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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생명!!생명!! 그 기원을 찾아서3-고전물리학과 양자물리학1[예수의 가르침을 찾아서(불과 평화9)]-탐욕의 역사는 피를 먹고 흐른다.5
한성영  |  h680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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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11월 07일 (일) 22:02:00
최종편집 : 2010년 11월 08일 (월) 18:52:38 [조회수 : 6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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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인슈타인

 

 

물리학이란 무엇인가?

르메트르가 주장했던 빅뱅이론이 설득력을 확보하며 많은 과학자들의 지지를 넓혀갈 수 있었던 것은 양자물리학의 발전 덕분이었다. 양자물리학, 이 파격적인 과학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전에 물리학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겠다. 물리학(物理學)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물질의 물리적 성질과 그것이 나타내는 모든 현상,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나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을 말하며 자연 과학의 한 분야이다.'

물리학의 영어에 해당하는 단어인 physics는 그리스어의 "자연적"이라는 뜻의 φυσικός (physikos)와 "자연"이라는 뜻의 φύσις (physis)에서 왔으며 한국어의 물리(物理)라는 한자어의 뜻은 만물의 이치를 탐구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종합해보자면 물리학은 자연대상과 그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물리학은 모든 과학 분야의 기본이 되는 연구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 과학(fundamental science)”라고 불리어진다. 물리학의 목적은 자연대상을 탐구하여 그것을 정밀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의 원인이 무엇인지 연구한 다음 그 원인과 결과를 수학적 도구 등을 이용하여 하나의 이론으로 일반화시키는 일을 한다.


고전 물리학의 역사

서구에서 물리학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을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의 변화와 운동을 연구하는 물리학과 자연계를 넘어선 순수한 진리를 연구하는 형이상학으로 구분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만큼 물리학은 역사가 깊다. 그러나 아주 오랫동안 형이상학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종속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근대적 물리학의 토대와 기반이 확고히 정립되기 시작했던 것은 14세기의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갈릴 레오 갈릴레이에 의해서 였다.

갈릴레이는 수학을 토대로 이론적 가설을 만들고 정량적 측정을 통해 실험적 검증을 해야 한다는 물리학의 대원칙을 확립되기 시작했다. 갈릴레이가 정립한 방법론은 그 효용성이 입증되면서 과학계에 차츰 저변 화되어 갔고 아이작 뉴턴에 이르게 되면 그 때까지 독립적으로 연구되던 천체 운동론과 역학이 통일되어 천체 역학을 탄생시키며 또 한 번 크게 도약을 하게 된다.

이후 패러데이, 맥스웰 등에 의해 전기와 자기의 이론이 정립되고, 볼츠만 등에 의해 발전된 통계역학은 여러 가지 물리적 성질을 단 몇 가지 원리만으로도 유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에 물리학은 흑체복사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부분이 남아 있었지만 이제 거의 모든 것을 발견했다고 생각하였다.

이 때까지의 물리학을 고전물리학 (古典物理學)이라 정의할 수 있다. 고전물리학 (古典物理學)은 양자론이 탄생한 20세기 이전의 물리학을 말한다. 고전물리학의 범주에는 고전역학, 뉴턴의 운동 법칙, 고전 라그랑지안, 해밀턴 역학, 고전 전자기역학(맥스웰 방정식), 고전 열역학,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 고전 혼돈 이론과 비선형 역학학문들이 포함된다.

그러나 고전물리학을 좀더 간단히 정리하면 뉴턴의 고전역학과 맥스웰(James C. Maxwell)의 전자기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고전물리학의 두 축 중 하나는 역학, 곧 운동의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전자기 현상 및 빛의 이론이다. 과학자들은 역학에 대해서는 대부분 밝혀졌다고 생각하였으나 빛에 대해서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빛은 입자인가? 파동인가?

빛에 대한 연구는 17세기에 시작되었다. 뉴턴은 빛에 대해서도 연구를 했는데 태양의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일곱 개의 색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발견, 이 실험에서부터 빛이라는 것을 여러 가지 색을 가지는 작은 알맹이가 모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빛의 정체를 작은 알맹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빛의 입자 설’이라고 부른다.

