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바울 여정) 여행기입니다. "성지는 없다." 예,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성지 순례' 혹은 '성지 답사'란 말을 대치할 길이 없어, 그냥 그런 제목으로 글을 이을 것입니다. 정말 '성지'란 없습니다. 다만 거룩하고 모범적인 신앙인들이 밟았던 땅은 있습니다. 또 성경 속의 땅도 있습니다. 이 글은 그 땅을 후에 밟아 본 사람의 기록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그 땅을 밟았던 사람들처럼 되고 싶은, 어쭙잖은 착각에 빠져도 봅니다. 혹 잘못 알고 쓴 게 있으면 가르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필자 주

카파도키아를 다 관람한 일행은 애마에 올라 꼭 들러야 하는 코스라는 가이드의 말에 석굴을 파고 차를 파는 카페에 들렀다. 석굴 안에 들어가기는 인원이 많은지라 노천에서 커피와 홍차 등을 각자의 기호에 따라 시켜 마셨다. 커피 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노천카페 주변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감상하며 차 한 잔을 했다는 감흥 때문에 오래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다시 우리는 애둘러 콘야를 향해 출발했다. ‘콘야’는 성경에서 ‘이고니온’이라고 표기된 현재 터키 지명이다. 이고니온은 지정학적으로 시리아에서 고대 그리스의 도시인 에베소와 로마로 가는 대로가 있는 관문이다. 비시디아 산맥에서 흘러내린 강물이 콘야 평야를 적셔 그곳에서 생산되는 밀로 터키 전체 국민의 양식을 삼고도 남는다고 한다.

‘양의 가슴’이라는 뜻을 가진 콘야는 도청 소재지이며 가장 이슬람의 요소가 많은 도시다. 콘야는 11세기 셀축 터키의 수도였고, 터키 이슬람 메블라나 종파의 본산지이다. 메블라나 종파는 신비주의적 경향을 띠는 수피주의로 터키 특유의 이슬람이라 할 수 있다.
 

▲ 콘야(이고니온)의 바울기념교회에서 우리 일행은 기도하고 헌금을 드렸다.(김학현)

메블라나는 유일신 알라와 만나기 위해서는 욕망과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하며, 금욕과 고행을 통한 끊임없는 기도생활을 강조한다. 메블라나 종파는 ‘데비쉬(세마)’라고 부르는 수도승들의 춤으로 유명한데, 지금도 관광객들을 위하여 이 춤을 춘다고 하는데 우리는 거기까지는 관람을 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터키 기독교 성지 순례객들이 그렇듯 우리도 카파도키아를 보고 비시디아 안디옥을 향해 가는 도중인 콘야에서 하루를 묵는 코스였다. 이는 바울의 1,2차 전도여행과는 역코스인 것이다.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이고니온으로 왔다 루스드라와 더베로 갔으니 말이다.

콘야는 카파도키아와 에게해 사이에 놓여 있는 비교적 풍족한 터키의 10대 도시 중 하나다. 풍부한 문화유산과 볼거리들로 인하여 한 해 100만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도시라고 한다. 우리의 애마가 달리는 동안 콘야 평야가 펼쳐지는데 가히 끝이 없다. 때가 아니어서 그런지 그 많이 난다는 밀은 볼 수가 없다. 자두, 살구나무 등이 많고, 옥수수밭도 쉽게 눈에 띈다. 사막의 오아시스답게 풍부한 과실들이 난다고 한다.

우리가 콘야를 들른 것은 거리상 카파도키아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는 중간에 있어, 하룻밤 묵어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실은 바울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곳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오늘날 터키 남서부 지방을 전도 여행할 당시 이곳을 두 번 들렀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성경에는 ‘이고니온’이란 지명이 여섯 차례 쓰였다.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전도를 하다 핍박을 받고 쫓겨나 이른 곳이 바로 이고니온이다. 사도행전 13장 50-51절이 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증언한다.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 콘야에는 각종 과일이 풍부하다. 사진은 시장에 진열된 과일들(김학현)

