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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생명!!생명!! 그 기원을 찾아서6 - 이제 전자의 정체를 밝혀보자[예수의 가르침을 찾아서(불과 평화12)]-탐욕의 역사는 피를 먹고 흐른다.8
한성영  |  h680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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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1월 02일 (일) 21:44:45
최종편집 : 2011년 01월 22일 (토) 20:45:19 [조회수 : 8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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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1885.10.7 - 1962.11.18) 


빛에서 전자로

플랑크가 에너지 양자가설을 통해 양자도약의 문을 연 이후 원자와 그 안에 있는 전자에 대해 고민하던 과학자들은 전자또한 '양자'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엄밀한 의미에서 실질적인 '양자론'의 탄생이라 볼 수 있다. 당시 세계의 모든 과학자들은 '원자의 내부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라는 명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당시 27세의 당찬 청년이었던 보아가 전자또한 양자라는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이다. 그대도 알다시피 원자는 영어로 아톰(atom)이라고 부른다.




   

 

 

                         ▲그림1 톰슨의 음극선 실험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트스(기원전 460년경~370)는 물질을 '분할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의 이름(atoms)을 붙인 것에서 유래한다. 원자의 개념을 처음 도입한 것은 19세기 영국의 화학자 돌튼이었으며. 1897년 영국의 물리학자 톰슨 (1856~1940)은 전자를 발견하게 된다. 톰슨은 당시 음극선(두 금속 전극이 진공의 유리관 안에 떨어져 있고, 두 단자 사이에 전위차가 있을 때, 진공관안에서 관찰되는 전자들의 흐름) 의 정체가 마이너스 전자를 띤 작은 알맹이 즉 전자의 집합체라고 생각했다.

미국의 물리학자 밀리컨 (1868~1953)은 의해 전자의 질량은 수소원자의 약 이천분의 일인 것을 측정하었고 독일의 물리학자 로렌츠등이 원자에서 방출되는 빛의 연구에 의해 원자속에 전기를 띤 입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예언했고 그 입자가 음극선을 구성하는 전자와같은 것임을 확인했다. 원자는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톰슨 원자 모형


                                                                               ▲그림2 톰슨 원자모형

이후 과학자들은 원자의 내부구조에 더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원자는 마이너스전기를 띤 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원자 전체로서는 전기를 띠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원자안에서 플러스와 마이너스 전기가 만나 서로 중화되는 것이라 예측을 하게 되었다. 1903년 톰슨은 플러스 전기를 띤 큰 원안에 작은 전자 알맹이가 흩어져 있는 '톰슨 원자모형'이라 불리는 원자의 구조모델을 발표했다.

톰슨이 제안한 원자 모델에 고무된 영국의 물리학자 러더포드(1871~1937)는 직접 톰슨의 원자 모델을 시험하기로 결정한다. 그는 톰슨의 원자 모델이 옳다면 상대적으로 큰 알파 입자는 금박지의 원자를 통과할 때 매우 적게 휠 것이라고 추론하였다. 왜냐하면 알파 입자는 양전하를 띠고 있으므로 원자핵 대부분이 전자로 구성된 톰슨의 원자는 중성을 이루고 있기때문에 그대로 뚫고 지나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톰슨 원자에 있는 양전하의 영향이 미미한 것으로 봤다. (양전하는 양전하끼리, 음전하는 음전하끼리 서로 반발하는 원리)

방사선 광원(radioactive source)에 알파 입자가 나오면 알파입자는 금박지(gold foil)에 부딪히게 된다. 톰슨의 모형을 따른다면 금박지 안의 원자핵은 알파 입자를 크게 휘지 않고 그대로 통과시켜야 한다. 그런데 실제 실험에서 대부분이 입자가 그대로 통과하기는 했지만 적지 않은 알파입자들이 매우 큰 각도로 휘어지는 것이 관찰되었다. (그림에서 둥그런 초록색 울타리는 알파입자가 부딪히면 빛을 내는 형광판이다.) 


러더포드 원자모형


                                                           ▲그림3 러더포드 원자모형

톰슨 모형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발견되자 러더포드는 톰슨 모형을 대체하는 새로운 원자 모형을 제안하게 된다. 그는 원자 한 가운데에 양전하를 띤 원자핵이 있고 음전하를 띤 전자들이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다는 '러더포드 모형'을 고안한다. 그는 실험에서 대부분의 알파 입자가 그대로 통과하고 동시에 여러 입자가 휘어지는 두 현상을 동시에 만족하기 위해 원자는 아주 작은 양전하의 원자핵과 원자의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는 전자들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림4 러더포드 실험을 도식화한 그림.

