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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주현절 후 제 4 주(20110130)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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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1월 27일 (목) 09:29:24
최종편집 : 2011년 01월 27일 (목) 13:15:37 [조회수 : 3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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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후 제 4 주(20110130)
성서일과/ 시 15; 미 6:1-8; 고전 1:18-31; 마 5:1-12
본문/ 고린도전서 1:18-31
십자가의 도

          (고전 1:18-31)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 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 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오늘도 주의 장막, 거룩한 성산에 거하기 원하여 모인 모든 이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어디로 향하는지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그냥 가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신이 길을 가는 도중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더더욱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두움 가운데 빛이 비쳐도 빛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사람은 이미 죽은 것과 같은 사람입니다.

길을 찾고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길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살아 있으면 소망이 있으나, 죽은 자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 길의 끝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이라고 말하고, 누구는 평화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생명이라고도 하고, 기쁨이라고도 말하지만 실상은 모두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모두를 아우르는 말입니다.

종교는 가장 중요한, 으뜸가는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가르치는 것입니까?
어디가 길인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고 종교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학문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전하는 기독교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에서 길을 찾는 종교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를 일러 십자가의 도 곧 십자가의 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무엇이며, 다른 종교나 학문이 가르치는 길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바울 사도는 길을 찾는 사람의 모습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표적과 지혜와 십자가가 그들을 대표하는 말입니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첫째는, 표적을 보고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표적을 구한다는 것은 능력을 보고 확인이 되면 따라 가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벙어리된 자로 말하게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를 본 유대인들은 놀라워하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이 귀신의 힘을 빌어 능력을 발휘한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그래도 미심쩍으니 다른 능력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눅 11:29-30) 『[29]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악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였습니다.
표적을 구하는 일이 왜 악한 일이고 음란한 일이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에 열쇠가 있을 것 같습니다.

흔히 요나의 표적이라면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사흘간 머물다가 토해내진 것을 예수님이 사흘간 음부에 머무시다가 부활하신 것과 연관시켜 생각하게 됩니다.
부활의 표적 외에 다른 표적이 없다는 뜻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이야말로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증거하는 가장 큰 표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곳이 있습니다.
악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는 말씀의 뜻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왜 표적을 구하는 자들이 악한 것일까요?

예수님이 비유로 가르치신 말씀 중에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죽어 지옥에 간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간청하기를 ‘내게 형제 다섯이 있는데 그들에게 나사로를 보내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눅 16:29)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부자는 다시 애원했습니다.
          (눅 16:30)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아브라함이 다시 말합니다.
          (눅 16:31)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무슨 뜻입니까?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아무리 큰 표적을 주어도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요나의 표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요나가 행한 표적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나가 전한 말씀을 듣고 길을 찾았던 것입니다.

악한 세대는 믿음이 없는 세대입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는 말씀에 귀를 막고 표적을 찾아 헤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표적을 찾았다 싶으면 만사 제쳐놓고 몰려갑니다.
여기 표적이 있다 하면 여기로 몰리고, 저기에 있다 하면 저기로 몰려갑니다.
그러나 그들이 본 표적이 마귀의 표적일 수도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은 표적을 보아도 분간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 주신 표적을 보고는 저가 귀신의 힘을 입고 기적을 행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 더 확실한 것을 보여달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정작 귀신이 행하는 권능 앞에 감격하여 허리를 꺾고, 꿇어 엎드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렇듯 우왕좌왕하니 이를 일러 음란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눅 17:23)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

예수님 자신이 표적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에게 요나가 표적이 되었듯이 이 세대에는 오직 예수께서 표적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표적입니다.
          (마 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눈에 보이는 놀라운 일을 좇아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말씀 위에 굳게 서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둘째는, 지혜를 사용하여 길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지혜를 찾는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의 시대에 희랍의 철학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입니다.
이 사람들은 따지기를 좋아합니다.
그 길은 그래서 안되고, 저 길은 저래서 안되니, 이 길로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길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 조차 자꾸 바뀐다는 것입니다.
이래서는 머리 나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함께 갈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됩니다.

길이 많은 만큼이나 신의 수효도 많아지는 것이 지혜를 찾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지혜로 길을 찾는 자들 보다 많은 수의 신들이 존재합니다.
이런 저런 신이 많다가 보니까 그 중에는 이름이 없는 신도 있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신에게 절하는 자가 어찌 길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리스에 갔습니다.
아덴 곧 아테네에 이르러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과 변론을 하다가 아레오바고라는 광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거기서 말했습니다.
          (행 17:22-23)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에비구레오 철학자는 원래 말로는 에피큐로스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짧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인간이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오직 자신을 위하여 가능한 최대한의 쾌락을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의 쾌락을 극대화하라, 가능한 한 강한 쾌락을 추구하라 그리고 그 순간을 마음껏 즐겨라. 바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에피큐로스-쾌락주의자들이었습니다.

