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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경주미리 보는 교회력 설교/오순절 후 22 주(20101024)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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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10월 22일 (금) 08:59:03
최종편집 : 2010년 10월 22일 (금) 14:37:10 [조회수 : 3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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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후 제 22 주(20101024)
성서일과/ 시 84:1-7; 렘 14:7-10, 19-22; 딤후 4:6-8, 16-18; 눅 18:9-14.
본문/ 딤후 4:6-18
믿음의 경주

          (딤후 4:6-18) 『[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0]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1]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15]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두 번째 편지를 쓰는 바울은 늙었습니다.
죽음이 멀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었다고 합니다.
관제는 포도주를 붓는다는 뜻인데 이스라엘의 제사에서 가장 마지막에 행해지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기 인생의 끝부분을 관제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는 자기를 이을 디모데를 향해 유언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인생을 빗댄 말들이 여럿 있습니다.
나그네, 항해, 전쟁, 경주 같은 말들이 거기에 속합니다.
바울은 싸움과 경주에 자기의 지난날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마음에는 만족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교회의 핍박자요, 훼방자였던 자기를 불러 사도로 세우신 주의 뜻에 합한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로 불리기에 합당치 않았으나 그 어떤 사도보다 많은 일을 했습니다.
싸움이라고 한다면 거의 다 이긴 것이고, 달리기라면 결승점에 한 발을 들여 놓은 것과 같은 곳까지 이르렀습니다.
관제라는 말 그대로 병에 담긴 포도주라면 다 쏟아부었습니다.
이제 면류관 받을 일만 남은 것입니다.

디모데는 어떻습니까?
바울의 동역자로 불리기도 했지만 아직은 젊은 사람입니다.
바울과 함께 한 날들보다 바울 없이 사는 날들이 더 많이 남아있습니다.
바울과 함께 할 때는 바울을 돕는 자로서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바울이 죽으면 돕는 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싸움을 감당해야 할 사람입니다.

바울은 승리의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뿐 아니라 디모데도 자기와 같은 승리를 얻기를 원했습니다.
아니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이 승리하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지난날을 회고하는 것은 단순히 인생의 끝에 선 노인의 회한을 털어놓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후계자에게 넘겨주는 승리의 비결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승리의 비결을 깨달아서, 바울이 느끼고 있는 만족함과 기쁨이 성도들의 삶에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어떻게 달려야 믿음의 경주에서 이기는 자가 되겠습니까?

무엇보다 목적이 확실해야 하겠습니다.

이기는 자는 상을 받습니다.
달리는 자는 상을 받기 위하여 달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받을 상을 알았습니다.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바울은 자기가 받을 상을 일러 ‘의의 면류관’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살던 시절에 이긴 자에게 주는 면류관은 월계관이었습니다.
세상의 경주에서 이기는 자가 받는 상과 믿음의 경주에서 이기는 자가 받는 상은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세상의 경주에서 받는 상은 시들고, 썩는 것이지만 믿음의 경주에서 받는 상은 영원히 시들지 않고, 썩지 않는 것입니다.
의의 면류관입니다.

둘째, 세상이 주는 상은 여러 번 받을 수 있는 것이지만 믿음의 경주에서 받는 상은 오직 한 번 받을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 날 곧 주께서 다시 오실 때에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세상의 경주는 이기는 자가 하나이지만 믿음의 경주는 모두가 이길 수도 있습니다.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가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에서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은 한 마디로 부활이요, 영생입니다.
다른 말로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믿는 자의 삶을 나그네라고 한다면 본향입니다.
          (히 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항해라고 한다면 소원의 항구입니다.
          (시 107:30)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전쟁이라고 한다면 개선문을 세워 그 이름을 기록하는 영광입니다.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친선체육대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기를 하는 것이긴 하지만 목적이 승패를 가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찬하게 지내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름을 친선대회라고 해 놓고 경기하다 말고 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적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믿음의 경주에도 목적이 분명치 않으면 안 됩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그렇게 삽니다.

