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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감목, 독립연회 구성논의 재점화1차 개혁포럼서 감리회개혁방안 모색하며 개혁앞당길 정치세력화와 중재자로서의 독립연회 굼불
심자득  |  webmaster@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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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4월 18일 (월) 22:17:55
최종편집 : 2011년 04월 22일 (금) 21:04:43 [조회수 : 6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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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감리교목회자개혁연대(이하 전감목) 제1회 개혁포럼이 오늘(18일) 정오 감리교신학대학 100주년기념관 국제회의실에서 70여명의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4시간여에 걸쳐 진행되었다.

 

   


포럼에서 “교회사에 있어서 개혁의 유형과 현대적 전망” 이라는 제목의 주제발표를 한 이충범 교수(협성대 역사신학)는 “교회사에서 개혁의 필요성이 되두되는 시기의 특징은 사회(교회)의 무질서, 사회구조적 모순, 교회의 부패와 비리, 문화(신학)적 아노미 등이 만연했던 시기이며 개혁이나 혁명은 한 두 명의 위인의 영웅적 활약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에너지의 축적으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 교수는 또 “제도적 개혁이나 구조의 전복을 꾀한 개혁자들은 투쟁이나 혁명을 통해 목표를 달성해 왔으며 정치, 경제권력, 민중의 지지 등을 획득한 경우 성공한 것으로 간주해 왔다”고 설명하고는 가장 이상적인 개혁으로 13세기의 성프란체스코 운동과 동시대의 베긴 여성공동체를 예로 들며 “악을 물리치기 위해 선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제 3의 길’로서의 개혁 대안을 제시했다.

 

논찬에 나선 박창현 교수(감신대 선교학, 건목연 소장)는 이 교수의 “선을 증대하여 악을 이기는 개혁의 대안은 발제자의 순수한 신앙적인 모습까지를 보여 주면서 개혁의 과제를 염두해 둔 우리 모두에게 좋은 논문”이라고 평가한 뒤 “과연 발제자가 제시한 베긴 운동 등이 오늘날 감리교 현실에 어떻게 실천 가능한지, 선을 증대하는 과정에서 악에 대해서는 침묵해도 되는 건지” 물으며 “역사가 왜곡될 때마다 비록 실패했지만 분연히 일어나 소리지르고 개혁의 바람을 일으킨 후 사라져간 이들에 대한 평가가 약화”될 소지가 있음을 우려했다.

또한 박교수는 “감리교 개혁을 몇 사람의 부패한 감독들의 손에 맡겨두고 그들이 양심을 회복하여 순수히 개혁하리라는 생각보다는 우리 모두가 양심을 따라서 분연히 일어서야 하는 것 아닌가”고 반문했다.

두 번째 논찬자로 나선 서호석 목사(창천교회, 운영위 부위원장)도 “ 발제물이 한국교회의 개혁적 모델로 적용할 수 있는 교회론적, 실천적 접근 방법에 대한 설명과 제안까지 이어졌으면 좋았을 것” 이라는 아쉬움을 남기며 “세습과 권력다툼, 물질숭배 등 교회를 사유화하고 공교회성을 무시하는 한국교회가 개혁의 대상이자 과제가 아닐까”고 구체적 개혁대상을 지목했다.

서호석 목사는 이어 감리교의 변화와 갱신을 위해 개혁입법마련, 선거제도, 의회제도, 감독제도, 은급제도, 최저생활비지원 등의 6가지 실천적 개혁과제를 언급하고는 이를 실현하기위해 전감목 조직을 평신도까지 확대하여 가칭 ‘감리교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회의’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개혁의 방법으로 “개혁총회”를 개최할 것을 제안하며 오래전 묻어 두었던 개혁총회를 다시 거론했다.

그러나 개혁을 이루기 위해선 ‘엄밀한 현실인식의 기반위에서 진행해야 한다’며 △ 감독과 목회자대표, 평신도 대표 등 감리교회 구성원 모두를 망라한 비상대책위 주도의 총회행정복원, △감리교회 내 개혁세력의 확산과 결합, △ 행정복원과 개혁세력의 확산에 바탕을 둔 지속적 감리교개혁작업 등이 순차적으로 이루어 져야 함을 강조하였다.


정상화냐 개혁이냐

발제와 논찬이 끝난 후 자유토론시간이 이어졌다. 김명섭 목사(강릉예향교회)는 “정상화가 개혁인가?” 물으며 감리회의 강한 정상화 바램이 개혁의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전감목이 ‘선 정상화 후 개혁’, ‘선재선거 후개혁’을 선택했지만 기존의 제도틀안에서 이뤄진 결과는 우울했다”고 지난날의 전감목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꼬집고는 지금 개혁의 기치를 높이지 않으면 안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서호석 목사는 “정상화가 개혁이란 말은 아닌것에는 동의하지만 개혁의 아젠다는 이미 마련되었다. 다만 개혁을 실천할 수 있는 물적 토대, 즉 행정복원을 통해 정상화가 되어야만 개혁이 실현될 수 있다는 뜻이다”고 설명했다. 유은식 목사도 “정상화가 이뤄지되 장정안에서 되어야 한다. 본부측, 김국도 목사측, 개혁총회 등 장정밖에서 이뤄졌던 모든 것이 부인됐었지 않았나. 선거-총회-입법총회가 장정에 정한 순서”라며 ‘선 정상화 후 개혁’을 지지했다.


제도개혁이냐 영성의 개혁이냐

차흥도 목사(농촌선교훈련원)는 “감리회 사태는 영적타락, 물신주의, 사유화 등으로 진행된 것이다. 제도개혁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영성의 개혁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그동안 제도개혁에 몰두한 전감목의 개혁 방향에 대해 재고할 것을 주문했다. 이혜심 목사도 “우리가 개혁의 타겟을 기득권자들에만 돌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부터 회개운동을 해야 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방법을 묻고 들을 때 감리회 사태도 해결될 것”이라며 전감목이 제도개혁과 더불어 영성개혁에도 관심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전감목, 독립연회 구성논의 모락모락


이날 토론회에서 독립연회 구성이 도마에 올랐다. 당초 본부측의 재선거 추진, 종교교회 총회결의 등과 김국도 목사측의 임마누엘과 천안 총회, 자격문제 등이 모두 부정된 현실에서 개혁총회만이 다음 대안이 아니겠는가 하는 조심스런 대안제시가 독립연회 구성 논의에 까지 나아간 것이다.

독립총회를 구성하자는 이야기가 나온 과정은 이랬다. 전감목이 교권다툼의 와중에서 중재역할을 할수 있는가 하는 문제들이 토의되는 와중에 서 모 목사가 개혁의 의지와 세력화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감리회를 이탈, 개혁총회를 열면 된다는 파격적 발언을 하면서 독립연회 구성 논의가 촉발되었다.

감리회의 개혁을 기득권자들에 맡길 수 없다는 것과 기존의 장정과 관습으로는 감리교회가 개혁이 될수 없다는 강한 불신을 배경으로 기존의 제도와 구별되는 이상적 교회를 추구하는 독립연회 혹은 대안연회 구상은 이미 전감목이 태동했던 2년 전에도 나왔으나 제도권안에서의 개혁을 외치는 전감목 다수의 의견에 따라 유보된 바 있다. 그러나 감리회사태의 장기화로 제도권안에서의 개혁이 난망해 지는 현실에서 독립연회 구성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자는 논의가 재 점화 된것.

그 방법으로 기존의 개혁연대 조직을 개혁연회, 혹은 독립연회로 개편, 회원들은 기존 교단에 대해 각종 부담금 납부를 거부하고 개혁총회를 열어 연회장 혹은 개혁감독을 선임, 전감목이 추진하는 개혁 입법안을 만들어 명실공히 개혁된 감리교회를 실현한다는 방안이다.

그러나 전감목의 독립연회 구상은 기존의 감리회 기득권을 향한 개혁의지 관철, 감리회사태 중재라는 실용적 목적이 더 강한 동기인 것처럼 보였다. 독립연회 구성을 통해 강력한 정치세력을 구축한 후 기존의 기득권을 설득하여 개혁법안을 관철시키는 동시에 당사자들을 중재하여 감리회 사태도 풀어보자는 실리론이다. 

한편, 과연 전감목 구성원들이 이상향과도 같은 독립연회를 이끌어 갈만큼 검증되고 개혁된 제도를 준비했는가와 기존의 부패상을 극복할 만한 신앙적, 도덕적 준비가 되어져 있는지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즉 전감목 자신은 개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가 선결되지 않고는 또다른 권력의 양산이 될 뿐이며 대중적 지지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신중론이 대두 되기도 했다.

전감목은 오는 6월 9일부터 10일까지 속초에서 2차 개혁포럼을 열고 오늘 논의를 바탕으로 ‘어떤 개혁을 할 것인가’하는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주요 토론 내용

토론회 과정에서 사회자가 최형근 목사(한마음교회)민경보 목사(전감목 사무처장)로 바뀌며 개혁현안으로 의제를 국한하여 토론을 이어갔다. 독립연회 제안이 나오기 까지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실명을 배제한 서기록 형태로 구성한다. .

민OO - 지난동안 문제가 발생하면 타협으로 봉합하여 왔기에 변화라는게 생기지 않았다. 전감목이 재선거에 뜻을 모았지만 열매는 좋지 못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이야기해 보자.

김OO - 뜬구름 잡는 토론이 되선 안된다. 구체적이고도 실증적이어야 한다.

장OO - 실제적인 개혁안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다. 무엇을 버릴까, 무엇을 지킬까, 무엇을 취할까를 토론했으면 좋겠다.

김OO - 정상화가 개혁인가? 법이나 장정을 통해 정상화가 된다고 하는데 재선거, 총회 다해봤지만 안되고 있다. 이제 개혁총회만 남았다. 그동안 개혁총회 못한 이유는 장정상 불가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러나 이젠 설득력이 없다. 3천명이 서명한 개혁총회 추진해야 한다.


