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 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메이뇨 내 어머니 가신 나라 해 돋는 나라, 잡힐 듯이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 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메이뇨 내 아버지 가신 나라 해 돋는 나라”

어렸을 때 부르던 동요 <따오기>라는 곡이 생각난다. ‘괴뢰메’라는 단어의 뜻이 그렇단다.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곳’이라고. 가이드가 그렇게 설명을 하자마자 전광석화같이 <따오기>가 떠 오른다. 아직 이 몹쓸 머리가 녹슬기는 이른가 보다. 4-50년 전 부르던 동요가 생각나다니.
 

▲ 카파도키아 상공에서 손가락 사이로 애드벌룬을 잡아봤다.

▲ 상공에서 본 카파도키아 정경

가이드의 설명을 듣자 정말 의미 있는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자 정말 의미 있는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끝없이 펼쳐진 바위나라에서 무엇인가 잡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는가. 잡은 것 같으면 어느 새 멀리 가버리는 이상한 나라. 그래서 괴뢰메공원은 더 큰 매력을 준다. 그게 인생이기도 하고. 용솟음치는 바위 숲에서 문실문실 키우는 것은 사뭇 나란 존재의 왜소함이라니. 어디 이보다 더 처연한 일이 있을까. 따오기가 금방 내가 된다. 내가 마악 따오기가 된다.


그래서 그렇던가. 아무리 둘러봐도 그곳이 그곳 같은데 그대로 다시 새롭다. 천편일률적인 바위와 또 바위들, 그런데도 희한하게 마력이 있어 자꾸만 잡아끈다. 바위의 매력에 빠지려면 설악산의 울산바위쯤은 돼야 하지 않겠는가. 근데, 근데 말이다. 괴뢰메의 바위기둥들도 설악산의 울산바위 못지않으니, 아니 더 위의(威儀)가 넘실대니 이 어찌된 매국적 생각이란 말인가.

그래도 잘 견뎌주며 거뜬한 모습이 자랑스럽던 아내가 탈이 난 모양이다. 그놈의 항아리 케밥이 범인이다. 다른 분들이 그렇게도 힘들어 할 때 우린 거뜬한 것이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는데, 기어이 아내가 그들의 그룹으로 합류했다. 뜨거운 동료애를 발휘라도 하듯. 동굴식당에서 식사를 한 이후 내처배가 안 좋단다. 그러더니 이내 밤을 지새운다. 그리곤 자신이 타려고 예약했던 애드벌룬에 내가 오르기를 바란다.

▲ 바위들을 깎아 창문을 내고 사람들이 살고 있다.     ▲ 비둘기들도 사람들과 공존한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하도 거금이 들어가는지라 아내만 태워 하늘구경 좀 시켜주려던 것이 어쩔 수 없이 내 차지가 되어버렸다. 4시30분에 기상하여 애드벌룬을 타는 곳으로 거의 한 시간 남짓을 이동했다. 그들은 30분 이동이라고 했는데 난 어째 한 시간도 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른 새벽 덜컹이는 도로 위에 한기마저 위태로우니 그도 그럴 것이었다.


한참을 뒤숭숭하게 달려간 작은 버스는 아직 검디검은 새벽의 참호 속으로 우릴 밀어 넣고 물러간다. 이곳저곳 애드벌룬 회사들의 로고가 눈에 들어오고 막 기운을 차려 일어나려는 애드벌룬들이 수백 개 벌러덩 누워 우릴 기다린다. 장관이다. 분명히 카파도키아의 한 중간일 터. 그러나 애드벌룬을 띄우기 위해 그들의 악전고투하는 모습은 이미 여명이다.

그들의 씨름이 또 한 시간은 지체했을까. 애드벌룬 회사에서 제공하는 모닝커피로 목을 축이고 드디어 탑승했다. 저쪽에서 희한한 해가 헤벌쭉 얼굴을 내민다. 정말 누구 말마따나 죽여준다. 그렇게 하나둘 누웠던 애드벌룬들이 창공을 향해 비행을 시작하자 온 하늘이 애드벌룬으로 덮인다. 그냥 얼추 잡아도 수백 개는 될 성싶다.

