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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준비하라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대림절 첫째 주(20101128)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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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11월 25일 (목) 21:21:55
최종편집 : 2010년 11월 26일 (금) 02:20:29 [조회수 : 3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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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첫째 주(20101128)
성서일과/ 시 122:1-9; 이사야 2:1-5; 로마서 13:11-14; 마태복음 24:36-44
본문/ 마태복음 24:36-44
깨어 준비하라

          (마 24:36-44)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 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오늘은 대림절 첫 주입니다.
대림이라 함은 주님의 강림-내려오심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교회력으로는 오늘이 일 년의 시작인데 기다림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는 마라나타- ‘주여 곧 오시옵소서’ 라는 말로 끝납니다.
이렇게 볼 때 그리스도인은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다림으로 시작해서 기다림으로 끝나는 것이 성도들의 일생입니다.
교회는 이 기다림을 2,000년 동안 한결같이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주님이 처음 유대 땅에 오실 때, 유대인들은 400년이 넘도록 자기들을 구원할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예수님이 오셨으나 그들은 그가 메시야이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요 1:9-11)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된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오실 그리스도 예수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님 처음 오실 때의 유대인들과 같은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다림의 세월이 2,000 년입니다.
그렇게 기다렸는데 막상 주님이 오심을 알지 못하고 영접하지 못하는 위험입니다.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밭에 있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합니다.
맷돌을 가는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맷돌 가는 사람은 둘이 같은 손잡이를 잡고 맷돌을 돌립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데려가고, 저런 일을 하는 사람은 데려가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는 두 사람의 길이 서로 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데려감을 당하는 자도 그리스도인이고, 버려둠을 당하는 자도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다 그리스도인이냐?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다워야 그리스도인이지라고 바꿀 수 있는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은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잘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으라고....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 게 하였으리라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거듭해서 말씀하십니다.
          [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날에 잠들어 있는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날에 버려둠을 당하는 자가 되지 마시기를 기원합니다.
깨어 준비하는 자가 되어 그날에 기쁨으로 주를 영접하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렇다면 깨어 있다고 함은 어떤 것입니까?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글자 그대로 잠들지 않고, 깨어 있다는 뜻입니다.

잠은 흔히 어두움 또는 죽음과 유비되는 말입니다.
어두움 속에서는 잘 볼 수가 없습니다.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습니다.
깨어 있으라고 하는 것은 보는 자가 되라, 느끼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악하다는 말과 둔하다는 말 사이에는 통하는 길이 있습니다.
세상이 점점 악해진다고 하는데, 이는 세상이 점점 더 둔(鈍)해진다는 말과 같습니다.
선한 양심이 무디어져서, 사소한 악은 악으로 느껴지지가 않고, 큰 악이라 해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 둔해지는 것입니다.

본시 악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동반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고 나무 아래 숨었을 때에 느낀 것이 바로 부끄러움과 두려움입니다.
두려워서 나무 그늘을 찾아 숨었고, 부끄러워서 나뭇잎으로 가렸습니다.

음란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악이고, 폭력은 두려움을 알게 하는 악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타나는 음란과 폭력의 모습은 그 시대가 얼마나 악한가를 드러내 주는 바로미터가 됩니다.
아브라함에게 왔던 천사들이 롯의 집을 찾아 머물 때의 모습입니다.
          (창 19:4-9) 『[4] 그들의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6]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7]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치 말라 [8]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컨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말라 [9] 그들이 가로되 너는 물러나라 또 가로되 이놈이 들어와서 우거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나아와서 그 문을 깨치려 하는지라』

남녀를 가리지 않고 떼로 몰려들어 부끄러운 짓을 행하겠다고 합니다.
말리는 롯에게 더욱 큰 해를 가하겠다고 하며, 문을 부수려고 합니다.
집단적이고 광적인 음란함과 폭력성이 멸망으로 끝난 소돔의 악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음란은 부끄러움이 없는 곳에까지 이르렀고, 폭력은 무서울 것이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웬만큼 벗어서는 부끄러울 게 없고, 피 몇 방울 튀는 것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음란한 자, 폭력을 행사하는 자만이 그런 것이 아니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음란하고, 더욱 더 포학해져 있습니다.
함께 둔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11:16-17) 『[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무슨 말씀입니까?
너무 둔해져서 기쁨을 기쁨으로, 슬픔을 슬픔으로 느끼지 못하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요한이 예수님이 오실 때의 사정을 이렇게 말합니다.
          (요 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어두울수록 별은 더 빛나는 법인데, 어두움 가운데 빛이 들어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잠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깨어있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남보다 앞서 나간다는 뜻입니다.