* 개혁총회 - 11개 전 연회원이 참여하여 감리회의 근본적 변화를 시도하자는 개혁총회안이 2009년 후반기에 3천여명의 서명으로 전감목에 의해 주창되었으나 총회소집권자가 부재한 상태에서의 총회소집은 그 형태가 무엇이든 불법이 될수 밖에 없다는 것과, 총대가 참여하지 않으면 총회구성이 안된다는 등의 장정상의 한계를 이유로 감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편집자 주)

김OO - 개혁총회안은 임시의장이 받아 주면 된다. 안되면 차선을 택해야 하는데 김국도 목사측 제안은 다 끝났다. 총회결의부존재 판결도 나왔다. 양측이 다 안된 상황이다. 정통성 가진 쪽에서 추진한 총회도 과반수 안되었다. 중립 목회자들은 양쪽다 신뢰안한다.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양대세력이 모여 대화를 하고 안을 만들어 나가지 않는 한 현실적 감리회 수습은 무의미 하다고 생각한다.

유OO - 재선거가 장정대로 안했기에 부정된 것이다. 이유를 점검해 봐야지 무조건 안해봤던 것 해보자 해선 안된다. 신OO 목사 뿐 아니라 고발자들에 의해 감독회장 선거 무효소송부터 직무정지, 가처분, 총회결의부존재 등등.. 감리회가 해온 일들 다 무너져 가고 있다. 종교교회 총회 무효되면서 연회감독 지위까지 거론되고 있다. 사회법은 잣대를 중심으로 판단하지만 장정은 양보 순응 끌어안자는 이야기다. 부담금 문제의 경우에도 12월31일을 시한으로 잡지만 날자 안지켰다고 이제껏 회원권 박탈한 적 없었다. 법취지는 그게 아니다. 부담금 거두는데 있었다. 교리와 장정 안에서 해결법을 고민해야 한다. 고소고발자들이 감리회 개혁위해 했다고 하나 붕괴시키는 것으로 작용하지 않았냐. 해당연회에서 치리하는 방법 연구해서 그들을 권면하고 징계해야 한다.

최OO - 법적 해결과, 정치적 해결하는 방법이 있는 것 같은데 유OO목사 발언대로 장정안에서 해결하자는 말은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장정이 정확하고 세밀하게 입법되어 있지 않다. 서로 충돌하고 모순되는 것도 많다. 감독회장 자격에 대해 법이 있어도 유권해석에서 정치적으로 해석해 버리는 바람에 복잡해지지 않았나. 지금도 장정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하는데 어떻게 해결하자는 것인가? 법해석이 정치적으로 충돌하고 있지 않은가. 법정신 모두가 공감하면 되는데 장정 문구로 다투게 되면 상반된 결과 나온다. 장정이 정치적으로도, 법적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감독회장 자리를 두고 다투는 현실에서 둘 세력을 중재할 수 있는 세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감리회에 중립이 없기 때문이라는 의심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어떤 대표자도 조정역할 감당 불가능한 상황이다. 법과 정치가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감목이 제3의 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서OO - 정상화할거냐, 개선할거냐, 개혁할거냐 중 방향을 정확히 하자. 정상화하려면는 총회개최청원하면 된다, 개선하려면 정치적 합의 도출 창구가 되면 된다. 개혁을 할거면 이탈을 해서 개혁총회 열면 된다. UMC가 본부 저항방법으로 선택했던 부담금 납부거부 등의 방법을 쓰면서 총회를 따로 열어 임시감독회장을 뽑은 후 본부-송파-전감목 3세력이 현실적 세력이 되어 예전 갱신처럼 상대방에 타협되며 일부적인 개혁이라도 성취해 갈 수 있다. 2년간 우리가 열심히 했지만 법에 걸리고, 정치적 힘에 밀려서 개혁 못하게 됐다. 큰 맘먹고 결정하자.

성OO - 정상화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2년내에 끝나지 않겠나. 정상화 과정 속에서 개혁의 목표는 개혁연대에서 이미 설정해 놓았다. 개혁연대로는 안되고 개혁연회로 가야한다고 본다. 연회장이나 개혁감독이라도 세워서 강한 세력화로 상대방을 압도해야 한다. 부담금 십분의 1만 내고 9는 우리가 쓰면 된다. 정치세력화를 왜 꺼리는지 모르겠다. 개혁연회로 가서 소수라도 강력한 세력으로 거듭나야 저들이 개혁을 받아 들일 가능성 있다고 본다. 송파측에선 어떤 타협도 안하지 않는가.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연대아닌 분명한 정치세력화인 개혁연회로 가서 눈에 보이는 뚜렷하고도 강력한 개혁 조직으로 가야 한다.

손OO - 두 목사님 의견에 동의하며 나는 이름만 다르지 독립연회라고 이름붙이고 싶었다. 극단적으로 하면 탈퇴할 수도 있다는 배수진 치고 개혁을 해야지 이대로 변죽만 울리며 가서면 개혁의지마저 사라지고 만다. 개혁연회, 개혁총회, 독립연회 이름이 어떻든 순수열망 가진 사람들이 세력화 하지 않으면 이 문제를 풀어 갈 수 없다고 본다. 그것을 위해 2차 포럼때는 임시총회라도 열어 지도부 재구성 해야. 전감목 지도부 선배님들 다 존경하고 인정하지만 구조적으로 기득권에 머물고 있어 풀어낼 힘이 없다고 본다. 지도부 개편되어야 하고 개혁 원한다면 물러서 계시며 힘을 보태주시는거 어떤가?

유OO - 강도가 높게 이야기 되고 있는데 이렇게 가야 강력한 동기가 되어 개혁 되겠지만, 독립연회로 간다해도 이성적으로 독립연회 꾸려갈 준비가 되었는지 돌아보자. 자리문제, 부담금 문제로 또 손가락질 당하는건 아닌지 두렵다. 부담금 철저하게 내고 정직하게 섬기는 종의 자세 등의 순수한 빛과 선한 세력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준비가 된건지... 그게 아니라면 제3의 타락한 정치세력이 될 수 있다. 지금 열정이 있겠지만 자기개혁이 되어 있지 않으면 감독추대 문제 등에 부딪히면서 또 한번 우스워 질 수 있다. 유지재단에 부담금, 교회재산 풀어주자는 서명운동에 나더러 앞장서 달라는 극단적 이야기가 지방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동시에 독립연회에서 올바른 교회가 만들어 지고 있구나 하는 신뢰를 바탕으로 독립연회에 참여할 평신도와 목회자들에게 철저한 강령이 만들어지고 내부적으로 엄격한 치리문제, 섬기는 종의 자세 등 스스로의 분명한 개혁이 세워지지 않으면 이 논의는 실패한 역사의 되풀이가 될 뿐이다. 우리가 복음안에서 정말 변화되었는지를 점검해 본 뒤 독립연회 주장해야 옳다. 거룩한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이라는 소명앞에서의 자기개혁의 약속이 선행되어야 한다.

조OO - 답답하지만 정치문제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변화되는 결단 없으면 개혁안된다. 지금 더 나빠질 것도 없는 정치상황이다. 눈앞의 정상화도 중요하지만 2-3년 뒤에 감리회에 소망 가질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제는 길게 보고 준비하자. 과정의 방법론으로 개혁총회니 독립연회니 고민하고 있는데 개혁총회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말 없는 다수의 성도와의 소통이 없었음이 문제이다. 방법론의 문제보다 소통의 문제 해결이 전감목의 더 큰 고민이 되어야 겠다.

이OO - 중부연회에 개혁연대 회원 50여명 있다. 그런데 이들은 오늘 모임에 큰 관심없어 보였다. 감리교상황 때문에 무언가를 하자는 이야기 보다 자체 동력을 위한 신앙운동 개발 같은 것을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상화에 대한 관심보다 우리의 변화에 대해 고민하는 전감목이 됐으면 좋겠다. 정치현실에 따라다닐 것 없다.

최OO - 3000명 서명이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나? 2-30여년간 쌓였던 감리회 문제가 폭발한거 아닌가. 도무지 감리교회에 미래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아닌가. 지난 세월 돈선거 알면서 묵인해 온 것. 반쯤은 분노를 품고 총대 자격도 없는 젊은층이 나서게 된 것이다. 감독회장문제 터지지 않았다면 아무도 문제제기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감리교사태 와중에 실시된 선거에서도 돈 오갔다. 기대할것이 없는 감리교회다. 전감목이 제3의 세력이 되어야 한다는데 공감한다. 독립연회..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할 문제다. 우리가 조정할 수 있는 실제적 힘을 획득하기 위해서라도 구성해야 한다. 지금보다 나은 형태의 감리회 만들 수 있다는 희망만 제시할 수 있어도 절반은 성공이다.

조OO - 많이 참석해서 감사하다. 발제해준분도 기대했던것보다 풍성했으며 그동안 해 왔던 발제와도 달라 유익했다. 대화중에는 강성발언도 있었다. 그런데 어떤 개혁을 할거냐고 하는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이 이야기가 나오면 모두 다른 말을 할 수도 있다. 6월 포럼에서 제도 등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개혁의 방향을 정하자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만하고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 논의한 후 그 다음 논의를 이어가기로 하자. 충분한 토론 위해 1박2일로 할 것이다. 개혁과제연구소팀에 강성만 모여 있어 독립연회결론이 뻔할 거 같다. 우린 모두가 같이 가보자는 것이니 서호석 목사가 같이 참여해 달라.

민OO - 6월 9(목)-10일(금). 속초 설악동 한경직 목사 기념관에서 2차 개혁포럼 예정하고 있다. 전감목 3대개혁안의 객관적, 현실적 근거, 성서적 신학적 근거, 전감목의 방향성 등을 토론하고자 한다. 2차 개혁포럼을 마치고 가지는 토론에서 실질적인 개혁을 위한 모임이 되길 바란다. 이제 기도회를 이어가겠다.

