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의 창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 이를 ‘관점’이라 해도, ‘철학’이라 해도, ‘시각’이라 해도, ‘신앙’이라 해도 상관없다. 목사의 창에 걸린 영화, 목사의 안경너머로 비친 영화, 그 이야기를 해본다.

“종교(宗敎)는 특정한 믿음을 공유하는 이들로 이루어진 신앙공동체와 그들이 가진 신앙체계를 말한다. 종교인들은 주로 신을 비롯한 초월적인 대상의 존재 또는 세계에 대한 궁극의 진실, 사람은 어떠한 도덕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각자의 믿음을 갖고 있다.”

<위키백과>는 종교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종교체계’는 일종의 ‘사상’이다. 그리고 그 체계에서 사물을 보며 초월적 존재를 본다. 사람들은 목사를 ‘종교인’이라 말한다. 목사인 나는 이 말을 가장 싫어한다. 하지만 어떤 ‘종교체계’가 내게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체계는 존재한다. 바로 내가 갖고 있는 체계 안에서 영화 <세인트 클라우드>를 들여다봤다.

스텝1, 영화의 텍스트(Text)를 말하다

▲ 영화 <세인트 클라우드>의 포스터

요트경기의 유망주인 찰리와 동생 샘(찰리 타헨), 이들은 유다르게 우애가 깊은 형제다. 교통사고로 동생 샘이 죽는다. 하지만 찰리는 동생을 보내지 못한다. 일몰 축포가 터지면 둘은 공동묘지 숲에서 만나 야구 연습을 한다. 찰리와 샘은 계속 그렇게 만나기로 굳게 약속한다. 영화는 현실에서의 형제애가 죽음과 삶이라는 시간의 살피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두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든다.’고 해도 좋고, ‘이생과 내생이 공존한다.’고 해도 좋다. 하여튼, 영화나 소설 등 픽션에서만 가능할 환상적 스토리가 몹시 흥미진진하다. 데미무어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사랑과 영혼>(1990, 재리 주커 감독) 이래 괄목할 만한 작품임에 얼없다. 하지만 이미 <사랑과 영혼>에 물든 21세기 관객은 <세인트 클라우드>에 그리 산뜻한 반응을 보이진 않는 것 같다.

<사랑과 영혼>이 우정과 사랑을 모두 갖추고 있다면, <세인트 클라우드>는 형제애와 사랑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실과 영혼을 넘나들며 형제애를 만끽하는 찰리와 샘 앞에 미모의 요트선수 테스(아만다 크류)가 등장한다. 그러면서 잠시 사랑과 형제애 사이가 엉킨다. 하지만 결국 사랑이란 공통분모로 인하여 형제애도 사랑도 모두 성공하게 된다.

갑작스런 테스의 조난, 영화는 그녀를 구하러 동생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험난한 바다로 요트를 몰고 가는 찰리의 심연 속으로 카메라를 들이민다. 자신의 체온으로 여자 친구를 덥혀 구함으로 사랑이 승리했음을 관철한다. 형제와 연인의 사랑, 기적에 대한 믿음, 현실과 영혼, 이생과 내생이 절묘하게 간극을 줄이므로 영화는 사랑만이 정답이라고 말한다.

스텝2, 영화의 종교체계를 말하다

▲ 찰리와 샘이 야구 놀이를 하고 있다.(UPI 코리아)

그러나 환상이나 죽은 자의 현현 등으로 볼 때 종교적인 색체가 강하다. 신은 피안의 세계에 있지 않다. 신은 사람이 되고, 동식물이 되며, 바람과 바위가 된다. 신의 현현은 신자신의 현현일 수도 있지만 신의 계시를 입은 생명체의 현현으로 나타날 때가 많다. 죽은 친구가 찰리 앞에 나타난다든가. 죽은 동생이 나타나는 것은 이런 유의 종교적 현현의 상황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영화는 영혼의 사랑으로 관객을 이끌고 들어간다. 이 영화는 거반 죽었다 살아 난, 그리고 영혼을 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남자가 시간의 살피를 넘나들며 펼치는 7일간의 기적 같은 러브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종교적 체계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성경에는 이런 상황이 많이 등장한다. 아브라함이 지나가는 나그네를 대접했는데 그게 하나님의 천사였다. 아브라함이 본 것은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냥 사람을 아브라함의 집 곁으로 지나게 한 게 아니고 자신의 사자(使者)를 지나게 했다. 그리고 그 현현사건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을 알게 된다. 신은 자신의 의도를 사자를 현현시켜 아브라함에게 알린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사건은 대표적인 이생과 내생의 설피가 신의 사역에는 없다는 걸 보여준 사건이다. 물론 신자신의 부활, 이것이 예수의 부활사건이다. 신은 타인을 살리든, 자신이 부활하든, 이생과 내생에 경계선을 두지 않고 일함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찰리와 샘의 만남은 이런 맥락으로 읽을 수 있는 장면이다.

스텝3, 약속과 사랑 그리고 사명을 말하다

▲ 애인을 구하기 위해 찰리는 얼음장 같은 물에 뛰어든다.(UPI코리아)

형 찰리와 동생 샘이 동생이 죽은 후에도 계속 만나 야구를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만든 규례 때문이다. 그게 바로 약속이다. 모든 종교는 신의 계시에 근거한다. ‘계시’는 다른 말로 하면 신의 가르침이요 경전이다. 기독교의 경전은 성경이다. 성경은 신약과 구약으로 이뤄진다. 즉, 옛 약속과 새 약속이란 뜻이다.

영화에서 형제애를 유지해 주는 게 둘의 약속 때문이란 걸 알면 영화가 얼마나 종교적인지 깨단한다.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른 것들을 다 제쳐놓고 그 시간만 되면 숲으로 달려가던 찰리가 애인을 구하기 위해 약속을 어기기로 작정한다. 그러면서 그 약속 즉 경전의 자리에 ‘사랑’을 놓는다. 영화에서 ‘경전’을 ‘사랑’으로 대치하는 치환의 진리를 만나며 나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종교를 신앙으로 대치한 것이다. 율법을 사랑으로 대치한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이런 시퀀스의 변화(자칫 잘못 다루면 동생과의 약속을 깨고 연애감정에 눈먼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는데)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 기독교는 말한다. 율법을 지켜 구원에 이르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를 입어 구원에 이른다고. 물론 인간의 믿음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말이다.

영화는 그런 면에서 율법에 얽매인 종교를 단칼에 사랑으로 승화시킨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그 사랑을 사명감으로 연결시킨다. 교통사고를 당한 찰리를 응급 처치하여 살려낸 구급대원이 사자(使者)로 나선다. 암이 걸린 구급대원 플로리오 퍼렌테가 찰리에게 말한다.

“후회 없이 살았거든. 난 게다가 기적을 봤잖아. 천국의 문에서 성 베드로한테 기적을 말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넌 심장이 완전히 멈췄었어. 왜 네가 살아났을까? 왜 기회를 다시 주신 걸까? 신이 잘난 척하려고 그런 게 아냐. 뭔가 이유가 있다고. 신은 네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셨어.”

찰리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난 것은 신의 선물이란 말이다. 구급대원은 그 선물을 의미 있게 쓰라고 충고한다. 찰리는 구급대원의 말에 그렇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조난당한 애인 테스를 구하러 얼음장 같은 물로 뛰어들며 깨단한다. 그래서 찰리는 사명고백을 이렇게 한다.

“내가 살아 난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야.”

<세인트 클라우드> 감독 버 스티어즈, 잭 애프론, 아만다 크루 주연, UPI 코리아 배급, 상영시간 99분, 2011. 1. 13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