물체에 빛을 비추면 뒷면에 그림자가 생기는 것도 빛이 입자라고 설명할 수 있다. 만약 빛의 정체가 파동이라고 한다면 파동은 빛의 장애물인 뒷면으로 돌아서 나가는 성질을 가지기 때문에 그림자가 생길 수 없고 그림자의 윤곽이 흐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뉴튼과는 달리 빛의 정체는 파동이라는 ‘빛의 파동설’을 제창한 사람이 뉴턴과 거의 동시대의 네덜란드 물리학자 호이겐스이다. 그는 두 개의 가는 광선을 부딪쳐도 빛이 서로를 통과해 나가는 것은 빛이 파동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빛이 알맹이라고하면 충돌 후에 제각각의 알맹이가 나아가는 방향이 바뀔 것이다.

그러나 물체에 빛이 비치는 그림자는 파동설로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이 의문에 대해서는 장애물의 크기보다 파동의 길이(파장)가 적을 때에는 파동은 거의 굴절되지 않고 물체에 차단된다. 빛은 굉장히 적은 파장의 파동이라고 생각하면 빛이 거의 대부분의 물질에 대해 굴절을 하지 않고, 그 때문에 그림자가 생기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파동그림

파동에는 파장과 진폭 그리고 진동수라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파동은 높은 곳(산)과 낮은 곳(골짜기)이 반복되고 있는데 산과 산, 골짜기와 골짜기까지의 거리를 파장이라 하고 진폭은 산의 높이나 산의 골짜기의 깊이를 말한다. 진폭이 커다란 파동은 그만큼 큰 에너지를 지닌다는 특징이 있다. 진동수는 파동이 1초 동안 몇 번이나 산과 골짜기의 변화를 반복하는지를 나타내는 수치이다. 파동의 파장과 진동수는 숫자로 말하자면 반비례의 관계에 있다.

빛이 파동이라는 결정적인 증거, 19세기 초반 영국의 물리학자 영이 빛의 간섭이라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간섭’이란 파동의 특유한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파동의 간섭이란 두 개의 산 혹은 골짜기와 골짜기끼리 겹치면 파동의 진폭이 서로 겹쳐져서 산의 높이나 골짜기의 깊이가 늘어나고 반대로 두 개의 파동의 산과 골짜기가 겹쳐지면 파동의 진폭이 서로 부딪쳐 사라져 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영의 이중 슬릿실험

영은 이 간섭현상을 더블슬릿의 실험에 의해 확인하였다. 광원과 스크린사이에 가늘고 긴 창(슬릿)을 두 개 연 판자를 두고 스크린에 빛이 얼마만큼 투사되고 있는 지를 관찰한다. 그러면 스크린에는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나열되어 있는 간섭무늬가 생긴다. 간섭무늬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각각의 창을 통과한 빛은 파동 과같이 방사 상태로 나아가 스크린에 도착한다. 이 두 개의 빛이 파동의 산과 산 혹은 골짜기와 골짜기가 겹쳐진 부분에서는 간섭에 의해 파동의 진폭이 늘어난다.

이것은 빛의 세계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두 개의 빛의 파동의 산과 골짜기가 겹쳐지는 부분에서는 간섭에 의해 파동이 사라지고 어두워진다. 이 때문에 스크린 위에는 명암의 무늬가 생긴다. 빛의 정체가 알맹이라면 창을 통한 알맹이는 그대로 직진하여 스크린에 도착하고 그 결과 두 개의 가늘고 긴 빛의 띠가 생길 것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한다면 일정한 구멍이 뚫린 문에 대고 화살을 쏜다고 생각해보자. 문 뒤에는 두껍고 큰 판자를 세워 놓았다. 그러면 구멍을 통과한 화살은 여기 저기 흩어져서 박히는 것이 아니라 대개 판자의 일정한 부분에 박히게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빛이 입자라면 화살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박히는 것과 같은 현상인 간섭무늬가 생기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고전물리학을 완성한 맥스웰 방정식

