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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교회 교우님들께 드리는 공개서한한국 교회는 목사우상 내려놓고 예수 가르침 따르라
류상태  |  sham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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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1월 08일 (토) 12:27:50
최종편집 : 2011년 01월 08일 (토) 22:59:02 [조회수 : 4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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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6년 전 대광고에서 발생한 강의석군 사건으로 한국 교회에서 말썽꾼이며 이단자로 알려져 있지만, 오늘은 전 소망교회 교역자의 한 사람으로서 먼저 소망교회 교우님들께, 다음으로는 비슷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 교회의 많은 교우님들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대광중학교 교목으로 재직하던 1991년 1월 1일에 소망교회 파트타임 교육목사로 부임하여 1992년 12월 31일까지 2년 동안 중등2,3학년부를 맡아 사역하였습니다. 꼭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저에게 소망교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담긴 교회입니다.

당시 저는 학생들보다 중등부 선생님들과의 성경공부에 더욱 보람을 느꼈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첫 해에 선생님들과 저는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고 자부합니다. 일부 선생님들과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제가 멀지 않은 미래에 찾아올 지도 모를 소망교회의 위기(?)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그 문제를 꺼낸 이유는, 영락교회 전도사로 일하던 시절(1983~1984)에 설립자 한경직 목사께서 은퇴하신 후로 후임 담임목사님을 지지하는 분들과 원로목사님을 지지하는 분들의 갈등이 끝없이 이어지는 현장을 목도하면서 가졌던 절망감과 안타까움이 곽선희 목사님 은퇴 이후 소망교회에도 그대로 재현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사역을 하면서 제 눈에 뚜렷이 보이는 교회의 문제점에 대해 저는 침묵할 수 없었고, 이 문제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그로 인해 발생하게 될 갈등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1년 6개월쯤 지난 시점부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당시 교우님들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계셨던 담임목사님을, 그것도 자신을 채용해 준 선배목사님을 비방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배은망덕한 저의 무례(?)에 선생님들이 큰 실망감을 느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1. 목사는 신적 권위를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소망교회 교우님들께 또 다시 결례가 될 수 있는 글을 올리는 이유는, 최근 언론에 보도되는 소망교회 사건이 그때 제가 염려했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시 소망교회 교우님들이 담임목사님께 보였던 절대적 신뢰에 문제가 있음을 말했고, 담임목회자에 대해 존경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맹목적 신뢰는 위험하며, 당대 제일의 설교라고 평가받기도 했던 그의 설교도 비판적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또한 영락교회의 예를 들면서, 카리스마를 갖고 교회를 크게 일으킨 초대 목사를 절대화하고 신앙생활의 기준으로 삼을 경우, 그와 신앙관과 가치관, 그리고 성격이 똑같을 수는 없는 후임자와 심각한 갈등을 겪을 수 있으며, 선의로 가졌던 교인들의 초대 담임목사에 대한 절대 신뢰가 역으로 교회에 큰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교우님들은 담임목사가 아니라 예수를 바라보아야 하며, 담임목사님을 비롯하여 여러 목사님들의 가르침을 잘 받되, 아무리 훌륭한 분이라 하더라도 어느 특정 목사님을 신앙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되고, 오로지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만을 우리 신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며, 꼭 그렇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드렸습니다.

소망교회 교우님들, 또한 한국의 모든 개신교회 교우님들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교회는 어떤지 꼭 돌아보아 주십시오. 혹시 교우님의 교회에서 특정 목사에게 신적 권위를 부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목사님의 말씀을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처럼 받아들이지는 않습니까?

