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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생명!!생명!! 그 기원을 찾아서4- 아!! 양자론!![예수의 가르침을 찾아서(불과 평화10)]-탐욕의 역사는 피를 먹고 흐른다.6
한성영  |  h680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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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12월 13일 (월) 21:24:27
최종편집 : 2010년 12월 14일 (화) 00:24:43 [조회수 : 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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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플랑크는 두 가지 위대한 발견을 했다!
하나는 양자역학이고 하나는 아인슈타인이다.





                                                    ▲막스 플랑크

 플랑크의 생애

자! 이제 양자론의 시작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양자론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고결했던 막스 플랑크의 삶에 대해 잠깐 알아보자. 그는 급격한 변화와 혼란함, 잔인함이 마구 뒤섞여있던 19세기중반에서 20세기 중반을 살았던 위대했지만 비운했던 과학자였다. 그의 삶은 그가 살았던 시대만큼이나 혼란과 모순 그리고 슬픈 사건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가 그 모든 비애와 격정과 고통을 내면에서 삭히며 꿋꿋히 교수와 총장으로서의 업무와 과학자로서의 연구를 초인적으로 해내가는 것은 경이롭기까지하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고전물리학과 양자물리학, 바이마르공화국, 나치의 공포정치 그리고 그들의 전쟁과 범죄, 이 모두가 플랑크의 삶의 궤적에 각인되어 있다.

물리학자였지만 교육가였고 베를린대학교의 총장을 지내기도했다. 그의 이력은 철학자로도 이어지며 61세를 넘어서는 노벨상까지 수상했다. 플랑크는 독일에 나치즘이 횡행하며 끔찍하고 무거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때에도 독일에 남아 국가와 민족에 대한 신의를 지켰다.

전쟁의 모든 상처들을 이겨낸 뒤, 고령에도 불구하고 학문연구가 다시 조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썼다. 그의 이러한 헌신을 기념하여 1911년에 세워진 카이저 빌헬름협회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플랑크의 이름을 따서 막스플랑크 협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플랑크의 가족사는 불행이라는 말마저 부족할만큼 가혹했다. 1871년 형 헤르만이 오를레앙 전투에서 사망했다. 1909년에는 너무나 사랑한 아내 마리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큰 아들 카를은 1916년 베르뒹 전투에서 죽었고 딸 그레테와 에마는 1917년과 19년 모두 첫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

둘 째 아들 에어빈은 1945년 수용소에서 정치적 명령에 따라 처형되었다. 정신을 못차릴 정도의 비극 중간 중간에도 그의 집이 연합군의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되었고 집안에 있던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서류와 플랑크가 수십 년간 규칙적으로 기록한 방대한 일기장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플랑크는 끔찍한 정신적 고통과 함께 육체적으로도 격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약간만 움직여도 극심한 고통을 겼어야하는 척추만곡증때문이었다.

그러나 끝이 않보일 정도로 깊고 처절한 비극과 고통과 절망들조차도 플랑크라는 위대한 인간을 꺽어놓지는 못했다. 그는 언제나 다시 일어섰고 균형을 잃지 않았으며 자신의 학문과 연구를 성실하게 챙기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교를 운영해갔다.그의 생애 마지막 수십 년을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독일의 모든 정치적 재난 상황에 직면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플랑크는 젊은 시절 고전물리학에 뜨겁게 열광했지만 과학자로서의 타고난 운명 때문에 어쩔수 없이 그 고전물리학을 뒤흔들며 양자물리학으로 향하는 비밀의 문을 자신도 모르게 열었다. 그리고 생애를 바쳐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연구에 몰두하여 자신의 동료들에게 전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물리학자가 될 수 있었다. 자!! 그러면 양자물리학, 그 세계로 들아가 보자.


 양자론이란 무엇인가?

1900년 12월 25일, 독일물리학회는 크리스마스파티를 겸한 조촐한 강연을 베를린에서 준비했다. 당시 파티와 강연 분위기를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상상력을 살짝 발휘해보자, 연말연시의 살짝 들뜬 분위기와 서로를 아는 동료들의 흐믓한 시선과 애교섞인 잡담이 파티홀안에서 뒤섞이며 교차하고 있었다.

