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 > 박성규 설교
회개하라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대림절 둘째 주(20101205)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0년 12월 02일 (목) 10:16:20
최종편집 : 2010년 12월 03일 (금) 00:03:51 [조회수 : 2896]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대림절 제 2 주(20101205)
성서일과/ 시 72:1-19; 사 11:1-10; 롬 15:4-13; 마 3:1-12
본문/ 마 3:1-12
회개하라

          (마 3:1-12)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3]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 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대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 주 우리는 깨어 예비하라는 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보고 느끼는 자가 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남이 안하는 일을 하게 되고, 그것이 곧 예비하는 일이 되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또 다른 각도에서 예비하는 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준비하는 자가 될 수 있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주시는 말씀대로 회개하여 주를 영접할 준비에 부족함이 없으시기를 기원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는 없습니다.”

메시야의 오심을 예비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유대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치며,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베풀어서 세례 요한이라 불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으로 예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광야에 머물며, 메뚜기와 석청으로 음식을 삼고, 약대 털옷을 입었으며, 허리에 가죽띠를 띠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연상케 하는 삶입니다.

그가 사는 곳이 바로 광야였습니다.
석청과 메뚜기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먹은 만나와 메추라기에 상응합니다.
약대 털옷과 가죽띠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길쌈을 하지 않았어도 그 옷이 해지지 않았다는 말과 연관됩니다.
세례 요한의 삶은 하늘이 주는 것으로 먹고 입는 삶 곧 광야의 삶을 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것으로 배 불리고, 세상에 속한 것으로 아름답게 하고자 하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는 남의 나라일 뿐입니다.
세상 것을 구하고, 세상에 쌓아 두려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는 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에서 실망하고, 버림받은 자에게 먼저 임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이 헛되다 깨닫는 자에게로 번져 갑니다.

세상에 속해 살았던 것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잊고 세상에 빠져 믿지 않는 자들과 다름없이 살았던 데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또 외침으로써 예비하는 자였습니다.
성경의 예언에 응하는 외침이었습니다.
          (사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그가 목 놓아 외친 것은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회개하는 자만이 하나님 나라를 영접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외침입니다.
그의 외침과 삶은 하나였습니다.
회개는 세상에 속한 삶에서 하나님께 속한 삶으로 변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세례 요한이 그의 삶으로 외치는 소리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 그에게 왔을 때 그가 그들을 나무란 이유도 그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삶의 모습을 바꿀 생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회개와 세례는 오로지 그들 자신의 의를 사람들에게 증거하기 위한 것일 뿐, 진정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변화가 없는 명목상의 회개와 세례입니다.
바울은 이를 일러 의문(儀文)에 속한 것으로 구원의 능력이 없다고 했습니다.
          (롬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고후 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 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세상에서 실망하고, 아파하셨습니까?
돌아 보아주는 사람이 없어, 외롭고 괴로우셨습니까?
세상에서 구하고, 사람에게서 바라지 마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먹이고 입히셨던 하나님께 구하고, 그에게서 위로와 평안을 찾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썩어질 세상의 것에 집착하는 일 그것이 죄요, 눈을 돌려 하늘을 보는 일, 그것이 곧 회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땅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회개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예비하는 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피흘리지 않으면 죄 사함이 없습니다.”

회개는 죄의 사함을 받기 위해 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드렸던 제사의 주된 목적도 죄 사함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히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죽지 않으면 죄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뜻입니다.
속죄의 제사는 짐승을 죽여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희생의 아픔이 없으면 사함의 은총도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는 아픔이 따르는 회개입니다.

옛 사람을 벗는 아픔이 있습니다.
          (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허물을 벗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매미나 나비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여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를 감싸고 있던 껍질 곧 허물을 벗어버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벌레에 지나지 않던 나비가 허물을 벗기 위해서는 고통이 있게 마련입니다.

김유신 장군은 삼국을 통일하는 일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입니다.
그가 젊었을 때 자주 술집을 드나들었습니다.
그 집에 아름다운 기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여자를 만나기 위해 거의 날마다 말을 타고 그곳을 찾았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의 꾸중을 듣고 다시는 그 집을 찾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만 말 위에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얼마를 갔을까? 말이 멈추어 서는 바람에 잠이 깬 김유신은 깜짝 놀랐습니다.
말이 멈춘 곳이 늘 다니던 그 술집 앞이었기 때문입니다.
김유신이 조느라고 고삐를 움켜지지 못하니까 말은 늘 가던 대로 김유신을 그 술집으로 태우고 갔던 것입니다.
김유신은 말에서 내려 그 말의 목을 칼로 베어 버렸습니다.

