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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하라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대림절 제 3 주(20101212)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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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12월 09일 (목) 22:13:02
최종편집 : 2010년 12월 10일 (금) 11:31:25 [조회수 : 3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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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제 3 주(20101212)
성서일과/ 시 146:6-10; 사 35:1-6, 10; 약 5:7-10; 마 11:2-11
본문/ 야고보서 5:7-10
인내하라.

          (약 5:7-10)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 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대림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첫 주에는 깨어서 준비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둘째 주에는 회개함으로 준비하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인내로서 그 날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시는 말씀을 따라 준비하여 기쁨으로 주를 영접하는 자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흔히 참을 인(忍)자 세 개면 살인을 면한다는 말을 합니다.
성경은 어떻게 말합니까?
          (약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죄를 범하지 않게 하는 것에서 나아가 부족함이 없게 온전히 갖추게 하는 능력으로서의 인내를 말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어서 참는 것이 아니라 참음으로써 의를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롬 5:3-4)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인내는 하나님과 성도의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 없어서는 안 될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에게 인내와 연단이 필요하게 될까요?
성경은 증거합니다.
          (시 103:14)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우리의 체질이 부스러기 흙과 같기 때문입니다.
흙은 아무 그릇이라도 만들 수 있는 재료이기는 하지만, 흙 그대로 있어서는 그릇으로 쓸 수가 없습니다.
먼저 쓰임에 따라 모양을 만들고, 반드시 불에 구어야 도기나 자기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옹기라도 되어 비로소 쓸모 있는 그릇이 되는 법입니다.

환난은 흙에 가해지는 불과 같은 것입니다.
흙이 불길이 뜨겁다고 가마에서 뛰쳐나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릅니다.
그 뜨거움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특징입니다.
어찌 보면 흙만도 못한 것이 인간의 체질입니다.
그렇지만 나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고 견디면,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모든 영광과 복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인내로서 복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믿음의 선조들은 모두 인내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의 인내를 살펴보면 크게 하나님에 대한 것과 사람에 대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인내는 기다림이라는 말에 그 특징이 나타나 있고, 사람에 대한 인내는 참음이라는 말로 그 특징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오랜 기다림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그의 나이 75세 때였습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나서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라가 잉태할 무렵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나이 99세가 되던 해였습니다.
          (창 17: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그 세월 동안에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인내를 확인하시고 비로소 당신의 약속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다윗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이 그 즉시로 이스라엘의 임금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오랜 세월 사울의 시기를 피해 살아야 했습니다.
광야에 나가 살고, 심지어 적의 군대에 속해 싸워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광야 굴속에 숨어 살던 다윗이 도망자의 신세를 청산할 기회가 왔습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엔게디 광야를 찾아 헤매던 사울이 마침 다윗이 숨어있던 굴 앞에서 피곤을 못이긴 채 곯아 떨어졌던 것입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이거야 말로 하나님이 주신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라며 사울을 죽이자고 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것이 아니면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는데 다윗은 달랐습니다.
          (삼상 24: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 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나님이 택한 자니 끝을 내도 하나님이 내셔야 된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이 내가 도망자의 신세에서 벗어나게 하시기 전까지는 내가 기다리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비슷한 일이 또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고 3,000의 군사를 이끌고 십 광야로 왔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숨은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진을 친 사울의 군대가 약속이나 한 듯이 잠이 든 것입니다.
사울도 진 가운데서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다윗의 부하 아비새가 말했습니다.
          (삼상 26:8)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날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나로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기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생각은 여전했습니다.
          (삼상 26:9-10) 『[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10]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죽을 날이 이르거나 혹 전장에 들어 가서 망하리라』

