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
교회, 양성평등한가 ?2010 감리교 양성평등 심포지엄
방선진  |  sunjin-96@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0년 11월 11일 (목) 01:17:13
최종편집 : 2010년 11월 11일 (목) 11:40:29 [조회수 : 6095]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기독교대한감리회 선교국에서 주최하고 감리교여성연대가 주관한 감리교 양성평등 심포지엄이 지난 11월 8일(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감리회본부 16층 강당에서 열렸다. 

총 80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는 감리교여성연대 상임대표인 하영숙 대표의 사회와 감리교여장로회전국연합회의 김수자 회장의 기도, 그레이스 중창단(감리교목회자부인연합회)의 특송으로 시작되었다. 이날 주제강연을 맡은 김정숙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는 '보라(자매)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는 주제로, 선하고 아름다운 양성평등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교회 내 성차별 극복을 주장했고, 그동안 여성들이 구조와 제도 개혁을 위해 싸워온 역사를 설명했다.

그는 양성평등 공동체를 실현하는 감리교가 되기 위해 교단총회 산하 전담기구로서 양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할 것과, 각 위원회와 지방연합회, 개교회의 여성위원 30% 의무화, 장로선출시 여성장로 30% 선출 그리고 부목사 2인 이상일 경우 1인 이상 여성부목사 청빙 및 부부목회 인정과 제도적 연구 등을 제안했다. 또한 양성평등교육에 대한 제안으로서 신학교 내 여성교수 비율을 높일 것과 여신학생과 교역자의 연계 등 여성지도력 활성화의 교육 방안을 내놓았다. 

2011년 신임총무 내정자인 김영주 목사와 신복현 목사(감리교선교국)는 축사를 통해 양성평등은 중요한 주제라고 언급하며, 특히 세계 감리교회 중 여성목사안수가 제일 먼저 시작된 한국에서 지금은 세계무대나 타교단에 비해 양성평등 지수가 낮고, 여성위원회 등의 개설이 미진한 점을 들면서, 이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이번 양성평등세미나를 통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독교장로회 의 유근숙 목사(여신도회 전국연합회 총무, 기장 양성평등위원회 위원)는 기장 총회 특별조직으로 활성화 되고 있는 양성평등위원회 사례소개로 힘주는 말을 대신했고, 김종훈 감독(서울연회)의 축도로 1부 행사를 마무리했다.

감리교여성연대 소속단체의 사례 발제로 이어진 2부는 김신아 기획실장(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의 사회로, 이혜심 총무(감리교전국여교역자회), 백삼현 총무(감리교여선교회전국연합회 서울연회), 손명희 부회장(감리교목회자부인연합회), 최임선 부회장(감신여동문회) 이은영 상임총무(감리교청년회전국연합회), 김영숙총무(감리교여장로회전국연합회) 순으로 진행됐다.

이혜심 총무는 감리교회 목회자들 안에서 진급과정에서의 차별적 질문 사례와 연회별 여성 부목사현황을 사례로 들면서, 교단 내 정식으로 양성평등위원회를 신설할 것과 3개 신학대학 안에 양성평등 관련 교과목을 신설하고, 여성부교역자 청빙권유 및 여전도사를 위한 제도를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백삼현 총무는 교회내의 여성성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장로선출에 있어서 자격여건조차 안 되는 남성장로 후보에게 미덕이라는 이유로 양보하는 여성스스로의 자성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당당한 교회여성이 될 수 있도록 교육받고,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지 말고, 여성들이 서로 시기와 질투하기 보다는 세워줄 수 있는 여선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평등한 리더십, 행복한 사역자'라는 주제로 발제한 손명희 부회장은 교회 안에 목회자 부인의 자리는 다 할 수 있는 것 같으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현실을 꼬집고, 한국감리교회는 내조자의 정형화된 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목회자부인의 리더십을 위한 제도적, 현실적 지원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동문회의 불평등 사례에서의 최임선 부회장은 집단이 평등해 지려면 조직 안에서 양성이 얼마나 평등하게 참여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판단된다고 말하며, 총동문회 임원구조에서 여동문회의 위치를 예를 들어, 현행회칙 안에서 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있으나 여전히 동문회의 실질적 운영이나 정책을 나누는 자리에서는 제외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는 3개신학동문회도 다르지 않으며, 양성평등한 동문회 운영을 위해 여동문회를 독립기관으로 인정하여 공동회장으로 세우고, 신학대학교의 당연직 이사에 포함시킬 것과 총동문회 임원 안에 여동문 비율을 30% 이상으로 할 것을 제안했다. 청년의 양성평등사례에 대해 발제한 이은영 상임총무는 여성과 청년이 교회에서 대부분의 봉사를 담당하면서도 정책건의조차 할 수 없는 교회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CCA나 WCC의 총대는 회칙상의 여성50%, 청년 25%를 지키고 있는 데 반해 한국감리교회는 행정총회 청년비율 0.001%, 입법총회의 낮은 발언권을 비교하면서 자율적인 시대의 청년들에게 발언할 수 있는 구조를 닫아 놓은 교회현실에, 청년들은 더 이상 교회와 교단에도 관심을 가질 수 없다고 꼬집고, 청년정책이 행사에 그치지 않고 10년을 내다보며, 책임과 의무가 아닌 선택과 행복에 의해 만들어가는 교회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발제한 김영숙 총무는 여장로 1500명의 시대에 양보의 미덕을 넘어 더불어 평등하게 참여하기 위해 여성 스스로 알고, 배우고, 나누고, 서로 지지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제에 이어, 참가자 중 강민구 권사(감신목신대원)는 사례 발표를 듣고 한국감리교회 미래에 위기감을 느낀다면서, 교회들에게 양성평등의 신학적 근거와 방향을 제시해 준다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남기평 부총무(감리교청년회전국연합회)는 현재만이 아니라 10년을 내다보고 교회여성지도력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여성연합회총무 최소영 목사는 감리교여성연대에 양성평등한 목회를 연구하는 모임을 만들어 줄 것을 제안하면서, 더불어 다음세대에 대한 고민들을 본격적으로 해야 할 것을 당부했다.

3시간 30분 에 걸쳐 진행된 심포지엄은 양성평등위원회가 총회 특별기구로서 조직될 수 있도록 발제자들의 연구를 중심으로 헌의할 것을 제안했고, 하영숙 상임대표는 이를 받아 감리교여성연대 운영위원회를 통해 진행할 것을 약속했다. 마치는 기도를 위해 나온 김순영 원장(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은 30년 전의 고민들이 각 단체들로 확산된 것에 감격하면서 이러한 이야기들이 불평이 아닌 감리교회를 살려내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방선진 목사(감리교여성신문 편집부장)

   
   
   
   
   
   
   
   
   

 

<자료>

교회제도, 이대로는 안된다.