 

   
▲ 김고광 상임대표의 기도로 시작
   
▲ 사무총장 민경보 목사의 참석자 소개 및 안내
   
▲ 감신대학교 김홍기 총장의 인사
   
▲ 정책위원장 최형근 목사의 포럼 사회
   
▲ 이충범 교수(협성대학교 역사신학)의 발제 "교회사에 있어서 개혁의 유형과 현대적 전망" 40분
   
   
   
   
   
   
   
▲ 논찬 1 박창현 교수(감신대 선교학)
   
▲ 논찬 2 서호석 목사(창천교회)
   
   
   
   
   
   
   
   
   
   
   
   
   
   
   
   
   
   
   
   
   
   
   
   
   
   
▲ 기도회 이종목 목사인도

 


 

포럼 자료

< 주제 발제 >
교회사에 있어서 개혁의 유형과 현대적 전망

이충범 교수
(협성대 역사신학)

1. 서론
최근 거의 모든 목회자, 신학자, 신자들이 느끼고 있는 공통감정은 수치심과 위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연일 지면이나 인터넷에서 터져 나오는 개신교에 대한 부끄러운 보도들, 장로대통령의 본 교회에서 벌어진 일들과 일련의 정치적인 사건들, 인터넷에 넘쳐나는 안티기독교 사이트들, 그리고 이미 2005년 인구센서스에 드러난 신자의 감소 등이 우리에게 위기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이다. 더군다나 우리의 교단은 현재 오랜 동안 교단장을 모시지 못하고 있고 이에 따른 내홍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일련의 최근 상황에 대하여 개혁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목회자로서, 아니 신자로서 너무도 당연하고 옳은 일이다. 때문에 <전국감리교목회자개혁연대, 이하 전감목>라는 모임은 어두운 현실 속에서 한줄기의 희미한 빛을 느끼게 하는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현실에서 개혁을 꿈꾸는 사람들이 교회의 역사 속에서 개혁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궁금해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분주한 와중에 어떠한 이유로 이 부담스러운 소임을 감당하게 된 본 발제자는 무엇보다도 발제자를 초청해주신 분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본 모임에 발제자를 초청해주신 분들이 교회사 안에 나타난 개혁운동들의 나열이나 그 역사적 경과들을 연대와 인물 순서로 읊조리는 말씀을 기대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교회사책을 들쳐보면 누구나 다 접할 수 있는 교회사 안의 개혁운동들을 공부하고자 하는 의도도 아니라고 믿는다.
오히려 전문가입네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교회개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하고 묻고 싶어 할 것이고, 이것도 못한다면 적어도 “교회사의 전문가인 당신들, 신학자입네 하는 그대들은 교회개혁을 꿈꾸는 우리에게 어떠한 훈수라도 둘 수 있는가?”하고 묻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발제자의 판단이 발제자 개인의 관심과 판단에 따른 편견일수도 있다. 다만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면서 발제자는 적어도 교회역사의 전문가입네 하는 신학도로서 이 혼란의 와중에 대안적 제시를 할 수 없더라도 개혁의 열망을 진심으로 토론할 수 있는 역사적 견해를 보여주는 것, 그리고 나름대로의 훈수를 두는 일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신학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왔다. 따라서 발제자는 본 글을 역사적 정보중심보다는 교회사를 거시적 안목에서 바라보면서 필자가 이해하고 있고 제안하고 싶은 역사학자로서의 신학적 견해를 피력하는 것으로 꾸며가고자 한다. 따라서 발제자는 이 글을 다음과 같이 엮어 가려고 한다.

첫째, 교회사에 명멸했던 개혁운동들의 특징들을 발제자 개인의 신학적 판단에 따라 정리하고 개혁운동의 유형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개혁운동의 성격을 규정하고 개혁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청중들의 토론을 이끌어 보고자 한다.
둘째, 수많은 개혁운동들과 구별되는, 그래서 발제자가 가장 이상적인 개혁운동이라고 평가하는 역사적 사건을 분석-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역사적 교훈을 찾아보고자 한다.
셋째, 개혁이 영원히 성공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특성을 제시하고 영원한 개혁자로서의 그리스도정신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발제자는 현대학문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
시대적으로는 중세를 중심으로 발제하나 단지 중세가 발제자의 전공분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연유는 결론부분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다. 또한 기존의 개혁운동의 서술방식을 탈피하고자 하며 글의 서두부터 마지막까지 신학자로서의 발제자 개인의 신학적 견해로서 글을 구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이 갖고 있는 학문적인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 한계는 역사적 유형론은 복잡다단한 시대적 상황을 지극히 단순화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복잡한 시대상황으로 인하여 유형과 유형이 서로 겹치거나 중복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제자는 이러한 시도를 통하여 본 모임에서 진지한 토론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이러한 진지한 토론과 실천이 모여서 우리 교단의 미래에 대하여 긍정적인 공헌을 하길 기대해본다.

2. 개혁의 요소들
1) 개혁의 필요성과 대상들
교회사에서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시기의 특징은 사회(교회)의 무질서, 사회구조적 모순, 교회의 부패와 비리, 문화(신학)적 아노미 등이 만연했던 시대라는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교회개혁운동이 이 모든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명확한 인식을 위하여 개혁운동 중에서 각 요소가 두드러진 운동들을 일별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 그레고리(540-604)의 개혁은 대표적으로 교회적 무질서를 개편하는 방식의 개혁이었다. 주지하다시피 395년 동서로마가 분리되고 476년 서로마가 공식적으로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동고트의 테오도릭(Theodoric)의 로마정복과 더불어 제국은 무질서와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 교회는 중앙의 권력에서 놓여나게 되어 지역주교들과 세속 군주들의 사영화의 길을 걷게 된다. 또한 게르만족 및 여타 지역민족의 문화와 결합하는 현상을 보이게 된다. 따라서 그레고리의 개혁은 교권의 중앙집권화 과정이자 교회의 표준문화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즉 그레고리의 개혁은 교회와 사회의 최소한의 안전을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결국 그레고리의 개혁은 서구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대부분의 개혁이 사회구조적인 모순과 이에 따른 교회적 부패와 비리와 긴밀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실 루터의 종교개혁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종교적인 모순과 부패에 더욱 초점이 맞춰진 보다 순수한 영적 개혁의 예로서는 11세기 이후 이루어졌던 수도원 개혁이었다. 몰레슴의 로베르(Robert of Molesme)가 창시하고 그의 후계자 베르나르(Bernard of Clairvaux)에 의해서 주도된 시토(Citeaux)수도회의 탄생, 그리고 그 후 연속해서 창설된 카르투시오(Carthusians)와 카말돌리회(Camaldoli)의 개혁을 이러한 예로 들 수 있다. 이들 모두 순수한 수도회의 정신에서 멀어져가고 세속권력과 융합했던 수도원들에서 벗어나 순수한 수도회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려는 역사적 동선을 갖고 있었다.
수도원의 개혁과 병행하여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개혁의 시도들이 이루어졌는데 대표적인 개혁운동으로 11세기 개혁운동의 삼총사, 그레고리 7세, 페트루스 다미아니(Petrus Damiani), 훔베르트(Humbert)의 개혁을 들 수 있다. 이들 모두 수도사 출신이지만 당시 교회개혁의 이론적 토대와 핵심적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었다. 특히 이 중 그레고리 7세의 개혁은 성직수임권이 중심적 투쟁의 논제였으나 이를 계기로 성직매매, 독신제도, 속인임명제 철폐, 교회의 행정장악 등을 이루어냈던 중요한 개혁이었다.
가장 진보적인 사례로서 사회구조적인 모순과 종교적인 열망이 함께 깊이 융합되었던 개혁운동은 토마스 뮌처(Thomas Münzer)의 혁명을 들 수 있겠다. 뮌처의 운동이 비록 반봉건 민중혁명으로 분류될 수 있을지언정 그는 신학을 전문으로 했던 신학자이다. 때문에 그가 선동의 이념으로 택했던 것은 요아킴(Joachim of Fiore)의 종말론과 세대주의 신학이었다. 따라서 뮌처의 혁명은 교회에 대한 민중의 증오를 토대로 중세 후기의 사회정치적 질서에 대항하여 일어난 혁명이었지만 이 운동은 신학을 기초로 한 교회개혁 운동과 만나 더욱 더 증폭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운동은 제도적 교회 밖(extra ecclesiam)의 운동일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셋째, 문화 및 신학의 아노미 상황과 그 상황이 초래하는 교회의 부패에 대항한 개혁을 교회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발제자는 그 대표적인 사례를 루터의 오직 은총으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서로 라는 캐치프레이즈 속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사실 중세의 신학과 종교문화는 죄의식의 지나친 발달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다. 중세 대중신학은 죄의식이 지나치게 발달함에 따라 그것을 해결해야만 하는 성사(聖事)가 중요시 되었고 성사의 발전은 성직자들의 권력을 한층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행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모든 빚을 엄격히 계산하는 빚쟁이가 되었고 죄의식은 한층 심화되어서 인간을 우울증 환자로 만들어놓고 말았다.
발제자는 지난 5년 간 글쓰기를 통해 죄의식과 속죄교리가 배태한 종교문화, 특히 여성의 종교문화에 대한 글들을 써 왔다. 이 글들을 통해 발제자가 밝히고자 한 것은 원죄교리와 죄의식에서 해방되기 위한 방식으로 중세는 육체에 고통을 가하는 장치들을 마련해왔고 이 장치들 때문에 희생된 자들은 여성들, 소수자들, 비경제적 인구들이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죄의식의 발달은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치를 필요로 하고 대표적인 장치는 성사와 제도이다. 따라서 면죄부제의 발달이 이와 무관하지 않음을 우리는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죄의식의 발달에 따른 인간의 우울과 이를 이용한 교권의 부패에 루터가 던지 화두는 은총, 성서, 믿음으로 그 죄의식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루터의 개혁은 여러 각도에서 이해가 가능하지만 발제자는 죄의식의 해방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면에서 루터의 개혁은 종교교리 및 종교문화의 개혁이라고 볼 수 있겠다.