그러다가 1864년 맥스웰 방정식이 발표됐다.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은 전기와 자기 그리고 빛의 삼각관계를 밝혀냈다.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에 의하면 전기와 자기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며 전기와 자기가 만들어내는 공간인 자기장(공간)과 전기장의 출렁임, 즉 전자기파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빛’이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전기가 형성된 공간이나 자기가 형성된 공간은 그곳에 자기력이나 전기력을 미친다. 그런데 이 공간이 자기력과 전기력에 의해서 출렁거린 에너지가 공간을 통해 전달해가는 것이 전자기파인 빛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잔잔한 호수가운데에 돌을 떨어뜨리면 돌이 가지고 있던 에너지 때문에 물의 출렁거림이 생기고 이 출렁거린 에너지가 물을 매질로 하여 퍼져 나간다. 그대는 잔잔한 호수에 아름다운 물결이 번져가는 것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전기와 자기가 형성되어 그 힘이 미치는 공간이 출렁거리게 되고 그 에너지가 공간을 통해 전달되어지는 것이 빛인 전자기파라고 하는 것을 맥스웰이 밝혀낸 것이다.

물결파가 물을 매질로 전달되어진다면 전자기파는 무엇을 매질로 공간을 통해 전해지는 것인가? 그것은 그 당시에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의 과학자들은 '빛의 정체는 전자기파라는 파동임이 맥스웰 방정식으로 완전히 드러났다'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공식이 정확히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1888년 독일의 물리학자 헤르츠가 전기와 자기의 파동이 공간을 움직이는 것을 실험으로 확인하여 전자파의 존재를 증명하였다. 그리하여 전자파의 일종인 빛은 분명한 파동이라는 것이 다시 확인되었다. 가장 파장이 짧은 전자파가 감마선이다. 파장이 거의 0.1나노미터이다.

파장이 짧다는 것은 진동수가 크다는 것을 의미하며 감마선의 진동수가 10의 18승이다. 그리고 X선, 자외선 순으로 파장이 길어지고 진동수가 작아진다. 가시광선은 파장이 약 380나노미터에서 약 770나노미터이다. 가시광선 중에서 파장이 가장 짧은 것이 보라색이다. 그리고 파랑, 녹색, 노랑, 주황, 빨강 등의 순서로 파장이 길어진다. 빛의 색의 차이는 전자파의 파장의 차이(혹은 진동수의 차이)이다.

지금까지 수수께끼였던 빛의 비밀을 설명한 맥스웰 방정식이 발표되자 사람들은 이제 세상의 이치는 다 밝혀졌고 물리학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새롭게 연구할 것이 남아있지 않아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다. 고전물리학이 완성되었다는 말은 운동과 전기, 자기 현상 및 빛의 정체를 완전히 밝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을 완벽하게 해석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 당시 물리학자들은 "우리는 더는 할 일이 없다. 물리가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플랑크(Max Planck, 1858~1947)가 물리학을 하겠다고 지도교수를 찾아갔을 때 “물리에는 연구할 게 없으니 다른 것을 하라”는 충고를 할 정도였다. 이제 물리학에는 풀어야할 몇 가지 문제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열을 내는 물체에서 방출하는 빛의 특징을 당시의 고전물리학안에서는 설명할 수 없었고 빛은 파동임이 밝혀졌으므로 그 파동이 전해지려면 매질이 있어야만 하고 그것을 실험으로 찾아야했다.


드디어 양자물리학의 여명이 밝아 오다.

뉴턴 이래에 고전물리학자들이 물질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은 ‘처음에 일정한 조건만 정해지면 그 다음의 물질의 상태나 운동은 모두 확정되는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물질이 어느 시각에 있어서 어느 위치에 있고 얼마만큼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라는 최초의 조건을 처음에 정하면 그 뒤에 물질의 운동은 모두 기계적으로 확정된다고 생각했다.

