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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하신 일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주현절 후 3 주(20110123)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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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1월 20일 (목) 10:13:55
최종편집 : 2011년 01월 20일 (목) 13:17:47 [조회수 : 5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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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후 제 3 주(20080127 re)
시 27:1, 4-9; 사 9:1-4; 고전 1:10-18; 마 4:12-23
마 4:12-23
예수님이 하신 일

          (마 4:12-23)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하늘 아버지의 은혜를 사모하여 모이신 성도들에게 예비하신 은총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공생애를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시작 때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사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고향인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잠시 머무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당신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예수님의 처음 말씀은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외치던 소리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예비한 길을 따라 가셨다는 뜻입니다.
          (마 3: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이 모든 일은 짐짓 사소한 일같이 보이지만 모두가 하나님이 이미 정하신 대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과 섭리 가운데 계획되고 준비된 일이라는 것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모여 주께 예배함도 주께서 이미 예비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기 전에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 주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여호와 이레입니다.
          (시 68:10) 『.... 하나님이여 주께서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가난한 자는 갈급한 자입니다.
가난한 자는 사모하는 자입니다.
목마른 사슴 같은 심정으로 주의 은혜를 사모하여 여호와 이레의 은총 입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주님의 일은 빛을 비취는 일입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빛을 비추는 일입니다.
그 빛은 생명의 빛입니다.
사망의 땅, 그 그늘에 앉은 자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빛입니다.
땅에 속하여 흙으로 돌아갈 인생들이 하늘에 속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생명의 주이신 여호와에게서 나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비취는 빛입니다.
이 빛으로 나아오면 천국의 문이 보입니다.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흑암에서, 사망의 그늘에서 이 빛으로 나가는 길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단순히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에 머물지 않습니다.
회개는 자리를 옮기는 결단입니다.
아버지 집을 떠나 재산을 탕진하고 돼지우리에 있던 아들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는 일입니다.

돼지우리가 흑암입니다.
그곳이 사망의 땅이요 죽음의 그늘입니다.
회개는 죄를 토설하는 일에 앞서 자리를 옮기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돼지우리에서 아버지 집으로 그 선 자리를 옮긴 후에야 비로소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을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돼지우리입니다.
아버지 집이 천국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취하는 것은 쥐엄 열매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먹고 배가 불러도 그것은 쥐엄 열매일 따름입니다.
또 다시 배고플 것을 염려하여 쌓아 놓는다고 한들 그것은 쥐엄 열매일 뿐입니다.

