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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 덕분에 기어이 네팔 랑탕 히말라야를 다녀오다!이필완 목사 가족의 랑탕 트래킹 동영상 스케치 10분과 여행기 겻들인 사진 80여 장
이필완  |  leewaon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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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4월 11일 (월) 12:19:00
최종편집 : 2013년 04월 04일 (목) 00:34:10 [조회수 : 8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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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 덕분에 기어이 네팔의 랑탕 히말리야를 다녀오다

일단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소백산 산막에서 산 지 1년,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는 큰아들 진형이가 안식학기를 맞아 가족여행을 제안했고 음향설치회사 엔지니어로 일하는 둘째 주형이가 특별 휴가를 신청 합세하여 여행비를 마련하여 덕분에 가족 모두가 20일 간의 행복한 네팔 랑탕 히말라야 트래킹을 다녀왔다.

산중 생활로 필자의 건강이 거의 회복되었지만 만만치 않다 생각했고 최근 농도생협 판매원으로 5년 일하다 사무국장으로 바쁘게 지내는 안해 김미영도 큰 산에 대한 두려움이 적지 않았지만 아들들의 적극적인 권유로 여행을 결정하여 가족 넷이 4월 14일 인천공항에서 홍콩, 태국 공항을 경유하는 타이항공편에 몸을 실었다.

물론 대한항공에 네팔 카두만두 직항 편이 주 2회 있지만 그보다 1인당 40여만원이 싼 탓에, 공정여행과 절약여행을 주창하는 아들의 의견대로 갈아타고 기다리는 불편을 감수하고 값싼 항공사를 선택한 것이다. 15시간을 기다려야하는 덕분에 태국에서는 배낭여행자의 거리 카오산에서 하룻 밤을 즐기기도 했다. 

 

 

 

   
▲ 카투만두에 도착, 여행자의 거리 타멜 주변 게스트 하우스에 여정을 풀고 사흘동안 지내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트래킹을 준비하였다. 랑탕계곡이 시작되는 샤부르벤시까지는 로칼버스로 9시간 여, 중간에 빵쿠가 나기도 하고 공사로 막혀 한없이 기다리기도 하였다. ABC 나 EBS 트래킹과는 달리 랑탕은 누구나 오직 비포장 절벽도로를 달려야 한다는 난점이 있어 편한 여행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 아직은 그리 많이 찾지 않는단다. 달리다 서서 빵빵 거리면 볼 일을 보기원하면 남자는 앞쪽으로 여자들은 뒷편으로 돌아가 길에서 그냥 일을 보기도 하고...

 

 

   
▲ 샤브르벤시에 도착,일박! 9박 10일 간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 이제부터 출발이다. 네팔 대학생 2명을 포터로 삼아 15KG 정도 무게의 부부 배낭을 부탁하고 그외 각자 자기 배낭을 지고 간다. 포터 비용은 하루 1만원 정도이다. 그들에게는 큰 돈이란다. 때로 포터들은 3-40KG의 무거운 짐을 지기도 하는 데, 대안학교 아이들을 몇차례 인솔한 경험많은 진형이는 20kg을 넘기면 안된다고 하였다.

 

 

   
▲ 첫 점심을 먹은 밤부. 식사는 무조건 현지식으로 하기로 하였다. 짐 무게도 덜거니와 여행의 진면목이라 하였다. 그래도 만약을 위해 누룽지를 준비해 갔다.

 

 

   
▲ 배낭이 모두 여섯 개다, 큰 배낭 두 개는 포터의 몫이고 두 아들은 각자 자기의 짐을 졌으나 우리 부부 배낭엔 겉옷 한 벌과 간식, 물만 들어 가벼웠다. 그래도 나중엔 이마저도 벗어 던져야 했다.

 

 

   
▲ 첫날이 무척 힘들었다. 한없이 산을 기어 올랐다.

 

 

   
▲ 큰 계곡에 걸친 흔들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노새나 말, 그리고 야크는 끊임없이 짐을 지고 우리 옆을 지나갔다.

 

 

   
▲ 아! 힘들다. 안해도 몹시 힘들어 했지만 곧잘 올랐다.