남보다 앞서 나가는 자는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때로 어리석다, 미련하다, 괜한 소요를 일으킨다고 손가락질도 받게 됩니다.
본문은 노아의 때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은 일상적인 일입니다.
그런 일들이 잘못된 일이라고 나무라는 것이 아닙니다.
노아라고 먹고, 마시고, 장가드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노아는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일을 한 사람입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노아가 하는 일 - 산 위에 방주를 짓는 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제자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 시간까지 제자들의 생각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같은 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가까운 장래에 대해 미리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죽어야 하는 것과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그리하시면 안 된다고 간곡히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그리 말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몹시 화를 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마 16:23) 『...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 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초대교회 시절에는 주 예수를 믿는 그 자체가 남보다 앞서가는 일이었습니다.
처음 그리스도인들이 모질게 박해를 받은 이유는 세상이 보기에 믿는 자들이 악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세상보다 앞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쓸데없는 짓을 해서 세상을 소요케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믿는 것만으로는 핍박과 훼방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은 핍박을 받고 훼방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깨어있는 자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앞서 행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주를 위해 충성하는 자, 오직 주만 바라보는 자들이 훼방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할 때에 그렇게 됩니다.
훼방하는 자들의 말은 한결같습니다. - 쓸 데 없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남이 하지 않는 일, 산 위에 배를 짓는 쓸 데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일을 한 것은 홍수가 있을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히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참 믿음으로 사는 자는 남들이 쓸데없다고 하는 일, 남들이 어리석다고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는 일들은 정말 쓸모없는 일이 아닙니다.
진짜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아 그렇게 보일 따름입니다.
노아의 배가 쓸 데가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비가 오기 시작하자, 그것도 쉴 사이도 없이 오자, 오직 노아의 방주만이 쓸 모가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그런 것입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믿는 자, 믿음으로 사는 자, 깨어 앞서 나가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깨어있는 자는 곧 준비하는 자입니다.

잠들지 않고 깨어서, 보고, 느끼고, 남보다 앞서서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깨어 있는 것이 곧 준비함입니다.
재림하시는 주를 영접할 수 있는 자는 잠자면서 기다리는 자가 아니라 깨어서 준비하는 자들입니다.
          [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도둑을 지키는 자가 잠이 들면 안 됩니다.
잠이 들었다가도 깨어 다시 살펴봐야 됩니다.
지금까지 안 왔으니 앞으로도 안 오리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 게 하였으리라

문제는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다림은 기약이 없는 기다림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아무 때나 불쑥 강림하시지는 않습니다.
주의 날이 가까우면 징조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일하시기 전에 반드시 징조를 보이시는 분입니다.
          (삼상 10:7)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왕하 20:9) 『이사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서 왕에게 한 징조가 임하리이다

주님이 처음 오실 때에도 징조가 있었습니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도 징조가 있을 것입니다.
          (마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눅 21:11)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행 2:19-20)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깨어 있는 자만이 이 징조를 분간할 수가 있습니다.
잠든 자, 죽은 자는 아무리 큰 징조가 나타나도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어리석은 다섯 처녀에 관한 비유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이나 어리석은 처녀들이나 등잔을 준비한 것은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처녀들은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기름이 없었기에 등잔은 불을 밝힐 수가 없는 물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불이 없는 어두움은 사람으로 잠을 자게 만듭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불을 밝힐 수가 없었기에 잠이 들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기름을 함께 준비했습니다.
등잔에 불을 밝힐 수 있었고, 잠들지 않고 깨어 있을 수 있었으며, 마침내 신랑이 당도했을 때 그들은 밝음 속에서 영접할 수가 있었습니다.

기름을 준비하는 것은 주님이 오시는 그 시간에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주님이 오시기까지 잠들지 않고 깨어있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입니다.

기름 없는 등잔으로 밤을 맞이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지금이 어떤 때입니까?
어두움이 점점 깊어지는 때,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알 수 있는 때입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롬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잠들지 말고, 깨어 준비하는 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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