스도이고는 스토아 학파를 말합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도적적이고 이성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절제하고 단정한 삶을 사는 사람들로서 일견 에피큐로스와 반대되는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그 시대에 고결한 삶을 사는 사람들로서 칭송을 받았습니다.

에피큐로스와 스토아 학파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시대에 유행하던 철학이었습니다.
같은 시대에 존재한 철학이었는데 서로 반대되는 길을 간 셈입니다.
그리고 같은 시대에 에피큐로스도 아니고 스토아도 아닌 이름 없는 신의 가르침을 받아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사람의 지혜로 찾은 것은 사람의 길이지 하나님의 길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길은 오직 하나여야 하는데 철학이 말하는 길은 너무나 많아서 과연 무엇이 참된 길인지를 분간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이 길을 가 볼 엄두조차 낼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의 지혜로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바울은 이를 일러 세상의 초등학문이라고 했습니다.
          (골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오늘날도 교회 안에 지혜를 자랑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자기 생각,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셋째는, 십자가의 도 곧 십자가가 가르치는 길을 믿고 가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는 표적을 구하는 자에게는 표적이 되고,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는 지혜가 됩니다.
십자가는 모든 표적을 무색케 하는 유일한 표적입니다.
십자가는 사람의 모든 지혜를 부끄럽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십자가가 가르치는 길은 어떤 길입니까?
한마디로 약한 것 같으나 강하고, 미련한 것 같으나 지혜로운 길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마 27:40)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표적을 구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의 고통과 모욕을 다 겪으시고 마침내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는 표적이 아니라 이미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을 보이신 것입니다.

주님은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가르치는 표적이 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가는 넓은 길로 가지 말고 모두가 싫어하는 좁은 길로 가라는 표적입니다.
요나의 길은 요나가 원하지 않았던 길, 요나가 싫어했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의 끝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멸망의 위기에 처했던 니느웨가 구원받는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도 주님이 기뻐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는 가운데 육체의 소욕을 끊고,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간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의 끝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지혜가 빛났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육체의 소욕에 이끌리지 말고, 어렵고 힘들어도 주님이 가르치신 길을 따라 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은 세상의 지혜있는 자, 능력있는 자, 문벌 좋은 자들이 가는 길은 아닙니다.
그들이 보기에 그 길은 한없이 약하고, 더없이 미련한 자들이 택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세상의 약하고, 천하고, 가난하고, 미련한 자들을 그 길로 부르셨습니다.
이는 강하고, 귀하며, 부요하며,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로써 세상이 자기들의 강함과, 귀함과, 부요함 그리고 지혜로움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본시 자랑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 것을 자랑하는 것이 진짜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십자가는 그 부끄러움과 어리석음을 밝히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바라기는 주 앞에서 스스로를 높이는 부끄러움과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는 어리석음을 범하여 부끄러움을 당하는 성도가 되지 않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자신을 높이면 오히려 낮아지고, 자신을 낮춤으로 오히려 높아지는 길입니다.
자기 생명을 구하려 하면 잃게 되고, 목숨을 버림으로 영생을 얻는 길입니다.
약한 자는 강해지고, 강한 자는 약해지며, 어리석은 자가 지혜를 얻고, 지혜로운 자는 미련하게 되는 길입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주님께서 부르신 자가 아니면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너무나 약하게 보여서 표적을 구하는 자들이 실망하고 돌아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미련하게 보여서 지혜를 찾는 자들이 멸시하고 외면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는 능력의 길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세상이 다 약하다고 하는 것을 강하다고 말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세상이 다 어리석다고 말하는 것을 지혜롭다고 말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미련한 것입니다.
21절에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는 말씀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우왕좌왕하는 자가 되지 말고, 세상의 초등학문에 속지도 말고, 오직 미련한 믿음으로 길을 찾고, 마침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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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바 (24.22.200.38)
2011-03-29 13:15:33
설교의 설득력과 공신력을 더하기 위하여 설교 전에 <<오늘도 주의 장막, 거룩한 성산에 거하기 원하여 모인 모든 이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런 멘트는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 이유는 목사님이 설교하는 곳이 결코 주의 장막도 거룩한 성산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배를 위한 주일은 다음 주간에 받을 은총을 위하여 모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한주간에 받은 은총을 감사하기 위하여 모인 곳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십자가의 도는 이론이나 논리가 아니므로 설교로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믿음과 그 믿음의 순종으로 인한 깨달음과 경험으로 설명되어집니다.

사도바울과 같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증거하지 않는 십자가의 도는 또 다른 사람의 교리가 되어 구도자들을 더 혼란스럽게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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