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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거리에서 하루퀘백에서 비행기를 타고 켈거리에서 내렸다. 비행기 안에서는 한 잠도 못잤다. 잔다 그러면 어디어나 언제나 잠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여지없이 깨졌다. 그러나 그날 밤 켈거리 공항에서 자는 잠은 여행하는 중에 잔
김충권  |  ckkim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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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5월 21일 (토) 11:10:40
최종편집 : 2011년 05월 23일 (월) 08:59:06 [조회수 : 4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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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캘거리


   


끝도 없이 펼쳐진 캐나다의 비옥한 땅


퀘벡 공항 탑승 대기장 의자에는 전기코드가 있었습니다. 사진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카메라 전지를 충전시키는 동안 의자에 앉아 졸기로 했습니다.

‘아, 피곤하다 잠 좀 자자.’

어제 저녁에 잠을 못 잔데다, 낮에 너무 피곤하게 돌아다녀서 그런가, 잠을 잘레도 머리만 딱딱 아프고 좀처럼 쉬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잠자는 데는 문제가 없으리라고 여겼는데,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그런지, 곧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촉박감 때문인지, 정신이 좀처럼 놓아지지가 않았습니다.

   
▲ 퀘백 공항 내부



비행기는 6시 30분에 이륙했습니다. 토론토에서 갈아타고 캘거리까지 가는 Westjet 비행기였습니다. 창가에 앉아 떠오르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온통 편편한 땅이 눈이 닿는 데까지 펼쳐져있습니다. 강이 구불구불 누워있고, 강을 따라 너른 밭이 사각을 지어 모자이크 되어있고, 마을이 자로 잰 듯이 모여 있고, 숲은 짙푸르게 나머지 공간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강과 멀어질수록 손도 데지 않은 많은 숲이 양탄자처럼 폭신폭신할 것 같았습니다.

   
▲ 퀘백 공항 탑승구


우리나라 농촌은 논밭을 따라 한 집 두 집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데, 캐나다는 농촌이라고 해도 재단한 헝겊쪼가리 마당에 굴러다니다 펼쳐진 것처럼 한군데 모여 있었습니다. 모여 사니까 문화가 생기고, 문화가 생기니까 도시와 같아져서, 정착하기에 좋은가 봅니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저 땅, 무한정 널려있는 저 땅이 내 마음을 놓아주지 않습니다. 개간해서 심어 먹는 농지도 그렇지만, 더 많은 개간하지도 않은 땅들을 보면 환장을 하겠습니다. 농사를 짓고 싶어도 땅이 없어서 못 짓던 어릴적 부모님 생각이 났습니다.


   
▲ 활주로로 향하는 비행기


부모님은 농사를 지어도 한 해 먹을 양식이 부족해 화전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45o 되는 산비탈에 나무를 베어내고, 이듬해 이른 봄에 마른 나뭇가지와 풀에 불을 놓아 밭을 만들었습니다. 첫해는 메밀을 흩뿌려 심었습니다. 메밀은 골을 탈 필요도 없고, 비료를 주지 않아도 잘 자라, 꽃이 피고 열매가 맺었습니다. 이듬해부터는 소를 부려 골을 탔습니다. 이랑 위에 고구마 줄기를 물을 주어 심고 내려오면, 깎은 머리에 흉터자국처럼 밭자리만 휑했습니다.

논은 남에게 소작을 붙이느라고, 각기 서로 다른 주인이 준대로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습니다. 남쪽 풍기 가는 뱀재에 여섯 다랭이, 반대편 북쪽 약물래기 네 다랭이, 장정 가는 서쪽 두 다랭이와, 그 옆 남조 아래 다섯 다랭이가 우리가 부치는 논이었습니다. 동네서 동서남북 사방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모심을 때는 아침에 출발해서 사방을 한 바퀴 돌아야 했습니다. 어머니와 건너 집 아주머니가 참이나 점심을 이고 갈 때가 어렵습니다. 지금 일꾼이 어디서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 뱀재에서 아직 벼를 베는데 남조 아래로 갔다가는 모두 고생하는 것입니다.


   
▲ 공중에서 본 카나다 농촌


볏단을 나를 때는 사방을 차례로 가서 3,40단씩 지게에 지고 달리기 하듯 와야 합니다. 오르막이야 한걸음 한걸음씩 천천히 내 딛지만, 내리막은 땅만 보고 달려야 빨리 가고 힘도 덜 듭니다. 지게를 지고 어른들 뒤를 따라 가다 보면, 종아리에 시커먼 힘줄이 꼬불꼬불하게 성을 내고 튀어 나왔습니다. 당장이라도 터져 나와 강철처럼 뻗어 지를 듯합니다.