목적이 잘못 되어도 안 됩니다.
잘못된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그렇습니다.

믿음의 경주는 그 목적이 오직 부활과 영생에 있습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이 땅에 목적을 두어서는 목적 없이 산 사람과 같이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약속하신 부활과 영생에 목적을 두고 달리는 성도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목적을 이루기까지 곧 끝까지 인내해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그 일생의 절반을 잘못된 목적을 향해 산 사람이었습니다.
          (딤전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

그런데 그 때 그의 삶은 부족할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유서 깊고,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천막 짓는 일을 하였는데 높은 소득을 올리는 직업이었습니다.
돈을 주고 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허랑방탕한 삶을 산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으로 살아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라는 가말리엘 밑에서 수학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에는 자랑거리가 될 만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후 이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겨 버려버렸습니다.
          (빌 3:7-8)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예수를 만난 후 그의 사는 형편이 전보다 더 좋아져서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삶의 목적이 달라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를 만난 후 그의 사는 형편은 오히려 형편이 없었습니다.
그의 목적이 달라진 후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그 스스로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고후 6:4-7)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좋은 일도 있었지만 궂은 일이 더 많았습니다.
환난, 궁핍, 곤란, 매 맞음, 갇힘, 요란함, 수고로움, 자지 못함, 먹지 못함 같은 말이 힘들었던 그의 삶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이었습니다.
반면에 깨끗함, 자비함, 성령의 감화, 사랑, 말씀 등은 그의 삶에서 느꼈던 기쁨과 즐거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전에 느끼던 기쁨과 즐거움과는 다른 종류의 기쁨이요,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에 띠는 것은 괴로운 일의 목록에도, 좋은 일의 목록에도 인내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많이 견디는 것과 오래 참음이 그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를 만난 이후의 삶을 한 마디로 말하면 어떤 경우에든지 인내하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영원한 것이 세 가지라고 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주 소망이 들어가야 될 것 같은 자리에 인내라는 말을 씁니다.
          (딤전 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딤후 3:10)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딛 2:2)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고...

그에게 인내는 소망과 같은 말이었던 것입니다.
          (롬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살전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 함이니...

오늘 바울은 말합니다.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지킬 수 있었겠습니까?
어떻게 끝까지 다다르게 되었겠습니까?
다른 것은 없습니다.
오직 소망 중에 인내했을 따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썩지 않는 영원한 상, 의의 면류관을 목적으로 사는 사람은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소망 중에 인내할 따름입니다.
부디 오래 참고, 견딤으로 그날에 의의 면류관 받는 자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주께서 도와주십니다.

인내하는 것만으로는 누구도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참는 것으로는 굴복하지 않을 수 있을 따름이지 싸움에서 이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주의 도우심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김은 우리의 힘과 재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이기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이기게 하십니다.
          (고전 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바울도 그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바울과 함께 출발한 자는 여럿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바울 곁에 머물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바울 곁에 머물지 못한 이유도 다양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데마는 세상을 더 사랑하여 바울을 버렸습니다.
그레스게와 디도는 자기들의 경주를 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두기고에게는 사명을 주어 에베소로 보내었습니다.
알렉산더는 바울 곁에 있으면서 바울을 대적하니, 차라리 떠나는 것이 나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중 아무에게도 허물을 돌리지 않습니다.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그들이 끝까지 바울과 함께 있었다한들, 그들의 도움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더가 대적한다고 한들, 이김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알렉산더로 말미암아 이기지 못할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경주에서 이기는 길은 이기게 하시는 주를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요일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그간 숱한 고생을 겪으면서도 인내할 수 있었던 것도 주의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주께서 함께 해 주셨고, 위기의 때마다 건져 주셨습니다.
당신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경주가 곧 주의 경주였습니다.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마지막 때에 이기게 하실 분도 주님이십니다.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기게 하시는 주의 도우심을 믿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자의 입과 같은 위협이 닥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건져내시고 구원하실 분이 함께 하는 줄 믿어, 마침내 이기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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