목사들 중에는, 스스로 “목사를 섬기는 것이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혹 교우님들도 그 주장에 동의하시는지요? 만일 교우님의 교회에서, 특정 목사님의 삶과 설교에 대해 건전한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교우님이 다니시는 교회는 이미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대통령도 도마에 올려놓고 가차없이 비판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 비판이 권력의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정치인을 각성하게 하고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을 섬기고 봉사하는 공직자의 자세를 유지하도록 도와줍니다. 개인에 대한 인격적 비난은 삼가는 것이 좋지만 건전한 비판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이며, 비판이 사라진 조직은 필연적으로 병들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에 대해서도, 또한 목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는 신의 특별한 권능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신학과 목회학을 전공한 그 분야의 전문가일 뿐입니다. 의사나 교수가 해당 분야의 전문가일 뿐 특별한 권능을 가진 초인이 아니듯이, 고위직 공무원이 특권을 갖는 귀인이 아니듯이, 목사들도 특권을 갖거나 신적 권능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하는 일이 다르고 직분이 다를 뿐,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격언은 상식이 된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한국 교회 안에서는 ‘성직자’라는 특별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특별함이 이제는 재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교우님들을 맹신으로 이끌고 교회를 상식이 사라진 무지한 공동체로 만드는데 일조하기 때문입니다.

소망교회 교우님들, 그리고 한국 교회 교우님들, 제발 교우님들이 교회의 주인이며 목사는 교우님들을 도와줄 위치에 있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일 뿐임을 인식해 주십시오. 그분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잘 발휘할 뿐 아니라, 삶의 모범을 보여 교회 발전과 교우님들의 삶에 큰 도움을 줄 경우에는, 그분들의 능력과 성실성과 인격에 대해 존경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지만, 단지 목사라는 이유만으로 맹목적으로 순종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교회의 영적 정신적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처럼, 교회의 현실적 제도적 주인은 바로 교우님들이지 목사나 장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분들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비판의식을 잃지 마시고, 곁길로 갈 때는 주인으로서 회초리를 들어주십시오. 그들의 말에 맹종하지 마십시오. 그들도 실수할 수 있고, 욕망에 사로잡혀 길을 잃을 수 있는 수많은 이웃 중 한 사람일 뿐입니다.


2. 목사가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을 바라보는 교회가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교회가 되었기에,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가 아니라 사람을 따르는 교회가 되었기에,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성공했다는 교회들이 비슷한 위기를 공통으로 겪고 있습니다. 대형교회들이 세습의 유혹에 빠지고 내분으로 교회에 큰 상처를 남기면서도 소위 카리스마를 가졌다는 목사들의 전횡이 계속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사회의 존경은커녕 비웃음과 비난에 시달리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소망교회 사태는 비슷한 유형을 가진 대형교회들이 이미 겪고 있거나 앞으로 겪게 될 하나의 사례입니다. 대형교회들이 원로목사나 담임목사에 대한 파벌 만들기를 당장 중단하거나 해체하지 못하면 수십 년 동안 쌓아올린 교회가 순식간에 굉음을 내며 무너질 수도 있음을 인식하셔야 합니다.

대형교회들이 겪는 이런 갈등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또 다른 대형교회들로 하여금 세습의 유혹에 더욱 빠져들게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카리스마를 가진 초대 설립자 목사가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 교인들이 초대목사를 닮은 아들 목사에게 관대하게 대하고 비교의식을 내려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례는 한국 교회의 후진성과 비민주적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치부라 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교우님들 중에는, 교회의 치부를 이런 식으로 드러내서 좋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혹 교회와 목사에게 허물이 있다 하더라도 덮어주고 용서하는 것이 미덕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진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감추고 덮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는 밝히 드러내어 환부를 도려내고 치료하지 않으면 교회의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까지 와 있습니다.

한국 교회 교우 여러분,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따르십시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진정한 기독교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진지하게 공부해 주십시오. 목사들을 통해 예수님과 하나님을 만나지 마시고, 직접 만나십시오. 성서연구를 통해, 기독교역사공부를 통해, 스스로의 깨달음과 기도를 통해, 예수님과 하나님을 직접 만나주십시오. 목사는 교우님의 신앙을 위한 도우미일 뿐 인도자가 아닙니다.