그림3의 파란색 직선은 알파입자의 궤적이다. 파란색의 둥근 원은 금박지를 구성하는 원자이고 그 한 가운데에 아주 작은 노란색의 원자핵이 놓여져 있다. 원자핵은 양전하를 띠므로 양전하의 알파입자가 원자핵에 가까이 접근하면 반발력으로 그대로 휘어지게 된다. 그러나 원자핵과 접촉하지 않은 알파입자는 그대로 직진하거나 아주 약하게 휘어질뿐이다.

러더포드가 생각한 플러스 전기를 가지는 커다란 입자라는 것은 그 뒤에 플러스 전기를 가지는 '양자'가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 몇 개가 모여 굳게 결합한 원자핵인 것이 명확해졌다. 그런데 당시의 물리학에 근거를 두면 전기를 띤 입자가 회전운동을 하면 그 입자는 빛(전자파)을 방출하여 에너지를 잃고 최종적으로는 원자핵에 붙게된다.

 

                               ▲그림5 러드포드모형의 문제 가속되는 전자는 빛을 방출하면서 원자핵으로 끌려가야 한다.

이것이 러더포드 모델이 안고있던 난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톰슨과 러더포드의 지도를 받았던 27세의 젊은 과학자 보아였던 것이다. '전자는 왜 뭉개져 버리지 않는가?'의 활발한 논쟁에 참가했던 보아는 후일 '수소원자의 발머 계열의 관계식'을 친구로부터 듣게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양자조건'과 '진동수 조건'이라는 고전물리학의 상식에서 벗어난 '보아의 원자 모형'을 발표했다. 기체는 종류에따라 특유의 빛을 내는데 프리즘같은 분광기를 통해서보면 스펙터클을 분석할 수 있다. 


발머계수

                                        ▲그림6 발머의 수소원자의 선스펙터클

빛이 띠 모양으로 퍼져있는 연속 스펙터클과 선 모양의 빛이 군데군데 보이는 선스펙터클을 볼 수 있다. 스위스 중학교 교사였던 발머는 수소원자 스펙터클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수소원자의 선스펙터클은 빨강, 파랑, 감색, 보라 이렇게 네 가지의 가시광선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네 가지 빛 파장 에는 9/5 : 16/12 : 27/21 : 36/32 = 3²/3²-2² : 4²/4²-2² : 5²/5²-2² : 6²/6²-2²이라는 규칙성을 발견했다.

전자가 원자핵의 주변을 회전할 때 전자는 전자파를 방출하는데 이 때 방출하는 전자파스펙터클을 고전물리학에 기초를 두고 계산을 하면 그 선스펙퍼클의 파장은 같은 간격으로 나타나야하며 전자는 전자파를 내뿜으면서 전자의 에너지를 잃고 소용돌이 모양으로 작은 궤도를 돌아다닌다. 이 때 방출되는 전자파의 파장을 고전물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궤도가 작아짐에 따라 파장이 점점 짧아진다.

그러면 수소원자의 스펙터클은 여러 가지 파장을 포함한 연속 스펙터클이 될 것이고 특정한 파장만을 지니는 선 스펙터클은 결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발머는 특정한 파장의 선스펙터클을 수소원자 스펙터클과 러더포드 원자모형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수소원자 스펙터클은 선스펙트럼을 이루며 일정한 정수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일까? 이 문제를 보아는 플랑크의 양자가설이나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을 토대로 천재적으로 해결했다. 


보아 원자모형

                                                           ▲그림7 보아의 원자모형

원자가 안에서 전자는 어디에 있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원 궤도 위 만을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 원 궤도의 반경은 어떤 조건에 따라 일정한 값에만 한정하여 반응한다. 이 궤도 위를 회전운동을 하고 있을 때에는 전자는 전자파를 방출하지 않는다. 전자가 하나의 궤도에서 다른 반경의 궤도로 이동할 때 전자는 전자파를 방출하기도 하고 흡수하기도 한다. 방출하는 전자파의 에너지는 전자가 각각의 궤도를 돌고 있을 때 전자의 에너지 차이에 해당한다.

