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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달라지면 삶이 달라진다 - 3말하며 사는 세상과 이야기하며 사는 세상은 아주 다르다
김영동  |  deom-past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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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2월 25일 (금) 10:53:05
최종편집 : 2011년 02월 27일 (일) 16:57:17 [조회수 : 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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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세상 이야기 세상

하며 사는 세상

이야기하며 사는 세상

아주 다르다

 

 

   수 다시 사셨다는 놀라운 체험과 증언은 유대교의 낡은 껍질을 깨고 새롭게 태어나는 새 생명의 힘찬 울음이었다. 훗날 사도 바울께서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전하는 것이 다 헛것이라고 단언을 할 정도로 부활신앙이야말로 예수 말씀과 생애와 십자가 죽음의 확실한 열매요 지금도 계속 진행되는 하나님의 구원역사(救援役事)인 것이다.

  그러니 예수 부활의 모습이 실제적인 생활에 어떻게 비춰지고 나타났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아주 중요하겠다. 농사를 추수해 들이듯 열매와 같은 부활신앙의 교훈만 잔뜩 가지고 있지 말고 그 교훈의 열매들을 씨앗으로 우리들의 생활 속에 심고 뿌리면 어떤 모양으로 싹이 나고 자라고 푸르러지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영글어 가는지 그냥 확∼∼∼ 뿌려보자는 말이다. 농사를 지어 풍성하게 생산하듯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생활신앙으로 분명하게 살아보자는 이야기다.

   그러려면 먼저 성서 속에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활 생활을 추적해 보고 되살펴 보아야 하리라. 성서가 전하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활감각을 찾아보고 그것을 우리들의 생활감각과 비교해 보면서 공감대를 이루어 내야 할 것이다. 오늘은 엠마오 가는 길로 낙향하는 두 제자를 만난 예수님의 행적을 살펴보기로 한다. (누가복음 24 : 13∼27)

   길을 가는 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하며 걷는 것을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성서는 이 모습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날에 저희 중에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리(10km)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누가 24:13∼14)

 

   부활하신 예수님은 길을 가는 두 사람 사이에 동행으로 끼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다시 알아보면 두 사람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분명하게 길이 사람들을 함께 가게 할 뿐만 아니라 이야기도 사람들로 하여금 함께 할 수 있게 만드는 자리임을 깨닫게 된다. 바로 신앙은 이야기 길이다. 이야기 길이라는 동요를 부르던 기억도 난다.

 

동무 동무 씨(새,내?)동무 / 이야깃 길로 가아자.

옛날옛날 옛적에 / 간 날 간 날 간적에

아기자기 재미나는 / 이야기 길로 가아자.

 

   부활하신 예수께서 길 가던 두 제자의 이야기에 끼어들어 하신 말씀이다.

 

   “너희가 길을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무슨 일이뇨?”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누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생략>

   “미련하고 선자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이제 성서말씀의 대화를 가지치기 하고 줄기만 남기듯 아주 단순화시켜보자.

 

   “이야기가 무엇이냐?”

   “된 일(일어난 일)”

   “무슨 일?”

   “나사렛 예수의 일”

   “그가 누구냐?”

   “말과 일에 능하신 분!”

   “자기의 영광”

 

   성서에선 말과 일에 능하신 예수에게 일어난 일이 이야기란 말이다. 그러니 오늘의 말은 음성적 부호로서 사건과 일이 없는 말이고 오늘의 이야기란 우리의 말과 일이 만들어 내는 일어난(된) 일(사건)을 들어내는 것이다. 이야기란 곧 말(생각)과 일(손발의 행동)이 어우러진 생활, 그 자체이다! 

   따로, 일 따로 있던 시대가 그리 멀지 않고 아직도 우리들의 무심한 생활과 사회의 구석구석엔 말 따로, 일 따로 나누어져 인간의 높낮이를 나타내고 있음을 생각할 때 말과 일이 함께 어우러져 개인의 일상생활이 되고 그 생활이 서로 나눌 이야기가 되는 세상을 이루어 낸 예수 부활의 사건은 참으로 신기하기 짝이 없다.