물리학자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이 연례행사를 즐기며 의례적인 강연이 형식적으로 비껴갈 거라고 생각했다. 플랑크가 약간 긴장되어 있지만 단호함이 배어있는 모습으로 홀연단에 섰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세상을 뒤집어 놓을 역사적인 이론인 ‘에너지 양자가설’을 발표하게된다.

양자론의 ‘양자(量子)’라는 말은 영어로는 quantum이다. 이것은 ‘작은 집합, 단위’라는 의미이다. 즉, 무언가가 작은 집합으로서 '양'을 이루고 있는 것을 말한다. 영어로 micro는 지극히 작은 물질 소립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소립자 물리학에서 micro는 기호로 μ.로 표시하고 100만분의 1인 10-6을 가리키는 단위이다. 빛이나 전자와같이 미크로 물질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의 양(크기)은 어떤 것이든 가능한 것이 아니라 ‘에너지 또는 양자’의 일정한 단위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양자론이다.

예를 들어보자 원자나 분자의 실체를 몰랐던 과거에 사람들은 아마도 밀을 가루로 만든 밀가루는 가장 작은 단위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만약 밀가루를 스푼으로 퍼내려고 한다면 스푼의 크기에 따라 일정한 양(量)으로 얼마든지 퍼올릴 수 있을 것이다.

밀가루를 스푼을 이용해서 일정한 단위로 나눌 수 있는 것 처럼 빛이나 전자는 에너지가 일정한 단위의 양으로 모여 있는 소립자라는 것이 양자론이다. 그런데 이 양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밀가루처럼 어떤 양으로든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단위의 양만을 정수배로 갖는다는 것이 플랑크가 발견한 사실이다.


 양자론의 등장배경

처음으로 ‘양자’라는 개념을 등장시킨 플랑크의 에너지 '양자가설'은 물질이 열을 냈을 때에 온도와 그 물질이 내뿜는 빛의 색의 관계를 탐구하는 복사에너지(물체에서 발생하는 전자기파에너지)연구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열을 통해 일이 생성되는 모든 경우에 생성된 일에 비례하는 양의 열이 사용된다.

우주의 에너지는 일정하다”는 열역학 제 1법칙인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우주의 엔트로피는 최댓값을 향한다.”는 열역학 제 2법칙이 19C에 클라우지우스에 의해 공식화되었다. 그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오랫동안 간파되지 못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는 에너지와 열은 19C 물리학의 두 가지 중요한 주제였던 것이다.

또한 19세기 후반 독일은 나폴레옹 3세가 이끄는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석탄과 철광석이 풍부한 알사스로렌지역을 획득했다. 그리하여 당시 대다수의 국민들이 감자로 연명하던 가난한 독일은 이 절호의 기회를 바탕으로 철강산업을 일으켜 철공업국으로 발전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좋은 철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 온도이다. 불을 이용해서 음식을 만들 때에도 요리재료의 온도를 잘 조절하여 다룰 줄 알아야 좋은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처럼 용광로내의 철의 온도를 정확히 알고 그것을 잘 조절하는 것이 좋은 철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질 좋고 경쟁력있는 철을 만들어서 큰 이윤을 남기고 싶어하는 산업계의 열망은 자연스럽게 열을 내는 물질의 온도와 빛의 색의 관계를 정확히 이론적으로 알고 싶다는 요청으로 이어진다. 많은 물리학자가 이 문제에 도전했고 그 중에는 플랑크도 끼어있었다.


 흑체 복사 에너지.(*복사에너지 : 물체에서 발생하는 전자기파에너지)

각각의 빛은 왜 색깔의 차이가 나는 것인가? 그것은 빛의 파장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열을 내는 물질로부터 나오는 빛을 분해해서 각각의 파장의 빛이 온도에따라 어떻게 변화되는 지를 연구했다. 그런데 색이 있는 물질에 열을 가하면 물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색에 따라 어떤 특정한 파장의 빛을 내보내거나, 반대로 특정한 파장의 빛은 흡수해 버리는 성질이 있었다.