이것은 회전운동을 하는 전자는 빛을 방출한다는 고전물리학의 법칙을 무시하는 것이다. 전자가 정해진 반경의 궤도 위를 돌고 있을 때 전자는 일정한 에너지 상태를 가지고 있고 빛을 내보내지 않는다. 이것을 보아는 ‘정상상태’라고 이름을 붙였다. 전자의 에너지는 원자핵의 바깥 부분을 돌고 있을 때 더욱 높고 안 쪽 궤도를 돌고 있을 때에는 낮아진다. 그리고 어떤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바뀔 때(이것을 ‘천이’라고 부른다.)

전자는 에너지의 차이를 전자파로서 방출하고 흡수한다. 보아가 발머의 관계식을 보고 생각한 것은 이 관계식의 차이는 즉 전자의 두 개의 정상상태의 에너지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보아는 ‘궤도를 한 바퀴 도는 길이에 전자의 운동량을 곱한 것은 플랑크상수 h의 정수배에 한정된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보아의 양자 조건이라고 한다. 즉 전자의 궤도반경은 플랑크 상수 h를 포함하고 최소단위(양자)의 정배수와 비교한 수치, 즉 띄엄띄엄 일정한 값에만 한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플랑크가 빛에너지를 생각할 때 도입한 양자개념과 플랑크 상수 h가 원자의 구조를 생각했을 때에도 사용된 이유이다. 전자가 원운동을 하고 있을 때에는 전자에 활동하는 원심력과 전자가 원자핵으로부터 받는 전기적인 인력이 딱 균형이 맞는 식이 성립됩니다. 이 식에 양자조건의 식을 대입시키면 전자의 궤도 반경이나 제각각의 궤도 위를 돌고 있을 때(즉, 정상상태)의 전자에너지가 실제로 어떤 값이 되는지를 계산할 수 있었다. 2πr * mv = nh r: 전자의 궤도반경, m: 전자의 질량, v: 전자의 속도, n:1,2,3....(정수), h: 플랑크 상수

가장 안쪽의 전자의 궤도를 'n=1의 궤도'라고 부른다. 이때에 전자가 가지는 에너지는 제일 작은 값이 된다. n값이 2,3,4처럼 크게되면 궤도반경과 전자의 에너지도 커진다. n=1의 경우 전자의 궤도반경은 1억분의 0.5cm정도가 되고 이 반경을 '보아반경'이라고 부른다. 이 보아반경의 값은 수소화합물의 결정에서 추정되고 있던 수소원자의 반경과 거의 일치하는 것을 알았고, 보아의 이론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 되었다. n=1의 궤도를 돌고 있을 때에 최저에너지 상태가 된다. 전자에너지에는 최저 라인이 있고 그 이하는 결코 될 수 없다. 즉 전자가 원자핵으로 빨려들어가지 않는 것은 이 양자조건 덕택이다. 


보아의 양자조건

보아는 발머의 관계식을 보고 식안의 '차이'의 부분은 전자가 어떤 궤도에 있을 때와 다른 궤도에 있을 때의 에너지 차이를 의미한다고 하고 착상을 했다. 아인슈타인의 광양자가설에 의하면 빛에너지는 그 빛의 진동수에 플랑크 상수 h를 곱한 것, 즉 hυ가 된다. 보아는 광양자가설과 앞의 가정 '전자가 하나의 궤도에서 다른 반경의 궤도로 이동할 때 전자는 전자파를 방출하기도 하고 흡수하기도 한다. 방출하는 전자파의 에너지는 전자가 각각의 궤도를 돌고 있을 때 전자의 에너지 차이에 해당한다.'를 조합, "전자가 표면의 궤도로부터 내부의 궤도로 옮길 때, 전자가 내는 및의 진동수는 전자가 각기 궤도에 있었을 때의 에너지 차이를 플랑크상수로 나눈 것이 된다."라는 공식을 도촐한다. 이것을 '보아의 진동수 조건'이라고 부른다.

보아의 진동수 조건 υ= Ea - Eb/h υ:전자가 내는 빛의 진동수, Ea:전자가 n=a의 궤도에 있을 때의 에너지, Eb=전자가 n=b의 궤도에 있을 때의 에너지, h: 플랑크 상수

예를 들어 수소원자 안에서 n=3의 궤도에 있던 전자가 n=2의 궤도로 이동한다.(천이)고 하자. 이 때 보아의 진동수 조건에 따르면 전자는 n=3의 궤도를 돌 때의 에너지와 n=2의 궤도를 돌 때의 에너지의 차이를 빛으로서 방출한다. 그 빛의 진동수를 계산하면 그 수는 발머 계열의 안에 빨간 빛의 진동수와 정확히 일치한다. n=4, n=5, n=6의 궤도로부터 n=2의 궤도로 천이 할 때에는 발머 계수의 감색과 자주의 빛을 방출한다. n=2이외의 궤도로 천이 할 때 전자가 방출하는 전자파는 적외선이나 자외선이 되기 때문에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다.