   따로 있어 사람대접 받는 배운 놈, 잘난 놈이 되는 왕조 시대가 1세기 전이다. 양반, 상놈 따로 구별하여 글 읽어 말하는 놈 따로 있고, 상놈으로 종놈으로 일만하는 놈 따로 있던 시절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떠한가? 말과 일이 누구에게나 함께 어우러져 하나인 평등한 이야기 세상인가? 아니면 아직도 말 따로 일 따로 있어 이야기를 누르고 말만 뻔지르한 말이 판을 치는 높낮이 세상인가? 설마 아직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좋은 부모만나 교육 잘 받아 출세하면 말만하는 잘난 놈 되고 그렇지 못하면 일만하는 못난 노동자, 농민이 되는 예수부활 이전 세상은 아니겠지? 나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 못하겠네. 말과 일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그런 이야기 세상이 아직도 낯설어 대답 못하겠네. 벗님들은 어떠신가?

   노동자가 일하다가 말하면 배우지도 못한 것들이라고 자존심 상해하며 차라리 공장 문을 닫아 버리는 그런 자들이 판을 치던 세상이 엊그제 아니었나? 농민이 일하고 일하다 빚만 늘어 살길이 없이 빚만 늘어나 에라, 허리펴고 깃발들고 말했더니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면서 다 잡아 넣으라고 난리치던 게 90년대 초 지지난 겨울 아니었나?

   사람이 사는 어두운 세상은 말과 일이 따로 구별되는 사회였다. 예수께서는 그런 세상에 빛으로 오사 말과 일이 개인의 일상생활에 하나가 되는 이야기 세상을 살아 보이시고 그걸 못 견디는 자들에게 잡혀 십자가 죽임을 당하셨지만 다시 사셔서 말과 일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 사람이 사는 삶이라고 일깨워 주신다. 말과 일이 하나인 생활이야기의 전형으로 예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 속에 끼어들어 우리를 일깨워 주신다. 부활의 세상은 말만하며 사는 세상이 아니라 누구나 말과 일이 어우러진 생활을 살고 그 체험과 자기성찰의 이야기하며 사는 세상인 것이다.

   은 대부분 교훈이 되고 열매가 되었다. 그래서 땀을 흘리는 일과 자라가는 젊음이 요구되지만 그 실천이 따라주질 않으면 말은 메마른 씨앗이요 끝까지 심판의 잣대일 뿐이다. 율법인 것이다. 말이 완성되기 위해선 일(사건)과 자람이 어우러져야 한다. 그래서 예수께서 ‘나는 율법을 완성시키려고 왔다’고 하셨으리라.

   은 설계도이고 일하는 과정을 지나 세워진 건축물은 바로 이야기이다. 말은 아직 잠든 계획이고 이야기는 지금 실현되는 생활이다. 말은 씨앗이고 이야기는 그 씨앗이 뿌려져 싹이 나서 자라는 들판의 푸름이고 자람이다. 말은 겨울이고 이야기는 그 겨울이 끝나는 봄과 여름이다. 말은 모세가 전한 돌판에 새긴 율법이고 이야기는 예수께서 살아 보이신 생생한 생활, 내 마음 판에 새겨지는 기쁜소식 (복음)이다. 말은 될 수 있으면 하지 말아야 할 반편이지만 이야기는 더욱 부지런히 널리 전해야할 온전한 생명체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에게 보여 주신 것은 말하며 사는 세상과 이야기하며 사는 세상이 아주 다른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작은 차이를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 들었을 게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속에서 말과 일이 어우러져 하나가 된 사건인 생활이야기는 그래서 성서적이고 부활하신 예수방식인 것이다.   

 

   때문에 마음에 상처가 많습니까?  그래서 혹 말을 하지 않고 마음을 닫고 삽니까?그러면  어느덧 모든 관계가 냉랭해지고 당신의 인생은 자기중심의 욕심과 추운 고독으로 채워지고 아집과 독선으로 굳어지겠지요. 그곳에 권위라는 근엄한 옷과 돈이라는 화려한 환경과 제 잘난 굳은 목과 어깨가 꼿꼿하면 가히 절경이 되는 것이겠지요. 오늘의 세태가 그 모양 아닙니까? 지천으로 널려 있는 닫히고 막힌 사회로 분출하는 거센 돌풍은 악행들이 아닙니까? 그리고 살벌한 말들, 말들, 냉정한 말들, 말들!

