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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나 오늘이나 또 내일이나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성탄절 후 1주(20110102)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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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12월 24일 (금) 11:31:11
최종편집 : 2010년 12월 24일 (금) 18:20:56 [조회수 : 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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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후 제 1 주(20110102)
성서일과/ 시 148; 사 63:7-9; 히 2:10-18; 마 2:13-23
본문/ 마태복음 2:13-23
어제나 오늘이나 또 내일이나...

          (마 2:13-23) 『[13]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 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바 [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19]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20]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어제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기뻐하며 경배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탄생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 그를 알고 그에게 경배한 자들은 지극히 적은 수효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온 세상이 모두 잠든 그 밤에는 천사들의 찬송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며, 그나마 평화가 깃들이는 것 같았지만 날이 새면서 사정은 전혀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의 가정에 모진 풍파가 밀어닥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새 임금으로 나신 이에게 경배하러 왔다는 동방 박사들의 말을 들은 땅의 임금 헤롯이 아기 예수를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자로 여겨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자를 요셉에게 보내 사정을 전하셨고, 요셉은 예수님과 마리아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였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어디에 있는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헤롯은 베들레헴 근처에 사는 두 살 미만의 갓난아기를 모두 죽이는 참혹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시간이 흘러 헤롯이 죽었습니다.
요셉은 비로소 가족을 이끌고 고향인 나사렛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자라나셨고 그 때문에 후일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는데 세상에는 너무나 큰 슬픔과 아픔이 닥쳐왔고, 주님도 크나큰 고생을 겪으셨습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천사들의 찬송이 무색해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두가 하나님이 이미 계획하신대로였다는 것이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15 절 이루려함이러라, 18절-이루어졌느니라, 23절-이루려함이러라.
세 번이나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졌다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겪으신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주시기 위해 겪게 하셨던 일과 같은 일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위협 앞에서 애굽으로 피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상속한 야곱도 열두 아들과 함께 애굽으로 갔습니다.
기근에서 생명을 보호하시고, 네 후손으로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리라는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한 길입니다.

헤롯은 아기 예수를 죽일 목적으로 수많은 어린 생명들을 학살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자 모세가 태어날 무렵 애굽의 바로는 산파들을 시켜 갓 태어난 히브리 족속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물에서 건져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삼으신 것과 같은 길입니다.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광야로 갔던 모세는 그곳에서 40년을 살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 바로 앞에 서서, 내 백성을 해방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애굽에서 돌아와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신 후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시험을 마치신 후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을 바로에게 전한 것처럼 예수님은 기적의 능력을 베푸시며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또 내일이나,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역사는 같은 과정을 따라 우리에게 닥치기 마련입니다.
그 길은 결코 주님 탄생하신 그날 밤처럼 평화로운 것도 아니요, 천사들의 노래 소리처럼 아름다운 것도 아닙니다.

그 길은 피눈물을 흘리는 슬픔이 있고, 고향을 떠나는 외로움이 있으며, 세상의 핍박과 유혹이라는 훼방을 견디는 아픔이 있는 길입니다.
주님께서 좁은 길로 가라고 하신 말씀의 뜻입니다.
바라기는 이 모든 어려움 가운데 함께 하시는 우리 예수님의 은혜로 마침내 승리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럼 우리가 거쳐야 할 좁고, 아픈 길은 어떤 길입니까?