 

 

   
▲ 이제부터는 밀림지역이다. 나무들은 온통 이끼로 덮였다.

 

 

   
▲ 쉴만한 자리만 있으면 덥석...

 

 

   
▲ 힘은 들어도 행복했다.

 

 

   
▲ 돈 써 가면서 사서하는 고생 길이다.

 

 

   
▲ 티베트 사람인 롯지 주인과 함께

 

 

   
▲ 랑탕마을의 깃발들

 

 

   
▲ 랑탕 마을회관에서 1년에 한번 3월 대보름에 열린다는 티베트 불교의 전신인 라마교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 라마교 스님들을 10여명 모셔 놓고 마을 사람들이 24시간동안 불경 독경을 한다. 마을 사람들 마다 예물을 준비하기도 하고 음식을 준비해와 나눠 먹으면서... 이 종교모임 장소에 들어서서 한참동안이나 필자는 먹먹했다. 안해는 자이(밀크커피)를 넉잔이나 얻어 마시고 고산으로 인한 멀미 증세에서 기운을 차렸다고 했다.

 

 

   
▲ 필자는 저녁 7시, 11시, 새벽 2시, 6시 등 모두 네차례 이 기도행사장을 더 찾아갔다. 사진촬영이 어려웠다. 24시간 독경이 끝나고 나서 모든 마을 사람들이 소리치며 뱅뱅 도는 단순한 춤을 추며 밤을 지샜다. 이때는 끝내 사진 촬영을 거부했다.

 

 

   
▲ 생일 상을 받아 든 안해 김미영, 그러나 고산으로 인한 멀미로 아들이 만들어 준 그 맛있는 것을 한조각도 먹지 못하고 누룽지만 조금씩 끓여 먹었다.

 

 

   
▲ 또다시 한 컷!

 

 

   
▲ 랑탕마을(3,500m)에 도착하면서부터 둘째 주형이는 심각한 고산증으로 혼났다. 머리가 빠개지는 아픔이란다. 그래도 이뇨제와 비상약제인 비아그라 반알 먹고 정신처려 계속 길을 갔다.

 

 

   
▲ 강진곰파(4,000m) 마을에 거의 이르러 랑탕계곡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랑탕리룽이 위용을 드러냈다.

 

 

   
▲ 진형이도 한 장, 찰칵!

 

 

   
▲ 여전히 머리 아파하는 주형이도 한장, 찰칵!

 

 

   
▲ 가족 사진도 한장!

 

 

   
▲ 강진곰파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머리 아파 꼼짝 못하던 주형이도 산책을 나왔다.

 

 

   
▲ 원래는 강진곰파에 하루 더 머물며 설산 근처까지 올라보기로 했는데 주형이의 고산증이 심해져 다음날 하산 하기로 했다. 결국 고민끝에 나 혼자 새벽 3시 장비를 꾸려 강진리(4,700m)로 오르기로 했다. 다행히 보름달이 무척 밝아 출발이 가능했다. 10시까지 돌아오기로 했다. 그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아들과 포터가 찾아 올라오기로 하고...

 

 

   
▲ 강진리 정상에서 일출을 보겠다고 한 4시간 30분 정도 길 분간이 어려운 40cm 눈내린 길을 겨우겨우 한걸음씩 올랐다. 장난이 아니었다. 양쪽 발은 모두 동상에 걸린 듯 감각이 없어지고 두겹으로 중무장한 두 손은 얼어붙어 사진 찍기 위하서조차 손가락을 움직일수 없었다. 급기야 수통의 물도 꽁꽁 얼어붙고 준비해간 보온병 물도 얼어붙었다. 꼭대기까지 100m 쯤, 한 시간 길 남겨두고 그제서야 황급히 산을 돌아내려 왔다. 나중에 내려와 알아보니 강진리로 가는 길을 잘못 들어서서 강진리보다 더 높게 오르면서(4,700m 정도) 체르고리(4987m)를 향했던 것이다. 여하간 산 뒤쪽에서라도 떠오르는 설산의 일출을 보기는 했다.