구습을 쫓는다는 말이 그런 것입니다.
김유신은 굳게 결심했지만 그가 타고 다니던 말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구습, 옛 습관, 늘 가던 길로 간 것입니다.
김유신은 아끼던 그 말을 죽임으로써 옛사람을 완전히 죽인 것입니다.

회개하는 것도 어렵지만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은 더욱 어려운 법입니다.
회개하는 것이 마음을 찟는 것이라면 새로운 삶으로 바꾸는 것은 살을 찢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 어떻게 하면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계명들을 지켰노라고 자신있게 말하면서, 내게 무엇이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마 19:21) 『...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그 사람이 어떻게 했습니까?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그는 썩어질 구습을 좇는 삶을 바꾸는 아픔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재물에 의지해 사는 것이 구습입니다.
주를 따라 사는 것이 새로 난 자의 삶입니다.
계명을 지켰노라고 자신있게 말할 만큼 사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는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삭개오는 달랐습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영접해 들이고, 그 앞에 종의 모습으로 서서 말했습니다.
          (눅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바뀌었습니다.
돈을 목표로 삼던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 것입니다.
모으고 쌓아 두던 삶에서 베풀고, 나누어주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눅 19: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향해 말합니다.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무엇입니까?
삶의 목적이 바뀌는 것입니다.
삶의 모습이 변하는 것입니다.

광야에 살며,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약대 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맨 요한의 모습은 회개의 열매가 어떤 것인가를 말하는 무언의 외침이었습니다.
광야에 사는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먹고, 하나님이 입혀 주시는 것으로 입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살고 그의 보호를 받으며 사는 삶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여 사는 자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이 결코 잊지 말아야 광야의 삶입니다.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여기고, 보이지 않은 것을 보는 듯이 여기는 일은 여간한 결단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보이는 것이 많을수록 더 어렵고 힘듭니다.
부자 청년이 근심하며 돌아간 까닭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는 재물 - 눈에 보이는 의지할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말씀의 숨겨진 뜻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보이는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십자가가 아니면 영생이 없습니다.”

그럼 어디까지 아파야 할까요?
마음을 찢고 살을 찢는 아픔만 견디면 새 사람이 될 까요?
아닙니다.
마음을 찢으면 마음이 변하고, 살을 찢으면 새 살이 돋아나겠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은 다시 변할 수 있고, 살은 다시 찢길 수 있습니다.
마음을 바꾸고, 생활을 바꾼다고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옛 사람을 죽이는 곳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말합니다.
          [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뒤에 오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단지 주님 오시는 길을 예비하기 위한 일에 불과한 일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우선 하실 일은 구별하시는 일입니다.
옛 사람으로 살고 있으면 그 모양이 어떠하든 쭉정이가 불에 타버리는 것처럼 멸망하게 됩니다.
새 사람으로 변해 있으면 알곡을 곡간에 들이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 들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 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고전 10: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욕심을 좇는 옛 사람과 예수를 좇는 새 사람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변하고, 삶의 모양이 달라졌다고 온전히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라도 회개하기 전의 사람, 옛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옛사람과 새사람이 한 몸에 있는 꼴입니다.

참다운 회개는 옛 사람을 죽이는 아픔을 딛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내가 죽어야 한다고 해서 죽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를 죽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무지 자신을 죽이는 아픔을 겪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흘리는 피는 결코 자기를 죽이는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못합니다.
단순히 죽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옛 사람을 죽이려 하는 것은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죽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것이 목적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도 거듭나는 길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그 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돌아 가셨습니다.
나를 대신하여 흘린 피입니다.
나를 대신하여 죽으심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가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길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에게 주님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 살아서 죽지 않고, 죽어도 다시 사는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회개함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습니다.
피 흘림이 없으면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죽음의 굴레를 벗고 다시 살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십자가의 도입니다.

회개했다고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픔을 이기며, 힘쓰고, 애써서 되는 일도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되는 일입니다.
믿는 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믿음으로만 된다고 회개할 필요가 없고, 아파할 필요가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회개는 믿음을 위한 준비입니다.
회개함이 없으면 믿음에 이르지 못합니다.

아픔은 거듭남을 위한 준비입니다.
스스로 쳐서 복종케 하는 아픔이 없으면 다시 살아남이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준비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믿는 일은 이 모든 것의 열매가 되는 일입니다.
주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요 11:25-26) 『[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만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회개하는 자만이 믿을 수 있습니다.
참으로 회개하는 자가 참으로 믿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나를 죽이고 나를 죽이고 내 안에 그리스도 예수가 사는 것입니다.
회개함으로 믿음에 이르는 자가 되어, 주님 영접하는 준비 하는 자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박성규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175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