첫째는, 구별되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애굽으로 가셨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 언젠가 한 번은 내게 익숙한 곳을 떠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그가 고향을 떠나는 곳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이스라엘 열두 부족의 조상이 되는 야곱도 그랬습니다.야곱이 가족과 함께 집에 머물러 살 때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보이지 않습니다.
야곱은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의 손자로 태어나 후일 그 약속을 상속받는 자가 되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있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받은 이름 이스라엘이 그 민족의 이름이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아버지 집에 머물러 살 때에는 정작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형의 곤궁함을 이용하여 제 욕심을 채우는 자였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어머니와 공모하여 의지하여 형과 아비를 속이는 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약속을 잇는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된 것은 집을 떠나 광야에 머물 때였습니다.
그는 집을 떠난 후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만난 하나님은 야곱이 가는 길에 야곱과 동행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비로소 하나님과 함께 길을 가는 자가 된 것입니다.
집안에 머물 때에 그는 아브라함의 육체의 후손에 머물렀으나, 집을 나와 홀로 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아브라함의 약속의 후손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집을 떠난다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그래서 편한 것 같은 곳에서 떠난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곳은 하늘나라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믿는 자라고 해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금 육신이 머무는 곳이 익숙한 곳입니다.
그곳이 세상의 전부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눈을 돌리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떠나지 아니하고는 안 됩니다.
이것이 믿는 자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말씀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구원사업에 불림 받은 모세가 애굽을 떠나 광야에 머물 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출 33: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자마자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또한 세상을 떠나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이 구별하신 까닭이요, 스스로 구별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구원의 도구로 쓰인 모세도 스스로를 구별한 자였습니다.
그는 애굽의 궁전을 떠나 광야로 들어가 40년을 살았습니다.
성경은 증언합니다.
          (히 11:24-26)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구원의 은총 받으시기를 바라십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구별함으로 시작하여, 구별함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과 구별된 자가 마지막 날에 알곡으로 구별되어 하나님 창고에 들여지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구별하시는 역사를 깨달으시기를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세상과 구별되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둘째는, 피 흘리는 희생의 길을 지나야 합니다.

온 세상에 평화와 은총이 깃든 밤에 태어나신 예수님이시지만 날이 새면서, 그가 태어나신 베들레헴 근방은 갓난아이를 잃은 어미들의 곡성으로 가득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말한다면 희생이 없으면 구원도 없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히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모세가 내 백성을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바로 앞에 섰습니다.
아홉 가지 기적을 베풀어서 바로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들었지만 바로의 마음은 곧바로 다시 강퍅해졌습니다.

마지막 열 번째 기적은 애굽 전국에 피가 흘러넘치는 비극이었습니다.
기적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함이 아니요, 희생으로 구원이 이루어짐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출 12:29-30) 『[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30]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십자가는 부활의 기적을 증거하기 위한 표징만은 아닙니다.
십자가는 우리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신 희생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졌음을 말없이 증거하는 표징입니다.
부활은 그 희생의 열매입니다.
희생이 없으면 부활도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희생의 길 위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는 일이나 십자가를 지는 일은 다 같이 희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의 길은 구원의 길입니다.
그 길을 가는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희생입니다.
바울은 이를 가리켜 자기를 죽이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 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고 그리스도와 성도들을 위해 희생하며 사는 것을 기뻐한다고 합니다.
          (골 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또 말합니다.
구원이 이르기 위해 희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롬 8:17-18)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장차 나타날 큰 영광을 소망하며, 지금의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끝으로 험한 길 가운데서도 자라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그날부터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일하신 것이 아닙니다.
자라야 했습니다.
주님은 나사렛 동리에서 목수 요셉의 아들로 자랐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목수의 아들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눅 2: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그렇습니다.
본시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임에 틀림이 없으나, 자라시면서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열두 살 되던 해였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예수님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온 동네를 다 뒤졌겠지요.
사흘 만에 간신히 예수님을 찾았는데 어린 예수님은 성전에 계셨습니다.
아무리 의로운 요셉이요, 선한 마리아라고 하지만 화가 났습니다.
왜 여기 있느냐고 나무랐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아들이 아버지 집에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고....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두 살밖에 안 되었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알 정도로 자랐다는 뜻입니다.
육신의 부모와 영원한 아버지를 구별할 수 있게 자랐다는 것입니다.

어제와 같아서는 구원의 길을 계속 갈 수 없습니다.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자라야 합니까?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자라야 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장성하게 자라야 할 까닭이 무엇입니까?
          (엡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흔들리지 않기 위함입니다.
구원의 길에 첫 걸음을 내딛을 그 때, 우리가 스스로를 구별하여 떠나온 그 길로 다시 들어서지 않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구원의 길을 가는 자는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눅 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세상일에 매여서 갈 길을 가지 못하는 자, 머물러 자라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고전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 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이제 한 해를 보냅니다.
지나가는 해와 더불어 어린아이의 분량에 머물렀던 것을 다 버려서 새해에는 보다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구원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세상이 주는 고난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으로 여겨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는 믿음에 이르기까지 나아가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1 년은 그 언제보다 믿음이 자라는 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열두 살 난 예수님의 말씀을 그를 키운 부모들이 깨닫지 못했듯이, 이전에 세상에 속하였을 때의 모습을 깨끗이 벗어버리고, 몰라보게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나시기를 기원합니다.

          (엡 4:22-24)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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