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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을 닦으며
김영동  |  deom-past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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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4월 19일 (화) 13:46:00
최종편집 : 2011년 04월 19일 (화) 13:47:28 [조회수 : 2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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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릇을 닦으며

 

윤   미   라

 

어머니,

뚝배기의 속끓임을 닦는 것이

제일 힘든 일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차곡차곡

그릇을 포개 놓다가

보았어요.

 

물 때 오른 그릇 뒷면

그릇 뒤를 잘 닦는 일이

다른 그릇 앞을

닦는 것이네요.

내가 그릇이라면,

서로 포개져

기다리는 일이 더 많은

빈 그릇이라면,

내 뒷면도 잘 닦아야 하겠네요.

 

어머니, 내 뒤의 얼룩

말해주세요.

*

*

 

   벗님,

   릇은 안 쪽을 더 깨끗이 닦아 써야 합니다.

   그릇의 쓰임새는 안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릇의 안쪽을 잘 닦듯 우리의 마음도 잘 닦고 다스려야 한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내가 바르고 온전해야 함이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일상의 생활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전혀 다른 그릇의 쓰임새를 발견합니다.

 

   쓰임새라고 할 것도 없죠.

   쓰임새에 대하여 오히려 쓰여지지 않음새의 모습을 눈여겨보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고정관념을 넘어 뒤집어 생각해 볼 수 있게 된 거죠.

   지금은 만물이 움추려 쓰임새보다 쓰여지지 않음새가 더욱 일상생활이 되는 겨울입니다.

   추운 겨울날 쓰여질 날을 기다리며 씻겨 쌓여지는 그릇을 눈여겨보는 일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겠습니다. 

   설거지를 끝낸 그릇을 다시 쓸 때까지 차곡차곡 포개 놓으면서 그릇 안쪽에 다른 그릇의 바깥쪽이 들어가는 현실을 보며 안과 밖이 하나임을 깨닫게 됩니다.

 

물 때 오른 그릇 뒷면

그릇 뒤를 잘 닦는 일이

다른 그릇 앞을

닦는 것이네요.

 

   어린아이들이 읽는 동시로 쓰여진 이 시는 많은 고정관념으로 굳어져 가는 내게 그릇이 깨지는 듯한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줍니다. 마음을 닦는 일처럼 똑같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맑고 깨끗하게 하기 위해 내 생활태도를 잘 닦아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예의바름, 너그러운 관용, 다른 사람을 향한 나의 태도는 이제까지 내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거라고 알았지만 아닙니다! 내 마음가짐을 넘어서서 남을 대하는 예절은 따로 부단히 노력하여 갈고 닦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현실생활에서 살아보면 내 마음가짐만 바르고 그 마음가짐으로 잘 훈련된 생활태도가 없는 그런 오차를 수없이 겪으며 서로 마음 상해하지 않습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넘어서기!

   (알아보는 눈을 밝히고, 알아주는 마음을 넓혀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넘어서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힘쓰라) 

   내 마음을 닦는다는 생각과 생활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입니다.

   이웃과 부대끼며 함께 살수밖에 없는 내 생활태도는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을 벗어나야만 가능합니다.

 

   자기 중심적 아집을 벗어남!

   자기를 넘어서기!

   그것은 한 개인의 사회성이고 성숙성에 대한 기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내 안을 깨끗이 닦고도 이웃과 살며 그 이웃의 말과 태도로 쉬 더러워지는 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적이 어디 한 두 번이었습니까? 이 상황을 반대로 뒤집어 보면  내 말과 내 태도로 쉬 더러워질 이웃의 마음이 보입니다. 내 안이 아닌 밖을, 내 생활태도를 닦는 일은 이웃의 마음을 깨끗하게 보존해 주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는 일이군요!

 

   그릇의 안쪽을 깨끗이 닦는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그릇의 쓰임새에 대한 시각입니다.

   그러나 더 많은 시간 그릇은 쓰여지지 않음새라는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그릇은 기다리는 동안 서로 포개져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 않습니까?

   사람살이도 더 많은 시간 이웃들과 관계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살이는 역으로 이웃과의 관계가 쓰임새이니 잘 닦아야 하고 쓰여지지 않음새는 자신이 마음을 닦아야 할 시간이니 자신의 마음을 잘 닦는 것은 이웃의 마음을 깨끗한 체로 잘 보전해 주는 일이군요. 아, 주여! 내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내가 그릇이라면,

서로 포개져

기다리는 일이 더 많은

빈 그릇이라면,

내 뒷면도 잘 닦아야 하겠네요.

 

   자기중심적인 입장을 벗어나야 처음으로 자기 마음을 잘 닦아 이웃을 살리는 쓰임새의 관계를 알아보게 됩니다.

   자기 마음의 바깥(말하기, 예절 등등)을 잘 닦아 이웃을 살리는 쓰여짖 않음새를 알아차리는 거죠. 

   벗님, 살아있다는 자체가 이웃과의 관계로 맺어져 있는 사람살이!

   그릇의 뒷면을 잘 닦듯 내 바깥인 이웃을 대하는 내 뒷면인 말하기와 생활태도를 잘 닦아야 합니다.

 

   내 마음이 어떠냐가 이웃에게 각인되는 내가 아니라 내가 그 이웃을 대하는 말하기와 생활태도가 바로 이웃에게 각인되는 나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잘 닦아 이웃을 대하는 성숙한 생활태도를 보일 수도 있고, 뒤집어 생각해서 이웃을 대하는 성숙한 생활태도를 연단해서 자기 마음을 닦아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은 그러기에 좋은 영하의 추위가 가득한 겨울이 시작되는 은총의 때입니다.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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