보아의 이론은 '전기 양자론'이라고 불리웠고 당시로서는 우수했지만 실은 결함 투성이 였다. 예를들어 "정해진 궤도를 도는 (정상상태)전자는 왜 빛을 내지 않는가?"를 일체 설명하지 못했다. 또한 보아의 원자모형은 수소원자 밖에 성립하지 않는다. 수소원자는 전자를 한 개 밖에 지니지 않는 간단한 구조였기 때문에 보아의 이론과 가장 잘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전자를 두 개 가지는 헬륨 원자가 방출하는 선 스펙터클은 설명할 수 없었다.

 

 

 

한성영/ 블로거, 자유기고가, 새로운 기독교운동연대 사무처장지금 이순간!! http://blog.daum.net/steppingstone77/17200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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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170.20.11.116)
2011-01-12 03:44:09
과학교과서를 그대로 베껴놓은 글이 왜 여기에 올라와 있는지 이해가 가지도 않지만 빌립의 글은 더 웃기다.

고전 열역학만 가지고 양자론적 효과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뭔 딴 소리냐?

이미 이 문제는 해결된 지가 언제인데?

블랙홀의 Event horizon의 외부 표면적과 내부 표면적을 합하여 계산하면 열역학의 strong version과 전혀 충돌도 없고 열역학의 또 다른 세가지 법칙과도 문제가 없는게 증명되었는데.

게다가 Kerr 블래홀의 경우에는 절대온도가 0이 되어도 엔트로피 값은 0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밝혀졌고.

뭔 말을 하고 싶은건지 알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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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명 (210.104.12.145)
2011-01-12 21:26:50
PICKY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님의 글을 보아하니 과학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 같군요. 과학교과서를 능가하면서도 대중에게 잘 전달 될 수 있는 글을 님이 써보시면 어떨까요.^^ 기대해보겠습니다.

교과서는 중요하지요. 제가 쓴 글은 아마 전공하신 분들은 대개 아는 내용일것니다.

과학에 대해서 대중친화적인 글을 쓰는 과학자들도 교과서 수준을 넘지는 못할겁니다. 그 이상의 전문적인 내용들을 사실 다룰 필요도 없구요. 충분한 배경지식이 있어야하고 현란한 공식들은 당연히 이해되지 못할 것이구요. 저는 다만 현재까지의 과학의 성과물의 기본에 충실하먼서 과학 너머의 종교의 진리가 지향하는 바를 가리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과학의 기본적인 외피들을 섭렵하면서 종교와 과학이 어떻게 상생할 수 있으며 종교가 과학의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를 너머 더 큰 궁국적 대안이 될 수 있는 가를 설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 글의 의도를 이해하시겟습니까? 제 글에 과학적인 오류가 있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가차없이 지적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럼 님께서도 오늘 여여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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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170.20.11.116)
2011-01-14 05:16:37
님의 의도는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과학과 종교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종교가 과학이 보여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 있다는 가치체계의 우월감을 과시하려는 것인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님은 '종교가 과학의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를 너머 더 큰 궁국적 대안이 될 수 있는 가를 설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전제는 이미 중립적 가치관을 무시한 편향된 시각을 지녔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저는 과학 지상주의자도 아니고 기독교라는 종교가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을 지니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기독교가 인간사회의 모든 면에 대하여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것처럼 우쭐대다가 오히려 이성주의자들과 과학이 보여주는 철저한 사실성에 의해 철퇴를 맞고 후퇴를 하였습니다.

이전 시대와는 달리 기독교에 대한 과학으로부터의 도전이 거세게 나타나는 이유는 과학이 종교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종교가 십여세기 동안 인간의 이성적 사고를 억압하고 종교적인 권위를 의지하여 비논리적인 교리를 수용하기를 주장한 강압에 대한 반발입니다.

님이 쓰고 있는 양자역학을 일반 교인들이 좀 더 자세히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지식은 단지 그들의 상식의 폭만 넓힐 뿐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하여 그 어떤 유익한 제안을 내놓지 못합니다.

