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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의 아픔카나다 이민 1세대와 1.5세대가 겪는 아픔을 들어 보았습니다.
김충권  |  ckkim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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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4월 18일 (월) 13:01:50
최종편집 : 2011년 04월 19일 (화) 03:02:55 [조회수 : 4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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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에서 운전하기


오웬 사운드에서 토론토로 나오는 길은 내가 운전을 했습니다. 길 똑 바르지, 차선 넓지, 차도 별로 없어 복잡하지도 않지, 달리면 얼마든지 빨리 달릴 수 있어도 제한 속도를 넘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두릉 두세 개를 넘어 하늘까지 닿아 있는 길을 똑바로 달려 넘으면, 또 다른 구릉들이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웬사운드에서 묵은 모텔


“와, 저 땅 좀 봐요. 우리나라에 저런 땅이 있으면 당장 논을 지어 물을 대고 경운기 쿵쾅거리고 흙탕물을 튀겼을 거예요.”

길옆으로는 마을이 있는 주변의 농토만 개간이 되어 농사지은 흔적이 있었습니다. 농가와 농가 사이의 땅들, 농가와 떨어진 곳은 사람이 손 댄 흔적이 없었습니다. 말라 죽은 나무가 비스듬히 기대어 허옇게 껍질을 벗고 있고, 마구 자란 나무들이 경쟁하듯 하늘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길 가를 지나면서 보아도 개간하지 않은 땅이 더 많았는데, 길도 나지 않은 땅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이 광활한 땅을 뭐에 다 쓴단 말입니까? 땅 때문에 죽은 귀신들이 여기 와서 놀면 한이라도 풀 것 같습니다.

토론토까지는 세 시간이 더 결렸습니다.

“먼저 퀘벡 가는 표를 끊어야 해요. 기차가 좋을지, 버스가 좋을지 모르겠네요. 먼저 기차역으로 가 보지요.”

퀘벡은 여기서 동쪽으로 12시간을 가야 합니다. 12시간을 밤새 가서, 아침에 퀘벡에 떨어져 구경을 하고, 오후에 비행기를 타고 캘거리로 가는 일정이었습니다. 밤에 자는 호텔비를 아끼고, 이동하는 기차나 버스에서 자려고 밤차를 찾는 것입니다. 퀘벡에서 캘거리까지는 비행기를 뉴욕에서 이미 예약 해 두었습니다.

   
모텔은 창문 하나에, 출입문 하나에, 의자 하나에, 차 한대를 댈 수 있다.



캐나다 기차와 전철과 시내버스를 다 뒤져도 시간에 맞게 퀘벡에 가는 차는 없었습니다. 기차는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에 도착하는 것만 있습니다. 12시간 걸리니, 낮 시간에 꼭 맞는 거리였습니다.

“아니, 살아 있었어요? 혹시 무슨 사고가 난 건 아닌지 걱정했어요.”

“기차는 시간이 맞지 않아요. 버스를 찾아 봐야 겠어요.”

기차표를 끊는다고 주차장에 차와 이종희 선생님을 두고 나가서 3시간을 헤매다가 와 보니, 한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기차표를 끊으려고 가로질러 갔던 토론토 가장 중심 되는 영스트리트 Young St. 거리를, 한 블럭 건넌 서쪽 도로로 거슬러 올라서 그레이하운드 버스터미널에 찾아갔습니다. 지도는 보아도 처음 가는 길이라, 대충 짐작하고는 토론토의 에비뉴(Ave.)와 스트리트(St.)를 마음대로 건너 다녔습니다.

다행이 버스는 있었습니다. 오후 3시30분에 토론토를 출발해서, 새벽 3시 30분에 퀘벡에 도착하는 버스였습니다. 퀘벡에서 서너 시간만 견디면 아침을 먹고 관광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오웬사운드에서 토론토 가는 길



버스표를 끊어서는 이종희 선생님 어머니가 사는 아파트에 갔다가, 오늘 묵을 민지네 집까지 또 ‘왼쪽, 오른쪽, 똑바로’ 주문하는 대로 악세레다를 밟고 다녔습니다.

운전하기는 편했습니다. 큰 교차로는 신호들이 있어서 무조건 신호등만 따르면 되었습니다. 단지 좌회전을 할 때는 직진신호 중에 반대편에서 직진하는 차가 없으면 언제든 할 수 있었습니다. 신호등이 없는 작은 교차로는 지나가는 차가 있든 없든 무조건 서야 했습니다.

“반드시 바퀴가 멈추어야 해요. 상대편 운전사는 바퀴만 쳐다봐요. 자기차가 먼저 서는지, 상대차가 먼저 서는지. 바퀴가 멈추는 순서대로 교차로를 지나갈 권리가 있어요. 좌회전이든, 우회전이든, 직진이든, 반드시 한 대씩 가야해요.”

