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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번째의 레스토랑실패하고, 실패하고, 그리고 또 실패했던 사람들
신성남  |  canavillag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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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12월 15일 (수) 17:04:57
최종편집 : 2016년 03월 06일 (일) 16:57:28 [조회수 : 2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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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 2:13)."

1962년 어느 날 영국 리버풀 출신의 풋내기 음악도 네 명이 매우 긴장한 얼굴로 데카레코드 회사의 간부들 앞에서 첫 오디션을 마쳤습니다. 이들에게 한 간부는 무정하게 말했습니다. "우린 자네들의 소리가 맘에 들지 않아, 통기타를 쳐 대는 것은 이미 한물갔거든." 물론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었습니다.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이들이 훗날 록 그룹의 전설이 된 '비틀즈'였습니다.

음악 매니저인 짐 데니는 겨우 단 한 번의 공연을 마친 미시시피 주 출신의 한 신인 가수를 바로 해고했습니다. 그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자네에겐 음악적인 미래가 없어. 트럭 운전으로 돌아가라고." 그 청년이 후일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중 가수가 된 엘비스 프레슬리였습니다. 그는 비틀즈와 함께 역사상 가장 많은 앨범을 판 아티스트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실패하고, 실패하고, 그리고 또 실패했던 사람들

비단 이런 음악인들만 실패를 겪은 것은 아닙니다. 소설가 대니얼 디포는 그의 원고를 들고 20군데의 출판사를 돌아다녔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출판사를 찾아갔습니다. 그 21번째의 출판사가 명작 '로빈슨 크루소'를 세상에 나오게 했습니다.

영화 '록키'의 시나리오는 실베스터 스탤론이 32번이나 퇴짜 맞은 후에야 겨우 채택되었습니다. 200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 작가 루이스 라모르의 첫 원고는 출판사들로부터 350번이나 거절당했습니다. 그래도 이건 약과입니다. 존 그레시라는 영국 탐정소설 작가는 무려 743번이나 출판을 거절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나중에 성공하여 543권에 달하는 탐정소설을 출간했습니다.

일리노이 주의 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링컨 역시 평생에 걸쳐 많은 실패와 마주쳐야 했습니다 그는 무려 여덟 번이나 선거에서 패배했으며, 두 번 사업에 크게 실패했고 극심한 신경쇠약증으로 고통받았습니다. 인디언과 싸운 참혹한 블랙호크 전쟁 때 그는 장교로 복무했었는데,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사병으로 강등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련을 이기고 나중에 그는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조차도 많은 좌절을 겪었습니다. 악성이라고까지 추앙된 작곡가 베토벤은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너는 작곡가로서는 아주 절망적이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그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아둔하여 제대로 배울 수 없는 아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계적 성악가 카루소의 음악 선생님은 "네 목소리는 절대로 성악가가 될 수 없어"라고 카루소에게 혹독한 말을 했습니다.

다른 이야기들도 얼마든지 더 있습니다. 유명한 '엑서더스'의 작가 레온 우리스는 고등학교 영어 과목에서 세 차례나 낙제 점수를 받았습니다. 세기의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취리히 공과대학에 두 번 낙방하였으며, 조각가 로댕은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에 세 번이나 낙방하였습니다.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세계적 전도자 무디는 세례 문답에 떨어져 교회학교 교사 임명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 두 번 낙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후일 그 사관학교의 교장이 되었습니다.



외모나 장애도 저리 비켜라

외모로 인한 편견과 불이익을 굳건하게 극복한 분들도 많습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오디션에서 코가 너무 크고 치아가 튀어나왔기 때문에, 배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혹평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후일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 '가스등', 그리고 '카사블랑카' 등의 명작에 출연해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1959년 유니버설 영화사의 책임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버트 레이놀즈를 동시에 해고했습니다. 버트 레이놀즈에게 "당신은 배우가 될 소질이 전혀 보이지 않아"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앞니가 하나 깨졌고, 목의 울대가 너무 많이 튀어나왔어, 게다가 당신은 너무 말을 천천히 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이들은 미국 영화계의 유명 스타가 되었습니다.

1944년 모델 에이전시 회사의 책임자인 에멀린 스니블리는 모델을 지원하는 한 여성에게 "당신은 비서 일을 찾아보든지 아니면 일찌감치 결혼을 하는 게 좋겠소"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지원자가 놀랍게도 전설적인 배우 마릴린 먼로이었습니다.

윌마 루돌프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22명의 자식 중 20번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조산아로 태어났기 때문에 생존 확률조차 희박했습니다. 네 살 때는 폐렴에 성홍열이 겹쳐 왼쪽 다리마저 마비되었습니다. 그러다 열세 살이 되어서야 겨우 이상한 걸음걸이로 혼자서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는 걸을 수 없다던 이 어린 소녀가 나중에 올림픽에 참가해 세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고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이외에도 영국 작가 서머셋 몸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말더듬이였습니다. 베토벤은 말년에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손자병법>을 쓴 손무는 동료의 질투로 두 다리를 절단당하고, 얼굴에 죄인 표시로 굴욕적 문신(文身)까지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나이도 무슨 상관인가
 
어떤 분들은 나이가 많아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나이는 숫자일 뿐입니다. 육체적 중노동을 하는 일을 제외한다면 나이도 큰 장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 주변을 보면 정신적으로 '노쇠한 청년'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젊음이 넘치는 노장파'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낡은 중고차를 몰며 동업자를 찾던 65세의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농장 인부로 일하는 등 이미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자신의 노하우인 '양념 치킨' 기술에 투자할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전국을 헤매며 설득했지만, 모두 맛있다는 말만 할 뿐 투자를 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고, 무려 1009개의 레스토랑을 찾아다닌 끝에 결국 뜻을 이루었습니다. 그가 바로 패스트푸드 KFC의 창시자 커넬 샌드슨입니다.

