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노동리 깊은 산골 선이골에는 영어마을이 아닌 토종 가림다 한글마을을 세우고 살고 있는 농부철학자 다사함 김명식님(66)님이 살고 있다. 그는 제주4.3민중항쟁을 온몸으로 알리는 일을 시작으로 격동의 민주화운동, 평화운동, 문화운동 등 사회운동을 펼쳤고, 이후 대학강단에서 가르치다가 15년 전인 1998년 돌연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이 주는 온전함을 누리고자 서울에서 화천 산골로 지금은 고인이 된 부인 김용희님과 5남매를 이끌고 제물(자연)으로 귀의했다.

▲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노동리 선이골을 찾아 나선 회원들의 발걸음

남들이 그에게 '어떻게 사느냐고 물으면' 그는 단번에 "시들어버린 범부채 잎 위에는 진눈깨비가 쌓였다 녹는다. 고요한 선이골에는 겨울안개가 짙게 덮였는데 누구나 살다가 숨 다하는 것을 모를 까닭 없겠지만 어떻게 사느냐고 물으면 나에게 주어진 길을 간다고 이곳에 온 일이 그러하고 날마다 숲쉬는 일이 그러하오니 오늘이 그러하듯이 내일도 그러하리니 그리움으로 그대를 사랑 짙게 품어내는 일일 뿐"이라는 대답을 할 것이다. 

그는 선이골에 터를 잡은 이후부터 줄곧 우리말과 글의 뿌리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 선이골에 내리는 봄의 기운, 생강나무 꽃

이밖에 한겨레신문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했던 임종진님이 오랫동안 선이골 가족과 함께 기록한 ‘선이골의 얼과 뜻’ 주제 사진전, 화천지역 전통가양주품평회, 전주시립국악단 ‘방중지악’의 신명나는 국악공연 뒤풀이까지 풍성하게 마련했는데 모든 행사의 총괄은 필자가 몸으로 봉사하고 있는 연세대학교 CT(청정문화기술)연구단이 맡아 더욱 뜻 깊게 치루었다. 

▲ 큰 웃음으로 환한게 맞아 주신 다사함 김명식 선생님

그리고 4년이 지난 2011년 3월 26일, 맑고 쾌청한 햇살이 드리운 아름다운 날을 잡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 위치한 경복대에서 새마갈노 회원들이 생태적 삶의 현장을 체험하기 위해 여럿이 강원도 화천으로 떠났다. 청아한 백운계곡과 광덕고개를 넘어 썰렁한 군사 시설들이 공존하는 사창리, 이곳에서 물푸레님 가족과 동행하고는 더욱더 한적한 다목리, 봉오리, 파포리의 농촌오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강원도 화천하면 선이골이 떠오를 만큼 친근감이 있는 골짜기로 들어서기 전 맛난 메밀국수와 감자전, 메밀전으로 점심식사를 나누고는 노동1리 입구에서 ‘가림다 한글마을’ 표지석에서 좌회전 하여 산길을 한참이나 올라갔다. 군 훈련장과 척박한 농토에서는 벌써 초록의 생명들이 움튼다. 이곳이 고단한 삶의 현장이라는 암시를 할 때 쯤 승용차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어 적당한 곳에 세워두고는 사륜구동자동차만이 오갈 수 있는 험준한 임도를 천천히 오르고서야 가림다 한글마을 전경을 눈앞에 펼쳐 놓을 수 있었다.

제일먼저 눈에 뜨인 것이 이층 통나무집으로 ‘하늘말씀배움터’를 찾는 나그네들의 사랑방이다. 이어 손바닥만 한 계단식 논이다. 이곳에는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켜는 울음소리로 장관이다. 이곳 습지는 도시에서 사라졌던 맹꽁이와 개구리 등이 모여들어 수많은 알을 낳고 수생식물들을 자생사켜 생태천국으로 변한 듯 하다. 

▲ 생태적 삶을 지향하는 새마갈노(www.eswn.kr) 회원들과의 만남풍경

여기서 선이골의 경이로운 봄을 가림다 한글마을에서 꼼꼼하기로 소문난 셋째 일목(18)이가 쓴 ‘산개구리 소리 들으며’란 시로 소개한다.