나트륨은 태우면 황색 빛을 내고 아크등은 여러가지 색을 내며 빨간 꽃은 파란 빛은 흡수하고 빨간빛은 반사한다. 이렇게되면 빛에 대해 일관성있는 연구를 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비해 검은 물체는 특별한 빛의 파장을 내보내거나 흡수하지 않고 온도에 따라서 모든 종류의 빛을 흡수하고 빛을 방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학자들은 흑체(검은 물체)로부터 방출되는 빛의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1859년 까지 키르히호프가 ‘검은 물체(흑체)에서의 열복사를 항상 정확하게 측정했다. 물론 가능한 모든 파장에서가 아니라 단지 중간영역의 것만을 측정했다. 플랑크는 존경했던 키르히호프가 자신이 요구했던 일반적이며 완벽한 법칙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덕분에 복사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었다.

흑체로부터 방사되는 빛의 스펙트럼을 조사해보면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흑체방사 스펙트럼 그래프의 가로측은 빛의 파장을 나타내고(파장은 진동수의 역수에 비례한다), 세로축은 빛의 세기(밝기)를 나타낸다. 플랑크 바로 이전의 과학자들은 빛은 파동이라고 했다.

 

  파동의 에너지

그러면 파동의 에너지 크기는 어떻게 구분을 하는가? 파동의 에너지는 파장의 길이나 진동수와는 상관이 없다. 그것은 진폭과 관련이 있다. 나는 학창시절 일명 노가다로 불리는 일용직 막노동을 해본 경험이 있다. 막노동판에 가면 여러가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중에 오랫 동안 원양어선을 탄 나이 지긋한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수 백에서 수천 톤 급의 어선이 바다를 항해 할 때 파도의 파고가 3m라는 건 땅에서 산들바람 불듯이 흔한 일이라고 한다. 파도가 3미터면 배는 위아래로 5m를 움직인다고 한다. 좀 거칠다 싶으면 파도가 6미터나 된다. 그럼 배는 10미터정도 위아래로 움직인다.

파도는 최대 파고가 30m까지 될 수 있다. 30m까지는 아니더라도 배가 10m를 위아래로 요동친다고 해보자. 3층건물 높이로 배가 솟았다 곤두박질쳤다 하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힘이다. 그러나 컵에 물을 따라서 책상위에 놓고 책상을 두드리면 두드리는 강도에 따라 진동수가 큰 파동을 만들어 낼 것이다. 진동수가 크지만 물잔 안의 파동의 힘은 그리 크지 않다. 이처럼 파동의 에너지는 파장이나 진동수가 아니라 파도의 파고처럼 진폭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빛이 파동이라면 당연히 진동수나 파장에 상관없이 파장의 진폭에따라 에너지의 차이가 날 것이다. 그리고 용광로안의 빛은 여러가지 종류의 파가 있을 수 있다. 당시 물리학에따르면 오직 측정 가능한 현상과 관찰된 현상들에만 몰두했던 물리학자들을 ‘에너지론자(Energetiker)’라고 부른다. 이들은 현상학적으로 행동한다.

 이는 그들이 볼 수 있고 수량으로 나타낼 수 있는 거시적인 것, 즉 부피나 탄성 혹은 압력과 같이 눈에 보이는 것에 관심을 둔다. 이와 대립되는 사람들이 실험에서 얻을 수 있는 물질의 특성, 특히 온도, 열량, 무게, 색깔 등을 근본적인 표상들에서 기본원리에서부터 유추해 내고자 하는 ‘원자론자(Atomist)’들이다.

이들은 미시적인 것을 바라보거나 사물의 기본 구성요소를 관념적으로 더듬어 간다. 당시에는 모든 복사는 관통할 수 있는 (즉 연속적인)진동수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는 에너지론자들이 다수였다. 이들은 맥스웰의 에너지 등분배의 법칙에 따라 물질은 균등하게 에너지를 분배받고 어떤 에너지 값이든 갖을 수 있고 빛또한 어떤 에너지 값이든 갖을 수 있고 그에 따라 종류도 엄청나게 다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파장이 길면서 진폭이 큰 것, 파장이 짧으면서 진폭이 큰 것, 파장이 길면서 진폭이 작은 것, 파장이 짧으면서 진폭이 작은 것등등, 그러면 어떤 빛의 종류가 가장 수가 많아질까?