그러고 보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사역이 이고니온으로 옮겨지게 된 것은 바울의 능동적 태도에서 비롯된 게 아니고, 핍박자들의 훼방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때로는 우리가 계획하지 않은 일로 인하여 어떤 이는 복음을 접할 기회를 잃고, 어떤 이는 복음의 기회를 얻는다는 진리를 알 수 있다. 바울 일행의 이고니온 사역은 대성공이었다.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행14:1)

그러나 이런 성공 뒤에도 핍박자들은 계속 쫓아다니며 괴롭혔다. 유대인들과 관원들은 물론 이방인들까지 합세하여 바울을 돌로 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이런 와중에 사람들이 두 무리로 나뉜다. 어떤 이들은 핍박하는 유대인들 편에 서고, 어떤 이들은 바울 편에 선다.(행14:4)

결국 이곳에서도 바울 일행은 핍박자들을 피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된다. 그리고 2차 전도여행 때 이곳에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디모데를 만나게 된다.(행16:2) 후에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은 이곳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딤후3:11)

바울에게 있어서 이고니온은 비시디아 안디옥과 루스드라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핍박을 가장 많이 받은 장소 중 하나로 기억되는 곳이다. 대부분의 신앙인은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럴 때마다 더 용감하게 복음을 전했고, 이 성과 저 성을 전전하며 복음을 전한다. 핍박이 고조될 때에서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였다(행13:52)고 성경은 말한다.
 

▲ 각종 채소며 식재료들도 풍부하다. 콘야의 시장 거리에 진열된 양파와 감자(김학현)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 루스드라 등은 갈라디아의 로마 영토로 신약시대의 기독교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곳들이다. 로마시대 초대교회가 이고니온 주변에 많이 들어섰다. 이곳 교회나 건물들은 비잔틴 시대의 것들이어서 대부분 비잔틴 양식의 건축물들이다. 이후 셀축터키의 이슬람문화가 지배하면서 기독교문화는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도 프랑스 군대를 위해 지어진 바울기념교회가 있다. 기독교 선교가 금지된 이슬람 문화권에 남은 유일한 교회다. 우리 일행은 바울기념교회에 들러 기도하고 헌금을 드렸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순례객들의 헌금에 의해 운영이 된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슬람의 한가운데서 신앙의 전수는커녕 모금에 의해 운영되는 교회, 바울이 이런 일을 상상이나 했을까.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바울 탄생 2000주년 특별 희년을 선포하고 기념 프로그램을 가졌다고 관리인은 전한다. 현재도 예배는 드려지지만 교인은 거의 없어 프랑스 가톨릭에서 파송된 이들이 관리를 하고 있다.

우리 일행은 바울기념교회를 나와 곧장 숙소로 갔다. 시장기가 발동하여 금방이라도 식사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마침 이슬람의 라마단 기간이라 허기진 그들이 먼저 식사를 마친 다음에 우리는 식사를 해야 한다는 거다. 이그. 우리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시장 구경을 했다.

콘야가 얼마나 풍요로운 곳인지 시장이 다 말해주고 있었다. 다양한 먹을거리와 형형색색의 과일들로 가득했다. 우리는 무화과와 자두를 샀다. 그러나 달러나 유로화는 통용되질 않았다. 우리가 가진 돈은 그것뿐인데. 난감해 하는 내게 현지인이 다가와 환전을 해준다. 얼마나 친절한지.

우리는 별로 그런 생각을 안 하지만 터키인들은 우리나라와 형제 나라라고 대한민국 사람만 보면 필요 이상의 친절을 베푼다는 느낌을 팍팍 받았다. 어째든, 여행객으로는 싫지 않은 대우다. 우리도 받은 만큼 돌려주기라도 해야지 않는가 하는 의무감에서 더 상냥한 듯 굴었다. 하하.

자두는 우리나라 것이 더 맛있는 것 같고, 무화과는 참 싱싱하고 달콤한 게 먹을 만했다. 일단 과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8시30분이 돼서야 저녁을 먹었다. 잘 자리라 많이 먹지는 못했다. 또 이렇게 아리고 피곤한 성지순례 4일째의 하루가 갔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