발제 : 전국여교역자회 총무 이혜심

올 해 성도수가 몇백명 출석하는 교회에서 여성 목사가 담임자로 취임한 일이 있었습니다. 본 발제자가 얼마 전에 그 교회에서 설교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남성목사가 목회하던 곳에 올 2월에 여성 목사가 취임해서 취임하자 말자 특별 예배 시간에 남성 목사도 초청했지만, 주로 여성 목사들을 강사로 초빙해서 세웠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교회 중진들 사이에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담임목사님이 여성이니 여성 목사를 강사로 너무 많이 세운다.”라는 볼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설교시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에 감리교회가 들어온 지 125년이 지났습니다. 125년동안 한국교회의 강대상은 남성들이 독점해왔습니다. 남성 목사들이 독점해 오는 동안 한번도 ‘우리는 왜 반쪽인 남성 목사들이 해석하는 말씀만을 들어야 하나요?’라는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온전하니 너희도 온전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125년동안을 반쪽만인 남성 목사들이 하는 설교만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온전하지 못합니다. 교회가 온전하려면 앞으로 125년동안을 여성 목사들로부터만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해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성 목사가 강사로 서는 것이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교회에서 남성에게서나 여성에게서 불편한 목소리가 나옵니다. 그러나 125년동안 남성들만 강의해온 한국교회에서 한번도 남성들에게서만 설교를 듣는다는 불편함을 드러낸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의식이 얼마나 온전하지 않은 지를 알 수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감리교단 만이 아니라, 모든 교단이 부패했고, 타락했음을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목회자이든 평신도이든 동의합니다. 그 원인이 125년동안 남성들이 강대상을 독점해온 결과일 것입니다. 교회가 양성불평등한 집단인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사례들을 일일이 들려고 하면 하루종일 해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오늘 발제자는 여교역자회의 대표로 나왔으니, 감리교단의 목회자에 대한 불평등한 아주 간단한 실례만을 들면서, 대안 몇가지만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010년 감리교단 연회에 등록된 전체 목회자에 대비하여 여성 목회자의 등록인원을 비교 분석해봅시다. 2010년 연회주소록에 등록된 전체 목회자(미주나 외국에 거주하는 목회자 제외)수가 총 9,846명입니다. 그 중 여성 목회자는 567명으로 5.8%입니다. 선교사나 유학, 미파 등의 이유로 목회를 하지 않는 자를 뺀 목회자 총 수가 8,488명이고, 여성 목회자는 467명입니다. 여성 목회자는 총 목회자 대비 5.5%입니다. 한국교회의 신도수가 여성이 남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지금은 교회가 돈이 많아지면서 남성이 늘어서 약 70~80%입니다만, 이전까지는 80~90%가 여성이었습니다. 그동안 교회가 얼마나 철저하게 여성을 무시해 왔으며 여성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지 않은 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21C를 살고 있는 2010년 서울연회와 서울남연회에서 담임 목사를 포함하여 5명의 목회자가 있는 교회를 큰 교회라고 상정하고 5명 이상의 목회자가 있는 교회에서 여성 목회자가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해보았습니다.

<서울연회>

   



<서울남연회>

   

 


표에서 보듯이 서울연회와 서울남연회에서 목회자가 5명이상인 교회만을 표본으로 해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총 목회자 수가 261명에 여성 목회자는 26명입니다. 여성 목회자 수가 총 목회자 수에 10%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수련목회자까지를 포함한 비율입니다. 목사 안수를 받은 목사만을 볼 경우 총 목사 수가 175명이고 여성 목사는 5명입니다. 여성 목사의 비율이 2.9%입니다. 서울연회 경우, 수련목회자를 뺀 목사만을 볼 경우에 목사 94명에 여성 목사가 1명입니다. 그리고 목회자 수가 12명인 대형교회에 여성 목회자가 한 명도 없는 교회가 있습니다. 서울남연회 경우, 목회자 수가 41명인 대형교회에 여성 목회자는 4명인데, 모두 수련목회자입니다. 목사 27명에 여성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현재 21C를 살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주소입니다. 교회가 철저하게 여성을 소외시키고 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를 부흥시키고 살찌게 한 것은 여성 신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여성을 부려먹기만 하고 한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보다 여성의 노동력과 헌신을 착취한 단체가 없을 것입니다. 교회 내에서 여성은 남성목회자에게 철저하게 종속되어 노예에 가까운 봉사만을 요구당했고, 리더적인 역할에서는 철저하게 소외당했습니다. 발제자가 심하게 말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제 말보다 더 심각합니다. 여성이 오랫동안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했어도 부수적인 역할만 주어졌습니다. 기획을 하고 사업을 이끌어가고 아이디어를 창출해야 하는 역할에서는 철저하게 외면당했습니다. 여성에게는 독창적인 생각을 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것 자체가 원천봉쇄당했습니다. 그나마 소수의 여성 목사도 교회가 양산했다기보다는 사회가 양산했다고 보면 맞습니다. 사회가 양성평등을 부르짖고 현실화하자, 교회가 어쩔 수 없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서 목사안수제도를 인정한 것이라고 보면 맞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오랜기간 여성 선배들이 제도권을 향해 끊임없이 싸우자 선심쓰듯이 인정한 것입니다. 아직도 모 교단들은 여성 목사안수제도를 여러 가지 이유로 특히 성경말씀을 이유로 거부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바리새인들과 도대체 무엇이 다를까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세대를 일컬어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했는데 지금의 한국교회가 그러합니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한국교회에서 여성이 목사안수를 받기까지 실정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여성이 목사가 되기까지 겪어야 하는 수모는 남성들은 잘 모릅니다. 한 여성이 목사가 되려고 하기까지는 어려운 결단을 합니다. 이 결단은 남성들도 마찬가지로 힘든 일이겠지만, 여성은 더욱 힘든 일입니다. 남성은 출발이 사람으로 시작하지만, 시몬느 보봐르가 말했듯이 여성은 사람으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는 과정을 먼저 거쳐서 합니다. 교단에서나 목회자의 의식에서 여성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성이 목사가 되려면 먼저 사람이 되는 의식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여성은 남성과 같은 환경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여성에게 절대적으로 취약한 환경-남존여비사상, 가부장제 사회구조 및 교회구조, 같은 학교를 졸업했고, 우수하게 공부를 잘 했어도 남성은 선배들이 끌어주지만, 여성을 끌어주는 선배는 없습니다. 여성 선배는 거의 전무에 가깝기 때문에 끌어줄 선배가 없고 여성 선배 자체가 열악한 현실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기 때문에 후배를 끌어줄 역량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적 환경을 감안하고 목회하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목사안수를 받기까지 거치는 과정은 일반사회에서는 성희롱, 성추행에 가까운 수모를 겪습니다. 자격심사, 과정심사를 거치면서 온갖 모욕을 당합니다. 자격심사나 과정심사위원들이 10여명으로 이루어졌지만, 여성 목사가 심사위원으로 있는 연회는 몇 안됩니다. 10여명의 남성 목사들이 앉아서 비혼인 여성에게는 “결혼이나 하지!” “결혼을 할 거야, 안할거야?” 그래서 한다고 하면 “어떤 놈팽이를 만나서 목회를 망칠 지 모르는데 왜 결혼을 하려는 거냐?”라는 등등의 도저히 목회자 입에서 나올 수 없는 수준이하의 질문을 심사라고 받습니다. 누가 누구를 심사해야하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한 결혼한 여성은 결혼했다는 이유로 무시합니다. 부부가 목회자인 경우는 부인 목사가 정체성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아직도 한국사회는 가정일은 여성의 몫입니다. 여성 목회자 자신에게도 ‘나는 목사인가? 사모인가? ’라는 고민을 가집니다.