물리학의 대상인 자연현상이 ‘진리’에 의해 질서정연하게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그 진리를 해명하는 물리학도 결정론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아인슈타인도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결정론적인 입장을 고수하여 주류 양자 물리학자들과 대립각을 세웠다.

고전물리학의 이러한 경향성때문에 사람들은 사회현상이나, 역사 그리고 인간의 행동까지 결정론적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사건들은 원인이 있으며 그에 따라 결과가 정해진다는 결정론은 물리학에서 출발했지만 자연현상만 결정론적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다양한 현상의 해석에도 결정론이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고전물리학의 결정론적 세계관을 뿌리째 뒤흔들며 우주와 세계에대한 시각을 근본적으로 뒤바꾸어 놓을 엄청난 작업이 수면밑에서 고요히 준비되고 있었다. 당대의 모든 지식인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이 혁명은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반대자를 납득시키거나 그 빛을 보게 함으로써 승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  반대자들이 마침내 죽은 뒤 새로운 세대가 그 빛에 친숙해짐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 의해 1900년 12월 차가운 연구실에서 묵묵히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자!! 양자물리학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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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은데요.... (170.20.11.116)
2010-11-13 00:13:08
소프라노님,

물리학에 대하여 어느정도의 상식 혹은 전문적 지식을 지니고 있는지 몰라도 님의 댓글은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말씀이네요.

양성자를 구성하는 물질은 밝혀진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세개의 Quark라는 입자로 구성되어있고 이 입자들의 상호작용도 대부분 밝혀진 상태입니다.

거시세계인 우주도 그리고 미시세계인 작은 입자의 세계도 무한은 없습니다.

만일 모든 물리적 세계가 무한대로 펼쳐지는 것이 우주라하도라도 과학은 이미 놓여진 우주에 놓여진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기 위하여 인간의 이성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기에 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끝이 있다면 우주의 한계의 끝까지 다다를 때일 것입니다. 물론 그런 날이 오지는 않겠지요.

공간을 그리고 시간을 무한대로 쪼개야 할 아무 이유도 없습니다.

시간과 공간은 인간이 임의적으로 정해놓은 관념적 물리량일 뿐 절대적인 물리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빛을 규명하는 일도 많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20세기에 이미 빛의 성질에 관한 많은 연구 결과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밝혔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상당 부분 밝혀진 것은 사실입니다.

물리학은 다른 학문도 그렇겠지만 포기할 그 어느 것도 없습니다.

포기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판단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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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59.29.113.196)
2010-11-16 16:50:30
현대물리학을 맹인이라고 보고 말한 것입니다. 코끼리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코끼리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지요.
쿼크 세개라고 누가 확정지었습니까?
그 이하 세계를 들여다볼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이 현대과학이어서, 그냥 그쯤해서 연구를 중단하고 있는 것이지요. 빛에 대한 연구가 많이 되었다구요? 빛이 무엇인지, 현대물리학에서 말해주는 것을 들어본적이 없는데요.
빛은 코끼리가 아닙니다. 코끼리라고 단정지을수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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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59.29.113.196)
2010-11-12 18:14:45
양성자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이 정확히 무엇인가를 규명해 내기가 힘든 것이 현재의 물리학의 위치인데, 그 것 조차도 또 다른 미시세계로 구성되어 있다면, 또는 그 미시세계가 우주처럼 한없는 것이라면, 인간은 물질에 대한 연구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공간을 무한대로 쪼갤수가 있다면, 시간도 무한대로 쪼갤수가 있다면, 인간은 우주에 대한 연구를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차라리 빛을 규명해 내는게 물질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 보다 나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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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은데요.... (170.20.11.116)
2010-11-12 06:31:29
대학교 2학년 현대물리학에서 배우는 내용이 이 곳에 올라오는 이유는 뭐지요? 신앙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요?

그리고 마치 결정론이 틀린듯이 말하고 있네요.

미시세계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을 뿐 양자론이 거시세계로 오면 결정론처럼 변해버리는 것인데...