   아직도 말을 일과 엮어 일상에서 생활로 살고 그 일상생활로 이야기를 빚어 만드는 기도생활이 익숙하질 않습니까? “성숙한 신앙의 경지로 나아가라”(히부리서 6:1)는 말씀은 믿는 이들에게 명하시는 하나님의 지엄하신 명령입니다. 우리들의 기도자리에 늘 밝혀둘 등불은 성숙한 지경으로 나아가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누구에게 미루겠습니까? 기도가 생활이 되는 성숙한 경지를 우리가 살아가야지요. 그러니 일과 어우러지고 땀 흘려 온 몸으로 사는 일과 뒤섞여지지 않은 말은 되도록 하지 맙시다. 침묵이 금이라는 말씀은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눈 맞춰 함께 보지 않으면, 함께 볼 수 없으면 말을 아낍시다. 입 맞춰서 함께 말하지 않으면, 함께 말 할 수 없으면 말을 삼가 합시다. 이젠 손, 발 맞춰 함께 일한 말들이 아니면 말은 하지 맙시다. 주님도 그러셨지요. 개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

   말이 없는 침묵과 묵상 속에서 비로소 우리가 눈 맞춰 함께 보고 이야기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입 맞춰서 함께 말할 수 있어 처음으로 생활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들어 줄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우리가 손발 맞춰 함께 일하게 됨으로 우리의 생활을 만들어 내고 서로 통하는 생활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일과 말이 하나 되어 우리 생활이 된 생활이야기가 우리들의 삶속에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말세의 기쁜 소식이 아니겠습니까! 이제는 생각에서 나오는 말은 조금 하고 그 말이 땀내나는 수고와 정성의 일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삽시다. 마침내 말보다 이야기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리니 그곳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먼저 가신 새 하늘과 새 땅일 것입니다.

 

   벗님들이여,

   말을 들어보면 그 말을 만들어 말하는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꿰뚫려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말에 속아 넘어간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온 몸으로 진실하게 살고 일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아직도 우리가 자기 생각만을 머리에 굴리며 산다는 말입니다.

   벗님들이여,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야기를 하는 그 사람의 영혼과 그가 한 일이 꿰뚫려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야기를 말과 구별하고 알아들을 줄 안다는 말은 우리가 서로 손, 발 맞춰 함께 일을 한다는 말입니다. 온 몸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서 겸손히 산다는 말입니다. 신분사회로 말과 일을 구별하고 나눈 잘못 전해진 유교의 뿌리 깊은 천년 역사를 문득 깨고 일어설 신앙의 용사는 누구입니까? 마땅히우리가 되어야겠지요.

   이희승 편의 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는 <말>과 <이야기>의 낱말 뜻을 이곳에 적어 봅니다. 찬찬히 일독하시고 말의 수준에서 벌떡 일어나 이야기의 성숙한 생활로 나아가시길 축원합니다.

 

   말 : 사람의 사상, 감정을 나타내는 음성적(音聲的) 부호.

             곧 사람의 생각을 목구멍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나타내는 소리, 언어, 언사.

 

     <속담> - 1. 말로 온 동네 다 겪는다 :

                    (일인 행동도 실천하는 생활도 없이) 말로만 남을 대접하는 체 한다는 말.

                 2.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

                    가정에 잔말이 많아 화목하지 못하면 (일인 실천하는 생활은 없고 생각만 많으면)

                        살림이나 모든 일이 잘 안된다는 말.

                 3.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

                    말이 많으면 오히려 효과가 적다는 말. (말이 많다고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님)

 

   이야기 : 준말 <얘기>

                 1. 남이 모르는 일을 일러 주는 말.

                 2. 서로 주고받고 하는 말. (대화)

                 3. 경험한 일이나 심중에 느낀 바를 털어 놓는 말.

                 4. 어떤 문제를 한가운데 놓고 하는 이런 말, 저런 말.

                 5. 어떤 사실이나, 있지도 아니한 일을 사실처럼 꾸미어서 재미있게 늘어놓는 말.

                 6. 소설. 소문. 평판.

                 7. 사정하는 말. 옛날이야기.

 

                                                                                 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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