모 연회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출산한 한 여성 목사는 출산한지 1주일도 되지 않아 과정시험을 봐야했습니다. 출산후 몸의 부기가 빠지지도 않은 채로 온 몸을 칭칭 동여메고 시험장에 참석해서 시험을 봐야했습니다. 이런 비인격적인 현장이 21C 한국교회라는 현장입니다. 교회가 생명을 살리는 생명공동체입니까? 생명을 거론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요?

한 여성 목사는 동기들 모임에서 이런 소리를 들어야했습니다. “가뜩이나 자리가 없는데 너희들까지 하냐?” 여기서 너희들이란 여성 목사를 통칭하는 말입니다. 남자는 없는 자리도 만들어서 해야 하지만, 여자에게는 목회가 부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리가 부족할 때 여성이 목회를 하는 것은 남성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남성에게는 하나님의 소명이 가능하지만, 하나님은 여성에게 소명을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같습니다. 아니면 남성 목사들이 소명을 받지 않고 하든지요.
또한 교회내 전도사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여성은 전도사로서는 환영하지만, 목사일 경우에 기존 교회가 꺼립니다. 그래서 여성 목사는 적지만, 여성 전도사는 많습니다. 평생을 전도사로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성은 오랫동안 남성들에 의해서 부수적인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감사할 일이라고 교육받아왔고, 그런 구조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정규 신학대학을 졸업하고도 평생 전도사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은 보수로 많은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는 것이 여자 전도사입니다. 교회는 이런 전도사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철저하게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제도적으로 어떤 것도 보장하거나 배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내에서 사회적인 수준의 인권을 운운하는 것은 철없는 소리입니다. 전도사들의 인권사각지대가 교회입니다. 전도사는 연회원도 아닙니다. 담임자가 언제든지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합니다.

기타 교회내의 양성불평등한 사례등은 모두 생략하겠습니다. 교회안에서 기획위원회나 임원회 구성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 등, 이런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 너무도 많은 불평등한 사례들도 모두 생략하겠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살 길이 양성평등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그러기에 교회를 위해서라도 몇가지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첫째, 교단내에 정식으로 양성평등위원회를 국 차원에서 신설해야 합니다.
양성평등위원회에서 철저하게 불평등한 교회 구조와 제도등을 진단하고 평가해서 향후의 정책을 교단내의 모든 정책에 반영할 수있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3개 신학대학교 안에 필수 과목으로 양성평등에 대한 교과목을 신설하여 가르치도록 제안합니다. 기독교 장로회에서는 교회내 양성평등을 위해서 신학교에서 양성평등과목을 필수선택 과목으로 학생들에게 이수하게 합니다. 신학교에서부터 신학생들이 양성평등한 의식을 가지고 현장에 나와야 합니다.

세째, 큰 교회에서 담임자를 포함하여 3명이상의 목회자가 있는 경우는 3명당 1명의 여성 목사를 두도록 제도화해줄 것을 제안합니다. 3명 이상의 목회자가 있는 교회일 경우에 성도가 최소한 200명이상이 된다고 봅니다. 그럴 경우 여성 신도를 70%만해도 140명입니다. 적어도 140명에 대한 배려로 여성 목사 1인은 있어야 합니다.

네 번째, 여자 전도사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인권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교단차원에서 마련해야 합니다. 여성이 교회를 담임을 하는 것보다 교회내에서 전도사로서 기쁨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평생을 전도사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교회를 사랑하며 일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러한 일은 교회가 전문성을 갖추는 데도 효과적입니다.

양성평등은 교회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회개하지 않으면 더 이상 세상을 구원할 능력을 상실하게 되어, 글쎄요... 하나님이 촛대를 옮기시지 않을까요?