예수님이 비취신 빛은 돼지우리에 있는 자들에게 아버지 집을 보여주어 그리워하게 하는 일입니다.
더럽고, 냄새나는 곳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하는 인생들에게 돌아갈 아버지 집이 있음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주님이 곧 빛입니다.
이 빛은 온 세상에 비취어야 하는 빛입니다.
이 빛을 세상에 나누어 주는 일을 위하여 빛이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택하였습니다.
          (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주의 제자로 부름 받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부름 받았을 때 공통된 일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를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2]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주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생업을 팽개치고 주를 따라 나섰습니다.
심지어 육신의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습니다.
주님이 전하신 천국은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차지할 가치가 있는 것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 하늘로 가신 후 주의 부르심을 받은 바울도 예외가 아닙니다.
          (빌 3:7-9)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불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따라 사는 것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한 일이라고 믿고 계십니까?
그렇게 믿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어떤 사람이 예수께 와서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주님은 성경에 기록된 십계명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자랑스럽게 이미 지키고 있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래도 부족한 것이 있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자기 의를 과시할 속셈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마 19:21-22) 『[21] ...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인생들은 그것이 쥐엄열매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제 손에 쥔 것을 놓아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모든 계명을 지키며 살았던 그 사람도 네 손에 있는 것을 놓아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를 따라 가기 위해 무엇인가를 포기한 기억이 있습니까?
주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에 이전에 귀하게 여겼던 것을 하찮게 여긴 적이 있었습니까?
혹시라도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회에 참석하며, 가끔 혼자 기도도 하고, 눈치껏 헌금하면서, 나는 도둑질이나 음행한 적이 없었다며 만족해하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허물을 들추고 흉보는 사람은 아니었습니까?
바라기는 생애에 단 한 번만이라도 내가 가진 모든 것보다 예수가 귀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시간을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을 인하여 탄식하고 회개하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사실 베드로도 안드레도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순간부터 줄곧 그렇게 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돌아 가신 후 다시 갈릴리 바닷가로 돌아가 고기를 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 그렇게 결심하고 주를 따랐던 자였기에 그들은 결국은 주의 뒤를 따라 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한 번 그렇게 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생에 한 번도 주를 위해 무엇인가를 포기한 기억이 없는 사람은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알게 될 그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결코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이 2011년 한 해를 살면서 물질이든지, 시간이든지 혹 가족이 되었든지 뒤에 놓아두고 주를 따르는 결단의 체험이 있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제자들을 택하신 주님이 하신 일은 가르치고, 선포하고, 고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나라의 임함을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법을 가르치시며, 약하고 병든 자들에게 하늘나라에서 누릴 삶의 기쁨을 체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순서를 따르면 먼저 주님은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특별했습니다.
          (막 1: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권세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 가르침을 받은 자는 귀신이라도 순종할 수 밖에 없는 권위를 지녔다는 것입니다.
          (막 1: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귀신도 순종하는 그 교훈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선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이었습니다.
          (눅 19:47-48) 『[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48]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순종하기는커녕 죽이려고 했는데 백성들 때문에 그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백성들도 결국은 예수를 죽이는 일에 가담하고 말았습니다.
귀신보다 못한 자들이었던 셈입니다.
왜 귀신도 순종하는 가르침에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있고, 권세가 있는 사람들이 순종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이치로 가르치시는데 인간들은 땅의 이치를 따라 받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진리의 영을 따라 말씀하시는데 인간들은 육의 생각에 사로잡혀 듣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영을 따라 주시는 말씀을 귀신은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의 생각에 머물러 있는 자들은 결코 받아 들여 순종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13: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늘의 계시를 전한 요한도 말했습니다.
          (계 2: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의인의 귀가 열린 귀입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얻고, 진리의 영을 받고, 귀를 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순종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 다음은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전파하셨다는 것은 선포하셨다는 뜻입니다.
선포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둘 가운데 하나만을 택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땅에 사는 동안은 하나님 한 분만으로는 완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습니다.
주님이 전파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땅에 살아도 하나님을 선택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을 선포하셨다는 뜻입니다.
땅에 살면서 하늘나라에 사는 자처럼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도 말했습니다.
          (고전 10: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땅에서 사는 하늘나라의 백성들은 언제나 선택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하나님이냐? 재물이냐?
주의 잔이냐? 귀신의 잔이냐?
영이냐? 육이냐?
무엇을 택해야 할지는 너무나 자명한 일이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육을 쫓아 살려고 하는 자기를 스스로 쳐서 복종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도와주십니다.
          (계 17: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진실한 자들과 함께 싸우시는 어린 양 예수의 도우심으로 이기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끝으로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쳐 주셨습니다.
천국이 임하면 어떻게 됩니까?
          (사 65:17-20) 『[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18]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19]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20]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우는 소리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 천국입니다.
아픈 것과 약한 것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하늘나라에서의 삶을 이 땅에서 보여주셨습니다.
모든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마 4: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약한 것을 강하게 하셨습니다.
요엘 선지가 예언하였습니다.
          (욜 3:10)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사도 바울도 증거하였습니다.
          (고전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부족한 것으로 넘치게 하셨습니다.
어린아이 하나의 한 끼 점심으로 5,000명을 먹이고 열두바구니를 남기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고치시고, 강하게 하시고, 넘치게 하시는 은혜가 성도들에게 충만히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주님이 베푸신 은혜는 우리에게 빚으로 남는 법입니다.
하나님이 갚기를 요구하셔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은혜에 감격하여 갚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의 빚만큼은 지고 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주님은 천국이 우리 가운데 있다고 하셨습니다.
          (눅 17:20-21) 『[20] ....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우리 안에 천국이 있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서로 사랑의 빚을 지고 사는 자들 안에 천국이 임한다는 뜻은 아닐까요?
아마도 서로의 상처를 싸매주고, 서로 도와 강하게 하며, 내 것을 내어 놓아 넘치게 하는 역사가 있는 곳이 천국이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그럴 것입니다.
그런 곳이 있다면 그곳이 천국이 아니라고 말할 까닭이 없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은총인 동시에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사명이기도 한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가 서로를 고치고, 강하게 하며, 서로가 내어 놓아 부족함 없이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 이루어 가는 일꾼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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