양자론은 확률론적 개념을 도입한 것 뿐이고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는 증거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은데...

게다가 코펜하겐 학파를 지지하지 않는 많은 물리학자들이 아직도 있고...

자연에 대한 확률론적 기술을 이용한 양자론적 개념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인 것 뿐인데...

신이 주사위를 던지면서 우주를 운행하는 그런 분이 아닐 것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은 그냥 한 말이 아닌데...

글을 쓰신 분이 물리학자인지, 물리학도인지, 아니면 과학사 전문가인지는 몰라도 그냥 대학원생 수준의 내용이네요. 교과서를 그대로 옯겨 놓은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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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명 (210.104.12.140)
2010-11-12 14:29:33
ㅎㅎㅎㅎ 다 좋은데요님.

대학교 2학년 현대물리학시간에 배우는 내용을 이곳에 쓰면 않된다는 법이 어디 있으며 또한 신앙과 관련이 없다는 님의 독단적 견해는 어느학교 수준의 관점인지 알 수가 없군요.

확률론, 코펜하겐 해석 아인슈타인의 언급 다 알고 있는 내용이고 오히려 님의 견해야말로 어느 쪽으로 경도되어 있군요. 자자,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좀 진득해 집시다. 앞으로 더 이에 대해 글을 쓸작정이요.

그리고 지금 한국의 현실기독교안에는 대학원생수준이 아니라 중학교수준의 과학적 사고마저 먹혀들지 않고 있지않소. 교과서같은 내용이라고했는데 교과서 내용이상의 글은 어떻게 되는 지 님의 수준을 보여주시구려 그럼 내가 배우리다.

크리스챤이요? 그리고 내가 쓴 글이 좀 불편하신 것 같은데 그러면 님의 수준 높은 반론을 보여주시구려... 그 또한 내가 배우리라.......

오늘 하루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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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은데요 (170.20.11.116)
2010-11-13 02:30:53
뭐가 문제라고 했습니까?

신앙과 과학이 어떤 관계가 있냐고 물었는데요? 당신이 무슨 글을 썼나요?

이 글을 쓴 분에게 말한 것이 이것이 전부인데...

까칠하시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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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명 (210.104.12.148)
2010-11-13 15:09:05
ㅎㅎㅎㅎㅎ

내가 바로 이글을 쓴 사람이외다. 그리고 신앙과 과학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앞으로 전개되는 글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다 좋은데요님. 님의 관심은 감사히 받겟습니다.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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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J (24.60.55.1)
2010-11-14 00:29:47
글 잘 읽었습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물리학을 떠나서, 과학이라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앞으로 신앙과 과학에 대하여 글이 전개 될터이지만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를 내리시고자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만일 과학자라면 창조과학에 대하여 입장을 먼저 밝히는 것이 좋을듯 싶은데요. 창조과학의 주장을 읽어보면 헷살리는 것이 많아서 과학자의 입장이 다소 불편하다는 인상을 받곤 합니다.

마지막으로 양자물리학에서 양자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리고 빛이 파동이냐 입자이냐의 문제는 위에서 설명하였지만 다른 물질들도 이러한 법칙을 따르고 있습니까?

혹시 전공을 여쭈어 보아도 실례가 아닐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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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명 (210.104.11.72)
2010-11-15 14:16:34
jcj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제 글에 관심을 보여주셔셔 감사합니다.
님께서 질문을 주셨으니 성실히 답변 드리겠습니다.

먼저 <과학이라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예수믿는 사람들은 과학의 방법론과 성실함, 신중함 그리고 실용성을 인정하고 배워야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과 과학은 전혀 대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의 가르침을 잘 따른다면 과학의 힘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과학이 인간에게 외부세계에대한 지혜와 힘을 준다면 예수의 가르침은 인간의 내부세계에 대한 지혜와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제가 쓰는 글에서 더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종교와 과학의 인간의 관계는 내부세계와 외부세계의 조화의 문제이고 과학이 더 깊어지고 성숙해지면 이 둘은 하나로 통합될 겁니다.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은 제가 익히 알고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들이 주장한 글을 읽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조차 시간낭비라고 생각됩니다. 그들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기 보다는 올바른 관점을 제시하고 예수의 가르침의 정수로 파고드는 것이 더 빠르게 질러가는 길이라고 봅니다.

