겠느냐고 한다.

   
▲ 2011년 부활절 예배 모습
   
▲ 2011년 부활절 예배
   
▲ 부활주일 후 친교하는 모습1
   
▲ 부활주일 후 친교하는 모습2
   
▲ 부활주일에 아이들이 특별 찬양을 드리는 모습

새생명교회를 담임하는 심재성목사는 1986년 감리교 신학대학 신학과를 졸업한 후에 10년을 한국에서 목회했다. 86년을 기점으로 한국사회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는 길목에서 전통적인 가치관과 신앙관들이 변화되었다. 교회와 신학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고 New York Theological Seminary에서 Urban Ministry(도시목회)를 공부하러 미국에 왔다. M.Div와 D.Min을 마쳤고 IMF 이후 이민교회의 소명을 가지고 이민목회를 시작했다.

교회의 존립이 흔들리는 상황을 이겨낸 비결이 무엇이냐 물으니 모르겠다고 한다. 해결책을 가지고 목회했던 것이 아니기에 은혜라 대답하고 싶다고 한다.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하고 매일같이 새벽에 무릎꿇고, 한 생명과 세계를 동시에 품고 기도한다. 25년 동안의 풀타임목회, 그래도 늘 부족함을 느끼고 목회가 쉽지 않단다. 그래도 심재성목사는 다양한 연령과 배경을 가진 성도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설교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여 설교를 준비하고 설교한다고 했다.

심재성목사는 모든 이민목회자가 비슷한 고민과 최선의 수고를 하고 있다고 말했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이민목회의 열매를 거두게 하실 것이기에 보이는 기준으로 이민교회를 쉽게 평가하지 말기를 부탁했다.

   
▲ 심재성목사의 가족사진

가족에 대해 물으니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와 대학원에서 기독교 윤리를 전공한 홍혜균사모와 두 자녀가 있다고 했다. 뒤늦게 하나님께서 주신 아이를 통해(40대 중반에 첫째와 띠동갑보다 훨씬 차이나는 둘째를 얻었다고 한다) 교회에 아이들이 많이 생겼기에 ‘전도하지 못하면 낳기라도 하는 교회가 되자’는 즐거운 유행어가 생겼다며 활짝 웃는다.

새생명감리교회 개척한지 15년째, 심재성목사가 부임한지 10년째이다. 일반적 관점에서 보면 큰 교회는 아니다. 그러나 한인 이민사회에서는 작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회이다. 이곳에 사는 이민자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사는, 대대로 기억되는 고향교회가 되기를 꿈꾼다. 나아가 우리 자녀들에게 한국인이면서 미국인으로, 미국인이면서 세계인으로, 세계인이면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첫 걸음을 떼게 해주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다른 이민교회와 함께 가며 한 걸음 앞서가려는 이민교회이다.

   
▲ 새생명교회 전경


한국교회와 이민교회의 비전과 동역에 대해 물었다. 다중문화가정이 한국에 많아진다고 한다. 다르지만 한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섬겨야 할 한국교회에 한인이민교회는 그 사명을 앞서 감당한 공동체이다. 섬김의 공동체, 어울림의 공동체로서 한인 이민교회는 한국교회에 좋은 동반자와 모델이 될 수있다.

또한 스프링스는 미국에 새롭게 떠오르는 영적인 리더십을 가진 도시이다. Focus on the Family, Navigator, David Cook Ministry, Youth with a Mission, Compassion, Out Door, ASCI(기독교 사립학교 연맹), 세계기독용품본부와 같은 선교단체들의 본부가 밀집되어 있다. 많은 미국교회가 수요예배 때도 가득찰 만큼 활발하고 각종 모임을 할수 있는 식당들은 조찬성경모임으로 넘친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신앙적 와해를 걱정하지만 미국의 신앙적 뿌리를 지키기 위해 기도하고 또 새로운 비전과 사역을 만들어가는 도시이다. 새로운 미국교회의 흐름과 신앙적 비전을 볼 수 있는 곳이기에 한국교회가 주목해야 할 도시이다.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가 국제화시대에 한국교회와 협력할 비전과 사명이 있다고 믿는다. 초기에는 열심히 살아 돈 많이 벌어 잘사는 것이 일차적 목적이었지만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 이민의 최종목적은 결코 아니다. 고국을 떠난 뿌리뽑힌 공동체쯤으로 여기지 말고 한인 디아스포라인 한인이민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좀더 큰 뜻을 함께 이루어가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미국에서 자리잡고 뿌리내리는 이민교회 그리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이민목회를 통해 다른 관점과 사역경험을 가진 이민목회자들이 한국의 교회와 동역할 기회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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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58.231.42.67)
2011-06-02 20:22:37
광고성 스팸댓글을 지우는 과정에서 애꿎은 최근의 정상댓글까지 지우는 사고를 냈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어떤 고약한 분이 2,000개나 고약한 광고를 올렸기에 정신없이 지우다가 그만 관성을 못이겨서 20여개를 지운것 같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이번건은 사이버수사대에 신고를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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