                           ▲그림1 
 

   자외선 파탄

 당시 물리학자들은 용광로의 면적에 한 계가 있으니 당연히 길이가 긴 파장이나 진폭이 큰 파보다는 파장이 짧고 진폭이 작은 파가 휠씬 더 많을 것이고 아주 파장이 짧고 진폭이 작은 파는 무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빛은 파장에 따라붉은 색에서 푸른 색, 그리고 보라색으로 변한 다음 눈에 보이지 않는 자외선이 된다. 생물체들도 덩치가 큰 다세포 생물보다는 미세한 박테리아의 수가 월등하게 많은 것처럼 말이다.

 

 레일리와 진스의 법칙


그래서 빛을 파동으로 생각하는 당시 물리학에 기초를 둔 ‘이론적’인 분포선은 그림1의 점선처럼 파장이 짧고 진폭은 작은 빛의 수가 용광로의 온도가 커짐에따라 무한히 존재하여 그 밝기도 무한히 커지다가 붉은 색에서 푸른 색, 그리고 보라색으로 변한 다음 눈에 보이지 않는 자외선이 된다. 이것은 이론상의 ‘자외선 파탄’이다.

그림1의 흑체방사 스펙트럼 그래프의 가로측은 빛의 파장을 나타내고(파장은 진동수의 역수에 비례한다), 세로축은 빛의 세기(밝기)를 나타낸다. 영국의 물리학자 레일리와 진스는 낮은 진동수 영역에서 복사를 연구했는데 에너지는 상승하는 진동수와 함께 무한히 상승한다고 예언했다. 하지만 이는 실제 관찰해보면 그림1의 실선과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그리하여 불합리하고 맞지 않았다.

                           ▲그림2 

  빈의 법칙

반면에 독일의 물리학자 빌헴름 빈은 1897년 명쾌하게 잘 표현된 복사법칙[빈의 변위법칙, 줄여서 빈의 법칙은 특정 온도에서 흑체로부터 방사된 열 에너지의 파장 분포가 필수적으로 다른 온도의 분포와 같은 모양을 가진다는 법칙이다. (그림2의 그래프 위에서 각 파장이 치환되거나 이동되지 않는 한) 다시 말해, 흑체에서 빠져나온 파장 가운데 에너지 밀도가 가장 큰 파장과 흑체의 온도가 반비례한다는 것을 말한다.]을 유도해냈다. 

                                     ▲그림3

  플랑크의 결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법칙에 대해 플랑크를 포함한 모든 동료가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빈의 경우는 레일리와 진스의 경우와 반대가 된다. 빈의 법칙은 높은 진동수(단파장)에 적용된다. 그러나 오토루머(otto Lumer)와 에른스트 프랑스하임(Ernst Pringsheim), 프리드리히 파셴(Friedrich paschen)은 큰 파장으로 연구를 확장하면서 빈의 균등법칙이 깨지는 것을 발견했다.

빈의 법칙은 높은 진동수(단파장)에 적용되지만 레일리와 진스가 옳게 측정한 낮은 진동수 부분에서는 적합하지 않았다. 낮은 진동수 영역에서는 오히려 그림3처럼 레일리와 진스의 관찰이 들어 맞고 있었다. 레일리와 진스와 빈의 법칙은 부분적으로만 정확히 들어 맞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면 플랑크는 이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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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명 (210.104.12.148)
2010-12-18 15:46:59
갈바람님,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갈바람님의 격려는 고맙게 받겠습니다.
현학적인 지식을 나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앞으로 전개하려는 글과 연계되기때문에 이에 대해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군요. 건강에 유의하시고 항상 여여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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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바람 (210.2.37.62)
2010-12-18 08:13:26
필자님의 해박한 지식에 정말 감탄합니다.
많은 독서량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렇게 많은 독서를 하실 줄이야...
더욱 많은 가르침을 주시기 바라며 건필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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