양자의 의미와 다른 물질들에 대한 답변은 제가 앞으로 쓰는 글에서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저의 전공은 구도자요 부전공은 수행입니다. 제가 글을쓰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지식과 이론들은 그저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한 방편일뿐입니다. 너무들 잘못된 지식과 정보에 노출되어서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왜곡되고 편향되며 삐뚫어진 신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먼저 바로 잡기위해 사용하는 방편말이지요.

사실 예수와 부처가 가르친 진리는 너무나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선입관과 편견, 지식과 습관 때문에 그 쉬운 진리를 알지 못할 뿐이지요. 그리고 예수와 부처가 가르친 진리 자체는 너무 쉬워도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누리고 그 힘을 나눌 수 있는 것은 또한 치열한 수행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또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질문 주세요.

늘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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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J (24.60.55.1)
2010-11-16 13:26:28
답변 감사합니다.

그런데 당당뉴스에 보면 창조과학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유사한 내용을 강조하는 글이 실려있습니다. 그런 내용을 보고 또 님의 글과 댓글을 보니 많이 헷갈리네요.

김명현 교수라는 분은 창조과학의 자료들을 가지고 교회들을 돌아다니면서 강의를 하고 또 그분의 강의 내용은 여러 교회의 사이크에 자료로 올라와 있는데 님의 창조과학에 대한 의견을 들으니 헷갈립니다.

기독교인 가운데 김명현 교수와 같은 창조과학의 편에 서 있는 분과 님과 같이 창조과학지들의 주장에 관심을 가지는 것 조차 시간낭비라고 말씀하시는 분을 함께 대할 수 밖에 없는 기독교인의 입장은 매우 난감하다는 것을 이해하시겠지요.

만일 님이 창조과학을 옹호하는 다른 기독교인을 만난다면 어떻게 대하실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님은 구도자요 수행자라고 밝히셨습니다만 반면에 ㄱ예수와 부처의 가르침은 매우 쉽다고 하셨습니다.

가르침이 쉽다면 수행은 필요할지 몰라도 구도를 계속해야 하나요? 만일 가르침과 도가 다르기 때문에 구도를 한다면 그 道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리고 수행이라는 것은 또 무엇을 알하는 것인지요?

물론 둘 다 불교적 용어라서 생소하기는 합니다만 道 혹은 진리라는 것이 수행이라는 과정을 요구한다면 그것이 진리라고 불리울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진리는 결국 자유케 하는 것이고 그것이 결국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 아닌가요?

해탈한 자가 무슨 수행이 필요하고 자유를 얻은 자가 왜 수행이라는 것에 얽매여야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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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명 (61.40.37.154)
2010-11-16 19:07:23
JCJ님,창조과학자들은 아직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으니 모르겠군요.ㅎㅎ

도를 깨닫는 것과 도를 증득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수행자는 곧 구도자입니다. 제가 표현을 그렇게 한 것 뿐입니다.

JCJ님 진리를 알고 싶으세요? 얼마나 강하게 그것을 알고 싶으신지요.
제가 아무리 장황하게 설명하더라도 님께서 그것을 간절하게 원하지 않는다면 알 수 없을겁니다. 자. 님은 얼마나 간절하게 진리를 알고 싶으신가요?

나는 님의 그것을 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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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바람 (210.2.37.62)
2010-11-11 09:34:11
이런 공간에 과학적 사고를 공유할 수 있는 글을 쓰신다는 것 자체가 몹시 경하드릴 일입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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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명 (210.104.12.140)
2010-11-12 14:36:00
갈바람님, ㅎㅎㅎㅎㅎㅎ
언제나 제 글에 좋은 덕담을 나누어 주시는군요. 넉넉한 마음, 진리가 나투어지는 것이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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