"선이골에 봄 냄새가 난다. 조금 이른 감이 들지만 짙게 난다. 올해 1월 주위는 대단했다. 여느 때와는 다르게 톡 쏘게 추웠다. 내가 느끼는 겨울추위는 두 가지가 있다.

▲ 다사함 시집 ‘사랑의 깊이’ 출판기념 포스터

정겨운 논두렁 길을 따라 가다 선이골 일곱 식구들을 키워낸 슬레이트집을 만났다. 이 건물은 긴긴 겨울을 홀로 보내느라 을씨년스러웠다. 이곳을 곧장 지나면 산 중턱에 자리잡은 다사함 김명식님의 한옥 집이다. 그런데 이날은 뭔가가 달랐다. 집 앞에는 외양간이 들어섰고, 황소는 물론 염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가림다 한글마을 하늘 말씀 배움터에는 해와 달, 별과 나무, 동식물들이 사람들과 더불어 예전보다 더욱더 밀착된 친교를 맺으며 살고 있는 듯 보였다.  

▲ 선이골에는 하늘과 땅, 사람, 동식물이 서로 제 삶을 산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2009년부터 태양광 발전 설비가 무상으로 설치되어 가동 중이었다. 사단법인 ‘에너지 나눔과 평화’와 태양광 설비 전문업체 ‘커너지’가 도움을 준것 같다. 이들은 전기가 없는 오지 주민들에게 무상으로 태양광 발전기를 지원하는 역활을 한다. 이곳에 설치된 태양광의 용량은 4 키로와트로 선이골에서는 이 전기로 밤에 전깃불만 밝힌다고 했다. 변화는 또 있었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일환으로 일목이가 휴대전화를 놓았던 것이다.

▲ 선이골은 예전과는 달리 태양광 발전으로 전기를 만들어 쓴다

곧이어 다사함 김명식님이 큰 웃음으로 온 누리에 따스함을 전하면서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이곳은 하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처럼 '꿈'을 심어주는 장소다. 도착하자마자 일행은 장작난로가에 모여 2시간30분동안 서로간의 정을 나누었다. 앞으로 이곳은 제도권교육이 아닌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연평화교육(소도경전), 한글자립, 가림다 자연생명농원, 다사함 영성, 몸 의학 자연건강연구 등의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는 소식도 접할 수 있었다. 

다사함 김명식님에게는 올 초 제주도에서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의 후배시인들이 마음을 모아 다사함 시집 ‘사랑의 깊이’ 출판기념회를 마련해 준 것이다. 젊은 날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함인 듯했다. 시집은 기존의 억압과 투쟁적 이미지와는 다른 문명과 단절된 채 15년간을 살아오면서 녹아낸 강원 화천 선이골의 사랑과 그리움을 자연스럽게 그려놓았다.

다사함 울림글 묶음 시집, ‘살아가면서’(하나울림, 2008)를 잠시 엿본다. "하늘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높은 하늘을 받으시고, 따앙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너른 따앙을 받으리니, 사람은 사랑을 그리워함으로 깊은 사랑을 받으리라 믿습니다. 오늘은 당신에게 아픈 사랑이오나 벅차게 푸른 바람으로 당신에게 내리시는 사랑은 날마다 넘치는 기쁨이옵니다."

"오늘은 쓰라림이오나 그대 그리워하는 사랑만큼씩 하늘은 그대에게 하늘 사랑으로 내리시나니 살아가면서 나 또한 그대 아픈 사랑을 배우면서 다시 한없는 자랑으로 당신을 힘차게 받습니다. 아, 이 가슴 벅차도록 아, 이 가슴 멈추도록"

늦은오후 회원들이 준비한 과일과 각종 간식을 나누어 먹고는 선이골 깊은 골짜기에 내리는 봄의 기운을 뒤로하고는 다시 세상밖으로 나오면서 우리말 우리글 하늘말씀 '하늘을 읽는다.'라는 다사함 김명식님의 시적 감성에 빠져본다. 

▲ 새마갈노회원들과 함께 한 다사함 김명식님 가족들 모습

"여기까지 살아온 나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책, 글을 읽었다. 오늘도 읽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뭔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만들면서...