낡은 구습에서 벗어나 새롭게 거듭나는 당당한 여성

여선교회 총무 백삼현

예수님을 열 달 동안 몸속에 품은 사람은 여성이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을 때 끝까지 함께 한 사람도 여성이었고 예수님이 삼일 만에 부활하실 때 제일 먼저 달려간 사람도 여성이었다. 한국 교회의 성장과 성숙에 커다란 역할을 감당해 오며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도 여성들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유교적인 뿌리 깊은 남성중심 문화가 여성을 차별하고 폄하하고 있다. 기독교의 본질은 생명의 평등성과 존엄성을 온전히 인정하는 것이다.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것은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고귀한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로 존중하였던 예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양성적 평등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고자 한다. 남성과 여성 간에 본질적 차이나 인식론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남녀는 공통적 인간성을 가졌는데 남성 지배적 문화와 사회 제도에 의해서 여성들의 인간적 본성이 소외되고 위축되었다고 본다. 남녀를 두 개의 분리된 종류의 인간존재로 보지 않으며 인간이란 개념을 관계라는 특성에서 규정하고 있다. 양성성 사상은 그 말 자체에 이미 남성과 여성이 남성다운 측면과 여성다운 측면을 모두 소유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므로 이원론적이라고 지적된다. 류터은 양성성이라는 혼동된 개념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남성과 여성으로서 완전하고 동등한 인간성과 인격을 가지고 있음을 주장할 필요가 있다. 여성 신학자들은 오늘날 남녀가 격고 있는 고통과 억압과 지배는 타락의 흔적들이지 창조의 표지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성신학자들이 창조 질서라는 개념을 비판하는 이유는 이 개념이 남녀의 종속관계 혹은 불평등관계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을 마치 하나님의 본래적인 질서인양 규정해 왔다는 것이다. 러셀은 새 인간성과 해방은 더 이상 힘의 오용과 지배를 추구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삶에서 나타난 것처럼 하나님을 위해 남을 위해 사는 삶의 출발이라고 한다. 많은 여성들은 영구적인 종속이 결코 섬김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들 자신을 해방시키기 시작하였다. 성서에 나타난 봉사와 종에 관한 분명한 개념은 해방의 복음을 나타내는 한 면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좀 더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서로 돕는 협력자들이 되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는 도움을 주고받음으로써 돕는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러셀은 하나님의 인간구원의 목표를 대표하는 말로써 구약에 나오는 샬롬이라는 개념을 선택하여 사용한다. 이 개념은 평화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거기에는 정의, 선, 조화, 온전함, 번영, 행복 등의 가치가 실현된 상태에서 일어나는 그런 의미의 평화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최초의 창조한 참인간성을 모든 인간들에게 회복시킨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참인간성의 회복이라는 것은 어떤 추상적 관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구체적인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성차별적 관계에 남아있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샬롬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인간해방은 이 모든 구체적 인간관계 곧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인종적, 성적 모든 관계에서 평등하고 정의로운 관계가 이루어질 때 실현되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러셀의 인간화를 위한 교육은 역사적인 현실 그대로의 상황과 컨텍스트 전체를 산교육의 장으로 삼고 있다. 이 역사적인 현실이란 개인, 집단, 사회, 인류가 모두 몸담고 있는 삶의 터전 그 전체를 뜻한다. 그러므로 교육은 이 역사적 현실 속에서 어떻게 인간은 다시 인간다울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명제를 두고 이와 씨름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화 교육은 확실히 비인간화 되고 있는 인간과 인류를 문제 삼고 있으며 더욱이 누가 인간과 인류를 비인간화 시키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까지도 취급한다. 파트너십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인간의, 남자와 여자의, 인간 대 인간의 친교 혹은 협동 관계를 의미하며 교회공동체와 인류공동체를 가리킨다고 러셀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됨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강조하며 인간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형상, 즉 남자와 여자의 파트너십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에 정초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남자와 여자의 평등한 파트너십을 창조 설화에서 보다 종말적 미래의 관점에서부터 밝히려 한다. 왜냐하면 창조설화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평등한 관계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에 있어서 성취된 인간성(새로운 인간성)에서부터 밝혀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파트너십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해방시키는 예수그리스도의 공통적 역사 안에 있는 새로운 초점을 그 기반으로 두고 있고 또 그것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새로운 창조의 이미 이루어졌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우리를 이끌어 들이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동역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남자와 여자가 다같이 주체로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파트너십의 본능은 예속이 아니라 섬김이며 그 반대로 섬김의 장은 파트너십이라고 한다. 이것은 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파트너십이 자기 현시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근본주의 신학에 영향을 받은 보수주의적 선교사들의 선교로 인해서 교리제일주의와 성서무오주의의 전통신학에 뿌리박혀 있으며 한국교회의 가부장성은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유교적 사상과 결부되어 있다. 이러한 남성중심 구조의 한국교회 현실에서는 ‘남자는 적이다’라고 부르짖으면서 남성지배의 기존체제를 뒤엎음으로써 그리고 가부장적인 기독교 전통을 부정함으로써 여성 해방적 신학을 하는 서구의 과격한 여성 신앙보다는 그동안 봉사와 희생의 역할만을 강요해왔던 한국 교회 여성의 섬김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재해석하고 상호적 섬김의 자세를 지향하는 파트너십의 교육이 일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동체중심의 대화와 참여의 교육은 한국교회내의 가부장적 구조를 극복하기 위한 교육방법으로써 교회여성들의 소그룹을 활성화시켜 여성들끼리의 대화를 통해 여성을 의식화시키고 여성 신학적으로 성서를 연구하며 여성신학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하는 것이다. 성경의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 가서 남편에게 물어보라’ (고전14:34-36).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여성들에게 잠잠하라고 한 것은 고린도 교회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다. 고린도교회에서는 여성들이 공식적으로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들을 활동적으로 수행하였다. 고린도는 우상숭배가 성한 도시였고 많은 신전들이 있었는데 신전을 섬기는 여제사장들이 낮에는 정숙한 제사장의 일을 하였지만 밤이면 음란한 일을 하였다. 그래서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여성들이 이러한 오해를 사회로부터 받지 않도록 교회에서 잠잠할 것을 요구했다. 교회에서 여성들은 대부분 남자 목사님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이 성서구절대로 살라고 요구받았다. 이는 성서가 쓰인 맥락을 도외시한 체 성서를 올바르게 해석하지 않고 문자적으로만 인용했을 때 범할 수 있는 오류이다. 오히려 바울의 다른 소신은 여성들에게 가르치라고 권하고 있다. 디도서 2장 3절은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라고 말하고 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은 여성을 억압하고 비하하기 위해 인용하지 말자. 이제는 더 이상 여성이 침묵하며 맹종해서는 안 된다. 성별고정관념이나 불평등한 관행 제도를 꽤는 일을 나부터 실천해보자. 여성들 스스로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해야 한다. 남성들보다 더 여성들을 과소평가하고 비하하는 여성들이 있는 한 여성의 지도력은 성장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십 여 년을 외도하다 돌아온 사람을 장로로 세우고 빚지고 도망갔다고 온 사람을 장로로 세운 이유가 오직 남성이라는 이유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허탈함을 느꼈다. 과연 그것에 주님이 함께 하셨을까. 참담한 생각이 든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고 했던가. 남성들한테는 적당히 후하면서 여성이 장로로 나오면 시기심 질투심 때문에 트집 잡고 반대하는 경우가 종종 많다고 한다. 교회성도의 70%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소수인 남성들의 뒷전에 서있다. 여성들이 그들의 위치를 정하기도 하지만 가부장제의 구조 속에서 여성들의 위치역시 정해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또한 정해져있는 그 위치를 확고하게 하는 그 현실을 질책하는 그 현실은 서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을 질책하는 작업은 교육을 통해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교육은 가르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변화와 그것을 이끌어내는 책임까지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여성의 교육에 더욱더 눈을 떠야만 할 것이며 여성교육에 있어서 결과를 책임질 줄 아는 기독교 교육을 이루어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진정한 양성평등을 실행하는 것이 될 것이다.


Ⅰ. 들어가는 말

보수적인 기독교 전통질서는 근대 사회에서 확립된 가부장제적인 성 역할을 수용하여 이를 창조질서로 정당화 하였고, 이것을 한국교회는 그대로 받아들여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정형화된 구조로 성장되어 왔다. 이러한 성 역할이 학습되고 내면화 되면 개인의 활동 범위가 남성 영역과 여성 영역으로 나누어지고, 그 경계를 지키도록 강압을 받게 된다. 이때 에 여성과 남성의 잠재력을 개발하고 성취함에 제약이 따르는 문제점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남성목회자의 배우자에게는 더욱 심화된 것이 지금의 목회현실이다.
여기에 더하여 교회 여성들에게마저도 목회자 부인에게는 목회자가 목회하는데 어려움 없이 일 할 수 있도록 보살피고 돕는 일을 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서 김남준 목사의 “아내 없이 목회는 없다”의 부제를 가지고 『목회자의 아내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를 통해 본 한국교회에서의 목회현실을 비춰보고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여 미래지향적이며, 목회자부인을 넘어 하나님 앞에 선 한 사람으로 하나님과 이웃과 피조물에 대해 책임 있는 존재로의 삶과 성취, 그리고 여성 제자직으로써의 연대를 찾아보고자 한다.

