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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위에 견고히 서라.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주현절 후 1 주. 수세주일(20110109)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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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1월 06일 (목) 09:33:16
최종편집 : 2011년 01월 07일 (금) 00:20:12 [조회수 : 2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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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후 제 1 주/ 주님의 수세주일(20110109)
성서일과/ 시 40:1-11; 사 49:1-7; 고전 1:1-9; 요 1:29-42
본문/ 고린도전서 1:1-9
은혜 위에 견고히 서라

          (고전 1:1-9)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를 주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성도들에게 바울 사도의 축복을 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로 말미암는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이미 은혜와 평강 속에 있는 자들입니다.
은혜의 출발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있기 전부터 우리를 택하여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셨다(갈 1:15) 고 했습니다.

은혜의 완성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예수를 주라 부르고 마침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를 주라 부르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들을 성도라고 합니다. 거룩한 무리라는 뜻이죠.
세상에 속한 무리와 구별하는 이름입니다.
거룩하게 하심 곧 구별되게 하심이 은혜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사랑하는 성도들이 스스로 은혜 받은 자라 믿고 감사하는 역사가 나타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부름이 오고 가는 것을 교제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9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우리와 더불어 거룩한 교제를 나누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교제는 세상 사람들 사이의 교제와 달라서 두 마음이 개입되지 않은 것입니다.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응답하는 인생들의 믿음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평강은 이러한 교제 가운데 깃드는 영육 간의 복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교제는 대부분 서로가 다른 마음을 가지고 상대를 견제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한 속셈이 없이 교제가 이루어지는 관계를 흔히 친구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친구가 있습니다.
술친구, 노름친구, 여자친구, 남자친구..... 좋은 친구, 나쁜 친구.....
다 친구라고 하지만 그 사이에 평안이 깃들 틈이 없습니다.
술친구는 술 먹을 때만 좋은 친구입니다.
노름친구는 말만 친구지 원수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남자친구, 여자친구?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해도 좋습니다.
오늘은 좋지만 내일은 원수가 되는 친구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주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시겠답니다.
그것도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 놓는 친구가 되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 놓으시기 직전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의 영원한 친구가 되셔서 주님 주시는 평안이 풍성한 성도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교제는 일방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부르는 자가 있으면 응답하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주는 자가 있으면 받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교제는 서로 주고받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시겠다고 해도 막상 그의 친구가 될 사람이 응답하지 않으면 헛일입니다.
누가 친구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는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까?
주님은 당신의 말대로 행하는 자가 곧 친구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행하는 자가 되셔서 친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친구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첫째는 은혜가 풍성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바울의 말을 말 그대로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의 말 속에는 뼈아픈 풍자가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감사는 지금 있는 현실에 대한 감사가 아닙니다.
감사하게 되기를 바라는 감사,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는 은혜로운 교회도 아니었고, 평안한 교회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제발 그렇게 하나님께 감사할만한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담아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염려할 일이 있으나 염려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함으로 염려를 해소하려는 바울의 깊은 배려가 느껴집니다.

바울은 교린도 교회 교인들이 모든 일에 풍족한데 그 중에서도 구변과 지식에 풍족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지금 느끼는 기분 그대로 말하면 너희는 아는 것도 많고, 말도 많다는 뜻입니다.
아는 것도 많고 말도 많으면 교회에 은혜가 풍성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교린도 교회는 사방으로 찢겨진 교회였습니다.
갈가리 찢어져 서로 물고 뜯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소식이 바울에게까지 들려 바울로 하여금 편지를 쓸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고전 1:10-12)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아는 것도 많으려니와 말도 많은 까닭에 이렇게 찢기게 되었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지식이 풍성한 것은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찬송 받으시는 것은 그 지식의 부요함 때문입니다.
          (롬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그러나 모르는 게 약이요, 아는 게 화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풍성한 지식이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데 쓰이면 더 없이 좋은 것이지만 자칫 많이 아는 연고로 말이 많아지면 사공이 많은 배가 산으로 가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것에 풍성한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 중에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로 풍성한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이미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시작하여 성도들의 응답으로 완성되는 교제의 은혜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갖가지 은사로 풍성한 교회였으나 이 은혜가 부족했습니다.
위에서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은혜가 부족했습니다.
그 은혜에 감격하여 형제들을 사랑하는 은혜가 부족했습니다.
작은 지식을 크게 여겨 서로를 구분하고 손가락질 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평강이 깨어지고 큰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속으로 찢어진 상처를 입고 신음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말했습니다.
          (딛 3:3-9) 『[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8] 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9]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괜히 이런 말이 나오겠습니까?
          (욥 6:5) 들 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아마도 고린도 교회에서의 체험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로 하나님과 화목케 하신 은혜입니다.
          (고후 5: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가 풍성하여 화목케 하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둘째는, 견고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는 것이 탈이 되는 경우는 정함이 없이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병이 걸리면 용하다는 의사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명을 알지 못해서 여기저기 다니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일 겁니다.
제가 청년 시절 앓았던 주마담(走馬痰)이라는 병도 처음에는 병명을 몰라 치료를 못하고 증세를 악화시키다가, 그 병을 아는 노인 의사를 만나 고칠 수가 있었습니다.                                                                          일제시대에 의사면허를 받은 분인데 나 같은 환자는 일제시대 때 보고 처음 본다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가 아니고 뻔한 병에 병원을 자주 옮기는 사람은 치료하는 기간이 그만큼 길어지거나 치료할 때를 잡지 못하여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병을 고치는 일은 의사의 능력도 중요한 일이지만 환자의 의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대표적인 병이 당뇨병입니다.
이 병은 특별히 잘 치료하는 의사가 있는 것이 아니고 환자 자신이 어떻게 섭생을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합니다.
병의 치료가 의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많은 병자를 고치시는 가운데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고친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환자의 믿음으로 고쳤다는 것입니다.