양자역학의 경우에는 에너지의 양자화가 어떻고 불확정성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이야기를 해 보았자 듣는 이의 종교관과 가치관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뉴턴에서부터 비롯한 근대과학의 발전이 인간이 지니고 있는 우주관에 대한 사고를 어떻게 발전시켰으며 그렇게 형성된 우주관은 기독교의 우주관과 어떤 면에서 다르냐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과학철학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양자역학의 슈뢰딩거 방정식을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도 드러나지 않는 부분입니다.

한국의 과학은 미국의 실용주의적 학문의 체계를 몸에 익힌 사람들이 미국에서 직수입해서 세워진 체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철학이 결여된 학문이 되었습니다. 학위는 Ph.D 이지만 철학적 사고에 대한 훈련이 전혀 없이 논문만 쓰고 수학적 설명만 이해하면서 학문을 한다고 합니다.

님도 지금 그런 사고의 틀 속에서 일상적 언어로 과학의 결과만을 설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수학공식이나 자연의 관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과학적 결과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나타나는 우주관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가지고 사실의 언어가 아닌 의미의 언어로 종교에 다가갈 때에 서로가 소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는 의미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사실의 언어로 전환될 수 없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사실의 언어를 구사하는 과학이 의미의 언어로 소통을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종교가 과학으로의 접근은 불가능해도 과학이 종교로의 접근은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신학과 기독교는 과학을 비난하거나 과학에 대한 평가를 시도합니다. 이것이 교인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과학과 종교가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공통의 주제를 찾을 수 있을 지는 수세기 동안 논의된 문제이지만 '이런 논의 자체가 한국과 같은 미성숙한 기독교 사회에서는 가능하지 않다'라는 결론은 이미 오래전에 학계에서 내려진 결론입니다.서구사회에서도 오랫동안 숙제로 남아있는 문제인데 한국의 기독교의 상황을 보면 당연히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은 약간의 지성적 사고만 할 수 있다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근본주의적 성경 해석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국의 기독교는 대부분의 교회에서 창세기의 창조를 6일간의 창조로 가르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유연한 사고를 배제하고 오직 교리적인 지식을 주입하는 한국의 기독교에서 과학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하고 있는 기독교인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 과학자들 조차도 복잡한 수학공식은 잘 풀 수 있겠지만 그것이 지니고 있는 철학적 의미를 추출할 수 있는 학자는 거의 없다고 봅니다. 모든 기독교인을 다 만나 본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저의 경험에 의하면 그런 기독교 과학자는 없었습니다. 그 반대로 과학이 무엇인지 조차 이해도 하지 못하고 교인들을 우롱하며 엉터리 주장만을 하는 사이비 과학자와 엉터리 목사들은 부지기수로 보았습니다.

상대성 이론이 인류의 우주관을 바꾸어 놓았다고 가르치는 물리학 교수는 많지만 왜 그것이 우주관을 바꾸었는지 역사적 상황과 철학적 분석을 통해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제가 한두 사람 외에는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님의 글의 내용이나 님의 순수한 의도를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독교 내에서 과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은 동감합니다. 그러나 님의 방식에 대하여는 의문점이 많습니다.

혼란만 더할 것이고 비록 해가 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유익이 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한국의 기독교에서는 기독교라는 종교의 가치가 훨씬 고귀하고 가치있는 것으로이미 종교로서의 기독교와 과학의 위치를 고정시켜 놓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사회의 서로 다른 영역을 차지하는 독립적인 분야가 아닌 주종의 관계를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아무리 과학을 말한다고 해도 종교적인 가치관과 위배되거나 상충되는 내용은 가차 없이 버리게 되는 것이 한국의 기독교인의 사고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양자역학이 아니라 우주론을 말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기독교는 아직 과학과 종교의 소통에 대하여 언급하기에는 미성숙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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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
우명 (175.194.46.17)
2011-01-14 20:45:10
Picky 님, 님의 성의 있고 긴 답글에 먼저 감사드립니다.

제가 지금 용산참사 추모 2주기 강제퇴거 감시단 보고서를 작성중이라 시간이 없어서 간단하게 답변만하고 나중에 이에 대해 답변 드리겠습니다.

님의 "님은 '종교가 과학의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를 너머 더 큰 궁국적 대안이 될 수 있는 가를 설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전제는 이미 중립적 가치관을 무시한 편향된 시각을 지녔다는 것을 증명합니다."이 답변

그리고 "한국의 과학은 미국의 실용주의적 학문의 체계를 몸에 익힌 사람들이 미국에서 직수입해서 세워진 체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철학이 결여된 학문이 되었습니다. 학위는 Ph.D 이지만 철학적 사고에 대한 훈련이 전혀 없이 논문만 쓰고 수학적 설명만 이해하면서 학문을 한다고 합니다.