Ⅱ. 목회자 부인의 교회 안에서의 정체성

【목회자의 아내, 그는 단지 한 남자의 아내일 수만도 없고 교회의 지도자는 더욱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평범해서는 안 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는 다른 지도자들보다도 더욱 뛰어난 소명으로 부름 받은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사람들처럼 독특한 자리에 세움을 받은 일꾼들이 없습니다. 그는 일생을 단지 한 사람의 아내가 아니라, 선지자처럼 핏빛 인생을 살도록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목회자 아내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중)

이렇듯 남성 목회자의 부인들은 교회 안에서의 위치가 불분명하고 모호하다. 다른 지도자들보다 뛰어난 소명으로 부름 받은 독특한자리이지만 고유한 자리가 없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 같으면서도 또한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자리이기도 하다.
특별해 보이는 미사여구이지만 핏빛 인생을 살도록 부름 받은 희생자의 정체성을 부각하는 요청과 시선에 자신을 재단하고 사는 것이 목회자 부인의 현실이다. 그렇기에 목사부인을 일컫는 『사모』는 교회 내 직분이나 직위가 아니다.
우리사회에서 결혼한 남자들의 배우자를 존칭해서 부르는 명칭이 『사모님』이다.

목회자부인은 교회에서의 직분이 없으므로 기획위원회나 중직의 회의에는 참석할 수 없으며, 자신의 의사개진을 할 수 있는 기회마저도 주어지지 않는다. 혹 참여를 한다 해도 참관인 정도이고, 크지 않은 교회에서는 목회자부인은 회의 끝나는 때에 다과를 준비하고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려 접대한다. 대체로 기획위원회 등에 여자 직분자나 여선교회장이 모두 참석하기 때문이다. 또한 목회자부인은 교회여성(여선교회, 여목회자, 여장로회 등)의 그룹 중 어떤 곳에도 소속하기 어려운 입지에 있으며, 목회자부인에게 어떤 직책이나 직분이 맡기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

이렇듯 목회자의 성에 따른 배우자의 명칭과 교회 안에서의 위치가 다른 것은 유교적인 성역할의 고정관념으로 여성은 가정에서 남편의 내조자로만 인정하려는 교회의 가부장성에 기인되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목회자부인은 종갓집 맏며느리와 같이 교인들이 찾을 때 언제나 있어주고 필요를 채워주는 자, 그래서 변화되는 세상과 상관없이 고향을 지키고 있는 전통적 여성관에 머룰러 있기를 원한다. 교회 안에서 대체로 목회자의 부인만큼은 신앙생활과 믿음 그리고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완전하기를 기대하고 자신들은 그렇지 못할 지라도 또한 목회자나 그의 가족은 달라야한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살도록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기독교는 사랑의 공동체요, 사랑은 희생이 따른다는 것, 그래서 목회자 부인은 사랑의 희생자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여기며 그러한 목회자의 부인이 되기를 기대하며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목회자 부인도 【착하다】는 인정을 받고자하는 잠재된 욕구를 내재화하고 있어【착한 여자=좋은 사모】가 되기 위해 타인의 기대에 자신을 맞추려 한다.

【그러므로 목회자 아내인 여러분들에게 권면합니다. 말보다 미소에 능한 자가 되십시오. 어쩌다 한 번 보여주는 파안대소보다는 늘 미소를 띤 얼굴이 주는 영향력이 더 크고 긍정적이라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목회자 아내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중)

목회자부인이 교회에 자신의 요구를 당당하게 표출하지도 않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되지도 않았고, 교회는 목회자부인에게 모든 교인에게 베푸는 일을 흔쾌히 받아들이는【착한여자 신드롬】, 어떠한 일에도 무슨 경우에도 조용한 미소로 답하는【모나리자 신드롬】을 내면화하도록 한다.

Ⅲ. 목회자부인의 자아성취
【목회자 아내가 직업을 가지게 되는 것은 목회자 아내로서 살기를 포기하는 순간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 역시 포기한 사람입니다. ... 쓰레기 같은 보람을 위하여 거룩한 영광을 버리는 것은 자기 사랑이 빚어낸 결과입니다.(목회자 아내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중)

전통적 성역할이 내재되어 목회자의 부인은 당연히 목사관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목회자의 부인이 직업을 갖거나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경우 목회자의 부인이 남편 목회자와 함께 있지 않고 목회자 부인 단독으로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바쁜 일상에 쫓겨 기도하지 못하는 교인을 위하여, 목회에 바쁜 남편을 위하여 목회자의 아내는 교회에서 기도하고 교회를 지키는 교회지기가 되기를 원한다.
머리를 하고 드레스를 입고 사모합창단에서 찬양하는 자기교회 사모님을 보고 “미장원에 가서 머리 할 시간에 기도나 더 하지”한 교인의 말이 목회자 부인의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낸 말이 아닐까?

교회에서 목회자의 부인이 함께 하지 않아서 안 될 일은 거의 없다. 목회자의 부인은 교회에서 거의 구색 맞추기며, ‘사모님은요?’라는 교인들의 질문에 대답이 어려운 남성목회자들의 정리되지 못한 정체성과 목회자부인은 목회자 옆에 항상 그림자처럼 함께 있어야하는 내조자의 정형화된 고정 틀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목회자부인의 자아성취와 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보람은 쓰레기입니까?

【여전히 그 직업을 가지고 목회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목회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 아무리 사정이 어려워도 목회의 길에 들어섰다면 다른 직업을 버려야 합니다. 목회자의 아내도 그러합니다.】(목회자 아내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중)

온전히 사역하기를 원하여도 개척교회나 교회형편이 어려운 경우 목회자부인은 남편과 가정 그리고 교회를 위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기 위해 일을 가질 수밖에 없고, 주부들의 일자리가 단순노동과 가사노동의 연장선에 선 일자리가 대부분이므로 자신이 목회자의 아내임을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최저 생계비를 보장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기의 고유한 자리가 있습니다. 자기 자리에 서 있는 목회자의 아내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는 드러나지 않는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목회자 아내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중)

그렇다면 목회자의 아내가 가장 아름답게 서 있을 고유한 자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그 자리가 무엇입니까?
현실에 발을 딛고 살면서도 사람이 먹는 빵도 먹지 말고 더욱이 냄새나는 김치도 먹지 말고 오직 풀벌레처럼 이슬만 먹고 살라는 현실의 삶을 요구하면서, 사모에게만 특별하다는 이유로 이과 동떨어진 이율배반적인 요청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사모는 목회자도 아니지만 목회자와 함께 고난을 나누는 사역을 하며 목회자로서의 역할을 강요받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교회가 주는 암묵적 요구를 순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목회자부인으로서의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기를 원하는 사모들은 목회 보조자이기보다 목회자와 함께 동역하는 자이므로, 교단 차원에서 목회자부인을 위한 신학교육을 정책적으로 의무화하기를 바란다.
여기에 신학을 하지 않은 이나 타 교단에서 신앙 생활하던 사람으로 감리교목회자의 부인이 된 경우에도 감리교 신학을 정립하고, 심방 전도사와 목회상담사의 자격증을 갖추는 제도적 장치는 목회자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Ⅳ. 나가는 말

