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 > 박성규 설교
마지막 때를 어떻게 살까?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오순절 후 24 주(20101107)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0년 11월 04일 (목) 09:27:20
최종편집 : 2010년 11월 04일 (목) 19:10:52 [조회수 : 3425]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오순절 후 제 24 주(20101107)
성서일과/ 시 17:1-9; 욥 19:23-27a; 살후 2:1-5, 13-17; 눅 20:27-38
본문/ 살후 2:1-5, 13-17
마지막 때를 어떻게 살까?

          (살후 2:1-5)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4]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살후 2:13-17) 『[13]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14]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5]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입니다.
처음에 박해를 많이 받았지만 얼마 후에는 믿는 자들의 본이 될 정도로 훌륭한 교회로 성장하였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라고 칭찬하였습니다.(살전 1:2-7)

좋은 교회였으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의 재림을 사모하는 마음이 지나쳐 사회생활이나 가정을 등한시하는 풍조가 생겨난 것입니다.
심지어 일할 필요도 없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있었습니다.
주님이 곧 오셔서 다 해결해 주실 텐데 애써서 일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자들이 횡행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살후 3:11-12) 『[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오늘 본문에서도 말합니다.
          (살후 2: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무슨 말입니까?
재림이 있을 것은 확실하지만 그로 인해 오늘의 삶이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주님 강림하실 때의 내 삶이 결정되는 것이지, 오늘을 건너 뛰어 주의 재림의 날에 집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이렇게 된 것은 환란과 핍박이 가장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믿는 자들의 삶이 너무나 고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땅에서 위로를 받지 못하고, 세상에서 바랄 것이 없는 인생들이었기에, 하나님의 위로를 바라고, 주의 강림에 소망을 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삶을 포기하고, 오로지 주님의 강림하실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얼핏 믿음이 좋은 듯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의 고단함을 이겨내지 못하는 자들의 연약함과 하나님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증거였습니다.
만약 그들의 생각대로 주님이 빨리 오시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울은 종말의 때에 일어날 일을 두 가지로 말합니다.
하나는 배도하는 곧 예수를 버리는 자들이 생기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적그리스도가 출현하는 것입니다.
환란과 핍박을 못 이겨 배도하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꾸로 종말에 대한 소망이 지나쳐서 배도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주님이 곧 오리라 여겨 세상 삶조차 포기하는 자들은 그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지 않으면 결국 예수를 버리게 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그런 자들을 유혹합니다.
주가 오셔서 이 모든 환란과 핍박을 사리지게 해주실 것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자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4]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오늘의 이단들이 하나같이 스스로 재림주나 하나님을 자처하는 것이 그런 까닭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15]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바울의 당부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가 근본적으로 같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 사이에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종말이 코앞에 닥친 것처럼 임박하게 생각했고, 지금의 교인들은 종말이 있으리라는 생각조차 희미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이 달라도 그 결과는 같습니다.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어 세상을 등지거나, 종말이 멀다고 여겨 세상에 속해 버리는 일이 모두 배도하는 일 곧 예수를 등지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벌써 11월의 중순입니다.
추수가 끝난 논을 보노라면, 종말에 있을 일들을 알려 주는 것 같습니다.
알곡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논에 남아 있는 것들은 소의 여물이 되거나, 불로 태우거나, 그도 아니면 썩어 거름이 될 것들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이 어떤 이에게는 주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참으로 기쁜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추수가 끝난 논에 남은 덤불과 같은, 참으로 처량한 날이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바울이 전하는 권면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선한 일과 말에 굳게 서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부족할지라도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전해지는 좋지 않은 소식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13]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성도들의 행실이 만족스럽진 못하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구원의 은총이 남아있는 것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성도는 어떤 형편에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전한 것도 그 말입니다.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풍성할 때 감사하면 그 복을 오래 간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그냥 주신 것은 아닙니다.
싸워서 빼앗으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피를 흘리고 땀을 흘리며 싸웠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그 땅에서 나는 곡식과 포도를 먹게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것도 아니고 땅에서 절로 솟아난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씨를 심고, 가꾸며, 거두는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훗날 이스라엘은 그 땅을 빼앗겼습니다.
원인은 하나였습니다.
그들이 지닌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라는 것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왜 잊었습니까?
자기들이 땀과 피를 흘리며 싸워서 얻은 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의 힘으로 심고, 가꾸며, 거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하나님을 잊었다는 것은 하나님 주신 은혜를 잊었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모세가 말했습니다.
          (신 30:17-18) [17] ...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18]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치 못할 것이니라 

