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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이해한 하나님과 자연의 관계
류기종  |  rkch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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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1월 02일 (일) 23:14:24
최종편집 : 2011년 01월 02일 (일) 23:36:35 [조회수 : 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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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1:20)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으리로다"(롬11:33-36)


   
기독교 영성 특히 동방교회 영성의 기초를 놓아준 인물 중 하나인 에바그리우스(Evagrius, 345-399)는 기독교 또는 기독교 신앙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바로 이해하고 그 가르침에 따라서 사는/실행하는 일로 보았으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복음)의 핵심은 다음 세 가지 즉 (1)인간의 삶의 올바른 도리 곧 도덕적인(덕성의) 삶의 실천원리(praktike)와 (2)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실상 곧 우주만물의 참 모습과 그들의 존재의 목적과 의미를 바로 아는 일(physike)과 (3)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존재들을 존재가능하게 하는 "무한한 신비적 실재"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바로 아는 일(theologike)이라고 말하였다.

에바그리우스의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복음의 핵심 곧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 내용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인간의 가장 올바른 삶 곧 우리에게 생명(존재)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아름답고 고상한 윤리적 삶의 실천과 함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꼭 알아야하며 또한 깊이 관심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인 이 자연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사실과, 그리고 또한 이 자연 곧 우주만물을 있게 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또한 하나님과 우주 만물과의 관계가 무엇인가를 바로 아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무한의 신비적 존재이신 하나님이 자신의 참 모습 곧 신성을 자신이 창조한 우주 만물 곧 창조세계(자연)에 다 현시해주셨다고 말하고 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치 못할지니라"(롬1:20)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창조하신 만물에 다 현시되어 있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모른다거나 알 수 없다는 등의 핑계나 이유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바울에 따르면 하나님의 본성/본래 모습인 신성(Godhead) 곧 보이지 않는 신적 본질과 영원하신 능력(the eternal/infinite wisdom or power of God),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무한의 지혜와 사랑, 예를 들면, 진선미애의 성품과 영적 특성인 영원성 등이 어떤 형태로든 이 창조세계인 자연에 다 현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신성의 표현인 이 우주 만물 곧 하나님의 창조세계인 자연을 통해서 또는 자연을 가깝게 할 때에 하나님의 성품인 진선미애를 느끼고 깨달아 알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우주 만물과의 깊은 관계 즉 불가분의 본질적 관계를 다음의 말로 표현하고 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즉 사도 바울은 우주 만물 곧 만유(all things and all beings)가 다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비롯하고 또한 하나님의 창조의 은혜에 의해서 매 순간순간 존재하며, 또한 궁극에 가서는 모든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하나님과 만물과의 신비로운 관계 곧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의 비밀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알지 못하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이 말은 만물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이 이치는 신비의 극치를 나타내는 일이기 때문에 그 실상을 유한한 인간이 모두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상은 바울보다 약 천 년 전에 기록된 히부리의 지혜자 전도서 기자의 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3:11). 이 히부리 지혜자는 하나님의 신비 전체를 완전하게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마음(영혼) 속에 만물의 근원이신 영원자 하나님을 찾고/알고 싶어 하는 마음과 또한 그 가능성을 우리 인간들에게 주셨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사도 바울의 이 말씀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원하신 신성 곧 인간의 감각적 인식능력이나 경험으로는 알 수 없는 비가시적 신비한 본질 곧 신성을 그의 창조들 통해서 다 현시해 주셨다는 말씀에 기초해서 우리 기독교 영성가들은 하나님과 사물과의 깊은 관계를 알고 깨닫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우렸다. 어떤 면에서 우리 기독교 영성은 바울의 이 말과 함께 성서 전반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 즉 순수 영적 실재이신 하나님과 피조세계인 만물과의 깊은/신비한 관계를 깨달아 알려는 노력의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러한 하나님과 만물과의 신비한 관계를 깊이 묵상/사색하고 영적 직관과 기도와 체험으로 알아낸 사람들이 바로 기독교 영성을 풍부하게 해준 영성가들이었다. 그 중요 인물들을 열거하면, 고대교회의 교부 오리겐을 비롯하여 닛사의 그레고리 등 카파도키아 교부들, 그리고 디오니수스 아레오파지트와 고백자 막시무스 등 동방교회의 영성가들과, 12세기의 독일의 여성신비가 힐데가드와 크레르보의 버어나드와 엑크할트 및 중세의 수도원 영성을 발전시킨 성프란시tm와 도미니크 구즈만 등 중세의 영성가들, 그리고 "미지의 구름"이란 책을 쓴 익명의 저자와 리챠드 롤, 월터힐튼, 줄리안 놀위치 등 14기의 영국의 영성가들, 그리고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의 영적 밑거름이 되었던 요한 타울러와 헨리 수소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그들의 깊은 사색과 기도 혹은 신비적인 체험을 통한 영적 직관과 통찰을 통해서 전적 초월자 곧 영원자/무한자이신 하나님과 그분의 창조세계인 이 우주 만물과의 신비한 관계를 말해주려 하였다. 그들의 글들이 바로 오늘의 영성고전으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개신교를 탄생시킨 루터를 비롯한 종교 개혁자들에 의해서 하나님과 우주만물과의 신비한 관계를 말해준 영성가들의 교훈들이 모두 부정당하고 외면당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즉 종교 개혁자들은 우리 인간이 교만의 죄로 인해서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들이 됨으로써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인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상실한 존재들이 되었기 때문에 선을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무할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도 다 상실하였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특히 마틴 루터는 로마서 1장 20절의 하나님의 신성이 그가 자으신 만물에 다 표현되었다고 말한 사도 바울의 기록인 로마서에 근거해서 종교개혁사상을 전개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연계시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세계인 자연과 창조주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와 또한 자연과 우리 인간간의 깊은 관계를 단절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참으로 불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복음 6장 26절 이하에서 하나님과 자연과의 신비한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아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문의 모든 영광으로 입은 옷이 이 꽃 하나만 못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이 말씀에서 풀과 나무와 꽃들과 새들 곧 자연의 모든 존재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힘에 의해서 자라고 존재하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니 깊이 만물에 스며들어 있으며 또한 표현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늘에 와서 이 사실 곧 하나님과 만물과의 신비한 관계를 가장 깊이 통찰하고 알려준 사상가가 바로 현대의 과정철학자 화이트헤드(A. N. Whitehead)이다.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하나님의 본성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이 세상 만물과 직접 관련이 없는 초월성 혹은 순수 잠재성을 의미하는 본성인데 이것을 화이트헤드는 하나님의 제일 본성 혹은 "원초적 본성"이라고 말하며, 둘째는 하나님의 이 우주 만물과 직접 관계된 제2의 본성으로서 "파생적 본성" 혹은 "물리적 본성"이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이 세계 우주만물은 바로 하나님의 제의 본성인 물리적 본성인의 표현이다. 따라서 이 세계 우주 만물은 단순히 하나님이 창조해 놓은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물리적 본성으로서의 자신의 본성의 일환이란 것이다.