양성평등지수와 여성권한 척도는 양성평등 실현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들이고, 성 주류화는 양성평등 실현 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가리키는 주요개념들로 세계140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27위로 여성들의 문자 해독률과 진학률은 매우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양성 평등지수도 아시아에서 높은 편이다.
여성권한척도(Gender Empowerment Measure)는 여성 국회의원 수, 행정 관리직, 전문기술직 남녀 소득차 등을 기준으로 여성의 정치경제 활동과 정책과정에서의 참여도를 측정한 결과인데 세계 8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에서 한국은 세계경제 순위가 12위에 달하고, 양성 평등지수 순위가 27위에 달하지만, 여성 권한 척도 순위는 59위에 불과하다. 이것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스위스 제네바 소재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성평등지수는 4위로 한국의 남녀 사회 접근성과 인프라는 세계 4위이다. 반면 실질적 사회활동 및 지위는 세계 108위이다.
이를 토대로 보면 한국 여성들은 한국 사회에서 지도적인 위치에서 배제되는 경향이 심하다고 볼 수 있고 교회는 이보다 더 뒤지고 있다.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는 여성과 관련된 이슈를 별도로 다루지 않고 여성 이슈를 정책의 기본 흐름에 통합시켜 다루는 관점이다. 성 주류화를 바탕으로 성별양향평가를 토대로 한 정책이 뒷받침 되어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과 개혁이 이루지기를 기대한다.
양성평등의 실현에서 일차적으로 평등은 성별의 제약 없이 참여의 기회를 얻는 기회의 평등과 조건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이 되어야 하나 이를 보장하지 못할 때에는 결과의 평등을 강제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가 있어야하므로 이는 법률의 제정과 제도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양성 평등은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조건에서 인권을 존중받고 자아실현과 사회 발전을 위한 잠재력을 개발하여 공동의 발전과 그 발전의 혜택을 함께 누리는 것을 그 핵심 내용으로 하는 개념으로 서로 상대에 대한 배려와 지원을 통하여 상호 발전과 상호 만족을 얻도록 도와주고 성차별 문화와 교육에 대하여 끊임없이 질문하고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인데, 목회자 부인은 여기에서도 제외되는 무성(無性)적 존재이기도 하다.

새로운 세대는 성별을 떠나 조화와 배려와 나눔의 철학을 실천하는 여성성의 덕목을 갖춘 리더를 요구하는 젠더 패러다임의 변화로 성인지력(gender sensitivity) 리더쉽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리더쉽은 생물학적인 성별에 따라 사회문화적으로 다른 역할이 기대되는 정체성 충돌의 문제를 극복하고 사회적 조건이나 상황, 현상이 여성과 남성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파악하는 인식능력으로 양성간의 형평성과 평등의 영향력을 발휘하게 한다.
새로운 시대가 요청하는 평등하고 가족친화적인 조직문화에 필수적이며 능력향상과 삶의 행복을 실현하는 원동력이 되는 Gender Sensitivity Leadership 을 통한 성 평등한 교회가 이끄는 사회가 실현되어야하며, 목회자 부인도 이와 함께 행복한 사역자로 세워지기를 바란다.

동문회에 나타난 불평등사례


논의의 근거:
▪ 현 시대에 양성평등을 논하는 것은, 우리가 속한 사회와 집단이 현재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 집단의 평등함은 그 집단의 결정기구와 결정과정에서 양성이 얼마만큼 공평하게 참여하고 있는가를 판단한다.
▪ 양성평등 실천지침에 따르면 어떤 모임이든 30% 여성비율을 의무화함을 할 것을 명시하고 있는데 그 기준에 적합한가를 판단한다.
▫▫▫
아래의 내용들은 여동문 회장들과의 전화 인터뷰의 내용과 감리교 신학대학 총동문회 회칙 에 근거한 것임을 밝힌다.


◈ 총동문회 구조에 나타난 여성의 위치

▪ 총동문회의 임원구성
: 명예회장 1인, 회장 1인, 부회장 14인(각 연회동문회장 13인, 여동문회장), 총무 8인(총무 1인, 섭외총무 1인, 해외총무 1인, 여동문중 1인, M.Div 1인, 기독교교육학과 동문회장, 종교철학과 동문회장), 서기 및 부서기 각 1인, 회계 및 부회계 각 1인, 각 부 부장 및 차장, 감사 2인, 부흥단, 후원회 (감리교 신학대학 총동문회 회칙)

: 현 총동문회 구조에 나타난 명시된 여성의 비율은 4/67(6%)이다. 현재 총동문회의 임원의 숫자 중 여성은 4명(부회장1/14, 총무1/8, 부장 차장 각1/19)에 불과하다(감신).

: 현행회칙에 따르면 여성이라고 명시된 부서 이외에도 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현재 총동문회의 구성에 여성은 오직 4명이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 동문회의 회칙에 여성의 비율을 명시하지 않을 때 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자리는 이렇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 이러한 모습은 3개 신학대학의 동문회도 다르지 않다. 한 여동문회장이 말한다. “예배 순서에 포함시켜주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자리에 초청해줍니다. 이것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운영이나 정책을 나누는 자리에서는 제외되는 것 같습니다.” “또 참석하더라도 모임에 여성이 소수라는 것은 여전이 어렵습니다. 여자 동문이 함께 있으면 힘이 될 텐데 수적으로 열세이다 보니 어색하고 힘듭니다.”

: 기독교대한감리회 교육국 양성평등위원회는 2006년 양성평등을 위한 실천지침으로 제도적으로 총회와 각 회의 구조에 여성의 참여기회가 30%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할당제를 적극 도입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런 제안에 따르면 동문회의 중요한 정책결정에 30%이상의 여성이 참석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 살펴본 결과는 이에 아주 미치지 못하는 숫자이고, 여성의 참석을 의무화하는 어떤 조항도 나타나 있지 않다. 각 동문회에 이것을 여성 30%를 의무화하는 조항이 삽입되어야 할 것이다.

◈ 여동문회는 독립적인 기관이다.

▪ 총동문회 회칙에 따르면 여동문회는 부속기관으로 명시되어 있다. (부회장 14인 중 한명이다.)
분명 여동문도 총동문회에 속하지만 여동문회는 독립단체로 시작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특성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여동문회의 출발은 여동문의 활동을 돕고, 여동문들의 지위향상을 위해 시작되었다. 이런 취지로 일하면서 장학금을 모금하고, 여자 동문을 지원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 독립단체로 인정한다는 것은 총동문회 안에서 여동문회 회장을 공동회장으로 인정해야 함을
말한다. 더나가 총동문회장이 당연직 이사로 들어간다면(각 학교마다 상황은 다르다) 여동문회 회장도 당연직 이사로 들어가야 한다.