감사는 부족함을 채우는 방법입니다.
주님은 한 소년이 가진 도시락 하나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셨을 때, 빌립은 이백 데나리온의 돈이 부족하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먿을 것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를 찾아 왔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그 보잘 것 없는 것을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를 하셨습니다.
축사를 했다니까 무슨 이상한 능력이라도 불어 넣었다고 생각하기가 십상입니다.
축사를 하셨다는 것은 능력을 빈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막 6:42-43) 『[42] 다 배불리 먹고 [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우리가 감사치 못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풍성한 중에도 감사치 못하면 비난을 들으나, 부족하여 감사치 못하면 당연하게 여깁니다.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부족할지라도 감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남은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만은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박국 선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합 3:17-18)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부족할지라도, 없을지라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둘째는, 더딜지라도 인내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문제는 주님이 금방 다시 오실 것이라고 믿는 데서 출발되었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텐데 구태여 애를 쓸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입니다.
그들은 가정을 등지고, 세상을 등졌으며, 일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정반대의 문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주님이 오시지 않으니, 무언가 딴 방도를 강구해 봐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면 우리라도 소리를 질러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애쓰다가 그래도 주님이 오시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실망합니다.
포기합니다.
마침내 주를 떠나고 맙니다.

그나마 이런 과정이라도 거치면 다행입니다.
주님이 더디 오시리라, 더 나아가 주님이 오지 않으시리라 생각하고 아예 제 일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악한 자들입니다.
주님이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눅 12:45-48) 『[45]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46]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

알고도 준비하지 않으면 많은 매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몰랐다고 하는 말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도 매를 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편지를 썼습니다.
베드로의 편지를 받는 자들은 아마도 주님이 곧 오시리라고 믿었다가, 주님이 오시지 않자 실망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도 모진 핍박과 환란에 시달리고 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간절히 주를 사모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들 중에 모진 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주를 떠나는 자들이 속출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런 사정을 전해 듣고 편지를 쓴 것입니다.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주의 재림이 더딘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주님은 속히 오시려고 하나 지금 참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심지어 이미 주를 떠난 자들이라 할지라도 돌아올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도 애타게 기다리십니다.
다시 오셔서 그 사랑하는 자들을 구원하실 때를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하나라도 불에 타는 자가 없이, 다 하늘 창고에 들이시려는 소망 때문에 그 날을 미루고 있을 따름입니다.
지금 당하는 시험은 장차 주님이 오실 때에 얻을 영광과 능히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불같은 시험이 있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 그것은 시험(test)일 뿐입니다.
그 정도 시험은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도 지금 참고, 견디고 있습니다.
구원의 그날이 더디게 오는 듯해도, 인내하여 그날을 맞는 성도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끝으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믿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땅에 계실 때에 당신이 죽고, 부활하실 일과 승천한 후 에 다시 오실 것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마 24:3, 막 13:30, 눅 21: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이 말씀은 한 글자도 틀림이 없이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확실하고, 분명한 말씀인지를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말 그대로는 이루어지 않았습니다.
그 세대가 가기 전에 주의 재림은 없었던 것입니다.
단지 그에 필적할만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로마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성전을 허물어 버린 것입니다.
그야말로 이스라엘에게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시 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주님의 이 약속을 계속해서 세상에 전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의 첫머리에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행 1:11) 『...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제자들은 주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일이 생각이 납니다.
그들의 믿음이 그랬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만든 금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극렬한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는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그 위협에 맞섰습니다.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불에서도, 왕의 권세에서도 건져 내주시리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하시는 그의 사랑을 믿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는 대로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실지라도 나는 믿음을 버리지 않겠노라는 말입니다.

제자들의 믿음이 그랬습니다.
그들이 믿었던 대로 주님이 오시지 않았으나 그들은 주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도 않았고, 그 약속을 의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주님의 말씀은 사람의 생각을 벗어나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들이 이해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주님이 계획하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명령에 순종해서 곳곳에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곳에 가지 못할 때도 있었고, 생각하지 못했던 곳으로 갈 때도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하게 된 것도 바울이 계획한 것이 아닙니다.
          (행 16:6-10)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죄수로 만들어 로마로 가는 배를 태우심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도중에 사나운 풍랑을 만나 구원의 여망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행 27: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때와 방법은 누구도 짐작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내가 알고, 이해하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되지 않을지라도 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당장에는 내가 믿는 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행 27: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 한 말이 아닙니다.
풍랑을 만나 떠밀려 온 섬에서 한 말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 소망이 없을 때 한 말입니다.
그 믿음으로 사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行百里者半九十里也

옛말에 ‘백리를 가고자 하는 자는 구십리를 반으로 삼는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끝마침이 중요하고 힘들다는 뜻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열심히 달려 백리 중에 구십리를 왔습니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이제 다 왔다고 여겼습니다.
그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구십리를 온 것처럼 남은 십리를 달려갔으면 될텐데 그만 다 왔다고 여겨 행장을 풀어 버렸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빌 3:12) 『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말합니다.
          [14]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믿는 자의 영광은 주님 재림하실 때에 주어질 영광입니다.
믿는 자는 오로지 그것을 소망하며 삽니다.
지금은 마지막 때입니다.
주의 재림이 멀지 않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그 부르심의 목적에 합당하겠습니까?

부족할지라도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더딜지라도 인내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믿고 살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끝날까지 그렇게 살아, 부르신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영광 누리게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박성규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350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