동네 주변에 있는 땅은 모두 부잣집 땅이었습니다. 대문 앞에 있는 논은 모심기도 좋고, 벼 질 때도 집에서 밥 먹고 갈 수 있어서 누워서 떡먹기였습니다. 집 뒷밭을 가진 사람도 부잣집이었습니다. 우리는 밭을 매려면 지게를 지고 갔다가 꼴짐을 지고 오는데, 이 사람들은 수건 목에 두르고 호미 하나 들고 갔다가 날 저물면 빈손으로 돌아와도 되었습니다. 밭은 가깝고, 꼴을 베려면 지게지고 멀리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 강과 어울린 카나다 농촌


벼를 타작하면 도지를 주어야 했고, 다음 농사에 짓은 집이 바뀌기도 했습니다. 도지 결과에 따라 소작인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지을 힘이 있고, 더 지어야 한해를 굶지 않고 살겠어도, 땅이 없어서 짓지 못하고 배를 곯아야 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 잘 정비된 카나다 농촌


그런데 아무거나 심어도 풍성하게 열릴만한 땅이 지천으로 널려 있습니다. 땅 때문에 울고, 땅 없어서 굶고, 땅 싸움하다가 죽기까지 했던, 그 웬수 같은 땅이 여기는 손도 안 댄 채 놀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죽어도 세상은 여상히 돌아간다더니, 그렇게 땅 때문에 아귀다툼하던 우리와는 상관도 없는 듯, 캐나다의 드넓은 땅들은 구불렁한 강을 베고 누웠습니다.

땅 생각에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비행기에서 자면 내릴 데서 못 내릴 것도 없고, 더 가서 돌아와야 할 일도 없었습니다. 캘거리에 가면 1시쯤에 떨어져도 호텔을 잡아 놓지 않아 또 공항 의자에서 자야합니다. 간식 주고 불 꺼서 자라고 할 때 자 둬야겠는데, 머리만 더 아파 왔습니다.

   
▲ 카나다 농촌의 모습 공원과 운동장도 보인다.



미국과 캐나다에 없는 것 두 가지

비행기가 약 30분을 연착한다고 방송을 했습니다. 차라리 연착을 할 거면 토론토에서 갈아타는 비행기는 제시간에 떠버려서 토론토에서 쉬고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토론토에서 캘거리 가는 비행기는 어디서 오는지 1시간 30분이나 더 늦었습니다.

‘어디고 하루 일정으로 가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시간을 맞추어 다닐 수는 없는 나라로구먼.’

구름 위를 날다가 토론토에 착륙할 때는 날이 어두워 졌습니다. 야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 멀리 씨엔 CN 타워도 케잌 위에 꽂힌 촛불처럼 우뚝 서 있었습니다. 한없이 넓은 평원에 불빛만이 열을 맞춰 도시의 모습을 집작할 수 있었습니다. 토론토 공항은 퀘벡에서 오는 길에 토론토 도시 상공을 지나 서쪽으로 한적한 곳에 있었습니다. 토론토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캘거리로 날아갔습니다. 캘거리에 가까웠을 때 또 내려앉는 비행기 아래로 도시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 산이 없이 드넓은 평원


비행기가 뜰 때나 앉을 때나 산을 보지 못했습니다. 모두 평지였고, 모든 평지는 눈이 닿는 곳까지 계속되었고, 평지 사이에 가끔씩 각진 도시들이 반듯반듯이 인간의 손길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산이 없으니 최소한 비행기가 산에 부딪히는 사고는 없을 것 같군.’

산이 있어야 산에 부딪히지요. 산이 없으니 안개가 머물러 있는 시간도 없습니다. 머무를 안개도 잘 발생하지 않을뿐더러, 생긴다고 해도 가로막을 산이 없으니 고여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안개가 끼여 산을 발견하지 못하고 부딪히는 사고가 항공기 사고 중에는 많습니다. 6년 전에 있었던 김해공항에 착륙하려던 중국여객기도 산에 부딪혀서 200명이 넘게 사망했습니다. 10년 전 괌공항에 착륙하려던 대한항공도 안개 때문에 산에 떨어져 230여명이 죽고 60여명이 다쳤습니다. 일단, 산이 없으니 항공사고의 큰 원인 하나는 없어진 셈입니다.

   
▲ 공중에서 본 카나다 평원


‘풍수지리로 따지는 명당도 없을 것 같다.’