2) 개혁의 주체들과 방법론들
개혁의 주체를 통해 개혁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발제자의 신학으로는 불가능하다. 개혁이나 혁명은 한 두 명의 위인의 영웅적 활약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에너지의 축적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 발제자의 기본적인 개혁에 관한 이해이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교회개혁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교회개혁의 구체적인 방향성을 위하여 필요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교회개혁의 주체들을 구별해보고자 한다.

첫째, 정치권력을 가진 개인 리더십에 의하여 개혁이 추진된 사례들을 들 수 있다. 위에 잠시 언급된 그레고리 7세의 개혁이 정치권력을 가진 개인에 의하여 수행된 대표적인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힐데브란트라고 알려진 그레고리 7세는 약 12년 간의 제위기간 거의 대부분을 개혁을 위한 투쟁으로 보냈다. 젊은 시절부터 교황의 수행비서로서 교권의 핵심에 있던 힐데브란트는 오히려 교회의 화려한 삶을 비판하고 금욕적인 삶을 지향했다. 그리고 교황으로 등극한 후 그는 분명 교회 안에서 인기 없는 교황이었지만 주교들과의 투쟁, 속권과의 투쟁을 통하여 교회개혁을 이루어냈다. 매우 재미있는 사실은 그에게는 평신도의 강력한 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정치권력을 가진 소수자 및 교권주도적 인물들에 의하여 수행된 개혁도 있다. 앞서 언급된 수도원 개혁이 이와 같은 사례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둘째, 정치적 권력이 배제된 리더십에 의하여 개혁이 시도된 사례도 있다. 앞서 언급한 토마스 뮌처와 루터 및 칼빈의 개혁이 이와 같은 사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도의 특징은 정치적 권력에서 소외된 영웅적인 인물들에 의하여 주도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등장하기 소위 중세 복음주의의 세 물결이었던 발도(Waldo)의 개혁정신과 영국의 위클리프(John Wyclif), 보헤미아의 얀 후스(John Hus)의 경우도 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극단적 청빈, 복음전파, 순회설교, 성직제 거부, 포기신학 등을 강조했던 발도파는 상인 피에르 발데스(Pierre Valdes)에 의해 주도되었다. 1182년 리옹에서 추방당하고 1184년 베로나에서 이단으로 파문과 대규모 박해, 그리고 1690년 재정착 할 때까지 500여년 동안 발도파가 박해에 대항할 수 있었던 정치적 권력은 없었다.
위클리프와 후스 역시 정치권력에서 배제된 유약한 신학자였다. 교황권 부정, 화채설 부정, 성서의 권위 강조, 청빈 사제론과 교회론 등 급진적 개혁을 주장하였던 위클리프와 후스가 박해를 가하던 교회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저술을 통한 정치선전 및 교육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외침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만 끝나지 않았던 이유는 세속권력의 이용과 더불어 민중들의 지지였다.

개혁자들 혹은 개혁집단들의 개혁의 최종적인 목표는 두 가지로 대분될 수 있다. 그것은 제도적 개혁과 구조적 전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개혁집단들은 투쟁의 방식과 혁명의 방식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항들을 조합하면 다음과 같이 네 가지 방식의 방법론이 도출된다. 첫째, 제도적 변화를 위한 정치적 투쟁의 방식, 둘째, 제도적 변화를 위한 혁명적 방식, 셋째 구조적 전복을 위한 정치적 투쟁의 방식, 넷째, 구조적 전복을 위한 혁명적 방식이다. 그러나 두 번째 항은 논리적 모순이므로 실재로 검토 가능한 항은 세 가지인 셈이다. 이중 셋째 항은 구조적 전복을 위하여 시도된 개혁이 혁명적 실천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중도에 사멸되거나 포기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제도적 변화를 위한 정치적 투쟁의 방식은 대부분의 개혁자들이나 개혁집단들이 취했던 방법론이었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을 이러한 잣대로 구별해보면 대 그레고리, 11세기 수도원 개혁, 시토회 창설, 그레고리 7세의 개혁 등이 이러한 예에 포함된다. 이 중 대표적인 사례 하나만 살펴보면 그레고리 7세는 자신의 개혁목표를 관철하기 위하여 세속군주와의 정치적 투쟁을 시도한다. 그것이 중세교회사 전체에 걸쳐 가장 유명했던 사건 중 하나인 카놋사 굴욕사건이다. 평신도 무자격자에게 주교권이 매매되는 것을 개혁하기 위하여 그레고리는 1075년 로마 공의회에서 평신도 서임권의 절대금지를 천명하고 이에 굴복하지 않는 하인리히 4세를 이듬해 2월 파문시켰다. 파문사건이 발발하자 우습게도 독일의 주교들은 교황 그레고리는 탄핵했으나 세속 지방권력들은 교황을 옹호하였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그레고리는 주교서임권을 확보하게 된다.

구조적 전복을 위한 정치적 투쟁의 방식의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는 위클리프, 후스, 루터의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위클리프, 후스, 루터가 공유한 전복에 대한 아이디어는 첫째, 교황권 및 사제권의 거부로 표현되었다. 이들은 기존의 중세사회가 갖고 있었던 교회의 계서조직의 해체를 강하게 주장하였고 이것이 곧 하나님의 뜻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외에도 이들은 내적 이데올로기인 교리에 대하여 극단적인 거부 및 수정을 가하였다. 구체적으로는 화채설과 성사의 대부분을 거부하였다. 또한 신과의 소통방식과 칭의교리를 통해 수정하였다,
그러나 루터의 개혁은 역사가들의 세 가지 질문 1) 왜 그는 로마와 단절을 하려고 했는가? 2) 왜 독일민중은 그의 선동에 동조했는가? 3) 왜 유력한 독일군주들이 그의 개혁을 지원했는가? 하는 질문에 답을 함으로써 그 색채가 드러난다. 비록 루터가 자신의 시대에 만연했던 종교적 부패, 미신, 기만, 면죄부 등을 혐오해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나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의 일부일 뿐이다. 정치적 이유, 경제적 이유, 독일이 갖고 있던 지역적 상황 등이 루터의 교회개혁에 전적으로 동조할 수밖에 없었고 루터의 용기 있는 행동은 이러한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따라서 성장한 소상공인들이나 제후들의 기득권을 뿌리부터 흔들었던 농민봉기와 뮌처에게 루터는 “은밀하게든 공개적으로든 두들기고 목 조르고 칼로 찌를 것이며, 반란에 가담하는 자보다 더 해로운 것은 없음을 기억하라”며 강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결론적으로 위클리프는, 후스, 루터의 개혁은 교회의 혁명적인 전복을 목적으로 시도된 개혁이었으나 시대적 상황에 따른 한계로 인하여 근본적 혁명과 실천(프락시스)이 배제된 정치적 투쟁의 방식에 머물렀던 개혁이었다.

구조적 전복을 위한 혁명적 방식의 대표적인 사례는 중세의 대표적 이단 카타리(Cathars)와 토마스 뮌처의 개혁을 꼽을 수 있다. 12세기 북부유럽에서 발흥하여 프랑스 랑그독(Languerdoc)의 알비(Albi)시 그리고 이탈리아로 퍼진 카타리 이단은 첫째, 그 신념체계부터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상이한 동방적 이단이었다. 이들은 철저한 이원론자들이었고 육체를 경멸하였고 환생교리를 갖고 있었다. 철저한 가현설을 믿었기에 십자가는 고문도구로서 혐오하였고 성례의 효용성을 부정하였다. 둘째, 이들은 전통교회의 제도들을 완전히 부정하였다. 교황제, 연옥설, 화체설, 면죄부, 원죄교리 자체를 철저히 부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계서조직도 인정하지 않았다. 콘솔라멘툼(consolamentum)을 받은 완전자들은 남성 뿐 아니라 여성도 사제로서 성례를 집전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이들의 종교재판에 참여했던 안셀름(Anselm of Alexandria)이 남긴 노트에는 카타리들이 스스로 선출한 주교들까지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209년 십자군이 이들을 학살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들은 중세가 구축하였던 그리스도교 교리, 신학, 제도라는 고딕건축물을 근본부터 뒤흔들었던 것이다.

3. 교회개혁의 유형별 도식
이제까지 개혁의 필요성 및 개혁의 요소들과 개혁의 주체와 방법론들을 검토하였다. 이러한 검토를 쉽게 도식화하면 다음 표와 같다. 단지 도표 상의 성공과 실패라는 기준은 편의를 위한 임의적 구별이다. 왜냐하면 개혁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기준은 또 다른 논의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단정하여 규정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현상적으로 성공과 실패를 분류하였는데 그 특징을 보면 시대적 상황, 정치 및 경제 권력, 민중의지지 등을 덧입은 경우 현상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간주하며 그렇지 못한 반대의 경우는 실패한 것으로 간주했다.