결론:
제안1. 총동문회 안에 여성의 비율을 30%이상으로 하여야 한다.
제안2. 여동문회를 독립기관으로 인정하여 공동회장으로 세우고, 당연직 이사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은영(감리교청년회전국연합회 상임총무)
1. 결정권 없는 봉사, 봉사 없는 결정권

여성과 청년은 교회에서 대부분의 봉사를 담당하고 있다. 교회 전반의 허드렛일이나 소소한 손이 가는 부분은 대부분 여성과 청년이 하고 있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교회의 정책을 결정하고 중요한 결정을 하는 자리에는 몇%가 여성과 청년에게 할당되고 있는가? 결정하고 명령하는 사람과 실행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꼭지점에 위치한 목사와 장로그룹, 그를 떠받치는 수많은 여성과 청년으로 완고한 피라미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실행하는 자와 결정하는 자가 일치해야 올바르고 현실적이며 전 구성원의 참여가 가능해 질 것이다. 현재 이러한 구조라면 한국교회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사회는 점점 평등한 사회를 향해 진일보 하고 있는데 교회는 여전히 기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것인지...

-cca 총대 비율 : 여성[40%]회칙상 50%, 청년[33%] 회칙상 1/3
-wcc 총대 비율 : 여성[37.9%] 회칙상 50%, 청년[13.8%] 회칙상 25%

다양한 그룹이 함께 만들어가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아시아 교회협의회와 세계교회협의회는 회의시 여성, 평신도, 청년 총대비율을 꼭 맞출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한국감리교회 교단총회 청년 비율은 어떠한가?

-청년 [행정총회-0.001 % / 입법총회-언권]

청년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도록 구조를 열어줘도 이기적 개인주의화에 물든 청년들이 할까말까한데 구조를 완전히 닫아놓고 그들만의(남성 목회자, 장로) 리그를 만들어 놓았다. 교회는 젊은이들에게 재미가 없다. 의미도 없다.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 뿐이다.

개교회 현장으로부터 정책논의 구조에 청년과 여성을 꼭 포함시키도록 해야 한다. 교회 현장으로부터 바뀌어야 지방회 구성이 바뀌고 연회가 바뀌고 전국총회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당장 자율적으로 하긴 힘들다고 본다. 그렇다면 장치적인 방법으로 이런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각 연회별로 매번 총회마다 내야하는 총대의 자격을 박아놓고 거기에 맞는 총대를 보내도록 해야 한다. 여성과 청년만으로 비율을 따져본다면 간단하게 다음과 같은 패턴이 생길 수 있다.

   





위의 것은 매우 단순한 패턴을 나타내기 위해 간소화 시킨 것이다. 여기에 목회자와 평신도, 총대의 수, 청장년의 변수를 적용해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진행한다면 연회에서 총대를 올릴 때 연급에 의해 남성목회자나 남성장로에 치중되지 않고 다양한 총대들이 구성될 수 있을 것이다.


2. 감청의 최초 여성총무

2010년 감청 113년, 총회가 구성된 지 53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상임총무가 되었다. 그동안 여성회장이나 임원, 여성간사는 많았지만 상임총무로서는 처음이다. 전국연합의의 실제적인 사업진행이나 제반 사항은 총무가 진행한다. 그만큼 많은 역할과 책임이 주어진다. 즉 이제까지 남성중심의 역사기술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여성의 지도력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는 것은 기존 남성사회에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현재 감청은 여성회장이나 임원 등 성평등이 점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2010년 전국임원과 지방임원 회장

   



전국연합회 임원은 오히려 여성이 많지만 여전히 지방연합회의 회장직에는 여성보다는 남성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올해의 수치뿐만 아니라 이전의 수치도 비교해 본다면 평상적으로 여성과 남성보다 적었다. 이것은 단순한 수치이긴 하지만 여기서도 드러나는 것은 여성적 지도력에 대한 인식이 그리 퍼져있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축소되고 있는 청년회와 연합활동을 생각한다면 남성과 여성 비율의 평등을 얘기하는 것은 후차적인 문제이다. 당장 청년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제발, 청년들이 원한다며 청년정책이 화려한 ‘행사’에 그치면 10년 내에 망한다. 앞으로의 10년을 내다본 지도력 양성과 신앙훈련을 위한 ‘정책’을 고민하고 키워내지 않는다면 미래는 없다. 이와 함께 교회의 닫힌 구조를 열고 책임과 의무가 아닌 선택과 행복에 의해 유지되는 교회이면 좋겠다. 정치적인 싸움질, 건물세우기, 돈 챙기기, 자리 챙기기, 성장주의, 교인을 머릿수와 헌금으로 보기, 제발 당장 그만 두어야 한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자유케 하는 지혜를 얻어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문턱부터 풍겨나는 쓰레기 냄새에 코를 틀어막고 숨쉬기 어려운 것을 겨우 참고 교회 앞을 지나친다. 지금 교회에 남아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이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고 희망하는 믿음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계속되리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여성과 청년의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구조를 뒤엎어 혼란을 가져오기 위함이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함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지금부터 꾸준히 바꿔나가야 한다.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가 되기 위한 많은 것을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최소한의 변화를 원한다. 기다릴 수 있을 만큼 기다리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을 때 떠날 것이다. 그만큼 목숨을 걸고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문제이다. 이젠 선택이 아니다.


교회내 양성평등 문화와 법적, 제도적 확립을 위한 노력

유근숙 목사
<한국기독교장로회여신도회전국연합회 총무>


기장여성들은 여신도회전국연합회가 주축이 되어 일찍부터 교회 내 여성의 지위와 향상을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해왔다. 1933년 예장과 분립되기 전 함남노회에서 여장로제 청원을 시작한 이래 1956년에 여장로제가 1974년에 여목사 안수 제도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고 해도 많은 문제들은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있다. 오랜 역사동안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복종의 영성이 내면화 된 여성들은 여전히 여성 스스로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서로를 세워주는 일이 아직은 낯설다. 남성과 더불어 함께 결의구조에 참여한 경험이 부족하고 남성에 비해 모든 면에서 기회가 부족한 여성들의 갈 길은 멀기만 하다.