대통령이 되려고 선거 때만 되면 조상의 묘를 옮기는 것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작년에도 이모 후보가 예산에서 명당을 찾아 선영을 옮겼답니다. 풍수지리는 산과 강의 모양에 따라 바람의 방향이 달라져 길한 장소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곳은 배산임수로, 좌청룡 우백호를 거느리고 있으면 더욱 좋다는 명당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목숨 걸고 조상 덕으로 후손이 잘 되려고 매달리는 풍수지리가 캐나다에는 있을 수도 없게 생겼습니다. 산이 있어야 등을 대고 있지요. 물은 흔합니다. 물이 보이는 곳의 집이 좋은 집이고 값도 비싸답니다. 특히 시애틀에서는 다운타운보다는 항구를 가운데 두고 언덕에 둘러 있는 집이,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좋은 집이랍니다. 캐나다도 아무 평지나 심으면 밭이고, 지으면 도시고, 닦으면 길이었습니다. 명당이 숱한 한국에서 명당 덕을 보았다면 아마 세계를 제패해도 했을 것입니다. 미국과 캐나다는 대부분 산이 없어서 명당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명당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세계에서 큰소리 치고 있으니, 조그만 한반도에서 명당 찾아 아귀다툼하는 꼴이 우습게 생겼군.’

   
▲ 토론토 야경


캘거리 공항에서 가장 길고 달콤한 잠

토론토에서 캘거리까지 가는 4시간 동안도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잠은 누가 줘서 자? 내가 찾아서 자는 거지.”

아내에게 늘 큰소리치던 잠이 오늘은 머리만 쪼갤 뿐, 영 스스로도 조절할 수가 없습니다. 캘거리에 가면 편안하게 잘 곳이 있다면이야 마음이 놓여서 나을 텐데, 퀘벡에서처럼 또 의자에 앉아서 자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예고된 재앙에 준비 없이 당하는 기분입니다. 꿩새 울었습니다.

뉴욕에서 출발할 때는 상황을 봐서 정 필요하면 모텔이나 여인숙을 찾아갈 생각이었습니다. 막상 그럴 수도 없는 것이 퀘벡에서건, 토론토에서건, 공항은 도시와 한참을 떨어져 있었습니다. 공항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토론토에서 갈아타는 비행기가 연착되어 새벽 1시에나 짐을 찾았습니다. 공항 어느 구석에서 잠을 자야겠다고 아주 공항청사 밖을 나갈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 켈거리 공항 주변

‘잠자는 친구들이 많구먼. 나도 저 안마기에 앉아 잠을 자 볼까?’

그런데, 캘거리 공항은 퀘벡의 버스터미널과는 달랐습니다. 예닐곱 명이 벌써 가방을 베고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안마기가 한 줄에 네 개씩, 등을 마주보고 8개가 있었습니다. 안마기에는 둘이 자고 있었습니다. 잠을 자고 있는 반대편에 앉아 가방위에 발을 올려놓고 누웠습니다. 퀘벡 터미널에 안마기 의자는 앉으면 동전을 주입하라고 입력된 기계음이 시끄러워서 앉지를 못했는데, 캘거리 공항의 안마기 의자는 조용했습니다.

한잠을 깊게 자고 일어났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습니다. 도착해서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상한데, 한 시간밖에 안 지났어? 잠은 아주 잘 잤는데.’

아무랬든 상관없었습니다. 다시 두 번째 잠을 잤습니다. 담요도 꺼내지 않았는데, 따뜻한 공기 덕분에 땀이 적당히 나도록 한잠을 잘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생각해 봤더니, 퀘벡과 캘거리는 시차가 2시간이라서, 3시간을 잤는데도 시계는 한 시간밖에 더 가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여행을 떠난 이후에 가장 긴 밤을, 가장 깊고, 달콤한 잠으로 보낸 듯 했습니다.


   
▲ 버스를 타고 물어 물어 찾아간 켈거리 역



속 시원한 캐나다 택시 운전사

“저기요. 록키산을 기차로 넘고 싶어서 기차역을 찾는 데, 어떻게 가야 합니까?”
“43번 버스를 타고, 전철로 갈아타고, 다운타운으로 가세요. 버스를 타면 표를 하나 주는데, 그걸로 전철까지 타는 겁니다.”

캘거리 공항에는 야간에도 근무하는 여행 안내직원이 있는가 봅니다. 이제 막 어둠이 다 걷혔는데, 금방 출근한 것 같지는 않고, 얼굴이 푸석하니 야간근무 한 피곤이 보였습니다. 두 말 할 것 없이 복사한 메모지에 동그라미를 쳐가면서 설명을 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꽤나 많은가 봅니다.