원인
(주도세력) 정치권력
제도변화
성공: 그레고리 7세, 카롤링거 개혁
실패: 역사책에 있을 수 없는 사례들
구조변화
성공: 시도된 바 없음
실패: 시도된 바 없음
비정치권력
제도변화
성공: 16세기 카르멜 수도원 개혁
실패: 발도
구조변화
성공: 루터(권력의 지원)
실패: 뮌처, 카타리

4. 제 3의 길
1) 원론: 면역과 보양요법
발제자가 좋아하는 경구중에 악을 물리치기 위해서 선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한마디로 그래샴의 법칙의 전도, 즉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하는 것이 아니라 양화로 하여금 악화를 구축하게 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발제자에겐 이런 경구에서 선과 악 같은 가치를 내포한 명사들을 가치중립적으로 바꾸어보면 더 훌륭해 보인다. 왜냐하면 이 경구는 가치를 제거하면 신학이나 윤리학 뿐 아니라 자연과학 전반에 걸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한다면 그 어떤 것이 또 다른 것을 잡아먹거나 말살시키거나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공격해서 사멸시키는 방법보다 자신의 몸집을 키우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완벽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사고는 서양보다도 동양에서 더 일반적이었다. 암(癌)에 대한 동서양의 의학의 접근법을 비교하면 매우 명확한 대조를 볼 수 있다. 가령 서양의 의학은 암이라는 질병을 치유하기 위하여 항암제를 투여하여 암을 공격한다. 그리고 키모 세라피(chemotherapy)나 외과적 수술을 통하여 암을 제거해내려고 한다. 이에 반해서 동양의 의학은 암 본체 자체를 건드리지 않는다. 반대로 건강한 세포들을 증식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여 암을 몰아내거나 면역체계를 더욱 강화시켜 암을 이기게 하려고 노력한다. 즉 이들은 면역요법(immunotherapy) 및 보양요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동서양의 게임도 이와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서양의 체스게임은 자신의 말(馬)을 가지고 상대방의 말을 공격하여 잡아먹음으로 승리한다. 외과적 수술이 반드시 해부학적 지식을 따라서 행해져야 하며 체스의 말들은 철저하게 코드화된 말판의 길을 따라 규칙을 지켜야만 한다. 또한 장기(臟器)들은 각자 자신의 기능을 가지고 있듯이 말들은 각자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행동반경은 코드화되어 있다. 동일한 방식으로 바둑을 둘 때 고수들은 남의 바둑알을 잡아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바둑돌을 연결시켜서 자신들의 영토를 넓혀감으로써 상대방의 영토를 점점 잠식해 들어간다. 바둑돌은 정체성이 없다. 즉 주체(subjectivity)가 없다. 단지 색으로만 아군과 적군이 구별될 뿐이다. 또한 코드화된 길이 없다. 단지 상대를 둘러싸거나 자신의 담을 넓히기 위하여 영토를 만드는 영토화(territorization)를 할 뿐이다. 이제 발제자의 정체를 드러내야 할 시점이 왔다. 발제자는 이와 같은 원칙으로 진행되는 개혁이 가장 이상적인 개혁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이러한 개혁의 예들이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개혁이 13세기 탁발수도회의 창립자 성 프란체스코(St. Francis)의 운동과 13세기 베긴(Beguine) 여성들의 공동체이다.

2) 개혁 방법론과 역사적 사건: 전염, 신드롬, 전투 없는 전쟁
발제자가 제시한 두 운동의 특징을 열거하면 첫째, 이 두 운동은 정체성을 찾기 어렵다. 따라서 딱히 개혁이라고 지칭하기도 어렵다. 다만 이 두 운동은 당시 교회에 새로운 물결을 치게 만들었고 부패한 교회로부터 수많은 분자들의 이동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다시 말하면 개혁이나 혁명 없는 변화를 몰고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이 운동들의 공통점은 교회의 비리, 부패, 교리, 문화, 모순에 대하여 강한 거부감이나 투쟁이 없다. 세 번째, 이 운동은 정치적 권력을 갖지 못한 평신도로부터 시작하였다. 일부 사제들은 이 운동에 전적으로 투신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조력자로 머물러 있었다. 네 번째 이 운동들을 통해 기존 교회의 제도변화, 인적청산, 교리적 혁명 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기성교회에 집중하던 에너지는 이 운동들에 투여되었고 기성교회는 약화되거나 자정하기 시작하였다. 다음은 베긴공동체의 탄생을 통하여 이 운동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 전사가 없다.
베긴 여성들은 통일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너무도 다양해서 규정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베긴은 대체적으로 두 부류가 있었는데, 방랑하는 베긴과 정착하여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베긴이다. 그러나 정작 그 시대에 방랑하는 베긴들이 자신들을 베긴이라고 인식하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레르너(Robert Lerner)의 연구에 따르면 독립적인 삶을 살았던 베긴들은 자유 신령파(Free Spirit)들이며 이들의 대부분은 교육을 받아서 문자해독력이 있는, 당시로서는 부유하고 지적인 가문 출신들이었다고 한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사실은 베긴 공동체가 매우 다양한 층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이다. 베긴의 수녀들은 다양한 계층에서 온갖 각처에서 몰려왔으며 공동체는 비교적 매우 짧은 시기에 급성장하였다. 따라서 초기 베긴들과 베긴 공동체를 통일된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이들은 기존에 존재하던 그 어떤 규격화된 종교적 기관이나 전통과 연관관계가 매우 희박한 형태들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모습도 매우 다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베긴들의 오리무중과 같은 특징을 앤더슨(Elizabeth Andersen)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해서 베긴들은 단순히 경건한 평신도 여성들에 불과하다. .. 그런데 베긴들에 관하여 매우 강하게 흥미로움을 유발시키는 것은 이들이 따랐던 삶의 방식이 그들의 다양성 출신배경만큼, 예외적이고, 변칙적이고, 때로는 상호 모순되는 그런 특성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발제자는 시간 관계 상 프란체스코와 그의 형제들의 역사적 연구를 보태지 못했다. 그러나 발제자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그의 형제들도 초기에 매우 다양한 그룹들이 있었는데 창시자 프란치스코와 주변인물 외에 특별한 직함이나 직능이 없었다. 따라서 이 운동들의 특징이라면 앞서 언급한바 바둑알처럼 주체 없는 분자들에 의하여 주도되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너무도 다양해서 공통성도 없었다. 베긴 구성원들은 다양한 층에서 나왔는데 농민이나 하인계급 출신부터 귀족출신들이 함께 공동체를 구성하였다. 또한 그 안에서는 처녀부터, 과부, 그리고 결혼한 여인들이 자녀들과 함께 삶을 영위하였다. 한마디로 베긴 공동체는 그 시대에 있던 여성들의 계급과 직업을 모두 보여주었다.


- 전선과 전투가 없었다.

그는 교회에 대하여 단 한마디도 비판하지 않았다.

주지하다시피 프란치스코 탁발교단 설립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그들은 교황청의 의심과 조사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교권과 대립하였다는 아무런 증거를 찾을 수 없다. 그룬트만(Herbert Grundmann)에 따르면 초창기 베긴들은 교회의 칭찬과 찬양이 있었을 정도였다. 비트리의 제임스(James of Vitry)는 베긴을 “교회의 희망이요 기독교 경건의 새로운 물결"이라고 극찬했고, 링컨의 주교였던 로버트 그로셋(Robert Grosseteste)은 베긴의 종교생활은 성화과정에 있어서 가장 높은 단계의 생활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경직된 교회와 부패, 교황권의 지배에 염증을 느낀 수많은 분자들이 그 쪽으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하자 베긴에 대한 박해가 시작된다. 박해를 받을만한 약점이나 공식적으로 이단으로 선포할만한 문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교권은 지속적으로 베긴운동에 대하여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었다. 급기야 1215년 4차 라테란 공의회는 공동체와 수도원 같은 종교조직 설립법에 관한 개정안을 채택하였는데 이 개정안에 의하면 공의회는 1215년 이 후에 교황청의 인가 없이 설립된 모든 새로운 종교적 공동체를 금지, 혹은 해체를 명하고 있다. 이 개정안이 베긴 공동체를 표적으로 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하다.
또한 이러한 교권의 불안감은 1250년 이후 베긴에 대한 강렬한 박해로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단독활동을 하던 프랑스의 베긴 마그리트 포레테(Marguerite Porete)를 1310년 7월 1일 파리 한복판에서 화형시킨다. 14세기 말까지 지속된 이러한 박해를 통해 35개의 베귄 공동체가 사라졌으며 1410년대엔 단 한 개의 베긴 공동체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처럼 구체적인 교리의 문제를 갖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혹하게 가해지던 박해에 대하여 베긴들의 투쟁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박해의 와중에서도 환자들을 돌보는 이들의 활동에 관한 기록들만이 있을 뿐이다.
전선과 전투가 없는 이유는 이들의 목표가 대적자를 제거하거나 그것을 통해 상위의 가치에 봉사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의 악의 축을 제거한다는 상위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이라크와 전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전쟁은 화약 냄새나 화염이 없는 그런 전쟁이다. 심지어 전쟁기계의 전쟁은 전투조차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전쟁을 통해 사람들이 몰려들 뿐 아니라 시대의 흐름이 바뀌어 진다.

- 창조로 승부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베긴들의 활동은 공식적인 공동체를 통해 어느 정도 현실화 되었는데, 베긴들이 설립한 공동체 중에서 코트(court)는 완전히 새로운 공동체 개념이 적용된 방식이다. 형식화된 베긴 공동체는 두 형태로 설립되었는데 그것은 콘벤트(convent)와 코트(court)라고 불린다. 콘벤트는 기성의 여성수도회를 모방한 형태를 갖고 있음에 반하여 코트는 그 당시까지 현존하던 수도원을 그 모델로 삼지 않은 새로운 공동체였다. 코트는 마치 하나의 작은 도시처럼 구성되었다. 코트는 도시의 담장 안이나 밖의 개방된 공간 안에 형성되었는데 교회당이나 정원과 같은 공공건물 및 공간과, 개인의 집들과 같은 개인건물, 그리고 상점들이나 편의시설 등으로 구성되었다. 다시 말하면 이 공동체의 모습은 이제까지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실현되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이었다. 마치 서구 역사 상 처음으로 시도된 프란치스코의 탁발교단과 같다.


5. 결론: 토론거리
현대 후기구조주의의 혜안에 따르면 지속적인 탈영토화를 이루지 못하면 그 어떤 변화도 곧 경직되어 버린다. 지난 해 모 단체에서 주관한 교회사 관련 연속논문발표 및 토론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발제자가 그 모임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간 이유는 그 달의 주제가 “종교개혁, 과연 성공인가?”하는 주제였다. 그 시간의 토론의 대부분은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종교개혁의 필연성 및 필요성을 회의하는 것으로 채워졌다. 물론 10여 명의 학자들 중에 가톨릭 학자는 단 2명 뿐이었고 나머지 모두 개신교 학자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16세기 종교개혁이라는 탈주선을 타고 나와 개신교라는 새로운 창조물을 건축하였던 정신은 이제 다시 경직된 구조물이 되어 사람들에게 철거하라는 요청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문제는 지속적인 탈영토화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교회는 ‘수성(守城)’하고자 한다. 이미 구획해놓은 지경들과 쌓아놓은 부를 제대로 운영하고 증대시키길 원한다. 쉽게 말하면 그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또한 현대의 교회는 교회 자체를 조직화하려고 하며 그러한 조직운영의 효율성을 기대한다. 결국 현대 교회는 경직된 구조물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으나 기존의 영토를 탈주하는 창조적 힘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힘들이 용트림한다면 그 위력은 가히 메사톤급일 것이다. 현대의 철학자들도 이 점을 익히 알고 예언하고 있다.