기장여성들의 연대활동

기장여성들은 일찍부터 함께 연대하여 교회와 사회의 여성의식화, 여성인권, 지위의 향상을 위해 타교단 여성과도 함께 일해 왔다. 그동안 기장여신도회가 주축이 되어 이 일을 벌여왔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각 부문운동이 발전되었고 교회여성운동도 여교역자협의회, 여장로회 전국연합회등이 자생적으로 생겨 나름대로의 활동을 해 오고 있다. 그래서 기장 내 4개단체 ( 여교역자협의회, 여장로회 전국연합회, 한신여동문회, 기장여신도회)가 함께 연대하여 일을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1995년부터 함께 연대하게 되었다. 연대활동을 통하여 교단 여성들의 지도력을 넓히고 여성들의 영성을 나누며 여성들의 목소리를 교단의 정책에 반영하여 기장교회가 교회답게 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함께 연대하여 기장 여성의 교회와 사회적 참여를 위한 정책수립과 법적 제도 개선, 여성지도력의 육성 하는 일, 교단을 새롭게 하고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 등을 모색하고 추진하기 위해 모이게 되었으며 2005년에 양성평등적 교회 구조와 제도 확립을 위한 기장여성정책 10년 달력을 만들고 이름도 “기장 내 4개 여성단체” 모임에서 “기장여성 연대”로 바꾸게 되었다. 이는 기장 내 4개 단체 뿐 아니라 기장 내 어떤 여성단체도 함께 연대하여 일할 수 있는 개방성을 확보한 일이다. 이후 기청여성, 한신대여신학생들과 사안별로 연대하여 일하고 있다.

양성평등위원회의 설립과정

기장은 89회 총회를 희년총회로 선포하고 여러 가지 실천강령을 내어놓았다. 그 중 하나가 양성평등적 구조를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었다.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는데 여성이 여성을 선출하지 않는 것은 여성들의 문제가 아니냐고 대부분의 남성들은 말한다. 그러나 여성참여의 문제, 양성평등구조를 만드는 문제는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며 여성의 인권문제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성의 참여를 증진시킬 수 있는 법적 장치를 연구하여 여성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시는 것이 복종의 영성에 길들여진 여성들을 해방하고 구원하는 일임을 깨달아 2006년에 여성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헌의하였으나 헌법위원회에서 1년간 연구하도록 하였다. 기존의 상임위원회도 많은데 구태여 여성위원회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 생각을 같이 하는 남성들의 협조가 절실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양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기를 헌의하기로 하고 그동안 신도위원회를 통해 상정되는 헌의안을 교회와 사회위원회를 통해 상정하도록 하였다. 헌의안이 통과되도록 정치부 부원들에게 전화걸기, 여성총대들 사전모임을 통해 여성관련 헌의안과 중요 헌의안 설명과 전략 짜고 실천하기, 모든 총대들에게 호소하는 글 배포, 교단총회가 개회하기 전 기장여성연대가 금식기도회를 실시하여 우리들의 입장을 보여주었다. 또한 총회기간 중 정치부원을 만나고, 회의전 실시간으로 문자를 보내 헌의안을 통과시켜 줄 것을 호소하였다. 제92회 총회(2007년)에서 양성평등위원회가 상임위원회로 설치되게 되었으며 제93회 총회(2008년)에서 규칙을 통과하여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양성평등위원회는 남녀의 비율이 같고 여성위원이 한명 더 많다. 양성평등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역할과 과제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1. 기장 여성의 교회와 사회적 참여를 위한 정책수립과 추진에 관한 사항
2. 기장 여성들의 역할과 공헌, 활동과제에 대한 모색
3. 성폭력 등 여성차별에 대처하는 정책수립과 추진에 관한 사항
4. 여성신학에 관한 연구 및 교육 사항
5. 기장 에큐메니칼 여성지도력의 육성과 협력에 관한 사항
6. 생명평화적인 가치로 교단을 변화시키는 일
7. 양성평등 기장을 위한 조사연구사업

양성평등위원회를 통한 활동

정책협의회를 통해 기장 내 양성평등 의식과 실태를 진단하기 위한 설문조사와 더불어 양성평등 교육을 총회산하 모든 기관에서(총회, 한신대,총회교육원, 여신도 교육원등) 필수 과목으로 설치하여 교육할 것이 94회 교단총회에서 헌의되어 실행되고 있다. 그러나 2015년 교단총회 100년이 되는 해까지 단계적으로 여장로 30% 할당제는 기각되었고 여성총대를 늘리는 방안으로 20명이상의 총대를 파송하는 노회는 여성목사, 여성장로 각 1인 이상의 총대를 의무적으로 파송하는 것을 법제화하는 헌의안은 통과되었지만 헌법위원회가 연구하여 헌의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헌법위원회에서 95회에 상정된 헌의안이 30명이상의 총대를 파송하는 노회로 수정되어 헌의된 것이다.

이에 여성총대 모임, 교단장과의 대화, 헌법위원들과 법제부위원들에게 전화걸기, 호소문 배포 등의 활동으로 법제부에서 94회 교단총회 헌의안대로 통과시켜 줄 것을 호소했고 헌법위원회가 수정상정한 안을 법제부는 고칠수 없으므로 본회의로 넘겨 94회 총회헌의안대로 수정동의하여 통과되었다. 또한 “교단 양성평등 선언서”가 채택되고, “노회별 양성평등교육 실시”에 관한 헌의안도 통과되었다. 여성들의 의식, 남성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과 활동이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신도위원회를 통해 여성의 지위 향상과 법적, 제도적 장치를 위한 헌의가 상정되었고 이 일의 중심에 여신도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양성평등위원회가 설치되므로 모든 기장여성들의 소리를 수렴하고 헌의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동안 여성장로 할당제, 총회 상임위원회 여성위원의 수 늘리기, 특별히 청년들의 참여를 위해 애써왔다.

현재와 같은 장로교정치구조에서는 장로가 되기 어려운 청년들이 교단의 의사결정기구에 들어올 수가 없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는 같은 장로교라도 청년이나 안수 받지 않은 여성들을 결의기구에 참여시키고 있다. 청년을 비롯한 교단정책결의에서 소외된 계층의 참여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현 교단의 헌법을 바꾸거나 새로운 입장에서의 재해석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그 이론적 근거와 타당성을 연구하여 결의기구에 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계층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와 법 연구가 필요한 바, 장로교헌법을 새로운 각도에서 연구할 “장로교헌법 연구를 위한 위원회”설치를 헌의한 바도 있었고 공청회를 가진 적도 있다. 그러나 그 벽이 너무 높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앞으로 3년 후인 2013년은 기장이 새역사 6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2015년에는 총회가 10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양성평등선언서” 채택으로 기장의 양성평등이 가시화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각 노회의 양성평등교육 실시를 통해 여성의 의식이 고양되고 남성들 또한 의식의 변화가 있기를 기대하며 나아가야 한다. 또한 “교단 양성평등 실태조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양성평등정책이 세워지고 의식과 현실의 편차를 줄여나가는 데 주력해 나갈 것이다. 우리보다 양성평등의식과 정책이 앞선 교회들과도 상호교류를 통해 서로 배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활동이 한국교회의 개혁과 발전을 위해 힘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모든 일들을 진행해 가는 일에 참여하면서 이슈파이팅으로 담론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교단이 여성들의 문제, 특히 여교역자들의 문제에 어떻게 관심을 갖고 함께 일해 나가게 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담론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137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