공항내 가게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서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습니다. 캘거리의 버스와 전철은 표 하나로 자유로이 탈 수 있었습니다. 2불 50전을 내고 표를 끊으면 3시간 이내에는 한 번 더 탈 수 있습니다. 버스와 버스의 연계도 가능했습니다.

물어물어 캘거리타워 아래 건물인 한 사무실에 도착했더니, 아직 출근을 안 하고 출입문에 전화번호가 있었습니다. 전화를 걸었습니다.

“오늘 출발하는 록키산맥 관광열차는 4시 30분에 출발했고, 다음 열차는 모레 일요일 새벽 4시 30분에 출발합니다. 미리 예약을 해야 해요.”

이런, 물어물어 찾아 온 길이 허사입니다. 관광열차는 이틀에 한 번씩 있었습니다. 관광열차는 틀렸고, 그렇다면 일반열차라도 타야했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일반열차를 타려면 캘거리가 아니라 에드먼튼에 가야 한답니다. 말하자면 에드먼튼은 구도시고 캘거리는 신도시인데, 기차역은 에드먼튼에 그대로 있어서 일반열차를 타려면 구도시로 가야 한답니다. 에드먼튼은 버스로 3시간 30분이 걸린답니다. 에드먼튼에 가서 기차를 타려면 빨리 터미널에 가야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타야 했습니다.

   
▲ 켈거리 역 표지판


택시운전사는 캐나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흑인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대뜸,

“미국이 한국을 남북으로 갈라놓고 무기를 팔아먹고 있잖아요. 조그마한 나라에 국민들이 불쌍해요.”

“아니, 지금 뭐라고 했어요? 그런 걸 당신만 생각하는 겁니까, 캐나다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 있습니까?”

“캐나다는 물론 미국 국민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부시와 미국정치인만 몰라요.”

“이런 속 시원한 이야기를 여행하는 중에 처음 들어봐요.”

무릎을 치면서 반가워했습니다. 분단된 우리만 싸우는 외로운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세계인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 켈거리 역 주변 건물


남북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와 미국이 먼저 풀어야할 문제였습니다. 분단이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높았던 미국 장군 맥아더와 한국에서 가장 높았던 주한 미군 사령관 하지 중장의 치밀한 작전하에, 친미세력 이승만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분단으로 인해 6.25와 그에 따른 수많은 피해는 우리 민족이 입고 있고, 이익은 미국이 챙기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분단으로 인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이 미국임을 알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는 교두보를 확보 했지, 무기를 팔아먹을 뿐 아니라, 여차하면 경기회복을 위해 재래식 무기를 한꺼번에 소비할 수 있는 악의 축 북한이 준비되어 있지, 잉여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 수 있지, 오죽하면 한국이 미국의 51번째 주라는 말이 있겠습니까? 미국은 한국의 민주화니, 경제발전이니, 통일이니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의 분단된 상태로 남아 미국의 손짓대로 움직여 주기만하면 그만입니다.

   
▲ 켈거리 버스 터미널

운전사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면서 먼저 메타기를 정지시켰습니다.

“태워다 줘서 고마워요. 우리나라에 대해 그렇게 바르게 생각해 가져줘서 더 고마워요.”

터미널에 들어서기 전에, 악수를 청하고, 운전사가 다시 차에 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인사했습니다.

   
▲ 버스터미널에서 쉬는 여행객



캐나다 은행에서 한화 환전

에드먼튼 가는 버스는 3시간 후인 12시에 있었습니다. 표를 끊어 놓고 기다리면서, 잠은 푹 잤겠다, 현금지급기 뒤의 전기코드를 찾아 카메라와 핸드폰을 충전시키고 컴퓨터를 꺼내 여행기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뒤 의자에서 한국말 소리가 들렸습니다. 부모 따라 캐나다에 이민 온 두 자매가 한국에서 들르러 온 사촌을 데리고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 일정을 이야기 했더니,

“에드먼튼은 록키산맥과 반대 방향으로 3시간 반을 가야해요. 12시에 버스로 출발하면 오후 4시는 될 테고, 오늘은 기차를 못 탈거예요.”

“말을 듣고 보니 그렇구나. 반대로 가면 시간만 더 걸리겠구나. 기차든 버스든 우선 록키산맥을 넘고 봐야겠다.”

이대로 갔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지금 에드먼튼으로 가도 기차는 내일 아침 8시에 출발하고, 내일 밤 자정쯤에 뱅쿠버에 도착할 수 있답니다. 내일 밤에 시애틀로 바로 가지 못하고 또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예정보다 이틀이 지연돼서, 비행기 출발시간이 빠듯할 것 같았습니다. 일정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기차든 버스든 가릴 것 없이 빨리 록키산맥을 넘는 것이 상수였습니다.