3. 바른 신앙을 위해 기초신학서적을 읽어주십시오.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의 기준이 되는 성경 읽기를 생활화하는 것은 신앙의 기본이며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사람에 의해 씌여졌기에 그 시대와 공간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올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책입니다. 하여 제가 교우님들의 바른 신앙을 위해 꼭 필요한 책을 일부 소개하고자 하오니 여건이 되는대로 꼭 한번 읽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성서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박창환 전 장신대 학장께서 지으신 <성경의 형성사>(대한기독교서회 발간)를 꼭 한번 읽어주십시오. 구약성서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리교신학대학교 이후정 교수께서 번역하신 <이스라엘의 역사>(데이비드 힌슨 저, 컨콜디아 발간)를 읽어주십시오. 초대교회의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성공회 사제이신 박태식 신부님의 <일세기 교회>(생활성서사 발간)를 읽어주십시오. 이 책들은 모두 평신도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고 간략하게 씌여졌으면서도 빼어난 가르침을 주는 귀한 책들입니다.

전통적 신관에 대한 도전적 의미가 있기에 불편하실 수 있겠지만 한신대학교 김경재 교수께서 지으신 <이름 없는 하느님>(도서출판 삼인 발간)을 읽으신다면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화여자대학교 교목을 지내신 조찬선 목사님의 <기독교죄악사>(평단문화사 발간)를 읽으시면 기독교 역사의 진면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얻게 되실 것입니다. 또한 제가 지은 <소설 콘스탄티누스>(인물과사상사 발간)를 읽어주신다면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복음의 원형과 기독교 교리가 갖는 배타성의 간격이 얼마나 큰지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소개한 이상 여섯 권의 책만 읽으셔도 기독교의 참다운 가치가 얼마나 아름답고 따뜻한 것인지,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의 원형이 오늘날 교회에서 가르치는 배타적인 교리와 얼마나 다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4. 교우 여러분, 깨어나 주십시오.



혹 불온서적(?)을 읽다 신앙이 흔들릴 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가지실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어떤 일에 대해 평가를 내릴 때는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해 충분히 들은 후에 결론을 내리셔야 합니다. 한쪽 얘기만 일방적으로 듣는 것은 바른 판단을 내리는 데 큰 장애가 됩니다. 어떤 종교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만 아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다.”

의심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믿음입니다. 맹신이 무지를 낳고 무지가 사회갈등을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너무나 억울합니다. 예수께서 전하신 따뜻하고 아름다운 우리 기독교가 어떻게 이렇게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종교가 되어 사회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는지 너무나 안타깝고 억울합니다.

한국 교회 교우 여러분, 깨어나 주십시오. 위기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곪은 상처는 터지는 것이 낫습니다. 소망교회에 찾아온 위기, 한국 교회에 찾아온 위기에 대해 절망하지 말아 주십시오.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마음과 힘을 모아주십시오. 다시 말씀드리지만, 교회의 주인은 우리 주님이시고 또한 교우 여러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위기에 처한 교회를 새롭게 일으킬 책임도 교우님들에게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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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바람 (210.2.47.57)
2011-01-09 10:30:39
좋은 글입니다.
성도가 깨우쳐야 교회가 산다는 스로건을 각 교회마다 걸어놓고 켐페인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목사의 전횡과 부조리한 교리의 타파가 선행되고 간단한 신론이라도 알고 교회를 다녀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목사님의 외로운 투쟁에 박수를 보내며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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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3
희망없는세상 (175.214.3.125)
2011-01-16 11:42:10
일단은 소망교회는 늙고 욕심만 많은 곽목사가 없어져야한다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장로들 및 신도들은 분당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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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이사야 (121.129.19.234)
2011-01-15 03:02:17
소망교회교인들과 목사들은 이말씀을 명심해야 할것이요
소망교회출신들로 권력과 맘몬 에사로잡힌 자들은 더욱명심해야할 말씀입니다......기대는 별로안하지만

