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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목회세미나③] 예수가 경험한 하나님, 조태연 교수 특강예수는 모든 경계를 넘으시는 하나님을 만나셨다.
방현섭  |  racer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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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2월 14일 (월) 20:38:46
최종편집 : 2011년 02월 15일 (화) 13:07:01 [조회수 : 5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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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를 마친 후에 첫 번째 특강이 열렸다. 첫 번째 특강은 호서대학교 교목실장인 조태연 교수의 '예수가 경험한 하나님'이다. 한인철 교수를 통해 강의 초청을 받았는데 무엇을 이야기할지 너무 막막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한 조태연 교수는 이번에 처음으로 예수목회 세미나에 함께 하였다. 조태연 교수의 강의 내용 요약이다.

유대인의 역사를 관통하는 핵심적 가치(이데올로기)는 카도쉬(거룩, 성결)이다. 삶 속에 어떻게 여호와의 성결을 이루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성결의 계급화, 등급화를 가져왔다. 유대인의 사회적 몸과 인간의 몸은 거룩성을 유지하는데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그런 이미에서 성결은 부정한 것으로부터의 경계의 설정이다. 이는 평범한 것(normal)과 독특한 것을 구별하면서 경계를 설정하게 된다.

또 성결은 공간을 계급화한다. 거룩한 공간과 불결한 공간으로 나누어진다고 유대인은 생각한다. 이스라엘 땅은 이방 땅보다 거룩하다. 그러나 성을 가진 도시가 더 거룩하며 예루살렘 성안은 더욱 거룩하다. 이렇게 열 단계를 거쳐 가장 거룩한 곳은 지성소가 된다.

또 성결은 시간의 계급화를 가져온다. 거룩한 시간은 순환적이고 주기적이며 가역적이고 회복가능하다. 예를 들어 안식일은 보통 날보다 더 거룩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거룩한 시간으로부터 얼마나 더 가까운지, 창조에 가까운지, 하나님께 가까운지로 결정된다.

인간도 계급화한다. 레위인으로부터 성기가 없는 자들까지 열 단계로 나누어지는 인간 역시 공간의 계층화와 마찬가지로 그가 성전에서 얼마나 가까운지로 결정되며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에 대한 규정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세계관이고 삶의 방식이다.

그렇다면 예수의 세계관은 어땠을까? 예수는 그런 유대인의 삶의 방식에 매몰되지 않았다. 구약에는 나오지 않는 나사렛이라는 동네까지 세례요한의 외침은 들려왔고 예수는 그 외침을 따라 세례를 받았다. 세례요한의 세례는 몸을 반쯤 담그고 입으로 죄를 회개하는 세례이지만 예수의 세례는 온 몸을 물에 담그는 침례로 완전한 죽음을 의미한다.

마가복음 1:9은 (회개를 촉구하는 세례요한의) 소리를 들은 예수에 대해 묘사하는데 10-11절은 소리(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를 얻었음을 알려준다. 득음, 완전한 죽음을 통해 놀라운 경험을 몸소 얻었다. 이어 14-15절은 예수가 소리가 되었음을 알린다. 우리는 이 소리를 복음이라고 부른다. 들음에서 득음, 득음에서 복음으로, 예수는 한 평생 소리로 존재하였다. 세례요한은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외쳤으나 예수는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알렸다. 소리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다. 엘리야가 만난 하나님은 세미한 소리 가운데 계셨다. 이어 마가복음 9장에서 예수는 하늘의 소리를 나누었고 다시 하늘의 소리를 구하였다(마가복음 1, 6, 14장). 최종적으로 예수는 마지막 겟세마네의 기도에서 신의 응답을 듣지 못한다. 마가는 소리라는 문학적 소재와 장치를 통해서 예수의 사역을 형상화하였다.

예수의 하나님을 살펴보자. 가장 소외된 사람 중의 하나인 예수는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용서와 사함을 베풀었다. 문둥병 환자를 만난 예수는 불쌍히 여겨 손을 내밀어 만진다. 가장 부정한 자를 보듬고 어루만지는 손, 그것은 하나님의 손이다. 누가 손을 내밀어 누구를 만지든 그 손이 연민과 불쌍히 여기는 손이라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손이다. 그러면 이미 하나님 나라는 너희 중에 임하였다고 예수는 선언한다.

노먼 페린의 연구는 가장 확실한 예수 자신의 말씀은 대부분 식탁에서 나왔다고 밝힌다. 식탁교제는 매우 중요한 예수의 모습이다. 예수는 먹고 마시고 놀고 사람들과 교제했고 잔칫집에서는 항상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예수의 식탁교제, 먹고 마시는 것은 치유와 맞닿아있다.

도마복음 97의 항아리의 비유는 어머니 같은 하나님, 선을 넘는 하나님, 문화와 종교의 경계선을 넘어버리는 하나님, 자기 비움을 이루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난다. 그것이 바로 예수가 경험한 하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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