   
▲ 켈거리 버스터미널 내부

복잡한 이야기를 해 달라고 자매를 붙들었습니다. 고맙게도 친절하게 앞장을 서 주었습니다. 매표소에 가서 에드먼튼 가는 표를 뱅쿠버로 바꾸자고 했습니다.

“바꾸는 것은 안 되고, 환불을 하고 다시 표를 사야한데요.”

“아니, 다른 버스를 타는 것도 아니고, 같은 그레이하운드 회사 버스로 바꿔 탄다는데, 왜 교환을 안 해주고, 환불하고 다시 사라는 거야.”

“에드먼튼 가는 표를 환불하는데, 환불요금을 20%를 떼야 한데요..

“20% 씩이나 떼? 환불료는 암트랙에서도 10%만 떼던데, 왜 20%씩이나 떼겠다는 거야? 여기, 이 카드로 환불료 제하고 표를 끊어 봐.”

“카드가 안 되네요. 한도 초과로 나온다네요.”

“그럼 미국달러로 사봐.”

“현금은 미국달러는 안 받고, 캐나다 달라만 받는데요.”

“택시를 타든지, 가게에서 물건을 사든지, 미국 달라도 잘 받더니만, 여기서는 왜 안 받겠다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건지 물어봐.”

“은행에 가서 캐나다 달라로 환전해 와야 한데요.”

“은행에 가서 환전을 해 오라니? 지금 나보고 어디를 어떻게 가라는 거야!”

이런, 뭐 한 가지도 되는 게 없었습니다. 속에서 욕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카드가 안 되는 거야, 원래 내 월 사용한도액이 30만원밖에 안 돼서 그렇다 칩시다. 그런데, 같은 회사 버스로 바꿔 탄다는데 왜 교환을 안 해주고 환불하고 다시 사라 그러고, 환불료는 엉터리없이 20%씩이나 떼겠다는 거고, 미국에 은근히 반감이 있어서 그런가 다른 데서는 미국 달라도 잘 받더니만 여기서는 왜 안 받겠다는 거고, 은행에 가서 환전을 해 오라니, 지금 나보고 어디를 어떻게 가라는 설명 하나도 없이 어쩌자는 건지. 전철표를 파는 기계야 인식기능을 넣지 않아서 그렇다 쳐도, 사람이야 환율을 계산하면 될 것을, 외국인 여행객에게까지 굳은 얼굴로 그렇게 똑 부러지고 말아야 하는 건지.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화를 낼 수는 없었습니다. 야속했지만, 얼굴 한 번 다시 쳐다보고 말았습니다. 다행히도 록키산맥을 넘는 뱅쿠버행 버스 시간은 두 시간이 남아 있었습니다.

“나를 은행에 좀 데려다 주겠니? 까딱하면 국제 미아가 되겠다.”

세 자매를 붙들고 부탁을 했습니다, 부모님이 이민와 켈거리에서 주유소를 한다는 자매는 친절했습니다. 자기 버스표를 들여 은행에 데려다가, 환전을 도와주고, 터미널로 돌아가는 버스까지 태워주고는, 약속시간이 늦었다고 황급히 떠났습니다.

‘말이 잘 통하니까 이렇게 수월한 걸.’

언어 장벽이 세삼 두껍게 느껴졌습니다. 어찌어찌하면 의사는 통하기야 하겠지만, 말이 잘 통한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편리한 것이었습니다.

미국 달러를 환전을 하는 김에 지갑에 남아 있던 한국 돈까지 환전해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캐나다 일반 은행에서 50,000원을 줬더니 45불 80센트로 환전하고, 수수료를 5달러 떼고 40불 80센트를 내 주었습니다. 환율이 캐나다 1달러당 1090원 정도였습니다. 어쨌든 지구 반대편에서도 한국 돈을 인정해 주는 것 자체가 뿌듯한 일이었습니다.

   
▲ 버스를 타고 록키산을 넘는다. 버스가 미끄러지듯 달린다.


록키산맥을 넘는 버스는 뱅쿠버까지 14시간에서 16시간이 걸린답니다. 지금 출발하면 내일 아침 5시에나 도착할 것 같습니다. 잠은 캄캄해져 밖이 보이지 않을 때 자기로 하고, 해가 있을 때는 구경을 하자고 제일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도시를 막 벗어나는 버스 위로 비행기가 각을 세우고 떠 오르는 것을 보니까 비행장이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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