종교가 그 자신을 전쟁기계화 한다면, 종교는 엄청난 정도로 움직이고 해방시키면서 절대적 탈주선을 탈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토론의 주제를 드리고자 한다.
1) 개혁의 요소는 무엇이며 필요성은 어디에 있는가?

2) 개혁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3) 개혁의 방법론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4) 만약 제3의 길이라면 결국 그 전략은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


< 논 찬 1 >
교회사에 있어서 개혁의 유형과 현대적 전망 [이충범교수]

박창현 교수
(감신대 선교학, 건목연 소장)

발제자는 오늘날 감독회장 선거로 인하여 땅 끝까지 추락한 감리교회의 어두운 현실 속에서 느끼는 “공통 감정”, “수치심과 위기”로부터 교회의 개혁을 시도하는 “전감목”의 주제 설정에 응하면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연구의 한계와 관심의 집중을 분명히 한다: 1)교회사 안에 나타난 개혁운동들의 나열이나 그 역사적 경과들을 연대와 인물 순서로 읊조리는 말씀이 아니다. 2) 교회사 안의 개혁운동들을 공부시키고자하는 의도가 없다. 그러나 발제자가 1) 신학자로서 “교회개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와 2) 교회개혁을 꿈꾸는 전감목 목사들에게 어떠한 훈수라도 둘 수 있는가?”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그래서 발제자는 전감목 목사들에게 개혁의 열망을 진심으로 토론할 수 있는 역사적 견해를 보여주고, 그리고 신학자로서 사명을 가지고 “필자가 역사학자로 이해하고 있고 제안하고 싶은 신학적 견해를 피력하는 것”을 통하여 전감목 목사들에게 훈수를 두는데 그 목적을 두기로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전제하에 발제자는 어떤 훈수를 두었나? 시대적으로는 중세를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훈수를 두기로 하였다.
첫째, 교회사에 명멸했던 개혁운동들의 특징들을 발제자 개인의 신학적 판단에 따라 정리하고 개혁운동의 유형을 만들어서 개혁운동의 성격을 규정하고 개혁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청중들의 토론을 이끌어 보고자 하였다.
둘째, 발제자가 가장 이상적인 개혁운동이라고 평가하는 역사적 사건을 분석-제시하여 이러한 운동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역사적 교훈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셋째, 개혁이 영원히 성공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특성을 제시하고 영원한 개혁자로서의 그리스도정신을 찾아보고 오늘날의 개혁을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하였다.

그러면 발제자의 훈수는 과연 어떤 결과를 제시하고 있나? 살펴보자. 발제자는 먼저 이를 위하여 교회사 속에선의 개혁의 요소들을 개혁의 필요성이라는 말로 1) 사회(교회)의 무질서, 2) 사회구조적 모순, 3) 교회의 부패와 비리, 4) 문화(신학)적 아노미 등이 만연했던 시대라는 개혁의 공통성이 있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위의 4가지 요소에 의하여 일어났던 개혁의 유형을 소개하여 1) 의 유형으로 교회적 무질서를 개편하는 방식의 개혁으로 대 그레고리(540-604)의 개혁을, 2)와 3)의 유형으로는 사회구조적인 모순과 이에 따른 교회적 부패와 비리를 꼬집은 루터의 종교개혁, 수도원 운동 그리고 토마스 뮌처(Thomas Münzer)의 혁명을 그리고 4)의 유형을 문화 및 신학의 아노미 상황과 그 상황이 초래하는 교회의 부패에 대항한 개혁을 추진한 운동으로 루터의 오직 은총으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서로를 들고 있다.
발제자는 위에서 언급한 3가지 유형의 개혁 운동을 다시 그 운동의 주체와 방법으로 설명한다. 개혁 운동이 한두 명의 영웅적 활동이 아니라 역사적 에너지의 축척이라는 입장을 밝혀 스스로 개혁의 주체를 언급하는 자신에 대하여 비판적 입장을 견지 하면서 1) 정지 권력을 가진 개인 리더십에서 생겨난 개혁과 정치적 권력에서 배제된 사람들에 의한 개혁을 열거한다. 발제자는 개혁의 주체들이 추구하던 최종의 목표를 “제도적 개혁”과 “구조적 전복”이라는 말로 구별하여 개혁의 방법을 구분한다. 전자는 정치적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한 다른 권력집단과 “정치적” 투쟁을 한 것으로 그레고리 7세의 개혁 등을 제시하고, 후자는 정치적 권력을 갖지 못한 개인, 또는 집단이 권력집단에 반항하는 것으로 다시 이를 두 가지로 “구조적 전복을 위한 정치적 투쟁”과 “구조적 전복을 위한 혁명적 방식”이라는 형식으로 구분하여 전자는 루터의 개혁을 그리고 후자는 토마스 뮌처의 개혁을 소개한다.

발제자는 이러한 연구의 관점에서 결론으로 “제 3의 길” 로서 개혁의 대안을 제시한다. 즉 선으로 악을 이기는 “면역과 보양 요법”으로 악을 제거가 아니라 선을 증대 시켜서 개혁을 이뤄야하고 한다고 보고 이를 서양의 체스와 동양의 바둑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발제자가 제안하는 개혁의 방법론으로는 혁명이나 개혁 없는 변화를 이끄는 것으로 !0운동의 정체성이 없고 2) 교회의 비리나 부패 등에 직접언급하지 않고 3) 평신도 중심으로 생겨나서 4) 기존 교회나 권력 집단의 면화나 인적 청산들도 없이 집중하던 에너지의 방향을 전환하게 하여 기존 교회를 약화 시키고 자정하는 프란체스코운동과 베긴운동을 말하고 있다. 거기에는 전사도 없고 전선과 전투도 없고 지금까지 역사 속에 는 존재하지 않는 창조적인 방법으로 개혁을 한다고 본다.

교화사가로서 중세의 많은 개혁에 대한 연구를 단순화 시켜서 유형별로 한분에 보여준 것은 저자의 깊은 학문적 통찰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아울러 마지막 결론으로 제시한 선을 증대하여 악을 이기는 개혁의 대안은 발제자의 순수한 신앙적인 모습까지를 보여 주면서 개혁의 과제를 염두해 둔 우리 모두에게 좋은 논문이라고 생각 되어 진다.

그러나 본인 맡은 직무상, 그리고 교회사에 무식한 그래서 용감한 질문을 몇 가지 하고자 한다.

1. 먼저는 발제자가 제목으로 제시한 후반부의 “현대적 전망”을 읽으면서 본인이 가졌던 생각은 앞에서 제시한 구체적 역사의 개혁을 들어서, 그것의 결과가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으로서 “그래서 우리 감리교회의 감독들의 정치로 인하여 수렁에 빠진 교회의 향방이 어떻게 될것인가?에 대한 전망이라고 기대하였는데 혹시 그러한 전망을 교회사를 통하여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

2. 발제자가 “가장 이상적인 개혁운동이라고 평가하는 역사적 사건을 분석-제시하여 이러한 운동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역사적 교훈을 찾아보고자 한다” 하셨는데 과연 발제자가 제시한 베긴 운동이 오늘날 감리교회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실천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지? 목사들은 불의를 행하는 교단의 지도자들을 비판하지 말고 평신도, 특히 여성들이 운동을 지도하여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모습”과 모든 악의와 핍박을 당하면서도 침묵해야하는 모습으로 극복하자는 말로 “오해”해도 되는가?

3. 그런 의미에서 발제자가 동양의 바둑의 예를 들어서 서양 장기식의 개혁에 대한 상을 비판하면서도 왜 바둑 두는 것 같은 서양과 구분된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개혁운동의 예를 들지 않았는지가 궁금해집니다. 혹시 민중 신학을 배경으로 한 민중운동, 특히 서남동 교수의 말처럼 동학 혁명으로부터 시작된 민중의 개혁 운동, 즉 민중은 평상시에는 고난 받는 자이 모습으로 일상의 고난을 감수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역사가 왜곡될 때마다 분연히 일어나 소리 지르고 개혁의 바람을 일으키고 조용히 사라져간다는 입장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다.

4. 위의 질문과 결부된 것으로 동시대의 독일의 마틴 루터와 토마스 뮨쩌의 개혁을 소개하시는데 뮨쩌의 개혁은 당시의 정치적으로는 처형당하여 실패한 것처럼 보이고, 루터는 제후들과 연합하여 자기를 지지한 농민과 뮨쩌를 버리고 정치적으로 개혁을 시도하여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학자 중에는 오히려 뮨쩌는 봉건시대에 천한 농민이 제후들을 향하여 항거하도록 도운 성공한 최초의 민주적 시민운동으로 보는 견해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5. 마지막으로 본인은 예를 들어 롤랑 조폐감독의 “미션 (Mission)"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교황청의 대리 대사가 포루투칼의 기독교인 총칼에 죽어간 과라니 족에 대한 보고를 하면서 “저들(과나니족과 그들과 함께 죽은 예수회 신부들)은 비록 죽었지만 오히려 다시 살아나서 산 사람들의 기억 (양심) 속에 영원히 살아있고 우리가 죽은자” 라고 한 것 과 같은 세상에서는 실패했지만 하나님 편에서 성공한 개혁의 관점이 아쉽다. 감리교의 개혁을 몇 사람의 부폐한 감독들의 손에 맡겨두고 그들이 양심을 회복하여 순순히 개혁하리라는 생각보다는 우리 모두가 양심을 따라서 분연히 일어서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본인은 이것이 예수가 진 십자가의 의미가 아닐까? 불의에 항거하여 끝까지 굽히지 않고 그 불의를 온 몸으로 받아들여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세상을 고발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부활하여 공의로운 하나님의 증표가 된 것 같은 개혁이 필요한 것 아닌가? 목회자의 삶이 자리나 혈연 지연에 연연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기 위해서 분연히 일어나 잘못을 잘못이라고 고발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외치고 “아버지여 그러나 할 수 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해주시옵소서!” 절규하며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예수 닮은 목회자들의 개혁이 보고 싶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해 봅니다.