즉 그에 따르면, 이 우주는 하나님의 몸에 해당한다. 이것을 유비적으로 말하면, 사람에게 몸과 마음이 있듯이, 하나님에게도 마음 곧 영적 측면과 몸에 해당하는 물리적 측면이 있는데, 이 우주 만물은 바로 하나님의 물리적 측면인 몸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세상 우주 만물 곧 자연은 그만큼 하나님과 직접적인 혹은 근원적인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화이트헤드의 이 말은 사도 바울의 말, "하나님의 영원하신 신성이 그의 지으신 만물에 보여 알려졌나니"라고 말한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 의미심장한 말 "하나님의 영원하신 신성이 그가 창조하신 만물에 보여 알려졌나니"란 말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특히 오늘의 인간 중심의 기술문명과 그에 따른 자연의 정복과 개발행위로 인해서 하나님의 창조세계인 자연이 크게 병들어가고 또한 심한 오염과 파괴를 눈앞에 바라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성품/신성 곧 진선미의 자기표현의 창조세계, 이 하나밖에 없는 지구 곧 하나님이 지극한 사랑으로 바라보고 계신 이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즉 우리 주변의 자연 곧 풀과 나무와 새들과 바람과 공기와 햇빛과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음미하고 생각하는 태도가 전적으로 달라져야하지 않을까?

하나님은 왜 자기가 창조한 만물을 보고 심히 기뻐하셨을까?(창1:31) 바로 자기의 성품, 자기의 마음, 자기의 뜻이 너무도 잘(아름답게) 표현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하나님이 만물을 보고 기뻐하신 것 같이 그렇게 감동적인 마음으로 보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하나님의 신성의 표현인 이처럼 아름답고 더할 수 없이 신비스러운 자연 속에 살면서도 자연과 남남처럼 멀어지고 분리되어서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외롭고 답답하고 허전(공허)한 날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 말을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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