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군바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군생활을 한 지도 어언 20년이 지났다. 나름대로 편하기로 이름난 곳에서 군생활을 해서 그런지 갖가지 아련한 기억이 별로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군대는 군대라고 별로 되돌이키고 싶은 생각은 없다.

군인을 우리 사회는 군인이라는 정식적 표현이 아닌 군바리라는 비하된 표현을 즐겨 사용하여 부른다. 군인은 사람인자를 써서 인간임을 인정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군인이라는 표현은 잘 안 쓴다. 그래서 군바리라고 부른다. 군바리는 사람과 구별되는 또다른 존재이다. 인간 이하의 어떤 존재!

군바리가 휴가를 나와 나름대로 머리에 무쓰도 바르고 유행하는 옷을 걸쳐도 그걸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는 그저 안스럽게 보일뿐 군바리는 군바리다.

군인이 군바리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군대와 국가가 사람대접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입대하여 훈련소에 들어갔을 때 내무반장이 처음 한 말이 '너희들은 여기에 있는 동안 인간이 아니다'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군생활은 먹는 것, 입는 것, 생활하는 것 등등이 자율적이라기보다는 명령에 의해 기계처럼 움직여야 할 것을 전제한다.

거기다 생각까지도 군바리적으로 하지 않으면 온갖 욕설과 갈굼을 당해야 한다. 그래서 군바리이다. 한 마디로 군바리는 생각이 없는 존재, 생각을 마음대로 해서는 안되는 존재이다. 그러다보니 밖에서 볼 때 군바리들은 생각하는 수준도 인간 이하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실제로 그렇다.

지금은 군부대 상황이나 복무상황이 많이 좋아졌고 복무기간도 단축됐다고는 하나 여전히 군바리는 군바리일 뿐이다. 군부대에서 인터넷도 하고 전화통화도 자유롭게 하고 각종 여가를 즐길 시설들이 마련돼 있으며 고기도 많이 준다고 군당국은 떠들어대지만 마찬가지이다. 아들들을 군대에 보내 놓은 부모 입장으로는 불안하고 화가날 법한 이야기이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뒷바침하는 것이 28일에 판결이 나온 국방부 불온서적 합헌 결정이다.

헌법재판소는 군바리들이 마음대로 책을 읽어서는 안된다고 결정했다. 물론 민간인도 완전히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는 없지만 군바리들은 이보다 더 제한이 많다. 일반 서점에서 판매하는 책조차도 군바리들은 읽으면 안 된다. 영창에 가야 한단다. 대학을 다니고 대학원에 다니다가 입대한 지성인들도 군바리 신분인 동안에는 이성과 지성을 내려놓고 그저 군바리로 2년을 살다가 제대하라는 것이다.

논리는 이렇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국가안보 상황은 매우 가변적이어서 이를 미리 예측해 규율하기 어렵다. 명확하게 규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리혀 현실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불확정개념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말이 좀 어렵지만 내용은 사회적으로는 서적제한이 합의가 안 되었다 하더라도 지금은 남북관계가 안 좋으니까 규제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앞으로도 원하는 대로 마음껏 제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배려한 것이다.

웃기지도 않는다. 국방부 금서라는 것이 불온성은 고사하고 베스트셀러가 된 유명한 책들까지 포함하고 있다. '나쁜 사마리아인', '우리들의 하느님', '지상에 숟가락 하나' 등이다. 이는 저명한 석학과 소설가, 아동문학가의 작품을 망라한다. 이 책들은 국가의 예산 지원을 받아 공공도서관에 비치되기도 한 우수추천도서들이다. 이런 작품을 읽지 못하게 하려는 것은 군바리들이 인간의 수준으로 높아지는 것을 걱정하여 군바리의 수준에 머물러 있어 부리기 쉽게 하자는 의도가 아닐 수 없다. 국가는 군바리가 그저 군바리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젊은 시절 2년이라는 세월을 폐쇄된 공간에 갇혀 썩는 것도 서러운데 사람 취급도 해주지 않으니 군대에 대한 저항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하긴 군대는 아무나 가나?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만 가는 곳이다. 현 정부의 최고위직 관리 90% 이상 군면제자라는 사실, 지금도 고위공직자 아들들은 군면제 비율이 높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신의 아들, 사람의 아들, 어둠의 자식들을 냉소적으로 분류하는 정서는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군바리도 이제는 사람 대접을 받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특별히 불온한 서적이 아닌 이상 군바리라고 해서 책도 마음대로 못 보게 하는 것이야말로 야만적이고 부당하고 차별적이다. 최신 무기나 사들이고 급식비 몇 푼 올리고 여가시설 조금 확충하는 것으로 사병에 대한 처우를 개선했다고 자위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사람 대접이나 해라!

헌재의 판결은 말할 필요도 없이 비상식적이다. 그렇다면 결자해지! 당사자인 국방부가 행동하라. 즉각 불온서적 제도를 폐지하고 국방부가 책임져야 할 군바리들을 군인으로 대우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