님도 지금 그런 사고의 틀 속에서 일상적 언어로 과학의 결과만을 설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수학공식이나 자연의 관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과학적 결과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나타나는 우주관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가지고 사실의 언어가 아닌 의미의 언어로 종교에 다가갈 때에 서로가 소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는 의미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사실의 언어로 전환될 수 없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사실의 언어를 구사하는 과학이 의미의 언어로 소통을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종교가 과학으로의 접근은 불가능해도 과학이 종교로의 접근은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신학과 기독교는 과학을 비난하거나 과학에 대한 평가를 시도합니다. 이것이 교인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

이런 답변은 제가 느끼기에는 너무 독단적입니다. 저의 글에 대해서 제대로 판단하시려거든 제가 이 곳 당당뉴스에 올린 다른 글들을 다 읽어 보시고 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님의 성의 있는 답변에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오른 님께서도 여여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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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Picky (170.20.11.116)
2011-01-15 00:17:22
대꾸할 가치를 못 느끼겠네요.

논리도 없구요. 전에 님이 쓴 글을 보았는데 님의 글에 칭찬하는 댓글에는 아주 겸손히 대하면서 반론을 제시하는 글에는 가차 없이 깔고 뭉게더군요.

그러면서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지적하라고 말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위선이지요.

칭찬만 듣고 살아온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요.

저는 과학의 결과에 대하서노느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과학의 결과를 말하고 있다고 매도하는 것을 보니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즐기시는 분이시군요.

제가 무슨 독단적인 주장을 했습니까? 기독교인에게는 과학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한 우주관과 세계관을 드러내어 기독교의 그것과 비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의견이지 그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독선입니까?

이성적인 판단을 잃어버린 기독교는 조금만 자신들의 주장과 행동을 지적하기만 하면 불끈 분을 내고 달려들면서 적대감을 토해내는 모습에 이제는 아주 질립니다. 목사와 같은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교인들도 그들을 쏙 빼 닮았지요.

30년전에 배운 내용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도 없고 글의 목적과 글쓴이의 인격이 어떤지 다 드러났는데 더 들여다 볼 이유가 없지요.

그만 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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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우명 (175.194.46.17)
2011-01-15 00:56:13
대꾸할 가치가 없는데도 님은 계속 대꾸하고 계시군요.구체적인 언급이 없고 또 제가 저의 글의 본론은 시작도 하지 않았으며 또 이미 기존에 쓴 글이 있는데도 님이 이리 성급하게 판단하시는 것을 보고 독단적이라 말씀드린겁니다. 저는 누구의 칭찬을 듣거나 비판을 받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가 누리는 평화를 나누고 싶어 여러가지 도구를 이용하여 글을 쓸 뿐입니다. 과학도 그 도구중의 하나이지요.

저의 몇 마디 글에서 제 인격을 다 읽으셨다니 님은 고수도 보통 고수가 아니군요. 헛헛헛헛헛헛헛!!

자,자, 님의 판단은 님의 자유입니다, 제가 그것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어떤 권리도 없습니다. 님이 그렇다고 하면 님에게는 그런 것이지요. 그러니 님이 느끼시는대로 님은 님의 길을 가소서, 저는 저의 길을 갈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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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
빌립 (210.117.242.2)
2011-01-11 16:14:34
열역학 제3법칙(네른스트의 열정리)에 의하면 블랙홀이 증발한다는 호킹 복사는 틀렸다.

열역학의 법칙과 블랙홀

열역학 제3법칙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W.H. 네른스트에 의한 정리로 '어떤 계의 온도를 유한한 수의 단계를 거쳐 절대온도로 낮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블랙홀의 열역학 제3법칙으로 적용해보면 '유한한 수의 단계를 거쳐 블랙홀의 표면중력을 0으로까지 감소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가 된다. 책<스티븐 호킹> (휠체어 위의 우주여행자THE LONELY GENIUS EMBRACED the UNIVERSE) 크리스틴 라센(일반상대론을 연구한 천체물리학 교수) 지음, 박기훈(연세대 천문대 연구교수) 감수, 이상(2010년 출판)에서

여기서 블랙홀이 증발한다는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가 실제로 일어난다면 블랙홀의 표면중력은 결국 0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열역학 제3법칙(네른스트의 열정리)에 의하면 호킹 복사는 틀렸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호킹, 나를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만일 호킹 복사로 블랙홀이 증발한다면 블랙홀의 특이점은 결국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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