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없이 추웠던 날씨에 더욱 길게 느껴졌던 겨울이 사그라드는 때라지만 여전히 시청광장을 휘감는 찬바람은 매섭기만 했다. 휑하니 트인 공간이라 그런지 바람은 다른 곳보다 매섭게 행인들의 옷깃을 파고들었고 원형의 공간이라 그런지 그 매서운 바람은 빙빙 돌면서 훤히 드러난 행인들의 뺨을 연하여 후려쳤다. 그 거리를 벌써 1200일 가까이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재능교육 방문지 학습교사들이다. 회사의 통제를 받고 교사가 돈을 내 허위학생을 만드는 등 부정업무를 강요받기도 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교사모임을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노동조합이 조직되었다. 그러나 재능교육 사측은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라며 해고하고 월급을 가압류 하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회사 앞 농성이 벌써 1200회를 목전에 두게 된 것이다.

언제나 고난당하는 이웃, 부당한 처우와 맞서 싸우는 민중과 함께 하고자 모인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 소위 촛불교회라고 불리는 이들이 2011년 첫 예배행진을 위해 3월 3일 저녁 7시 30분에 시청광장 옆 재능교육 사옥 앞에서 농성중인 방문학습지 교사들을 찾았다. 벌써 여든세 번째 예배행진이다. 이날은 이미 언급한대로 무척 추웠고 바람도 드셌다. 빌딩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 옷깃을 꼭 말아 쥐고 총총히 걸어갈 정도였다. 그래도 그 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예배는 발레오공조코리아라는 회사의 노동자들도 함께 하였다. 발레오공조코리아주식회사는 프랑스계 기업인 발레오가 매입하여 운영하는, 콤프레셔 등을 제조하는 회사이다. 프랑스의 발레오는 전세계에 6만 명의 직원을 고용한 다국적기업이고 발레오공조코리아는 해마다 3%대 성장을 해오던 회사였지만 발레오이 돌연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이제는 공장폐쇄를 하겠다며 청산절차를 밟는다고 했다. 이는 외국자본 회사들의 소위 ‘먹고 튀는’ 행각의 시작이었고 노조는 이에 항의하며 해고를 중단할 것을 요청하면서 싸우게 되었다.

예배가 시작되면서 제2의 용산 철거현장이라고 할 수 있는 홍대 앞 철거현장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싸우고 있는 두리반식당 철거민인 유채림님이 함께 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렸다.
시대의 증언을 위해 먼저 발레오 노동조합의 지부장이 나섰다.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마음씨 좋게 생긴 평범한 사람인데 이 험한 시국에 앞장을 섰다. 그는 지난한 농성과정에 네 번이나 비싼 비행기삯을 들여 프랑스 발레오 본사에 갔다왔지만 여전히 똑같은 소리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했다. 또 발레오의 프랑스노동자들이 연대를 위해 한국에 와서 함께 먹고 자고 했는데 농성하는 것을 보면서 매우 놀라며 많이 배우고 갔다고 했단다. 그는 ‘노동연대투쟁에 기꺼이 참여한 착한 노동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오늘까지 서 있다. 외국자본의 횡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각오로 오늘까지 왔다. 사람이 80평생을 산다는데 이렇게 열심히 투쟁하면서 한 2-3년만 고생하면 나머지 생애를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며 사람 좋게 웃어보였다.

이어 재능교육의 유명자 지부장이 시대의 증언을 하였다. 그는 재능교육과 발레오 노동자, 기독교인,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이 자리에 있어서 좋고 승리의 기대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지만 표정은 웃지 않았다. 지난 성탄절에 고난 받는 이웃과 함께 하는 성탄절 예배에서도 유 지부장이 나와 발언을 하였는데 그때는 우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표정에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하였다. ‘그 새에 얼마나 더 악에 받쳤으면 저렇게 독해졌을까!’ 이어지는 유 지부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1000일이 넘으면서 온갖 종류의 공무원들은 만나보았다. 경찰, 시청, 구청, 소방청, 공원녹지과, 문화재국, 회사측에서 고용한 용역들까지. 다양한 세력들이 와서 현수막을 떼어가고 재판을 걸고 감시를 했다. 현수막을 떼어갔지만 단 한 번도 합당한 법적 근거와 답변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온갖 탄압과 공격, 판사의 선고와 회사의 손해배상 청구, 노사고충담당자의 성희롱과 협박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괴롭힘을 당했다. 그걸 보면서 이 회사가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모르는 회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까지 가는지 끝까지 가보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겨울을 네 번 보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에서 노동자들이 생존을 걸고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 참석한 분들이 기억해 주기 바란다.’

끝으로 하늘샘교회 김종수 목사(촛불교회 집행위원장)이 요한복음 14:1-6의 말씀으로 하늘 뜻을 전했다. 김 목사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성서에서 하늘은 복수형으로 쓰인다. 하늘이 바로 우리들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의 노동자들이 무서운 하늘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는 자신을 길이요 진리, 생명이라고 말했다. 비천한 땅 나사렛에서 태어난 예수는 빈익빈 부익부의 세상에서 허망함을 보았다. 그리고 30줄에 접어들면서 자기 안에 무서운 하늘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길이 되었다. 우리도 정당한, 공평한, 땀의 댓가를 받는 세상을 위한 길이 되기 위해 이 차가운 길바닥에 나섰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이들에게 무서운 하늘이 되자. 재능과 볼레오 노동자들이 길을 만들어 가라!’고 설교하였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그러나 신성한 노동이 돈을 환산될 때 신성함은 사라지고 그저 돈독이 오른 인위적 행동으로 전락한다. 거기에는 인간의 신성함마저 사라진다. 인간도 하나의 기계 부속마냥 치부된다. 그렇게 인간을 대하는 인간 역시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계산기와 같은 숫자놀음을 위한 기계로 타락한다. 기계가 기계를 탄압하는 곳에 인간이 설 자리는 없어진다. 거기에 노동을 신성하게 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인간이기 위해 노동은 신성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예수님이 지금 한국에 오셔서 재능교육과 발레오공조의 노동자들을 보셨다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하셨을까? 이 질문을 끝없이 스스로에게 묻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를 결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시청광장의 매서운 칼바람을 맞는 바로 그 자리에 예수님은 촛불교회와 함께 하셨다는 고백의 근거이다.

촛불교회는 다음주 목요일(10일) 오후 7:30에 홍대앞 두리반 식당(2호선 총대입구역)에서 다시 예수님을 만난다. 두리반은 철거된 지 1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바로 길이 되어 무서운 하늘을 보여주는 작은 예수님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