정말 교차로에는 모든 차가 멈췄습니다. 앞차가 간다고 슬그머니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토론토 민지네가 사는 집



민지네 집으로 가는 중에 길을 잘 못 들어 어느 공원 옆의 교차로를 지나갈 때였습니다. 앞 차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뒤를 바짝 따라 갔다가 옆에서 오는 차에 허리를 부딪힐 뻔 했습니다. 한 대씩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것을 한국식으로 따라갔더니, 다음 차례의 차가 출발했다가 깜짝 놀라 경적을 크게 울렸던 것입니다.

“아이구 깜짝이야. 생각은 했는데, 나도 모르게 한국에서 하던 습관대로 앞차를 따라가고 말았어요.”

여기서 경찰한테 걸려 집에도 못 가나 하고 간이 콩알 만해 졌습니다. 무조건 머리만 먼저 들이밀면 그만인, 우리보다 더 합리적이고 공평해 보였습니다. 역시 습관이 생각보다 강한가봅니다.

   
민지네 집 뒷뜰에 있는 사과나무




회사에서 진급을 포기하는 1.5세

아침을 먹고 오웬 사운드에서 출발해서, 점심은 표를 끊으러 다니느라고 차에서 과자로 때우고, 민지네 집은 저녁식사를 차려 놓은 상에 도착했습니다. 민지는 이종희 선생님과 청년회원으로 지내던 시기에 중학생이었습니다. 집에서 학교를 다녔고 성가대를 함께 했으니 그 형제 중 유일하게 안면이 있었습니다. 24년 전 겨울 빨간 잠바만 입고 다니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교복 입은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해, 졸업한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저는 그 때 학생이었어요. 우리 1년 선배부터 교복이 자율화 돼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교복 한번 입어보지 못하고 졸업을 했어요.”

1984년 어간이었으니, 전두환 정권이 한참 개혁을 한답시고, 일률적으로 새까만 일제식교복을 자율화 한 때 인가봅니다. 우리는 셋이 앉아서 까만 옛날을 한 폭 한 폭 들추며 웃었습니다.

   
민제네 집 사우나실. 찜질방인 셈이다.




친구를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온 민지의 남편이 합세한 시간은 11시가 넘었는데, 자정을 넘어서도 우리 넷의 이야기는 그칠 줄 몰랐습니다. 민지는 대학에 가려고 재수를 하다가 이민을 와, 캐나다에서 대학을 나온 1.5세 이민자였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이민 와서 대학을 다니다가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다시 고등학교에 입학해 3년간 썩은 1.5세랍니다.

이민 1세대란 대부분 영어가 되지 않아서 한국문화를 고수하고 살았고, 2세대는 한국말은 잘 못하고 영어를 주로 써서 모양은 한국인이지만 외국인으로 사는 세대를 말합니다. 그 중간인 1.5세대는 한국말도 잘하고 영어도 잘해서, 한국인 사회에도 잘 이해하고, 영어를 주로 쓰는 사회에도 무리없이 적응하는 세대를 말했습니다. 이 두 부부는 모두 1.5세대였습니다. 두 나라 말은 물론, 한국과 영어권 나라를 모두 잘 이해하고, 해결책도 나름대로 알고 있었습니다.

   
토론토 배는 이렇게 못생겼다.



이튼 날 아침까지 우리의 이야기는 그칠 줄 몰랐습니다. 이민 20년 동안 1세대로 여전히 한국인으로만 남아 있는 이종희 선생님과, 미국과 캐나다를 두 달간 여행하면서 느낀 소감을 가지고 있는 내가 합해서, 안타까운 현실을 서로 개탄했습니다.

“어제 저녁에 만난 내 친구에게 ‘이제는 회사에서 진급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하는 말이 자기는 ‘진급을 포기’했데요, 글세.”

“진급에서 탈락하는 것과 포기는 다른데, 왜 포기를 한데요. 도전해 보지도 않고.”

모두 놀라 물었습니다. 이유가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백인 아이들이 너무 똑똑하고 활용하는 지식이 엄청나서 자기는 그들과 도저히 경쟁할 수가 없데요.”

그 친구는 대학에서는 그 백인들이 따라올 수 없을만큼 뛰어나게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었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역전되어서 백인들의 사고와 지식을 가히 따라가서 상사 노릇을 할 수가 없답니다. 같은 상사가 되어서도 어깨를 견줄 자신이 없답니다. 그들의 사고가 무섭기까지 하답니다.