그리고 잠시 후 버얼써 창공 한 가운데에 내가 탄 애드벌룬이 드높다. 다른 애드벌룬들도 우리를 향하여 손짓한다. 그야말로 애드벌룬의 세계. 그리고 발밑으로 누워 우릴 올려다보는 카파도키아의 몰골. 그렇게도 위의 넘치던 웅장한 바위들이 다 내 발아래 있다. 좀 전만해도 그 위용에 내가 왜소하더니, 이젠 내 위용에 그것들이 미천하다. 얼마나 간사한지, 사람의 생각이란 것이.

괴뢰메 공원의 하얀 속살까지 눈앞에 드러난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괴뢰메공원은 더 이상 나에게 위용을 자랑하는 그것이 아니다. 한 시간여 그렇게 창공에 떠서 카파도키아의 계곡이며, 산등성이, 사람들의 집들이며, 비둘기의 집들을 들러보고 지칠만할 즈음 이륙한 곳하고는 전혀 다른 곳에 우릴 내려놓는다.

그리곤 애드벌룬 선장은 우리에게 무슨 라이센스 하나씩을 내민다. 애드벌룬을 성공적으로 탔다는 자격증이라나. 하하하. 상술이 그럴 듯하다. 그에게 엄지를 세워 답례하고 야생 포도밭을 거닐다 포도 알을 따 입에 넣어봤다. 어인 일인가? 이리도 맛있는 포도가 지구상에 있다니. 일행은 덤벼들어 포도를 따먹었다. 그렇게 추억을 만들고 호텔로 돌아와 일행과 합류했다. 아내는 여전히 배가 아파 아침을 굶식했다(금식하고는 천지차이인 절식).

실은 희한한 바위들로 덮인 카파도키아 지역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겐 잊을 수 없는 아픈 추억의 장소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아랍인들로부터 도망쳐 온 기독교인들의 삶의 터전이었으니 말이다. 6세기 후반 이슬람 왕조의 침공을 받게 되자 성도들은 동굴이나 바위에 구멍을 뚫어 지하도시를 건설해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살았다. 데린구유가 그 대표적인 유적이다.

그러나 지하세계만 기독교인들의 피신처가 있는 게 아니고 지상에도 유적들이 많다. 카파도키아에는 350여개 교회가 있었으며, 현재 유적이 남아있는 교회들만 해도 100여개의 교회라고 한다. 대부분은 동굴 내지 석굴교회들이다. 오늘은 바로 그 석굴교회들을 들러보는 일정이다. 아침 식사 후에 성바시리우스교회, 사과교회, 뱀 교회를 비롯하여 몇몇 교회들을 들러보았다.

▲ 하늘에 애드벌룬이 가득하다.

▲ 애드벌룬 그리고 카파도키아의 계곡

서너 군데 들러봤는데 대부분 여기저기 솟은 버섯모양

서너 군데 들러봤는데 대부분 여기저기 솟은 버섯모양(다 그런 것은 아님)의 기둥들 중간을 파고 지은 교회들이다. 십자 형태의 구조를 하고 있거나 둥근 천장을 가진 곳이 많았다. 우리가 들른 곳에는 프레스코화가 있었고, 보존 상태 또한 그런대로 수준급이다. 당시 성도들이 식당으로 사용하던 공간도 갔는데 부엌으로 사용했다는 근거인 그을음이 천장에 고스란히 남아있기도 했다.


성경에서 카파도키아는 베드로 사도의 편지 수신자들의 땅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서신을 이렇게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베드로전서 1:1-2)

카파도키아를 다 들러본 소감을 말하라면 ‘그저 감사하다’는 것이다. 처절한 몸부림으로 살아냈던 기독교인들의 흔적은 지금처럼, 느슨하게 믿어도 되는 시대를 사는 신앙인으로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젠 복음을 위해 숨을 필요도 없고, 복음을 위해 순교할 이유도 없다. 물론 아직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좋으니 나쁘니 해도 종교적 자유가 확보된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이 축복이다.(계속)

김학현/연서교회 목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