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도 못 자고 강행한 이틀간의 여행 탓인지, 모닝콜은 그야말로 천상에서 나는 나팔소리인 듯. 비몽사몽간에 전화기를 찾아 들었다. 전화기 저쪽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이국말로 뭐라고 한다. 아? 모닝콜이구나. 한참 후에 그게 모닝콜이라 깨단했다. 그만큼 감면(甘眠)을 한 것이다. ‘시장이 반찬’이듯 ‘날밤이 단잠’이었다.

진둥한둥 일어나 씻고 아침을 먹으러 식당을 향했다. 피곤한 기색도 없이 우리 일행 모두가 ‘굿모닝’인 듯. 그래서 여행이란 게 우리에게 활력을 충전하는 게로구나 생각했다. 낯선 메뉴의 아침이지만 그래도 우리 부부는 워낙에 글로벌한지라 일행 중 그 누가 내놓는 고추장에도 시쁜 반응을 보이며 넉넉한 아침식사를 끝냈다.

짐 싸들고 우리의 애마, 벤츠버스에 몸을 실은 시간은 정확히 8시 5분전, 그리고 정각에 아다나를 출발, 다소(Tarsus)로 향했다. 아다나에서 40km 떨어진 곳에 다소가 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일행의 시간관념은 정말 칼이었다. 가이드조차 감복한 그 시간관념, 역시 목사님들이란 생각을 했다. 또 이미 이런 그룹여행에 익숙한 이들이라 시간은 정확했다.
 

▲ 바울의 고향 생가터로 추정되는 곳이 다소에 잘 보존되어 있다.

이럴 때 고문관 한 사람만 있어도 그 그룹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는 그런 사람이 없어 참으로 행복한 여행이었다. 이미 여러 사람을 상대로 하는 목사내외들이다 보니 한 사람의 굼뜸이 모든 일행의 불행으로 이어진다는 걸 너무도 잘 안 탓에, 우린 13일 내내 일사불란이었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행복할 수 있었다.


다소에 도착하자마자 우리의 애마가 그 어딘가에 주차공간을 마련하고 선다. 내려가 보니 우리를 반기는 추레한, 헐은, 별로 관리되지 않는 것 같은, 비둘기 똥이 여기저기 묻은, 허물어진 구석을 그대로 까 보이는, 들어가는 양쪽으로 우리나라의 꽃 무궁화가 꽃을 숫접게 내밀고 펴 있는, 작은 문 하나가 우릴 반긴다. 이름 하여 ‘클레오파트라의 문’이다.

▲ 바울의 생가터 입구의 보습이다.

이집트 톨레미 왕조의 마지막 여왕이었던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와 열애를 나누던 것을 기념하여 만든 문이라고 한다. 다소는 바울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클레오파트라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안토니우스와의 키스의 추억이 서린 장소이기도 했던 것이다.

클레오파트라는 온갖 장신구로 호화롭게 장식하고 제2의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처럼 꾸미고 안토니우스를 유혹했다고 한다. 줄리어스 시저를 유혹하여 자신의 보호막을 친 그녀는 그가 암살당하자 안토니우스에게 접근했던 것이다. 그가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다소가 지금처럼 그냥 뭍이 아니고 그때는 해변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키드리스 강을 따라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바울과 관련하여 다소에는 바울의 생가 터와 우물, 그리고 기념교회가 있다. 이미 성경에서 바울이 자신이 길리기아 다소 사람이라고 말해 우리는 다소를 바울의 고향으로 알고 있다.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행21:39) 또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있는 자라”(행22:3)고 바울이 직접 말한 대목이 있다.

▲ 바울의 생가터에 있는 우물

외에도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행9:11), 그리고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행9:30), 또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행11:25) 등 총 5회에 걸쳐 성경에 나오는 지명이다.

바울 당시는 길리기아 지방의 수도가 다소였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유적들로 미루어 볼 때 다소는 5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성읍으로 학문이 발달하여 ‘소아시아의 아덴’이라 불리기도 했다. 동방의 사상과 종교, 서방의 문화와 학문이 교류했던 곳이다. 바울도 말했듯, 다소는 소읍이 아닌 도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바울 생가 주변에는 지나는 사람조차 거의 없어 한산했다.

다소는 지금의 터키 남쪽, 소아시아의 남동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지중해로부터 약 19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지금은 육지지만 예전에는 해변이었다고 한다. B.C. 400년경에는 페르시아(바사) 제국에서 점령했다가 그 뒤에 알렉산더 대왕이 지배했다. 알렉산더 이후에는 시리아의 수중에 들어갔으며, B.C. 200년경에 유대인들이 여기에 와서 살게 되었고 그 중에는 사도 바울의 조상이 있었다고 추정한다.

▲ 바울의 고향 다소 생가터 앞의 가판대

B.C. 104년에는 로마가 다소를 점령했고, B.C. 65년에 폼페이우스가 지중해 동쪽 끝의 모든 민족들을 정복하면서 로마의 관할이 되었다. B.C. 41년에는 로마의 장군 안토니우스가 조공을 받기 위해 다소에 와 있었는데, 이 때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를 만나러 왔던 것이다. A.D. 641년에 아랍이 침입하여 이 도시를 파괴했고, 1086년에는 셀주크 투르크인들이 점령하여 1097년 십자군들이 여기에 들어올 때까지 이 도시를 지배했다.

다소는 16C에 오스만 투르크인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금은 터키의 한 소읍 ‘테르수수’라고 불린다. 인구는 8만 정도이고 특산물은 직조와 천막 제조업이다. 다소는 이집트와 시리아의 중앙 소아시아 사이에 무역을 하는 중요한 상업 지역이며 옥수수, 면, 양모, 가죽 등의 수출로 유명하다. 사도 바울 시대에는 다소가 학문도시로써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를 능가할 정도였다.

오스만 터키 시절의 가옥들만 그 시절의 번영을 말해주듯 잘 보존되어 있고, 그저 눈요기로만 더듬을 수 있는 바울의 초상을 비롯한 그와 관련된 엽서들만 가판대에서 환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바울 당시의 것이라고 추정되는 생가 터는 발굴된 모습으로 유리판을 덮고 저만치 아래 누워있고, 그가 살아있을 때 마셨을 법한 우물은 지금도 생수를 올려 순례객의 목을 축여준다.

도르래를 돌려 우리 일행 중 한 목사님이 물을 길었다. 시원한 생수, 아직도 먹을 수 있는 물이 그곳에서 나온다는 게 마냥 신기했다. 먹어도 된다는 가이드의 말, 관리인의 제스처, 그러나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는 것은 우리가 의심이 많아서일까. 아마도 ‘물 갈아먹으면 탈이 난다’는 격언을 철석같이 믿어서일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일행 중에는 벌써 배탈이 난 사람이 그 수를 더해가기에.

그냥 시원한 생수에 손을 담가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바울이 전해 주는(?) 시원한 생수로 손을 씻고 우리의 애마는 다음 행선지 카파도키아를 향하여 움직였다.(계속)

김학현/ 연서교회 목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