   
민지네 집 보일러실에 온수통



한국인이 흔히 알고 있고 말하듯이 백인이 차별을 해서 한국인이 진급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중학교에 해당하는 7학년부터 대학까지 함께 다녀서 언어와 문화에 장벽이 없어도, 심지어는 학창시절에는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도록 두각을 나타냈어도, 사회생활에서는 뒤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랍니다.

“왜 그럴까요? 교육의 방식이 달라서 그래요.”

민지의 남편은 열을 올렸습니다. 한국의 아이들은 학창시절에 오직 공부만 한답니다. 뉴욕에 있는 한국의 아이들도 미국 아이들이 공부도 안 하고 빈둥빈둥 하는 일 없이 놀기만 한다고, 한심하다고 흉을 봤습니다. 한국 부모들은 미국에 와서도 아이들을 과외를 시키고, 학원에 보내고, 학군이 좋은 곳으로 이사를 하고, 그래서 일부 지역에 부동산 값을 올리는 주범이 된답니다. 일부 학교에서는 한국 학생의 입학을 제한하는 제도를 만들기도 했답니다. 한국 아이들이 오로지 공부만 해서 좋은 학교에 많이 가기 때문입니다. 좋은 대학을 간다고 인생이 좋아지는 것은 아닌 것이 문제입니다.

   
냉난방기




미국의 아이들은 초등학생 때는 대부분 놀립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오후 2시면 학교를 마치고 누구나 집으로 옵니다. 숙제는 있어도 과외도 없고 학원도 없고, 내일 학교에 갈 때까지 노는 겁니다.

“아이들이 그냥 빈둥빈둥 노는 것 같지요? 안 그래요. 혼자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사고의 깊이가 생기는 거예요. 바쁘면 깊게 사고할 여유가 없어요. 몸이 심심할수록 마음은 깊이있는 사고를 하는 훈련이 되는 것이예요. 그 깊이에 종합적인 지식을 더해 봐요. 무서워지는 겁니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싶어서 못 견디겠답니다. 개학은 아직 하지 않았고 집은 답답하니, YMCA나 여러 가지 모임에 가서 농구하고, 수영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등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임을 갖습니다. 이런 모임을 통해서 사회성을 기르고 생활 방식을 배우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한 가지 이상씩 어느 모임이든지 참여해서 활동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고, 대학을 입학하는데도 이런 활동을 참작한답니다.

   
냉난방을 공급하는 닥트




교실에서 하는 공부와 교실 밖에서 하는 활동을 상호 연관지어서 사고할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 환경적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입니다. 공부라는 것이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기술이 아니라, 생활을 전체적으로 아울러 사고하고 깊이있게 판단할 수 있는 원리를 체득하는 것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기반 위에다가 대학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집중적으로 더하면 온전한 인간 위에 능력을 겸비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에 나가서도 총체적인 사고력 위에 기반을 둔 전문지식 위에 경험을 더하니, 어느 구석도 비지 않고 박학다식한 경영인이 되어갔던 것입니다.

“내 친구는 공부는 잘 해서 학교에서는 앞서 나갔어요. 그런데, 통전적인 사고능력이 기반이 되어있지 않아서, 사회생활에서는 복합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한 거예요. 캐나다에 살면서도 한국 교육제도의 전형이 나타난 거지요.”

남편의 친구 문제가 우리 모두의 문제였습니다. 우리 자녀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아니 우리나라의 미래이기도 해서, 모두 한마음으로 걱정을 했습니다.

   
토론토 시내


공부는 문제 푸는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


우리나라 체육은 엘리트 체육이라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재능이 있는 사람은 공부는 안 하고 운동만 합니다. 그래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종합 7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북한은 33위를 했습니다. 우리는 어느 경기나 북한 선수를 볼 때마다 가슴 아파합니다. 전체주의 속에서 오로지 주는 밥 먹고 운동만 해야 한다고, 인간성을 빼앗기고 기계처럼 운동만 해야하니, 같은 동포로서 또한 같은 운동선수로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서구인들이 한국선수들을 볼 때도 북한과 똑같이 봐요.”

미국이나 캐나다는 사회체육으로 공부를 하다가 운동에 두각을 나타내면 올림픽에 나가고, 연주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면 연주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체주의는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운동만 죽어라고 해 온 우리를 북한과 다를 바 없이 보는 것입니다.

   
토론토 한 대학 학생 아파트


유도계의 야인으로 불리는 1988년 남자 유도 60kg급 금메달리스트 김재엽 선수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은퇴를 하면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답니다. 운동만 배우고 사회를 배우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공부도 똑같습니다. 학교에서 암기하는 기술로 학업성적은 우수하다가도, 사회에 나가면 적응하지 못하고 진급을 포기하는 남편의 친구도 똑같은 경우입니다.