어쩌다가 이땅에 기독교가 개독교가됐을까...특히 대형교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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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내탓이100% (125.187.158.31)
2011-01-12 14:54:12
목사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학교선생질을 하는 사람이지만, 나의 그릇된 동굴우상으로 인해 한 학생이라도 하나님을 모른다 하고 세상으로만 귀와 몸을 기울일까 노심초사합니다. 목사님의 신학과 인생의 실천, 그 깊이를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지 여쭙고 싶습니다. 누가 누구를 옳다 그르다 가르칠 수 없지 않겠습니까?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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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
ryu1234 (218.148.155.93)
2011-01-09 22:15:59
목사님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선교 100년이 넘께 세뢰된 의식구조기 하루 아침에 해결되겠습니까?
계속 좋은 글을 올려주십시오. 교우들이 모르고 있는 일이 않이라고 생각됩니다. 세뢰된 많은 교우들에게 왕따될지도 모르는 사건을 두렵게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문제점이 들어나는 것 만큼 해결도 쉬워질 것으로 믿습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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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
익명 (121.168.246.71)
2011-01-09 07:58:02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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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7
신밧드 (110.8.61.122)
2011-01-09 22:48:12
문제를 알면 그에 대한 답도 나오게 마련이지요. 여성교인들이 왕마귀인지 오로지 군단인지는 모르지만, 교인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결국 여성 교인들을 계몽하는 것이 관건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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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밧드 (110.8.61.122)
2011-01-09 00:15:17
필자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소위 기독교 계몽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가 됐습니다.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가들, 특히 기독교 지도자들이 목숨을 걸고 감옥을 제집 안방처럼 드나들며 계몽활동을 펼쳤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30여 년의 군사독재 시대가 우리 국민들을 우민화(안타까운 일이지만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계의 협조에 힘입은 바가 컸음)시켰고, 그 결과 군사독재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은 지식인이든 무지한 자든 그 영향을 깊이 받았습니다. 전체주의적(단체행동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무리들처럼)이고, 강압적이고, 독선적이고, 지도자를 우상화하여 무조건 복종(순종)을 강요하는 겁니다.

군사독재자들이 창조한 게 바로 한국적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 교육이 웬만한 국민을 어떻게 지배억압할까 궁리끝에 당시의 지식인들이 고안해낸 게 바로 그겁니다. 그 시대의 학생들은 그것을 교과서로 입시문제로 배우고 익혀야 했습니다. 5공 때의 삼청교육대가 어떻게 가능했었겠습니까? 다는 아니지만, 한국적 민주주의 교육의 결과 우리나라 국민들이 미망에 빠져있건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정종식 후 ys와 dj의 시대가 되었어도 독재는 계속되었고, 놈현의 시대에 비로소 권력과 권위에 대한 맹종에서 벗어나게 된 겁니다. 박통과 엠비를 비교해 보십시오. 박통은 지금까지도 우상으로 받들어지고 있으나, 엠비는 보통사람처럼 보입니다. 그 차이가 바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발전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개신교회를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비교한다면, 지금 교회는 마치 박통과 전통의 시대를 청산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놈현시대 쯤에 와있다고 하겠습니다. 담임목사라는 우상을 파괴하려면 반드시 계몽활동이 합니다. 아무 자극도 없는데, 어떻게 변화가 일어나겠습니까?

저는 필자의 견해에 동의하지만, 이제는 글보다는 행동이 필여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군사독재 시절 수많은 지식인들과 학생들이 민주시민교육을 위해 목숨을 걸고 현장으로 달려갔던 것처럼, 기독교 지도자들도 케케묵은 우상에 빠져있는 기독교 신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해야 합니다. 물론 우상들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군사독재자들이 총칼을 들이댄 것처럼, 우상들은 기독교 지도자들을 이단으로 몰아세울 겁니다. 그것을 무서워하거나 넘어서지 못한다면, 이 땅은 여전히 우상들이 활개치는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이 글을 읽은 분들께 저도 외쳐봅니다. 지금은 행동할 때입니다. 펜을 서랍에 넣고 현장으로 달려가십시오.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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