< 논 찬 2 >

“이충범 교수의 발제에 대한 목회적 논찬”

서호석 목사(창천교회 담임)

지난 4월 12일 MBC의 ‘PD 수첩’이란 시사 프로그램이 강남에 소재한 사랑의 교회 새성전 건축의 문제점을 살피는 내용을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사회가 이미 대형교회라는 아이콘을 통해 한국교회를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사랑의 교회는 주일 예배를 통해 사탄의 세력과의 영적 싸움이 시작되었음을 선언했다고 한다. 옥한흠 목사 당시의 제자훈련 철학에 반하는 공동체의 비전에 대한 내부의 반발과 한국교회의 건강함을 주문하는 외부 언론의 문제제기까지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대형교회 자체의 생존논리가 한국교회 전체 선교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력을 가늠해 보게 된다.

강력한 교도권을 통해 개체 교회를 관리하는 가톨릭의 경우와 달리, 개신교회의 경우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한 개별적 문제들이 말 그대로 인터넷이 공간에서 여과 없이 우후죽순 격으로 드러나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산시켜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은 지난 2005년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인구조사 결과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는데, 가톨릭의 경우 지난 10년 전에 비해 74.4%의 성도 수가 성장한데 비해, 개신교의 경우 1.6%가 감소됐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확인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에 대한 인식을 한국교회가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내용과 대상, 방법에 대해 구체적인 전략뿐만 아니라, 개혁 의지의 부재까지 드러내 보이는 무기력한 모습에 있다. 감리교회의 경우, 개체교회를 넘어 교단 전체가 감독회장 선출 문제로 이전투구의 양상을 보여주며 개체교회의 선교의지까지 감소시키고 있는 현실에 처해있다. 한국교회와 감리교단이 이미 스스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자정 능력을 상실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심각하게 자문해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 인식 가운데 이충범 박사의 발제는 교회사에 나타난 개혁의 유형을 현대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신학적 가능성을 핵심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역사적 접근을 통해 개혁의 본질적 물음과 과제에 대한 문제인식에 공감하면서도, 현장 목회자로서 개혁의 방법과 내용에 대한 이견도 존재함을 확인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이견은 신학과 현장의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이기도 하지만, 양 자가 함께 개혁의 과제와 전략을 살펴볼 수 있는 가능성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논찬의 글을 통해 발제를 돌아보며 현장 목회자로서의 제안을 함께 드리고자 한다.

1. 발제와 관련하여
발제자는 먼저 교회사에 나타난 개혁의 요소들을 △교회적 무질서를 개편하는 방식의 개혁(대 그레고리) △사회구조적 모순과 연관된 교회적 부패를 개혁하는 방식(시토 수도회 등의 수도회 운동) △문화적이고 신학적인 아노미 상황에서 발생한 교회의 부패에 대항하는 개혁(개신교 종교개혁)으로 구분하고 있다. 또한 개혁의 주체와 방법을 역사적으로 해석하며 주체의 측면에선 권력을 지닌 세력과 권력을 지니지 않은 세력으로, 개혁의 방법으론 제도적 변화를 위한 투쟁과 구조적 전복을 위한 투쟁으로 구분하며, ①정치권력의 제도변화 ② 정치권력의 구조변화 ③ 비정치권력의 제도변화 ④ 비정치권력의 구조변화라는 유형별 도식을 탁월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이런 분석을 통해 발제자는 교회개혁의 제3의 길이란 가능성을 모색하는데, 13세기에 시작된 두 운동, 즉 성 프란체스코의 탁발수도회 운동과 베긴(Beguine) 여성들의 공동체 운동을 그 가능성으로 제시한다. 발제자는 이들 개혁 운동의 주체가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영도가 아닌 다양한 평신도 그룹에서 시작된 점, 교권과의 투쟁적인 전선과 전투가 없었던 점, 그리고 공동체를 통한 개혁의 현실을 창조적으로 보여준 점을 성공의 원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논찬자는 짧은 분량의 발제물을 통해 교회사의 흐름에 나타난 유형과 특징을 발제자의 탁월한 안목을 통해 조감할 수 있었다. 더불어 발제자가 제안한 현대적 적용지점을 통해서도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장 목회자의 시각에서 아쉬운 점이 있어 몇 가지를 보완하며 제시하고자 한다.

(1) 먼저, 발제자가 개혁의 이상형으로 제시한 베긴 공동체와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어떤 점에서 개혁적이고, 어떤 지점에서 당 시대의 공동체에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하다. 단순히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 중심의 공동체였다는 이유만으로, 루터나 토마스 뭔처 등의 종교개혁처럼 제도교회와 교권과의 첨예한 갈등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이상적 개혁 모델로 제시할 수 있다는 말인가? 더불어 역사적으로 소멸해 간 베긴 공동체를 실패의 모델이 아닌 성공적 모델로 제시할 수 있는 역사적, 신학적 근거는 무엇인가?

(2) 둘째로, 발제물이 이들 공동체를 현대 한국교회의 개혁적 모델로 적용할 수 있는 교회론적, 실천적 접근 방법에 대한 설명과 제안까지 이어졌으면 좋았을 것 같다. 이는 한편으로 현재의 제도교회가 이들 역사적 공동체를 이상적 모델로 판단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의 희박성에 대한 문제제기일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 신앙공동체가 제도를 개혁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전략의 부재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셋째로, 설사 발제자의 제안이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한 장기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하더라도, 현재 한국교회와 감리교회의 시급한 문제를 개혁해 나가기 위한 단기적 · 중기적 대안으로서는 불충분하다. 갈등도 없고 투쟁도 없고 주체도 불분명한 상황 속에서는 교회 개혁의 전략과 전술은 불분명 해 지고, 현재의 문제만이 항구적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2. 발제의 토론 주제와 관련하여
발제의 문제인식은 받아들이고, 현장에서의 전략 부재의 가능성을 문제제기하면서 발제자가 제시한 토론의 주제에 대한 현장의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1) 개혁의 요소는 무엇이며 필요성은 어디에 있는가?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된 원인에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믿음의 내용이 삶과 유리된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새들백교회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는 “제1차 종교개혁이 ‘믿음’(belief)에 관한 것이었다면, 오늘날 필요한 종교개혁은 ‘삶’(behavior)이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신앙이 생활화되지 못하는 한 교회는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개혁해야 될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을 위한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자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문제 대한 “거룩한 분노”(holy discontent)"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 이미지가 사회로부터 부정적으로 비취지게 된 시점은 교회의 세습에서부터가 아닐까 한다. 성공한 제1세대 목회자들의 일부가 자기 자식들에게 기업처럼 교회를 물려주는 행태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교회는 더 이상 거룩한 곳, 하나님의 교회라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세습한 교회에 대한 평가에서 근자들어 그래도 세습한 교회가 보다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지 않느냐며 이를 합리화 하는 입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교회를 사유화하고 공교회성을 무시하는 이러한 방법으로 가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욕되게 하는 것이고, 세상의 조롱을 면치 못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밖에도 교회의 물질적 세속화와 목회자들의 성공주의와 도덕적 불감증, 건강하지 못한 선교방식, 뿌리 깊은 학연의식과 지역의식, 최근 한기총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금권선거와 법을 무시하는 일련 행태들이야말로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개혁의 과제라 할 수 있겠다. 이에 더하여 감리교 문제로 돌아와 생각해 보면 2009년 전감목 대회에서 밝힌 선언서에 나타나 있듯이 감리교회의 변화와 갱신을 위한 아래의 6가지 원칙을 재확인 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

① 감리교회의 변화를 위해 개혁입법을 우선한다.
② 소송 당사자들은 본안 판결을 수용하고, 직무대행은 빠른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다.
③ 금권, 학연, 파벌정치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선거제도를 개혁한다.
④ 연급순 의회제도를 개선하여 직능별, 연령별, 성별, 전문성 등의 대표성을 보장한다.
⑤ 감독제도를 혁신적으로 개혁한다.
⑥ 은급제도를 개선하고, 미자립교회 문제와 목회자 최저생활비를 제도적으로 해결한다.

2) 개혁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감리교회 문제를 중심으로 개혁을 생각할 때 개혁의 주체는 목회자만이 아니라 평신도와의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여겨진다. 목회자의 개혁의지도 평신도란 물적 토대를 간과해선 안 되며, 평신도의 개혁적 노력도 한국교회의 전통을 고려할 때 목회자 없이 진행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창조적 소수로서 헌신할 수 있는 각성된 목회자와 평신도의 연대인 것이다. 따라서 향후 전감목의 조직도 목회자 중심에서 평신도와 함께 할 수 있는 구조로 외연이 확장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구체적으로는 목회자 대표와 평신도 단체장을 포함한 범 교단 차원의 “감리교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회의”(비대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사회법에 고소고발을 남발한 채 이젠 무엇 때문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 조차 이해를 따라가기 어려운 법원의 판결이 양산되고 있다. 무엇보다 감리교단이 행정적으로라도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을 ‘비대위’에서 추진하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모든 감리교 목회자와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벌여서라도 법원으로부터 합법성을 부여 받은 가운데 개혁총회를 개최하여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한다.