하나님이 하시기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마침내 이스라엘 12부족의 추앙을 받는 통일 왕국의 임금이 되었습니다.
사울이 죽기까지 이루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본문은 말합니다.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 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께서 정하신 날이 이르기까지 길이 참아 승리하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또 사람에 대하여 참음으로 인내를 이루고 복을 받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처럼 뚜렷한 특징이나 큰 사건이 전해지지 않는 것이 이삭이지만 참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 26:20-22)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참고, 참고 또 참는 사람이 이삭이었습니다.
그는 그 연고로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물이 귀한 건조한 땅이었지만 이삭이 파는 우물에서는 여지없이 물이 나왔습니다.
참고 양보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신 복이었습니다.
          (창 26: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요셉은 어떻습니까?
그는 정욕을 참아 의를 이루는 자였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겼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육신이 갇히는 시련을 겪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 일로 바로 앞에 나아가는 길이 열렸고, 그로써 온 세상을 구원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미움도 참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며 자기 앞에 엎드린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창 50:19-21)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성경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의 하나입니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형들, 자기를 종으로 팔아 넘겼던 형들에 대한 원한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일로 두려워 떠는 형들을 안심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인내하는 중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눈으로 보았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본문은 말합니다.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 때문에 괴로운 적이 있습니까?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지는 못해도 참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일을 가지고는 더욱 그렇습니다.
참지 못하는 자는 일을 이루지 못하는 자가 됩니다.
더욱 두려운 것은 잘못을 범하고 화를 당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울이 그랬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어 2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습니다.
사울은 블레셋과 전쟁을 벌이기 위해 군사를 모아 길갈에 주둔하였습니다.
사울은 칠일 동안 거기서 기다리라는 사무엘의 말을 따라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와서 제사를 드리면 싸움을 시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해변의 모래알과 같이 많아서 이스라엘 군대는 싸워 보기도 전에 사기가 떨어져 굴과 수풀, 바위틈과 빈 무덤, 웅덩이 등 몸을 숨길만한 곳을 찾아 숨기에 바빴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요단강을 건너 멀리 길르앗 땅까지 도망을 치는 지경이었습니다.
7일째가 되자 그나마 남은 사람들마저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초조해 졌습니다.
사무엘이 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다가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망하게 생겼습니다.
그러나 제사 없이-하나님의 도움을 청하지 않고 싸움을 시작할 수도 없었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사울은 번제물을 가지고 오게 해서 자신이 직접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제사가 끝나갈 무렵 사무엘이 당도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이 제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고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며 화를 냈습니다.
사울이 말했습니다.
          (삼상 13:11-12) 『[11]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그 밀을 듣고 사무엘이 말했습니다.
          (삼상 13:13-14) 『[13] ...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 우셨을 것이어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여호와의 명이 무엇입니까?
법입니다.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사는 제사장이 드려야 한다는 것이 여호와께서 정하신 법이었습니다.
사울이 그 명을 거역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7일을 기다리라고 하신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사울은 칠일을 참긴 했지만 그 칠일을 온전히 채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왕위를 잃어버리는 불행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인내하지 못하여 일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내로써 덕을 세우고, 선을 이루며, 하늘의 복을 누리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어떻게 온전히 인내할 수 있습니까?

우선은 소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소망이 없는 자에게 참고 기다릴 것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말합니다.
          [7] ...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농부들이 밭을 갈아엎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농부는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소망을 가져야 농사를 짓게 되는데 그 소망이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죽이고 스스로 죽는 부모들도 가끔 있습니다.
전에는 자기는 이렇게 살아도 자식만큼은 그렇지 않으리라는 소망을 품고, 고생을 참는 일이 당연했는데 요즘은 그런 소망이 점점 희미해져 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소망이 흐려지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보이는 것에 소망을 두고 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땅에 속한 소망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롬 8:24-25)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고후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믿는 자의 소망은 하늘에 있습니다.
믿는 자의 소망은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믿는 자의 소망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잠간 있다가 사라질 안개 같은 것들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의 근원이신 주께 소망을 두어 참고 기다리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또 소망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빌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바울의 복음을 전해들은 자들이 모두가 다 온전한 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바울에게 전도를 받고도 바울을 대적하는 자가 있었고, 바울을 떠나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믿었습니다.
예수께서 시작하신 일이니 그가 끝까지 지속하실 것이라고....
그가 죽기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원인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의 인내는 길지 못합니다.
하늘에 소망을 둔 자도 믿음이 없으면 그 날이 오기까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믿음의 고백은 언제 들어도 감동적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큰 왕 앞에서 담대히 그들의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단 3:17-18) 『[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능히 건져 내시리라는 것은 소망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그대로 타 죽는다 할지라도- 절하지 않겠다는 것은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마음을 굳게 하라는 것은 굳센 믿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소망을 잃지 않고, 소망 중에 믿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주님 오셔서 판단하실 때에 곳간에 들여지리라는 소망을 지니고, 마침내 오시리라는 믿음으로 인내하는 자가 되어, 영광으로 오실 주를 영접하는 자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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