 

 

   
▲ 암튼 대단한 경험이었다. 산을 거의 다 내려오니 걱정하던 진형이가 9시부터 이미 아빠 찾아 산을 오르고 있었다. 보온병과 양말 등을 챙겨들고 말이다. 반가웠다. 9시30분쯤 되어 롯지에 돌아오니 안해가 벌써부터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참 반가운 해후였다.

 

 

   
▲ 다시 한번 랑탕리룽, 찰칵!

 

 

   
▲ 나를 찾으러 온 진형이, 자기도 강진리 갈 참이었다고 능청을 떨었다. 아래 멀리 보이는 눈 덮인 마을이 강진곰파!

 

 

   
▲ 안해가 나를 반긴다.

 

 

   
▲ 주형이는 여전히 고산증으로 심한 두통으로 정신을 못차리고 있어 곧장 하산하기로 했다. 난 새벽3시부터 강행군을 해서 쉬어야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무릎이 심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서울와서 며칠 병원 다녀야 할 정도로...

 

 

   
▲ 강진곰파의 어느 롯지 주인과 함께 찰칵! 이 주인은 한국에서 4년 넘게 살아 한국에서 가져온 된장으로 강진곰파에서 된장국을 끓여 팔았다. 대단한 맛이었다. 그래서 강진곰파를 찾는 대부분의 한국인 트래커들은 얼링 롯지에서 묵는다.

 

 

   
▲ 이제부터 하산 길이다.

 

 

   
▲ 포터로 활약한 샘과 비재이, 샘은 근간 한국으로 일하려 온단다.

 

 

   

 

 

   

 

 

   

 

 

   

 

 

   

 

 

   

 

 

   
▲ 네팔의 국화인 랄리글라스가 한창 붉은 꽃을 피웠다. 하산길 코스는 진형이의 결정으로 잘 알려지지 않는 절벽길을 돌아 세파고운에서 하루 더 자는 길을 택했다.

 

 

   
▲ 필자도 이제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절벽길 내내 어지러웠다. 정말 무서운 절벽길의 연속이었다.

 

 

   
▲ 셀파고운 롯지에선 닭을 잡아 직접 백숙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 주형이는 포터들과 연락처 나누기에 여념이 없고... 결국 왕복 각각 7시간 달려 번지점프를 다녀오기로 했던 주형이는 포터들의 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대신 했다.

 

 

   
▲ 밤늦게까지 네팔 노래도 함께 부르고...

 

 

   
▲ 설산들을 보며 걸었다.

 

 

   

 

 

   
▲ 아 이제, 다 내려왔다!

 

 

   

 

 

   
▲ 샤브르벤시에서의 작별! 주인 아줌마는 여장부였다.

 

 

   
▲ 포카라에서는 굳이 넓은 옥상 방을 택해 나흘간 지냈다. 뷰가 좋고 식구끼지 둘러앉기 좋았다. 이때쯤 휴가기간이 다된 주형이는 일주간 먼저 혼자 귀국했다.

 

 

   
▲ 여기는 포카라! 포카라는 페다 호숫가에 자리잡은 네팔의 휴양도시로 트래커들의 휴식처다.

 

 

   

 

 

   

 

 

   

 

 

   
▲ 엄청나게 큰 스테이크로 특별 식사도 하고(값은 매우 싼...)

 

 

   
▲ 한국돈 10만원이 드는 패러글라이딩하라는 진형의 권유를 물리치고, 인근 샤랑곶에 올라 설산 바라보는 것으로 즐기고

 

 

   

 

 

   

 

 

   
▲ 포카라 산악 박물관. 여기까지는 진형의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었고...

 

 

   
▲ 여기부터는 필자의 디카로 찍은 사진들이 되겠다. 카투만두의 한국식당 '경복궁'

 

 

   
▲ 역시 카투만두의 한국식당 '축제'

 

 

   
▲ 파탄 유적지 방문

 

 

   
▲ 쇼핑 1

 

 

   
▲ 쇼핑 2

 

   
▲ 호수가 바라보이는 포카라 숙소 방안에서
   
   
▲ 비닐과 쓰레기로 뒤덮인 페와 호수의 한 구석. 네팔의 심각한 문제는 비닐 공해다. 진형이가 8년전 여기를 찾았을 때는 반딧불이 천지였다는 데 지금은 겨우 몇 마리 정도만 찾아 볼 수 있었다.
   