읽고 또 읽고, 오늘도 읽고 있다. 어찌된 일인가? 읽으면 읽을수록 더 모르겠고 읽어대는 책, 자료, 신문, 경전... 남북의 정보 과학의 이론, 철학마다, 종교마다...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과 머리가 뒤죽박죽 아프기까지 하다. 의학, 약학을 읽으면... 처방이 다르고 원인규명이 다르고... 치료되었다는 것 보다 치료되지 않았다...는 기록은 물론...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종플루, 구제역까지... 를 읽는다.

읽고, 읽고, 또 읽어온 나는 정작 '나'를 한번도 읽고 있지 않음을 되새겨 본다. '하늘을 읽는다.'를 다시 한 번 새삼스럽게 생각해 본다. 참으로 '나'는 '무엇'을 읽고 있으며, 읽으려고 하고 있는가?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자료, 정보, 광고물, 신문, 잡지, 논문... 책들 앞에서...'읽다. 읽는다.'를 생각해 본다.

▲ 가림다 한글마을의 다사함 김명식 선생님

한번이라도 '어머니'를 읽어보았는가? '아버지'를 아내를, 남편을... 아이들을... 이웃들과 벗들을, 선생님과 제자들을... 신도들을 읽고 있는가? 읽어보았는가? 백성들의 아픈 가슴을 읽어 보았는가?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보려고 발거둥치는 저 아이들, 젊디젊은 청년학도들을 단 한번만이라도 진정으로 읽어보았는가? 읽고 있는가? ... 이러한 생각에 잠기면서... 나도 알 수 없는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내린다. 눈에서 가슴속에서... 아! 온몸에서... 나는 나를 한 번도 읽어 보지 않았고, 다른 사람, 이웃의 아픔을... 그 가난을 읽어 본 일이 없었구나...를 생각하니...

'읽다'는 '헤아리다', '세다'... 하나 둘 셋... '셈하다'... 따위로도 읽을 수 있겠다. 책(글)을 읽다. 마음을 읽다... 아픔을... 가난을... 괴롬을 남편을, 아내를, 선생님, 제자들을... 이웃을... 벗... 세상을, 자연을, 우주를 읽다... 따위로 쓰여 지겠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읽다'는 소리 내어 글(책)을 읽는 것만이 아닌 것이리라... 무엇일까?

읽다(ㅇ+ㅣ+ㄹ+ㄱ+다)는 내(ㅇ)가 하늘이 내려주신바(ㄱ)... 그냥, 그대로, 그처럼, 그토록, 그저, 그답게, 그 되게... 그렇게 한울 하나님(하늘, 따앙, 사람이 한 몸을 이루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는 우주의 힘 Cosmic Energy, Universal Energy를 뜻합니다.)의 뜻, 바라고 바라시는바(것)를 다 이루고(이) 거기에 이르고(이) 한울님의 뜻을 이어나가고(이), 이제 여기에 살아 움직이고 있게 하고(이), 드디어는 내가 한울의 뜻이 되나이다(이)를 뜻함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읽다'는 나를 읽고 너를 읽으며 우주(하나님, 한울님)소리 내어... 마음속으로 깨달아 아는 빎이며 기도이며 명상이고 묵상인 것을 알게 된다. 읽다...는 나를 알게 하고 나를 되게 하며 동시에 너를 알게 하고 너와 함께 할 수 있게 하는 문(길)인 것이리라.

모든 교육(정치, 사회, 문화, 예술, 경제, 종교, 과학... 자연...)의 첫 걸음은 '나'를 읽게 하는 '나'를 지어내는 일이 되어야 하리라 믿는다. 내가 너와 만나려면... 조용히 '너'를 읽을 수 있어야 하겠다. 우주로 가는... 우주, 한울, 하나님, 부처, 알라... 와칸탕가(인디안의 위대한 정령, anima mundi, Cosmic Spirit Universal Soul...)...를 읽을 수 있는 우리말 우리 글 한울말씀, 한글의 얼과 뜻을 찾아가야 하리라 믿는다.

▲ 새마갈노회원들과 함께 한 다사함 김명식님 가족들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