더 나이 드신 분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느 날 95세가 된 파블로 카잘스에게 젊은 신문기자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은 이제 95세이고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첼리스트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하루에 여섯 시간씩이나 연습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카잘스는 대답했습니다. "왜냐하면 내 자신의 연주 실력이 아직도 조금씩 향상되고 있기 때문이오."

100세가 되도록 의욕적으로 사역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바로 영등포교회 원로이신 방지일 목사님입니다. 더구나 젊은 목사님들이 부끄러울 정도로 바른 말씀을 속 시원하게 잘하십니다. 최근에도 "쇼하는 목사는 강대상에 세울 수 없다"는 쓴 소리를 거침없이 하셨고 "세상은 돈을 원하지만 우린 예수를 줘야 한다"고 강변하셨습니다. 앞으로도 한 20년만 더 우리 곁에 계시면 좋겠습니다.

이밖에도, 존 밀턴은 44세에 장님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6년 뒤인 60세에 그는 완전히 실명된 상태에서 <실낙원>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영화 '벤허'의 원작자 월리스는 본래 남북전쟁 시 장군이었으며 뉴멕시코 주의 주지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뒤늦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글을 써서 53세의 나이에 전 세계에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46세에 귀머거리가 되었지만 시공간을 초월해 노래를 담을 수 있는 축음기를 발명했습니다. 50세가 다 되어서야 <사기(史記)>를 완결한 사마천은 잔인한 궁형으로 국부를 제거당한 사람입니다.


상처 없는 삶이란 없다

어떤 분은 다 아는 이야기들을 또 장황하게 늘어놓았다고 핀잔을 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유익한 이야기라면 가끔은 다소 반복되더라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런 선진들의 삶은 언제 다시 읽어 보아도 따뜻한 감동과 교훈을 줍니다. 삶에 대한 그들의 진지한 열정이 향기롭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노력이 아름답습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여, 우리도 모두 '세속적 성취'를 이루자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또는 무조건 성공주의로 가자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때론 포기해야 옳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신자들은 '선한 삶'과 '선한 일'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능력이 없다거나, 외모나 환경도 결정적인 문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많은 경우 이는 실패에 대한 변명일 뿐입니다. 건강에 자신이 없다고 건강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열매가 없다고 복음 나누기를 포기해서도 안 되고 응답이 더디다고 기도를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아울러 가정에 아무리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해도 가정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배우자나 부모나 자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설사 '1009번째의 레스토랑'이라도 이들보다 더 소중하겠습니까. 같은 이유로, 직장이나 사업이 뜻대로 잘되지 않고 어렵더라도 삶을 포기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정신의학자 아들러는 "사람은 누구나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아무리 잘나 보이는 사람도 약점이나 단점이 없는 경우는 없습니다. 누구도 열등감과 자격지심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와 시련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괴로워하며 스스로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상처가 없는 삶이란 없습니다. 인생은 실패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기 때문에 끝나는 것입니다. 한두 번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실패는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시련과 고난 그 자체가 우리를 해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우리를 정금같이 순전하게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성공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에 있습니다. 앞서 간 믿음의 선배들 삶이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실패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다윗과 베드로처럼 수많은 성경의 인물들은 계속해서 넘어지고 깨어지고 상처받았으나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실패하여 영육으로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비록 샌드슨 할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1009번째의 레스토랑' 문을 두드렸다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대부분은 그전에 미리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에게는 큰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로 절망하는 인생들을 위해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패역한 이스라엘이 듣지 않아도 계속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하나님 자신이 직접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상한 심령을 멸시치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에서 실패하고 낙오한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가난한 어부들이나 나병 환자의 친구가 되셨으며, 세리와 창기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병든 이들을 고치셨으며, 죄 지은 자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처럼 독생자마저 주신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우리를 포기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성탄의 참된 의미입니다.

혹시 우리 신자들은 외형적인 성공에 너무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또는 육신의 정욕이나 이생의 자랑에 얽매이고 있지는 않은지요. 아기 예수의 소식에 놀라서 '소동'하던 자들이 누구였는지를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그들은 나그네 된 이 세상에서 권력과 금력을 탐하며 지나치게 많은 것을 소유하려던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아기 예수를 갈망하다 마침내 눈으로 보고 감격하였던 복음서의 그 경건한 사람들처럼, 이제 신자들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해야 합니다. 세속적 성취에 안주하지 말고 먼저 죄를 회개하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억눌린 이들과 함께 울고, 가난한 이들과 소외받는 사람들의 위로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울러 거룩한 교회는 스스로 순결을 지키고, 공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며, 그리고 사랑을 겸허히 실천해야 합니다.

이천년 전 유대 땅 작은 마을의 허름한 말구유에 오셨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런 '선한 길'을 함께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또 한 해를 무심하게 보내는 우리에게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마 2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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