자신을 채찍질 하는 마음으로 전감목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면 무엇보다 그 사역의 목표가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직내적으로는 건강한 감리교회 목회자들을 규합해 교회갱신의 주체가 되어 지속적으로 개혁의 과제를 제시하고 이를 운동화 해 나가야 하며, 외적으로는 평신도들의 건강한 문제의식을 일깨우면서 평신도지도자와 단체들과의 연대를 통해 건강한 감리교단 회복과 이후 지속적으로 개혁을 실현해 나가기 위한 일들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3) 개혁의 방법론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개혁의 방법은 엄밀한 현실인식의 기반 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이충범 교수의 발제물에 기초해 논의한다면 정치권력을 획득한 건강한 지도자층과 비정치권력을 지닌 지역교회의 리더들이 함께 제도적 변화를 위한 정치적 투쟁을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도의 변화는 이런 개혁운동의 결과물이고, 개혁의 시작은 정치와 기득권을 내려놓고 가톨릭의 ‘내 탓이요’ 운동과 같이 낮은 수위이지만 대중적인 신앙인식의 개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4) 제3의 길이 존재한다면 그 전략은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
제3의 길이라는 용어와 ‘전선과 전투가 없다’는 등의 기존 정의에 구애될 경우 오늘 이 시대의 실천전략이 어떤 점에서 매우 애매해질 우려가 있다. ‘창조적 전략’ ‘창조적 힘’이라는 제3의 길의 근본정신만을 취하여 이 시대 감리교회에 적합한 실천전략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현 시점에서의 감리교 개혁을 위한 실천적 전략을 다시 강조하여 정리하여 제안하면, 이미 앞에 부분적으로 언급했듯이,

1) 무너진 감리교회 행정의 회복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감리교회 내 모든 섹터를 망라한 비상대책기구를 결성(예; 현직 감독+목회자대표+평신도대표)하여 합법적 절차에 의한 총회와 본부 복원을 주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 이 과정은 철저히 현행법을 준수하는 선거절차(후보자격 등)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이와 함께 공명선거운동 추동하여 합법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며 시행해야 할 것이다. 특히 모든 후보자와 선거권자들의 금품선거, 학연 및 지연을 철저히 배격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후보와 총대들의 공명선거 다짐선언과 감시운동 등 조직화하여 이를 시행해야 할 것이다.

2) 감리교회 내 개혁세력의 확산과 결합을 꾀해야 한다.
감리교회의 영적쇄신과 교회개혁에 관심가진 모든 목회자들을 전감목에 규합하는 조직 확대활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현재의 ‘전감목’을 가칭 ‘새로운 감리교회를 위한 목회자협의회’ 혹은 ‘교회갱신을 위한 감리교목회자협의회’ 등의 이름으로 발전적인 개편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이와 함께 평신도들과의 적극적 협력을 통해 평신도 교회갱신 세력을 조직화하고 이를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3) 감리교 행정회복과 개혁세력의 확산에 바탕을 둔 지속적인 감리교 개혁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우선 감리교행정을 합법적으로 복원시킨 후 새로 구성된 합법적 지도부와 함께 감리교회 개혁과제 실천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서 경주해 가야 한다. 이를 위해 행정복원을 위한 총회에서 가칭 “감리교개혁⋅발전위원회”를 구성하고, 개혁⋅발전위 논의를 통해 마련된 개혁안을 임시총회 혹은 입법의회를 소집해 교리와 장정에 반영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차기 총회와 선거를 진행해 가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전감목(혹은 후속조직)은 감리교 개혁여론의 지속적 확산과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역할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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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본부 (121.134.176.179)
2011-04-20 15:07:41
수표교 교회
담임목사 : 김 고광
소속목사 : 김홍기 감신대 총장 외 0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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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5
믿음은 허상인가 (112.144.33.254)
2011-04-19 18:24:13
아무리 떠들어봐라. 답이 나오나. 지금의 감리교 문제는 사람의 지식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사람의 모든 것을 내려놓지 않아서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아무리 토의해보아야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텐데. 왜 시간낭비하는지 모르겠네. 그냥 기도해. 다 내려놓고 기도하면 답이 나올텐데. 하나님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다 하려고 하니 어디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을까? 한심한 인간들만 모인 것 같다. 백날이 아니라 백년을 떠들어봐라. 답이 나오나. 끝도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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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0
개혁본부 (121.134.176.179)
2011-04-19 18:48:04
윗글에 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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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9
참으로 (93.194.87.236)
2011-04-19 18:05:21
개혁에 대한 열망을 모르지도 않고 그동안의 실수도
이해하지만 6월의모임 전에 단계적으로 거칠 일이 있다.
감리교 전체(목회자는 전도사부터 은퇴목사까지,
평신도는 권사 이상)를 대상으로 '감리교 현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여야 한다. 문안의 작성은 목회자와 3개 신학대의 교수도 참여하고 평신도도 참여하여 핵심질문을 만들어서
실시해야한다. 비밀은 보장하되 신분이 확실한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다. 최대한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를 취합하여 '논의'로 발전시켜야 한다.

결국은 이것이 장정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준거'가
될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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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8
김명섭 (125.179.213.88)
2011-04-19 21:29:18
늘 전감목을 위해서 아낌없는 조언을 하시는 '참으로'님께 머리숙여 깊은 감사드립니다.
앞서 언급하신 통계조사에 공감합니다.
이미 2006년 감리교회장단기발전위원회에서 발간한 <감리교회의 미래와 성숙을 준비하는 백서>에 <감리교목회자의식연구조사>에 객관적인 자료로 잘 드러나 있습니다. (물론 전도사~은퇴목사는 제외된 조사입니다)
6월에 계획 중인 전감목의 2차포럼에서 위의 자료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통해서 개혁의 객관적인 근거와 준거를 모색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늘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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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8
참으로 (93.194.83.169)
2011-04-27 16:03:29
김목사님!!
오늘(4.27) 오마이뉴스에 신영복 선생의 인터뷰기사가 있습니다.
꼭 읽어보시고 감리교다시세우기의 논리를 만드실 때 참조해 주십시요. 거기에 저의 의견을 덧붙인다면....
일반사회와 마찬가지로 맘몬을 사랑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적 구조에서 나눔이 가능한 북유럽식의 제도를 들여와야 합니다.
그럴려면 당연히 집행부(본부)가 정당하게 위탁받은 권위를
가져야 하겠지요.그래서 말씀인데 본부의 모든 직원은 임기제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연임불가하게 하고.
연속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예를 들면 총무의 경우 후임총무로서
부서장을 맡아 1년 근무 그리고 총무직 3년 이렇게 할 수 있읍니다. 당연히 2년차 때에는 2년 임기직으로 부장을 뽑구요.
자연스럽게 사업들이 연결됩니다. 유럽에서는 벌써 오래전에
이렇게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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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3
김명섭 (125.179.213.88)
2011-04-29 00:36:08
참으로님의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 공교롭게도 언급하신 북유럽식의 제도 곧, 시장경제를 근간으로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사회공조를 근간으로한 슘페터의 사민주의(유럽식 사회민주주의)는 제가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분야입니다. 이것은 님의 조언대로, 현재 장로교회등이 표방하는 개교회주의와 그로인한 교회의 사유화, 그리고 이에 반하는 로마카톨릭, 영국성공회등의 공교회성은 미국감리교회에서 시행되는 파송제와 봉급제의 근간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유화의 피해를 막고 교회의 공공성과 건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서의 감리교회의 공교회성을 실현하기 위한 토대로 충분히 숙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장로교와 감리교의 결정적인 차이며 공교회성을 상실한 감리교회가 회복해야 할 핵심적인 내용이되리라 여깁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적용에 있어서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기에 이부분에 대해서 직접 만나 함께 논의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저에게 연락 한번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010-3289-3619,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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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3
참으로 (93.194.87.236)
2011-04-19 22:21:21
저도 그것을 보았는데 그건 지금 상황에서는 '너무 큰 그림'입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공동의 행동을 할 때
그것은 도움은 줄지 모르지만 '명분'을 주기에는 빈약합니다.
전도사라 함은 진급을 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다만 신학생이나 대학원생들은 통계에서 합하지 않고 별도로
집계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혹시 나중에 벌어질지도 모를 법정에서의 다툼에도
필요할 수 있을 테니까요.
법인의 경우 집행부에 대한 '타당한 근거를 가진 불신임'이
인정되어야 '권리'를 빼앗기지 않으면서 '새로운 조직'을
인정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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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4
희망소식 (175.206.242.110)
2011-04-19 14:40:11
이스라엘백성이 40일이면 들어갈 길을 40년간 해멘격이네요.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하지만, 이제라도 전감목이 3천명의 서명자 열망을 담아 감리교개혁의 올바른 방향을 정립한 것은 참 반갑고 다행입니다. 다시는 갈팡질팡 흔들리지 않는 전감목이 되길 소망하며 한표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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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7
게스트 (124.59.139.2)
2011-04-19 12:53:18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보수든 진보든 "그들만의 리그"가 문제다.

논리개발과 이론이 탄탄해야 하겠지만 2년을 하고 있으니 탁상공론(?)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개혁이 장기화 되면 개혁이 아니다. 그저 일상일뿐이다.
상황이라는 소용돌이에서 추진력 없이 빙빙돌고 있으니 좌초할 가능성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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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5
겨자씨/작은자 종 (50.9.157.218)
2011-04-19 03:26:16
천국에는 작은자만 모여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슬을 먹고 산다고 하지요.
몸이 가벼워서 날아다닌도고 합니다.
그래서 솜털같은 날개가진 천사라고도 합니다.

작은자들이 모인 감리교회
섬기는자들이 모인 감리교회

-독립연회를 만드십시요.
-구태는 벗어야 합니다.
-죄/껍데기=허물 입니다.

-빨리벗으시고 새로운 감리교회 만들어 주세요.

가급적이면 "감독님은 45세 미만으로 몸체도 아주작은 목사님
작은교회 목사님으로 선출해 주세요.
거창한 감독은 버겁습니다.

-탁상공론 고만 하세요.

10명이면 어떻습니까./100명이면 더욱 좋구요.
빠를수록 좋습니다.

-아펜젤러목사님도 110년전 일본관활(선교)연회에서
"독립연회로 탈출구를 찿았습니다"

정동제일교회 집사(새벽3시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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