때로 거기만 가면 아주 특별한 효험을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관절염 환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어느 병원, 혹은 어느 약국에 가서 주사를 맞거나 약을 사 먹으면 신통하게 듣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대체로 마약에 속한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신통하게 잘 듣지만 오래 쓰면 사람을 아주 망가뜨리게 됩니다.
긴요하게 쓰일 때가 있지만 절대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것이 마약입니다.
나중에는 약의 포로가 되어 약이 병이 되는 것이 마약인 것입니다.

믿는 자 가운데도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능력있다고, 신령하다고 하는 은사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 잘 하는 사람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남의 능력에 기댄다는 것은 결국 자기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들은 것도 많고, 본 것도 많아서 이렇다 저렇다 말은 잘 할 수 있지만 스스로 견고하게 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쓸데없이 교회를 자주 옮기면서 어디는 은혜가 없고, 어디는 신령함이 없고, 어디는 사랑이 없다고 말하지만 막상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충성을 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고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자가 되고 맙니다.

고린도 교회의 형편이 그랬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의 편지에 나타난 것만 해도 바울에 속한 자, 게바에 속한 자, 그리스도에 속한 자, 아볼로에게 속한 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중에 아무도 적그리스도라 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그리스도야 말할 나위도 없고, 게바는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를 말합니다.
아볼로는 바울과 더불어 본이 될만한 사도였습니다. 
          (고전 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그러니 누가 어디에 속한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닌 다른 은혜를 주시겠습니까?
게바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리스도 예수 외에 다른 사람을 전했겠습니까?
바울과 아볼로가 함께 본을 보인 것이 사람들로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닌 바울의 사람, 아볼로의 사람 되게 함이었겠습니까?
아닙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고전 4:6b) 『....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단언합니다.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 말씀이야말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바울의 신학을 드러내는 중요한 말슴입니다만 오늘은 그렇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그칩니다.
뭉뚱그려 그리스도 예수와 그의 십자가 은혜를 아는 지식으로 족합니다.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견고히 서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 금칠을 한다고 십자가의 도가 바뀌는 게 아닙니다.
나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십자가를 만들어도 십자가는 그리스도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바울에게, 아볼로에게, 게바에게 속했다고 하는 것은 금으로 만든 십자가, 은으로 만든 십자가, 동으로 만든 십자가의 가치가 다르다고 말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입니다.
십자가의 가치는 그 위에 매달리신 그리스도 예수에게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교한 말을 해도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갈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빛 나는 십자가, 은빛 나는 십자가에 현혹되지 마시기를 기원합니다.
비단 옷을 입으신 예수, 수정과 홍옥으로 장식한 예수에게 미혹되지 않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복음 위에 굳게 서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풍성하면 견고해집니다.

따지고 보면 은혜가 풍성한 자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견고하게 서는 일이고, 복음에 견고하게 서는 일이 은혜가 풍성한 자가 되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주님 주신 은혜의 풍성함을 아는 자가 은혜가 풍성한 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로만 길과 진리 그리고 생명을 삼는 자가 견고한 자입니다.
아무쪼록 그리스도 예수의 풍성하신 은혜 위에 견고하게 터를 잡고 기다리는 자들이 되셔서 마침내 닥칠 주님의 날에 책망 받을 일이 없는 성도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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