“진급자살이예요. 공부하는 기술 하나로는 평생 남의 밑에서 시키는 일만하는 죽음이나 다름없어요.

“나라 전체가 그렇게 간다면, 국제사회에서 영원히 미국이 시키는 일만하는 식민지가 될 것이 틀림없잖아요?”

그러고도 한국은 영재교육을 더 어릴 때부터 집중적으로 시킨다고 국제중학교를 만들어서, 그러쟎아도 낮에는 학교에 다니고 밤에는 학원에 다니는 초등학생들을, 좁은 쥐구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토론토 시내 작은 카센타


“공부하는 기술로만은 안돼요. 기술을 통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요. 한국은 공부하는 기술만 가르치고, 미국이나 캐나다는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을 길러주잖아요.”

“난 피아노를 쳤는데, 평생을 배운 하나밖에 못해요. 그런데 미국이나 카나다 사람들은 피아노 하나를 배우면, 그에 연관된 악기를 두루 다 다룰 줄 알아요. 음악의 원리와 각각의 악기 특성을 깨우쳐서, 피아노를 치면 바이올린도 켜고, 섹소폰도 불고, 두루두루 여러 악기로 음악을 즐길 줄 알아요. 그런 게 참 부러웠어요.”

이종희 선생님이 덧붙였습니다. 음악을 그렇게 하듯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공부를 하면 사회생활도 할 줄 알고, 직장에서 자기의 전공으로 다른 사람과 합력할 줄도 알고, 진급을 해서 다른 분야도 아우를 줄 아는 경영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토론토 시내에 있는 공원


“어느 교회에서 부목사를 뽑는데, 축구든 배구든 농구든 운동을 어느 하나라도 잘 하는 사람을 뽑는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교회에서 운동선수를 모집하려는 것이 아니예요. 운동 경기에서 다른 사람과 협력할 줄 알면, 일에서도 협력할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것입니다.”

내가 덧붙였습니다. 군대 이야기도 했습니다.

“군대에서 우리는 사격훈련을 할 때 호각을 불면 다 같이 엎드려 10초 안에 한방을 쏘고 일어나고, 이것을 20번을 반복해서 해서 가장 많이 명중한 사람을 1등 사격수라고 해요. 미군부대에서 미군이 사격연습을 하면 탄통 하나를 들고 혼자 나갑니다. 혼자서 엎드려 쏘다가, 서서 쏘다가, 앉아 쏘다가, 단발로 쏘다가, 연발로 쏘다가, 별 짓을 다하면서 사격에 관한 한 다양한 방법을 터득하고 온답니다. 전쟁터에서는 어쩌면 이것이 훨씬 실용적일 것입니다. 별별 상황이 다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지요.”

   
토론토의 작은 병원



1세와 2세의 다리가 되고 싶어


“우리 부부는 1.5세로 이민사회에서 1세와 2세의 다리를 놓고 싶어요.”

민지네 부부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1세대는 아직도 한국의 교육제도에 길이 들어서 2세를 한국식으로 교육하려고 합니다. 미국에 와서도 과외를 하고 학원을 보내고 좋은 학교에 보내려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명문학교를 나와 봐야 스스로 진급을 포기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것도 모르고 백인이 유색인종을 차별한다는 말만 확대합니다.

2세는 또 학교에서 경험하는 서구문화와 부모의 요구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부모세대의 교육욕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1.5세대는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할 수 있어, 양쪽 문화 속으로 모두 들어가 경험할 수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지 한국도 바른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답니다. 미국의 교육제도 중에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한국의 불합리한 것은 버리게 하고 싶답니다. 작은 씨앗이, 겨자씨만한 작은 씨앗이 떨어졌으니 언젠가 그늘을 만들어 많은 사람이 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점심을 먹고 짐을 가지고 버스를 타러 전철역으로 출발했습니다. 언제 또 볼 줄 모르지만 살아 있으면 만날 것이고, 죽으면 천국에서 보자고 악수를 했습니다. 민지는 빨간 잠바를 입었을 때처럼 여전히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고속도로 입구에서 구걸하는 홈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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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암 (72.205.29.125)
2011-04-19 23:50:00
미국이민자의 한사람으로써 큰공감으로 읽었습니다. 아주 잘 보신 것 같습니다. 얼마전에 이테리에서 음악을 공부하시고 유명 오페라단원으로 다년 간 활동하셨던 어떤 오페라가수 분도 비슷한 말씀을 하시더군요. 한국음악인들이 각종 국제콩클에서 특정한 곡으로 입상은 받지만 졸업후에 실제로 오페라단원으로 활동하게 되면 적응을 하지 못하고 쫒겨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그 이유는 수상을 받은 곡외에는 새로운 곡을 소화해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시더군요.문화의 차이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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