   
   
▲ 샤랑곶 꼭대기. 나는 오르지 못하고 안해와 진형이만 끝까지 올랐다.
   
   
   
   
▲ 네팔과 포카라에서의 마지막날, 진형이는 생음악이 연주되는 바로 우리를 데려갔다. 네팔 청년들은 비틀즈의 노래들을 멋드러지게 연주해서 우리 부부는 감동 먹었다.
   
▲ 포카라 비행장에서, 포카라에서 비행기 타고 40분, 카투만두에서 방콕행 비행기로 갈아타고 3시간30분, 방콕공항에서 5시간 기다리고 서울행 비행기 갈아타고 6시간, 그리고 김포공항에서 버스타고 1시간 그렇게 걸려 집에 도착했다.
   
   
   
▲ 태국행 비행기 안에서 바라다본 히말라야의 일부
   
▲ 태국공항에서 5시간을 기다리며...
   
   

▲ 포카라부터 서울까지 이르는 시간동안 쇼핑은 고사하고 물 한 잔 사먹지 못햇다. 진형이는 이것저것 사먹으로라고 현지 화폐를 챙겨주었지만 안해는 연신 비행기에서 다 줄텐데 하며 평소대로 아껴댔다. 이렇게 해서 이필완 가족의 뜻깊은 네팔 랑탕 히말 여행은 모두 끝났다. 참 행복했다. 물론 과거도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지만 말이다.

주형이는 랑탕 트래킹으로 많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다시는 고산을 오르지는 않겠지만 네팔은 또 가보겠단다. 앞으로 책을 많이 읽겟다고도 했고 스스로 겸손해 진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안해는 바쁘디바쁜 농도생협 일로 일상생활로 돌아가고 나는 다시 소백산 산막에 내려가 봄농사를 해야한다. 올해는 10만원 들여 20kg 정도 고사리 종자뿌리를 심기로 했다. 그리고 더덕과 곰취를 주로 가꾸리라! 

산돌학교 안식학기로 6개월을 보내고 있는 진형이는 우리를 보내고 나서 또 다시 7일간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래킹)에 올랐다가 어제 잘내려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마도 한 달반동안 동남아와 중국을 계속 배낭지고 혼자 여행하다 돌아올 모양이다. 그는 9월에 또다시 학생들 데리고 3달간 인도와 네팔을 여행할 예정이다. 그의 경험과 식견은 전문 인도, 네팔 여행 가이드 못지 않더라!

비용은 모두 두아들이 부담해 700만원 들었단다. 4명의 항공료로 400만원(85*4에 비용) 정도 쓰고 이런저런 기념품과 선물사는 데 60만원, 나머지가 240만원 정도가 랑탕 입장료와 식사, 숙소 등현지 경비이다.  우리 부부는 등산 장비 준비하는 데 70만원 정도 썼다.  혹 인도여행이나 히말라야 트래킹에 관심있으면 진형이(1.5개월 후 귀국)에게 문의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들들 덕분이라지만 거금 들여 네팔 여행 다녀오니 열심히 땀흘리며 사는 모든 주변분들에게 그저 미안한 마음이다. 그저 여전한 기도와 관심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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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남 목사 (123.200.69.40)
2011-04-16 11:13:05
참 오랜만에 뵙습니다.
목포성광교회 입니다. 전남서지방에서만 24년간 목회를 하고 있지요.
대단하십니다. 저도 자식들과 함께 꼭 가보고 싶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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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6
민종 (116.126.101.207)
2011-04-13 18:22:13
멋지십니다. 대단한 용기 이십니다. 아무나 할수 없는...
리플달기
10 20
김동학 (223.205.85.152)
2011-04-13 13:16:04
수고하셨고 사진이 멋있습니다..김미영사모님생신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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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8
개혁본부 (121.134.176.179)
2011-04-13 11:40:47
좋네요~
경비가 얼마 들었데요???(성인4명 한가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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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7
박인환 (222.117.12.155)
2011-04-12 22:33:29
좋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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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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