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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목회세미나⑦] 패널토의발제 / 김기석 목사익숙한 하나님의 상이 깨지면 고통의 연대가 시작된다.
방현섭  |  racer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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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2월 16일 (수) 11:01:20
최종편집 : 2011년 02월 16일 (수) 14:12:57 [조회수 : 4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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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목회세미나의 마지막 강의라고 할 수 있는 패널토의 발제가 마지막 날 오전에 시작되었다. 해마다 세미나의 패널토의 발제는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가 맡아주었는데 올해도 역시 초청되었다. 다음은 김기석 목사의 발제내용이다.



어느날 문득 내가 문밖의 존재라는 생각에 쓸쓸함을 느끼던 중 기적적으로 교회 종소리를 듣고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하나님은 한용운의 임의 침묵에서의 강렬한 입맞춤처럼 내 인생에 찾아오셨으나 그후 계속 뒷걸음 치셨다고 느낀다.

옛 고택의 경우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문이 나오기도 한다.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갔으나 문 밖에 있기도 하고 또 문 안에 있기도 하다. 안에 있는 것처럼 여전히 밖에 있는 혹은 그 반대의 경우가 있다. 불확실성 속에 살고 있은 우리 존재의 실재이지만 미로와 같은 인생이기 때문에 또한 아름답기도 하다. 특정할 수 없는, 나의 내면에 있는, 남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어떤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비틀거리면서도 우리 길을 가게 하는 힘이 아닌가 한다.

나는 뿌리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다. 오랫동안 믿어온 가족의 신앙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대신에 기독교의 맹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기존 가치관에 맹종하지 않고 자유롭게 바라볼 수도 있었고 경계인처럼 넘나들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었던 자리에 섰던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벌 혹은 상을 주는 존재로 여긴다고 한다. 징벌과 상을 주시는 하나님이 신자들의 신앙을 옭죄고 있다. 과연 하나님이 그렇게 작으신 분이신가? 두려움을 주입하는 것과 축복이라는 변질된 번영의 복음으로 신자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고 있다.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는데 두려움을 주입하고 번영만이 아닌 세계도 있음을 알려주어야 할 교회가 축복을 주입하고 있는 것이다. 감시자, 가부장으로 군림하고 있는 하나님의 상으로부터 교인들을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

예언자들은 하나님께 복종하기도 하지만 대들기도 한다. 대들 수 있는 것은 거기에 하나님이 든든하게 계셨기 때문이다. 왜곡된 하나님 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내 목회의 원칙이기도 하다. 성서에는 다양한 하나님에 대한 은유를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은 목자, 산성, 바위, 기억, 반석, 구원의 뿔 등등 매우 다양한 은유들이 나온다. 왜, 어떤 상황에서 이런 비유를 했을까를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다양한 이미지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상력으로 만난 하나님을 자기의 삶에 통합시키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해체를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조율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뜻에 하나님을 동원하는 것이 일반적인 교인들의 현실이다. 나라는 작은 자아가 하나님이라는 큰 세계에 동참하는 것, 개별적 자아가 보편성 속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 감동을 자아낸다. 신앙생활도 작은 자아를 해체하고 보편적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건 성찰하는 신앙인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교인들이 성찰적 주체가 되는 것을 목사들이 싫어한다. 이런 구조가 가능한 것은 인간의 유한성, 운명의 불안성 때문이다.

사람들은 삶의 진실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번영에 몰두한다. 간증이 이런 기제를 강화한다. 그러나 간증과 현실은 괴리되어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다는 간증보다는 무엇을 주지 않았는데도 감사한다는 간증이 설 자리는 없다. '여전히 하나님이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희미하지만 나는 끝까지 하나님을 찾아 따를꺼야' 라는 간증은 들어볼 수 있다.

세상에는 여전히 불의와 고통이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가? 또한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믿을 수 있는가, 선하신가? 이 질문은 끝없이 확장된다. 숨겨진 하나님, 어둠 속에 계신 하나님이 성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님 이미지 중 하나이다. 욥의 하나님. 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의 거울이 깨지는 경험을 한다. 알았던 것이 모르는 것이 되고 모르던 것이 아는 것이 되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우리는 솔직해야 한다.

테레사 수녀는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하였지만 매일 새벽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가난한 사람들을 섬겼다. 그는 이미 더 큰 하나님의 현존 속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이 괴물로 변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내가 구축했던 하나님 상이 깨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때가 하나님과의 더욱 깊은 대화에 참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신의 얼굴이 낯설어지는 그때 세상의 고통에 연대하게 되는 체험을 하기도 한다.

예수의 하나님 체험. 예수는 기존 질서에서 말하던 것과 다른 하나님을 만나고는 '아바'라고 부르게 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으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괴롭히는 어떤 사람의 아버지이기도 하는가?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가? 예수는 그렇다고, 인정하라고 우리에게 요청한다.

하나님은 인식의 대상이 아니다. 경험을 통해서 인식되는 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을 교회가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전과 공간의 문제도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때만 하나님을 인식한다. 하나님의 있음(being)은 우리들의 이다(is)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나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저 하나님 주위를 맴돌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분의 곁을 떠나고 싶지는 않다.

 

발제 이후 패널들이 나와 패널토의를 진행하고 있다.

 

3일 동안에 진행된 예수목회세미나 강의 동영상이 조만간 한국기독교연구소 홈페이지를 통해 서비스될 예정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한국기독교연구소 홈페이지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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